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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우리가 깜박 잊어버린 목적지 -라오스 비엥싸이 우강을 따라 써 내려간 현대 묵시록 -라오스 퐁살리, 루앙프라방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 -캄보디아 시엠립 기타 하나 메고 혼자 가는 길에 누가 벗 되어줄까 -베트남 호찌민 주 떼므, 떼 아모, 이히 리베 디히, 떼 아모, 안요우엠 -베트남 호이안, 다낭, 후에 세상에는 오직 한 종류의 사람이 있을 뿐 -베트남 하노이 타오르는 지구의 초상, 사라지는 오지 -인도네시아 다나우 센타룸 머리는 흰 구름, 팔은 푸른 숲, 다리는 붉은 -태국 아유타야 미얀마에서 온 아카족 친구 타오 -태국 치앙라이 인도의 끝자락, 낙원의 샘 -스리랑카 시리기아 우연히 발견한 행운, 세렌디피티 -스리랑카 캔디, 아누라다푸라 나인 아치 브릿지 지나 스리파다로 가는 길 -스리랑카 스리파다 당신의 위시 리스트는 무엇입니까? -한국 봄꽃 로드 단풍이 물드는 속도, 초속 30미터! -한국 단풍 로드 에필로그 |
D.H.R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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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잠을 자야 할지, 어디서 밥을 먹을지, 길 끝에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었지만, 그 불확실성이 심장을 뛰게 했다. 아무런 계획도 없었지만 알고 있었다. 세상 어느 곳이든 길이 뻗어 있는 곳엔 사람이 산다.
언덕을 오르자 먼저 소수 부족인 몽족 마을이 나타났다. 주민들이 길 끝까지 가면 또 다른 마을이 나온다고 했다. 얼마나 가야 길 끝에 닿을까? 해발 1,000미터가 넘는 고개를 넘고, 또 넘었다. 오토바이를 탔지만 길을 지나는 동안 루시드 폴의 〈걸어가자〉 노랫말이 머릿속에서 반복 재생되었다. “걸어가자 모두 버려도/나를 데리고 가자/후회 없이/다시 이렇게/나를 데리고 가자” --- 「우리가 깜빡 잊어버린 목적지(라오스 비엥싸이)」 중에서 따르릉. 새벽 알람이 울렸다. 얼른 호텔 조식을 먹고 길을 나섰다. 도심을 벗어나 자전거로 30분, 푸른 숲길을 달리는 내내 공기가 허파꽈리를 청소하는 기분이었다. 앙코르 유적 일주일 입장권을 끊었고, 첫날엔 오로지 한 사원에서만 머물기로 했다.(…) 아침마다 자전거 페달을 밟아 앙코르 유적 내 다른 사원이나 궁전을 찾아다녔다. 단체 관광객이 모이기 전까지 보물찾기에 나선 아이처럼 구석구석을 살폈다. 벵골보리수와 무화과나무가 자라는 사원 마당에 앉아서 한 톨의 나무 씨앗이 자라 사원 전체를 무너뜨리는 장면을 눈감고 상상하기도 했다. ---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캄보디아 시엠립)」 중에서 노랫말에 베트남어가 나오자 어머니와 아들이 환히 웃었다. 그렇게 가수 손병휘가 자신이 작사, 작곡한 노래를 부르는 동안 비명, 폭발음, 굉음으로 가득한 인류의 역사처럼 기차가 덜컹덜컹 큰 소리를 내며 철로 위를 굴렀다. 그럼에도 각각의 언어가 가리키는 ‘단 하나의 의미’가 그 소음에 묻히지 않고 우리의 마음을 가득 채워 주었다. 발음은 달라도 같은 의미, 사랑해요. --- 「주 뗌므, 떼 아모, 이히 리베 디히, 암 요우 엠(베트남 호이안, 다낭, 후에」 중에서 그해 2월 1일 미얀마에서 군부 쿠데타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미얀마에 사는 친구들이 떠올랐다. 한국으로 정치적 망명을 왔다가 귀국했던 마웅저, 내전을 피해 태국으로 이주했다가 돌아갔던 타오.에스엔에스에 접속했다. 마웅저는 ‘시민불복종운동’에 나섰다는 소식을 전했고, 타오는 ‘세 손가락 경례(저항의 상징)’사진을 올린 후론 소식 두절이었다. 타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타오, 무사하니?” --- 「미얀마에서 온 아키족 친구 타오(태국 치앙라이)」 중에서 영국에서 태어난 아서 클라크는 마흔 살이 되던 1956년부터 2008년 죽는 날까지 스리랑카에서 살았다. 스탠리 큐브릭과 함께 각본을 쓴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듄〉 시리즈의 감독 드니 뵐뇌브의 차기작이 될 〈라마와의 랑데부〉, ‘과학 3 법칙’이 실린 〈미래 프로파일〉을 집필한 곳도 스리랑카였다. 2차 대전 중 공군 장교로 복무했던 아서 클라크는 독특한 아이디어를 창안했다. ‘위성통신을 지구 자전 속도와 같은 정지궤도에 올려놓는다면?’ 이를 소재로 논픽션 〈행성간 비행〉을 썼고 그의 상상은 곧 현실이 되었다. 국제천문학연맹에선 적도 위 3만 6,000킬로미터 지구 정지궤도를 ‘클라크 궤도’라고 부른다. --- 「인도의 끝자락, 낙원의 샘(스리랑카 시리기아)」 중에서 한반도는 섬이 아니다. ‘해외’라고 할 게 아니라 ‘국외(國外)’라고 해야 옳다. 국외여행, 국외진출, 국외문물, 국외연수. 그런데도 한국인이 여전히 ‘해외’를 널리 사용하는 건 DMZ가 또 다른 이름의 ‘바다’이기 때문일까? 언어는 존재의 집, ‘해외’가 우리의 의식을 가두기 전 우리가 먼저 ‘해외’라는 철조망을 걷어내야 하리라. 지구 끝까지 다녀온 내게도 아직 해치우지 못한 채 남은 ‘위시 리스트’가 있다. 어느 날 피기 시작한 봄꽃의 뒤를 좇아 북상하여 원산을 지나, 청진을 지나, 개마고원 넘어 유라시아 대륙 건너 핀란드까지 간 후 지구에서 가장 거대하고 영롱한 꽃, 오로라를 보는 것! --- 「당신의 위시 리스트는 무엇입니까?(한국 봄꽃 로드)」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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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이 주는 심장의 고동
책은 어디서 자야 할지, 무엇을 먹어야 할지 알 수 없는 여행의 불확실성을 예찬한다. 작가는 해발 1,000미터가 넘는 고개를 넘으며 루시드폴의 노래 〈걸어가자〉를 되뇐다. “모두 버려도 나를 데리고 가자”는 노랫말처럼, 그는 세상의 소음 대신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아시아의 심장부로 걸어 들어간다. 언어의 장벽을 허무는 ‘사랑해요’의 연대 라오스 몽족 마을에서 이름 모를 주민들과 쌀술을 나눠 마시고, 달리는 베트남 기차 안에서 만국의 공통어인 사랑을 노래하며 웃음꽃을 피운다. 단어의 발음은 달라도 ‘사랑한다’는 본질적 의미는 소음에 묻히지 않고 전달된다. 작가는 이 다층적인 공감을 통해 결국 우리는 지구라는 공간 안에서 연결된 ‘소중한 존재’임을 증명한다. 문명과 자연, 인간에 대한 해박한 통찰 캄보디아 앙코르 유적에서 한 톨의 씨앗이 거대한 사원을 무너뜨리는 장면을 상상하고, 낯선 소수 부족의 삶에 스스럼없이 스며드는 작가의 시선은 깊고도따뜻하다.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역사와 소설, 그리고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이 한 권의 책에 응축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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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여행지를 찍듯이 다니거나 인증샷에 집착하지 않는다. 검소하게 여행하지만 낯선 이에게도 스스럼없이 베푼다. 구석구석 다니며 사람들과 친구가 되는 능력은 천성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행으로 수익을 올리는 데는 관심이 없다. 나는 그의 여행기를 읽기가 두렵다. 바로 떠나고 싶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책을 한 번도 끊어서 읽은 적이 없다. 한번 펼치면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는 매력 때문에.
여행 정보는 안내서를 읽으면 된다. 역사를 알고 싶으면 역사책을, 사람을 알고 싶으면 소설을 읽으면 되겠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알고 싶으면 노동효의 책을 읽어보라. - 손병휘 (가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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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효의 글은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다. 공간적 풍경이나 경험의 묘사를 넘어서는, 사람과 문화와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 때문에 다층적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가 먼저 본 세상에 대한 신뢰를 바탕에 깔고 느긋한 마음으로 여행길을 따라가다 보면 사는 모습은 천차만별이어도 우리 모두 같은 인간이라는 연대감, 지구라는 공간의 소중한 의미를 일깨워준다.
여행의 본질은 결국 ‘나’다. 낯선 경험과 감각을 통해 더욱 새로워지고 풍요로워지는 나. 노동효가 여행길에 종종 경험한다는 ‘우연한 행운(세렌디피티 serendipity)’을, 이 책을 집어든 독자도 경험하게 되리라! - 임순례 (영화감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