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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 DEA NYUNG,尹大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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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도 가뭄이 들면 산을 떠나 바다로 간다"는 주인공 아버지의 입엣말은 '제주도'와 '호랑이'의 부조화의 풍경을 언뜻 수긍케도 한다. 주인공은 왜 바다를 찾아가며, 뜬금없이 호랑이는 웬 말인가?! 소설은 바닷물과 양수의 성분이 비슷하다고 귀띔하며 시작한다.
386세대이자 81학번인 주인공 영빈과 그보다 아홉 살 어린 '해연'은 성수대교 붕괴현장의 첫 만남부터 9년 뒤 같은 아파트의 이웃이 되기까지 겹겹의 우연 속에서 점점 더 가까운 자리에 놓이게 된다. 9년 전의 그날을 아는지 모르는지 재회한 그들은 남매처럼, 혹은 연인처럼 모호하면서도, 특별한 관계를 맺어나간다. 평범한 가정의 둘째 아들로, 늘 형의 그늘에 가려져있던 영빈. 견인주의자가 될 거라고 호언했던 그의 형은 80년대 운동권 무리와 다르다는 연유로 학생처의 프락치로 몰리고, 끝내 결백하나 수치심에 져서 자살을 선택한다. 때로 삶은 얼토당토않은 경계 나누기로 인해 불가해한 일이 발생하며,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어낸다. 작품의 중반부에 서술되는 제주 4?3 사태 역시 그와 맥락을 같이한다. 뒤미처 불운한 바이러스의 창궐처럼 어머니는 암으로 죽고, 나는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와 끝내 화해하지 못한 채 직장마저 잃게 된다. '해연'은 시대와 대립하는 문제는 없었으나 예상치 못한 어머니의 일탈과 그로 인해 보상처럼 바다낚시에 집착하다 결국 바다에 아버지로 인해 치명적인 상처를 입는다. 시나브로 그들은 지난 연대와 유별난 개인사가 만들어낸 불안함의 전형이자, 현실에선 부유하는 허공의 존재가 되었다. 동네 술집에서 우연히 만난 일본인 히데코 역시 이들처럼 스스로 만든 상처 속에 포박돼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외부의 영향으로 인해 정신적 외상, 바로 지난 시절의 트라우마가 있다는 것이다. 어느 날 영빈은 번번이 마주치는 호랑이를 잡기 위해 제주도로 떠난다. 제주행은 존재를 찾고, 잠재된 불안을 치유하며, 그 존재의 진면목을 회복하기 위함이었다. 한편 서울에 남겨진 해연은 모든 물건을 반드시 두 개씩 사들이며, 폭식으로 불온과 불안에 대한 정신적 허기를 채워나간다. 해연과 영빈의 만남이 그러했듯, 해연은 이끌리듯 제주도의 영빈을 찾아오고, 둘은 해연이 마지막으로 아버지와 바다낚시를 다녀간 섬에 들러 우연찮게 해연부녀를 기억하는 낚시 가이드를 만난다. 오래 전, 한없이 지쳐있던 그 부녀의 존재를 기억해내는 사람이 있다는 것. 해연은 알 수 없는 편안함과 위로를 얻고, 영빈은 해연의 아버지가 죽은 갯가에서 실제인지, 환영인지 모를 포효하는 호랑이를 만나며, 집착처럼 매달렸던 바다낚시를 그만두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서울로 올라간다. 그러나 이들의 친구인 히데코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다 죽음을 택한 사기사와 메구무, 등짝에 제 이름을 새기고 자살을 택한 남자친구의 뒤를 이어, 현실의 불안과 절망을 감내하지 못한 채 죽고 마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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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를 맛있게 읽는 네 가지 독해법
① 윤대녕의 새로운 리얼리티 미학 탄생예감!
물 위를 뛰는 꿈, 물론 몽중(夢中)에는 뛰고 날고 기는 모든 것들이 가능하지만 꿈(所望)이 된다면 그것은 판타지에 불과하다. 사(史)를 빼놓고선 전진할 수 없어보였던 한국의 서사적 전통과 일정거리를 유지했던 윤대녕이 이번 작품에서 자신의 문학적 금기를 깨뜨리고, 눙쳐뒀던 사회역사 문제로 눈을 돌렸다. 이것은 낯설고도 자못 흥미로운 일이다. 그간 통시적 시간으로 회유했던 윤대녕이 공시적 시간의 기억과 상실, 열망과 좌절, 기적과 사랑에 주목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쪽과 저쪽의 경계에서 정체성을 밝히지 않는 사람에게 프락치(영빈의 형), 일본인도 한국인도 아닌 물성의 무엇(히데코)으로 명명하고, 그들에게 조직 또는 집단의 이름으로 가해지는 폭력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윤대녕은 경계인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 눈을 홉뜸과 동시에 가족의 붕괴와 같은 개인사도 세밀하게 풀어낸다. 지금 그는 낯설고 매혹적인 새 리얼리티 미학을 직조하고 있는 것이다. ② 제주도는 과연 환상의 섬인가?! 각종 유행가, 영화, 소설 속에서 제주도는 환상의 섬이다. 돌연 제주도로 내려가2년을 칩거한 윤대녕에게도 제주도는 단순히 환상의 섬이었을까? 물론 아니다. 작가에게 제주도는 복작한 복합쇼핑몰과 같다. 환상과 동시에 절망과 비운의 땅이다. 주인공의 불안한 내면이 투사된 호랑이를 버리는 터이며, 그곳에서 존재의 시원과 현재의 자기가 대면하고, 위무를 얻는 거룩한 성소라는 점에서 섬은 환상적이다. 그러나 좌익과 우익의 대립으로 무고한 도민이 학살된 4?3사건이 벌어졌다는 점에선 섬은 참혹한 현실이다. 주인공 영빈이 한밤중에 맞닥뜨린 백조일손의 혼백들, 좀처럼 뭍사람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 음식점 여주인 등 과거의 고통과 절망은 현재까지 재현되며, 여전히 부채로 남아있음을 술회하고 있다. "제주에 머물지 않았더라면 지난 세월을 돌아볼 기회를 갖지 못했을 것"이라고 고백하는 작가는 지난 연대와의 확실한 결별과 화해를 시도하며, 제주에서 그의 작가 인생의 전환점이 될 각별한 신작을 만들어냈다. ③ 윤대녕의 문체(文體)에 문제(問題)있다?! 김영갑(사진작가), 사기사와 메구무(재일한국인 소설가), 민들레 영토, x년 x월 x일…. 윤대녕은 실존 인물과 장소, 날짜를 여느 전작보다 더욱 세밀하게 제시하고 있다. 덧붙여 재미있는 점은 물고기 요리법(전강이, 부시리, 각재기) 마저도 상세히 열거한다는 것이다. 세밀화 된 현실은 독자들에게 지난 달력을 넘기거나, 기억이 농밀하게 담겨 있는 옛 사진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호랑이, 백조일손 혼백, 각종 우연 등으로 빚어진 몽환적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장치이다. 영빈은 오랜만에 책상에 앉아 그동안 메모해두었던 ‘물고기 요리법’ 몇 가지를 정리해 해연에게 이메일로 보내주었다. 전갱이 새끼 먹는 법 ─ 고등어 치어와 함께 낚시꾼을 괴롭히는 탐식성이 강한 대표적인 어종이다. 이 때문에 낚시를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 내장과 비늘을 제거하고 적당히 칼집을 낸 다음 굵은 소금(천일염)을 뿌려 구워먹는다. 술안주로 적당하다. 김장을 담글 때 배추 사이사이에 한 마리씩 넣어주면 김치 맛이 시원하고 구수하다. (……) (본문 142~143쪽) 주인공 사이의 대화도 눈여겨볼 만하다. 마치 선문선답 같은 그들의 문답 형태와 문어체에 가까운 그들의 대화는 서로의 상처의 값에 눌려 소통하지 못했던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아무래도 트라우마가 재발한 것 같습니다. 네, 그게 다시 시작됐어요.” “트라우마?” “해연 씨가 가자미 얘기를 하더군요.” “……” “밝음과 어두움이 뚜렷이 공존하고 카멜레온처럼 여러 가지 보호색을 띠고 있다고 하더군요. 해연 씨 말에 따르면 가자미가 그렇다는 거예요. 어두운 해저에 서식하고 있고요.” “왜 그런 얘기를 하던가요?” 퀭한 눈빛으로 히데코가 중얼거렸다. “우리 모두 가자미과에 속한다는 거죠. 해연 씨와 저, 그리고 영빈씨까지.” (본문 133쪽) ④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는 연애소설이다?! 이 소설은 1962년생 81학번 사내의 지난 이십여 년에 대한 고백임과 동시에 아홉 살 연하의 여자가 그저 주말마다 함께 밥을 먹는 모호한 관계에서 연인으로 발전해나가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성수대교 붕괴현장에서 우연처럼 만났으나, 내외부에서 상처받았다는 그들의 동일함은 필연이 되고, 그 상처를 갖가지 문답과 여행으로 달래가며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결말은 분명 해피엔딩의 연애담이기도 하다. 다만 그 연애담을 전방에 드러내지 않고, 지긋이 눌러주는 점이 연애소설의 시각으로 본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의 색다른 맛깔스러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