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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건반 위의 철학자 백건우와 함께한 4박 5일 9
파리 북역의 아침 - 여행이 시작되다 바쓰로 가는 기차 - 절망에서 태어난 음악, 그리고 한 장의 유서 귀가 들리지 않아도 들리는 음악 바쓰의 첫 밤 I - 베토벤의 사랑, 그 깊고도 아픈 음악 바쓰의 첫 밤 II - 불멸의 연인, 사랑 이후의 고독 고야의 색, 베토벤의 울림 바쓰의 골목에서 바다로 가는 마음, 카디프의 아침 카디프 만에서, 오늘이 있어 행복합니다 택시와 카디프 바다에서 나눈 대화들 웨일즈 숲길에서 들은 백건우, 윤정희의 사랑 이야기 별의 순간, 베토벤 사후 200년 - 카디프의 밤 이틀째, 그리고 영국 기행의 마지막 밤 에필로그 - 4박 5일간 영혼을 함께하다 인터뷰 베토벤 사후 200년, 베토벤에게 묻고 또 묻는 백건우 1. 고갱의 색깔이 있는 바다, 사량도 바다를 앞에 두고 2. 마리아 조앙 피레스와 미츠코 우치다에 관하여 3. 가장 어려웠던 순간, 그때를 말하다 4. 베토벤 사후 200주년을 앞두고 후배들에게 5. 음악을 배우러 떠난다는 것 6. 베토벤 이후 200년, 음악은 인간을 구하는가 백건우 연보 백건우 음반 연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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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 사람들에게 사악하거나 고집스러운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내가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을 몰랐다.’
-“백 선배, 절망 속에서도 어떻게 그런 밝은 음악을 쓸 수 있었을까요?” “절망을 없애려고 한 게 아니라, 절망을 껴안고 넘어선 사람이기 때문이죠(...) 베토벤은 절망에 무너지지 않고 ‘희망의 빛’으로 간 사람입니다. 나에겐 그가 바로 나의 신입니다.” 나는 그 말을 오래 기억하게 될 것 같았다. -웨일즈의 카디프Cardiff 성 안에 들어섰을 때는 여름이 지나가는 듯한 바람이 유난히 세게 불었다. 성 안쪽의 탑 위로 날아가는 새들을 바라보던 그는, “베토벤의 ‘현악 사중주’에는 이런 바람 소리가 숨어 있어요. 대부분은 놓치지만.”이라고 말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그에게 베토벤은 200년 전의 인 물이 아니라, 지금도 말을 걸어오는 ‘동시대의 친구’ 같은 존재라는 것을. -출발한 지 30분 정도 지났을까. 어둠이었다. 해저터널에 들어선 것이다. 그리고 이 어둠에서 저 건너편으로 나오면 우리는 새로운 도시와 새로운 생각을 마주하게 된다. 이 여행은 그렇게, 한 빛에서 또 다른 빛으로 넘어가는 음악처럼 시작되었다. -패딩턴 역을 떠난 지 한 시간이 지났을까. 창밖에 온통 바다였다. 어둠이 약간 깔리는 게 이곳이 영국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8월부터는 밤이 우리보다 한두 시간 빨리 오는 곳이 영국이었다. 대신 여름에는 밤 8시가 되어도 밝았으니까. 차창에 비친 내 얼굴 옆으로 백 선배의 모습이 잔잔하게 흘러갔다. -백 선배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하는 듯 말이 없었다. “요제피네는 베토벤의 음악을 바꿔놓았어요. 그녀가 떠난 후 베토벤의 음악은 단단해졌고, 고독이 철학이 되기 시작했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또 다른 상상을 했다. ‘만약 고야가 베토벤의 음악을 들었다면?’ 백 선배는 내 마음을 읽은 듯 웃으며 말했다. “아마 고야는 베토벤의 음악을 들으며 캔버스 위에 폭풍처럼 또 다른 색을 쏟아냈을걸요? 베토벤의 ‘운명’은 고야의 검은 색조를 움직였을 것이고...‘영웅Eroica’은 그가 그린 빛나는 붉은색과 황금색을 깨웠겠죠.” -“베토벤은 늘 결핍과 싸워야 했던 사람이잖아요. 이런 따뜻하고 정돈된 소우주를 보았다면 잠시라도 마음이 편해졌을 것 같아요.” -“베토벤이 이런 곳에 왔더라면... 아마 또 다른 교향곡을 썼을 수도 있겠어요. 그의 음악에는 ‘외부 세계’가 적거든요. 대신 ‘내부 세계’가 있죠.” -“사람들은요... 진실보다 이야깃거리를 더 빨리 믿습니다. 특히 누군가가 유명하다면, 그 삶이 더 복잡할 것으로 생각하죠.” 그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 담담함 속에 얼마나 오랜 세월의 상처와 사랑이 스며있는지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백 선배, 누님을 잃고... 더 깊어진 음악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그는 조용히, 그러나 아주 단단하게 말했다. “음악은... 사랑을 잃은 사람의 마지막 언어니까요. 나는 이제... 음악으로만 그녀와 대화할 수 있어요.” 그 말에 나는 갑자기 너무나 슬펐다. 이제 카디프의 밤은 우리에게 너무나 다정해졌고, 덕분에 서로에게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전해지는 어떤 인간적인 진실을 공유하게 되었다. -“이른 아침 열차는 늘 좋지요. 사람 마음을 한 칸 비워내니까요.” 열차는 심호흡하듯 서서히 움직였다. 우리가 바쓰행 열차를 탔던 런던 패딩턴에서 출발한 기차였다.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카디프에 바다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설렙니다. 베토벤도 바다를 보고 싶어 했을까요?” 그가 조용히 웃었다. “베토벤은 평생 한 번도 바다를 보지 못했죠. 그게 늘 아쉬웠을 겁니다. 그의 교향곡엔 바다가 없어요. 하지만... 바다 대신 인간 내면의 바다를 깊게 들여다봤지요.” -“아주 정확한 말입니다. 그리고 아주 잔인한 말이기도 합니다. 예술에서 결과를 먼저 묻는 순간, 그 사람은 이미 자기 시간을 잃기 시작합니다. 음악은 속도를 늦추지 않으면 절대로 말을 걸어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일찍 결과를 요구합니다. ‘언제 콩쿠르에서 상을 타나’, ‘언제 무대에 서나’, ‘언제 성공하나’... 그 질문들이 젊은 예술가의 마음을 가장 먼저 망가뜨립니다.” -“2027년 3월 26일은 베토벤 서거 200년이 되는 날입니다. 이 뜻깊은 해에 독일과 오스트리아로 젊은 청년 예술가들과 함께 음악 여행을 떠나는 것은 어떨까요?” “꼭 필요한 여행입니다. 베토벤은 악보로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가 걸었던 거리, 머물렀던 방, 침묵했을 풍경 속에 아직 남아 있습니다. 젊은 연주자들이 빈의 골목을 걷고, 본의 공기를 마시고, (베토벤이) 자살을 생각했던 하일리겐슈타트 숲속에 아무 말 없이 서 보는 경험. 그건 레슨으로는 절대 가르칠 수 없는 것입니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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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살의 나이에 데뷔해 올해로 데뷔 70주년을 맞은 대한민국 1세대 피아니스트 백건우. ‘건반 위의 구도자’, ‘사색하는 피아니스트’라는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그는 한 작곡가를 온전히 ‘살아내는’ 방식으로 세계 유수의 무대에서 관객과 소통해 온 유일무이한 아티스트다. 뉴욕타임스는 그런 그를 일컬어 ‘현대 음악의 명료함과 낭만적 화려함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을 이루는 예술가’라고 평했다.
섬마을에서 카디프 만까지... 백건우, 베토벤을 따라 걷다 세계적 거장의 반열에 오른 그를 한국의 ‘섬마을 콘서트’로 이끌었던 사람이 이 책의 저자인 김재철 전 MBC 사장이다. 백건우는 이 책에서 “섬마을 사람들은 음악을 ‘잘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며, 바람처럼, 물결처럼 있는 그대로 (음악을) 받아들이는 그들을 정말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또 “음악이라는 게... 사람 많은 데서 큰 박수 받으라고 있는 건 아니잖아요. 가장 음악이 필요한 곳이 어디인지 생각해 보면 답이 나와요. 고립된 곳, 조용한 곳, 그리고 누군가 기다리는 곳.”이라고 밝힌다. 젊은 천재들이 빛나는 시대에, 우리가 백건우라는 찬란한 이름을 여전히 떠올리는 이유다. 세계적 거장 백건우, 순례의 길에서 ‘베토벤의 침묵’을 듣다 백건우 스스로가 ‘자신이 평생 걸어온 길의 끝이자 새로운 시작’이라 일컫는 베토벤 사후 200주년이라는 거대한 시간을 앞두고, 백건우와 김재철은 프랑스 파리 북역에서 출발해 영국 바스와 카디프를 걷고 또 걸으며, 베토벤을 향한 순례 여행을 떠난다. 이 책은 작품 해설이나 평전의 형식을 따르지 않는다. 평생 베토벤을 연주해 온 연주자 백건우의 음악적 통찰과, 그와 오랜 인연을 맺어온 김재철의 질문과 성찰이 아름다운 음악적 선율이 되어 독자들의 마음을 두드린다. 특히 이 책은 한 연주자가 평생 천착해 온 베토벤에 대한 사유가 가장 원숙한 시점에 기록된 결과물이기도 하다. 세상의 소음이 지나간 뒤, 침묵 앞에 선 두 사람 백건우는 베토벤의 위대함이 절망의 끝에서 가장 폭발적인 생명력을 가진 작품을 써냈던 데에 있다고 이야기한다. 베토벤을 동시대의 친구로 만나는 이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삶의 절망을 건반 위에서 끊임없이 견뎌온 예술가가 전하는 침묵의 무게’에 대해서도 이해하게 된다. 인간의 내면을 깊이 통찰했던 고야의 그림과 철학자 쇼펜하우어와 니체에 관한 두 사람의 대화 또한 더욱 다채롭고 폭넓은 사유의 여정으로 독자들을 이끈다. 여행 말미에 저자는 카디프만의 바람 속에서 베토벤이 청력을 잃은 뒤에도 음악을 써 내려간 이유, 그리고 백건우라는 한 예술가가 세상의 고통을 마주하면서도 여전히 건반 위에서 인간을 연주하는 이유를 조용히 이해하게 된다. 세간의 뭇 오해와 달리 ‘끝까지 지킨 사랑으로 더 깊은 예술가가 된’ 백건우를 바라보는 저자의 따뜻한 시선이 담겼다. 책 말미에 인터뷰의 형식을 빌려 수록된 글에서는, 후배 예술가들에게 전하는 애정 어린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