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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추억이란 존재의 뿌리다
2. 국방색 바지에 대하여 3. 가장 오래된 술 4. 나를 키운 건 골목길이었다 5. 플라스틱 시대 6. 내 첫사랑 봉자 누나 7. 가족 사진 1 8. 유선양복점을 아십니까 9. 달의 몰락 10. 잃어버린 카메라 11. 가족 사진 2 12. 사진첩을 덮으며 |
安度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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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외갓집 마을의 평화가 깨진 것은 플라스틱 그릇 장사 때문이었다.
겨울날 시골 마을은 바람 한 점 없는 수면처럼 고요하였다. 남정네들은 사랑방에 모여 앉아 연신 기침을 해대며 곰발바닥 같은 손으로 화투패를 돌리기 일쑤였고, 아이들은 양지바른 초가집 처마 밑에 나란히 쪼그리고 앉아 코를 훌쩍이며 햇볕을 쬐곤 했다. 나올 때는 완행이었다가 들어갈 적에는 급행인 게 뭐게? 애걔걔, 그것도 모를 줄 아나, 그건 콧물이지 뭐. 이런 따위의 수수께끼를 주고받는 아이들의 까르륵거리는 웃음소리가 겨울 한낮의 정적을 살짝살짝 깨뜨릴 뿐이었다. 겨울이라 해도 아낙네들은 손을 놀릴 틈이 없었다. 겨울 한철 아낙네들은 집집마다 가마니를 짜는 일을 도맡아야 했다. 가마니를 짤 때 풀썩이는 먼지 속에서 거친 손을 놀리다가 보면 금세 배가 고파왔다. 그러면 옆집에서 누군가 고구마를 쪄놓았다고 부르러 오는 소리가 시집간 딸이 사위 앞세우고 친정 오는 발걸음 소리처럼 들려오곤 했다. 나는 그런 외갓집 마을이 좋았다. 비록 설탕으로 녹여 만든 왕사탕은 없었지만 외갓집 벽장 속에는 손만 뻗으면 홍시가 빨갛게 쟁반에 담겨 있었고, 칠성사이다는 없었지만 얼음이 버석버석한 안동 식혜가 단지 속에서 익어갔다. 그리고 도회지 아이들이 탄다는 스케이트는 없었지만 외할아버지가 굵은 철사를 박아 만들어주신, 우리가 시겟또라 부르던 썰매가 겨울이면 늘 마루 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없는 것도 많았지만 모자라는 것도 없던 시절이었다. ---pp.54~5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