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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소멸
한동일
그린스트로우 2026.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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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청춘의 소멸
구류 3일


작가 인터뷰
축하의 말-나태주 시인

저자 소개 1

대학에서 심리학과 국문학을 전공했다. 2024년 소설 『불 꺼진 나의 집』을 출간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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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3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212쪽 | 222g | 104*182*12mm
ISBN13
9791198892263

책 속으로

도시의 요구에 적은 돈은 금세 바닥났다. 소소했던 일상마저 단조로워졌다. 쉽게 맺은 관계는 거리를 두었고, 소비는 줄였다. 어쩔 수 없이 도시 밖의 부모님에게 의지했다. 나와 부모님 양쪽을 동시에 갉아먹었다. 그럴수록 나의 조바심은 짙어졌고 부모님의 불안도 함께 커졌다. 공간적으로 분리돼 있을 뿐, 나는 여전히 부모님 아래에 서 있었다.
--- p.11

도시의 관계는 필요로 이루어졌다. 얕았고 잘라 내기 쉬웠다. 하지만 나의 생존이 위태로워지니 팔다리가 묶인 채 점점 그들에게 의존해야 했다. 그들과는 미소 가득한 도시광대가 될 수밖에 없었다.
--- p.39

처음 네가 날 보며 했던 나를 잊지 말라고 했던 말, 이제야 알게 됐어. 나를 잃어버린 날, 너로부터 나를 볼 수 있게 됐는데, 이젠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어.
--- p.79

그제야 종일 나를 바라보고 있었던 하얀 달을 알아차렸다. 언제나 너무 밝은 가로등 뒤에 숨어 있던 그 존재는 유일하게 눈 시림 없이 볼 수 있는 빛나는 그것을 도시를 떠난 먼 곳에서 비로소 느끼게 되었다.
--- p.100

‘얼굴이 그 사람일까, 몸이 그 사람일까. 아내는 내 발소리만 들어도 나인 걸 알고 있었고, 멀리서 걸어오는 모습만 보고도 나인 줄 알았지.’
--- p.147

불씨를 시작으로 화가의 그림은 화가의 집보다 높은 불덩이가 되었다. 사람들은 환호하다 추위에 못 이겨 불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흙탕물을 밟고 서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 박힌 눈은 결국 영혼을 잃은 유리알이 되어 버렸다. 저녁이 되어서도 하얀 눈은 그치지 않고 내려 불을 잠재우려 했다. 그렇게 빛은 천천히 꺼져 갔다. 다시 마을 사람들에게 추위가 엄습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림이 완전한 재가 되기도 전에, 흥미를 잃은 표정으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p.160

원고를 책상 위에 내리쳤다. 종이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책상을 짚은 남자의 손이 떨렸다. 종이를 바닥으로 쓸어 버렸다. 그리고 벽장으로 가 오래된 타자기를 꺼냈다. 책상 위에 놓고 종이를 끼운 뒤 손을 올렸다. 하지만 방 안에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 p.185

출판사 리뷰

나민애 교수·이병률 시인 추천!

도망치지 않는 대신, 스스로를 깎아 나간 사람들
한동일 신작 소설집 『청춘의 소멸』

한동일 작가의 신작 『청춘의 소멸』이 출간되었다. 작가는 전작 『불 꺼진 나의 집』에서 삶의 경계에 놓인 인물들과 개인의 기억이 남기는 잔상을 조용하고 절제된 문장으로 포착한 바 있다. “낱낱의 사실(fact)보다 보편적 진실(truth)을 중시한다”는 평가와 함께, “한 시대의 지도(地圖)”가 되어 주는 작품이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청춘의 소멸』은 그 연장선에서, 기억 이후의 선택, 선택 이후의 책임이라는 질문을 더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차원으로 확장한다. 전작이 삶의 경계에 선 인물들의 정서를 응시했다면, 이번 신작 소설집은 그 경계 이후의 선택과 책임을 더욱 날카롭게 묻는다.
『청춘의 소멸』은 실패한 청춘의 이야기라기보다, 실패를 감정적으로 소비하지 않으려는 인물들의 선택을 끝까지 따라가는 소설집이다. 이 책의 인물들은 무너지기 직전의 순간마다 도망치거나 저항하는 대신, 오히려 자신에게 더 엄격해지는 길을 택한다. 그 선택은 외부의 폭력보다 더 조용하고, 더 지속적인 방식으로 이들을 소모시킨다.

청춘이 사라지는 방식들

표제작 「청춘의 소멸」에서 도시는 탈출해야 할 공간이 아니다. 떠날 수 있었음에도 주인공은 끝내 도시를 벗어나지 않는다. 이 도시는 인물을 가두는 감옥이기보다,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마지막까지 증명해야만 하는 무대에 가깝다. 떠나는 대신 남는 선택, 저항하는 대신 견디는 태도 속에서 고독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진다. 청춘은 이 작품에서 폭발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그것은 불타 사라지기보다, 매일의 선택 속에서 조금씩 닳아 없어지는 상태로 그려진다.

이러한 소진의 윤리는 「구류 3일」에서도 다른 형태로 반복된다. 성범죄 사건이라는 첨예한 소재를 다루고 있음에도, 소설은 진실을 판별하거나 결론을 내리는 데 도달하지 않는다. 대신 한 인물이 의혹과 여론, 제도와 도덕의 언어 속에서 어떻게 소비되고 처벌되는지를 집요하게 따라간다. 끝까지 ‘그리지 않는 자’로 남는 화가의 반복되는 자화상은 타인을 대상화하지 않으려는 회피이자, 동시에 자기 자신에게서조차 빠져나오지 않겠다는 윤리적 고집으로 읽힌다. 여기서 청춘은 억울함을 외치거나 결백을 증명하는 대신, 판단을 유예한 채 그 자리에 남아 책임의 무게를 감당한다.

또 다른 소설 「책」에서는 통제의 욕망이 보다 내밀한 차원에서 파국으로 이어진다. 창작자는 세계를 정밀하게 설계하고 장악하려 하지만, 끝내 통제하지 못하는 것은 타인도 제도도 아닌 ‘자신의 책’이다. 출판과 편집, 정확성과 인정이라는 문제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소설은 창작자 내부의 윤리가 어떻게 스스로를 압박하고 붕괴시키는지를 섬세하게 드러낸다. 이 작품에서 청춘은 더 이상 미완의 가능성이 아니라, 완벽을 요구하는 윤리 앞에서 스스로를 깎아내는 태도로 나타난다.

소멸을 판단하지 않는 서사

『청춘의 소멸』에 실린 세 편의 소설은 모두 다른 사건과 인물을 다루지만, 공통적으로 하나의 질문을 향해 수렴한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 그리고 ‘그 선택을 끝까지 감당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이 소설집에서 청춘은 열정이나 가능성의 이름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부과한 윤리를 끝까지 수행하려는 태도로 존재한다.

한동일의 소설은 언제나 쉽게 공감되는 감정을 앞세우지 않는다. 대신 인물들이 선택한 태도와 그 이후의 상태를 오래 응시하게 만든다. 그것은 독자에게 위로나 해답을 건네기보다, 판단을 유예한 채 같은 자리에 머무르게 하는 방식의 서사다.

『청춘의 소멸』은 청춘을 잃은 이후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직 떠날 수 있었음에도 떠나지 않기로 한 순간, 저항할 수 있었음에도 스스로를 더 엄격하게 다루기로 한 순간부터 이미 시작된 소멸의 과정에 대한 기록이다. 이 책은 그 과정이 패배인지, 존엄인지, 혹은 그 둘이 분리될 수 없는 상태인지를 끝내 단정하지 않는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 소설집이 청춘을 소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신 그 소멸의 시간을 하나의 상태로 놓아두며,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독자에게 묻는다.

“도망치지 않는 대신 스스로를 깎아 나가는 선택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추천평

이 소설은 도시인의 현실과 비도시인의 내면 사이에서 우리가 어떻게 도시의 난민이 되어 스스로를 잃어버리는지 알려 준다. 나를 배신하고 ‘도시-신’으로 개종했던 청춘은 어떤 고난을 겪고 다시 돌아오는가. 어떤 방식으로든 청춘의 재를 경험한 사람에게는 일종의 애도가 필요하다. 한 소설가의 20년을 압축한 이 소설이 그리로 인도할 것이다. - 나민애 (문학평론가, 서울대학교 학부대학 교수)
청춘의 소멸』은 ‘아슬아슬하게라도 애써서 지키고 싶은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몇몇 계절은 환절기를 빌미로 계속해서 순환을 시도하지만 결국 사람들은 그 이유로 아프다. 단단하게 도시를 감싸고 있는 허무의 공기 때문에라도 우리는 지거나 녹아 흘러내리거나 했었다. 그렇게나 ‘도시의 냄새’는 ‘도시의 영혼’마저 짓누른다. 사랑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절망이 텃세를 부리고 있었으므로 도시에서의 청춘은 차라리 패배가 쉬웠다. 도시의 삶이란 그런 것. 한동일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청춘이 그토록 갈구하던 도시’를 예리한 칼날에 태워 조각해 냈다. 도시가 우리에게 건네는 “넌 무엇이 좋아서 나에게 기대는가?”라는 질문이 소설을 끌고 가는 도저한 힘. 그 먹먹한 진동으로부터 헤어날 길이 없다. - 이병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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