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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후안, 나의 독서를 대체하다
마지막 날, 일 드 프랑스 일주일 전의 오늘로 돌아가다 첫 번째날, 그루지아 두 번째 날, 다마스커스 세 번째 날, 세우타 네 번째 날, 노르웨이 다섯 번째 날, 네덜란드 여섯 번째 날, 이름 없는 어느 곳 이제 때가 왔다 |
Peter Hand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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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페터 한트케의 걸작!
모든 ‘전통’에 반기를 든 독일 문단의 ‘이단자’. ‘독설’과 ‘파괴’조차 마다하지 않았던 실험정신. 몇 페이지만 읽어도 빠져들게 되는 그만의 분위기. 200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됐을 때 많은 사람들이 놀라움을 표시했다. 가장 놀랐던 사람은 수상자인 오스트리아의 여류 소설가 엘프리데 엘리네크였던 모양이다. 그녀는 수상 직후 “노벨 문학상을 받아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페터 한트케다. 내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 건 여자였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많은 평론가들도 이런 놀라움에 동참했다. 현대 독일어권 작가 중 가장 많은 연구자를 보유하고 있기도 한 페터 한트케(국내에는 고려대학교 윤영호 교수와 충남대학교 박광자 교수, 성신여대 은정윤 교수 등이 페터 한트케 연구로 각각 박사 학위를 받았다.)였기에 평단에서 나온 놀라움도 그만큼 컸다. 충남대 박광자 교수는 엘프리데 엘리네크의 노벨 문학상 소식을 접한 직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오스트리아 작가라면 당연히 페터 한트케가 받을 줄 알았는데 의외”라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페터 한트케가 강력한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됐던 건 우리가 흔히 노벨 문학상에 기대하듯 ‘보편성’에 기반하고 있지는 않다. 지금껏 발표됐던 그의 소설과 희곡들은 철저한 언어파괴와 형식파괴를 동반하고 있다. 평론가들은 이런 그의 실험정신이 그를 세계 문학계의 ‘거장’이 되게 한 비결이라고 말한다. ‘친절한 페터 한트케씨’ / 그의 언어파괴와 형식파괴 『관객모독』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는 오스트리아 태생 페터 한트케는 독일문단에서는 이단아와 같은 존재다. 언어는 단순한 의미 전달 도구 이상이라는 것이 그의 작품 속 주장이다. 초기작 『관객모독』(1966)은 비트 음악을 언어적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구사하는 『관객모독』속의 언어를 좇다보면 ‘줄거리’를 찾을 수 없다. 온갖 욕설로 구성된 『관객모독』에서 페터 한트케는 의미 전달도구로서의 언어를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내부세계의 외부세계의 내부세계』(1969)에서는 일정한 문법적 규범 속에서의 언어 변화와 의식 변화의 상관관계를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어두운 밤 나는 적막한 집을 나섰다』(1977)에서는 이런 외부적 상황을 더욱 구체화 시켰다. 『어두운 밤 나는 적막한 집을 나섰다』에서 페터 한트케는 실어증에 걸린 약사가 환상적인 여행을 하는 과정을 통해 언어가 가지고 있는 ‘보편성’을 단숨에 거부해 버린다. 페터 한트케의 최신작인 『돈 후안』에서는 ‘줄거리’는 살아 있지만 도입부에서부터 청자가 자신의 ‘독서’를 대체하는 형식으로 어느날 갑자기 ‘돈 후안’이라는 존재가 등장한다. 17세기에 사라졌던 돈 후안이. 이후 소설이 전개되는 내내 ‘돈 후안’은 청자의 이의 제기를 거부하는 형식으로 의사소통으로서의 ‘언어’를 거부한다. 더욱이 페터 한트케는 이런 언어 파괴와 더불어 작품 속에서 온갖 형식의 파괴를 동시에 시도하고 있다. 『패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우울』에서는 해고된 노동자가 그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관람하는 상황이 계속되며(이렇게 영화를 보는 장면은 『돈 후안』에서도 상황을 더욱 부각시키기 위한 방식으로 각 장마다 또 다시 등장한다.) 『내부세계의 외부세계의 내부세계』는 도대체 짐작할 수 없는 줄거리를 통해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두 번 세 번 걸러낸다. 페터 한트케의 소설은 난해하다. 이렇게 언어 파괴와 함께 형식 파괴가 동시에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가 우리에게 가장 큰 인상을 남겼던 『관객모독』은 ‘관객“의 사랑을 받은 것은 분명하지만 그의 불친절함이 ”독자“까지 늘리지는 못했다. 때문에 그는 언제나 '이단아’라는 존재였을 뿐이다. 하지만 평론가들은 최근 이런 모습이 조금씩 변화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혹자는 1972년 작인 『긴 작별에 대한 짧은 편지』에서부터 ‘줄거리’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돈 후안은 그런 연장선 속에서 나온 소설이다. 매일매일 일주일 전의 오늘로 돌아가 자신의 하루하루를 증언하는 ‘돈 후안’은 그 형식이 독특하긴 해도 적어도 ‘줄거리’만은 살아 있다. ‘친절한 페터 한트케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