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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의 변
·들어가며 여자, 기억하다 여섯 살 조씨의 강화도 탈출 아버지의 죽음, 어머니의 부재 일본 원정, 시아버지의 사망 스물 일곱, 남편마저 잃다 과거에 급제한 손녀사위를 맞다 여공으로 가산을 일으키다 기록자의 욕망이 가린 그녀의 진실 조씨의 진짜 이야기 이곡과 조씨의 시간축 이곡과 조씨의 공간축 기록자를 매료시킨 여성의 기억 여자, 기억되다 #함경도 #기생 #89세 #가련 가련은 누구인가 사랑과 정치의식, 기억에의 욕망 그 사이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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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곡李穀이 남긴 〈절부 조씨전〉이다. 글의 주인공인 조씨는…전란으로 아버지, 시아버지, 남편을 차례차례 잃었으나, 홀몸으로 자녀와 손주들까지 키워 내며 일흔 줄의 할머니가 될 때까지 건강히 생존했다.
--- p.17 개경에 오자마자 아버지가 다시 관군에 소속 되어 삼별초 진압을 위해 파병된 것이다. 진도를 거쳐 제주까지 간 아버지는, 이듬해 겨울 그곳에서 죽음을 맞았다. --- p.25 아버지를 잃은 조씨는 열셋의 나이에 대위인 한보라는 이에게 출가했다. 고려시대의 평균적인 혼인 연령이 15세에서 20세라는 점에 비추어 보면 이른 편인데, 아버지도 없는 데다 몽골에 보낼 공녀로 징발될 위험이 있어 그랬을 가능성이 크다. --- p.26 시아버지 한광수가 죽었다. 그는 1281년(충렬왕 7) 2차 일본 원정에 동원됐다. --- p.28 10년 후인 1291년 여름, 이번엔 남편 한보가 카다안[哈丹] 과의 전투에서 죽었다. --- p.33 조씨는 이렇게 서른이 안 되어 아버지, 시아버지, 남편 등 의지할 만한 남성 친족을 모두 잃었다.…아버지는 삼별초, 시아버지는 일본, 남편은 카다안. 거의 십 년에 한 번꼴로 남성 친족을 잃었다. --- p.35 딸을 결혼시키고도 조씨가 짊어진 책임의 무게는 결코 가시지 않았다. 딸이 1남 1녀를 낳고 일찍 죽었기 때문이다. 조씨는 손자, 손녀의 생계와 삶까지 책임져야 했다. 조씨는…밤낮으로 “여공女工”을 부지런히 해서 생계뿐만 아니라 손님 대접, 혼례와 상장례 같은 의례 비용까지 마련했다. --- p.38 조씨의 손녀가 전 감찰규정 이양직이라는 사람에게 시집을 갔다…이양직은 〈절부 조씨전〉을 쓴 이곡과 함께 과거에 급제한 이곡의 친구였다. --- p.40 조씨의 집안이나 시집이 모두 하급 무인 집안이었다는 점, 더구나 모든 남성 친족이 사망한 상황이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가문의 힘보다는 재력이 과거 급제자를 손녀사위로 맞아들이는 데 좀 더 도움이 됐을 가능성이 크다. --- p.42 조씨의 일이 중국 조정에 알려지기만 한다면 대서특필될 것이며, 그러면 ‘주려’에 정표하게 될 것이다!…조씨 같은 사례는 그 집안만이 아니라 고려라는 지역의 영광까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바로 그런 바른 풍속을 지닌 고려인으로 자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것이 이곡의 욕망이었다. --- p.51 1332 년(충숙왕 후1) 정동행성 향시에서 1등으로 합격한 후, 이듬해에는 원의 회시에 합격하고 합격자 순위를 매기는 전시에서도 비교적 좋은 성적을 거두며 원에서 관직을 받기에 이른 다. 그간 변변한 관직을 받지 못해 지인들에게 청탁 편지나 쓰던 이곡의 인생은 이로써 대반전을 이룬다. --- p.63 1275년(충렬왕 1) 박유朴褕라는 이가 신하들이 첩을 두는 것을 허락하자는 상소를 한 적이 있었다. --- p.70 가련이 부르는 제갈량의 〈출사표〉를 들으러 전국의 선비들이 함흥으로 모여들었다. 그들로부터 받은 한시를 모아서 만든 시첩은 가련에게 평생의 보물이었다. 가련에게 〈출사표〉와 시첩은 존재 증명 그 자체였다. --- p.86 가련은 1671년(현종 12) 참봉 박진소朴晉素와 첩 유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박진소는 함흥에서 무과에 급제한 인물로 숙종에게 함경도 인재를 널리 수용해 달라고 상소를 올릴 정도의 지식인이었으나, 어머니 유씨는 아마도 기생이었다가 박진소의 첩으로 들어갔던 듯하다. --- p.87 가련의 생애를 전하는 가장 자세한 글은 한문 학자 이희목이 세상에 소개한 이건창李建昌(1852~1898)의 〈가련전〉이다. --- p.88 〈가련전〉은 10대 중반 가련의 첫사랑으로 시작한다. 주인공은 목씨 성을 지닌 서생 목생睦生으로, 목생은 함경도 관찰 사를 따라 함흥에 온 한양의 남인 명문가 청년이었다.…목생은…틈만 나면 애인인 가련을 붙잡고 열성을 다해 남인이 왜 옳고 서인이 왜 그른지를 강변하였다고 한다. --- p.90 가련이 당론을 잘한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함흥에 오는 남인 관료마다 그녀를 호출했기 때문이다. 가련은 남인 관료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노론을 비판하며 승승장구했다. --- p.92 〈가련전〉에 따르면 한양의 노론 재상들이 함흥으로 가는 지방관들에게 가련을 죽일 것을 명령했다고 한다. 이 소식을 접한 가련은 정체를 숨기고자 남장을 하고 한반도 가장 북쪽의 육진六鎭 땅으로 도망쳤다. 가련은 육진에 머물다가 노론의 등등한 기세가 한풀 사그라진 뒤에야 다시 함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 p.95 이건창의 〈가련전〉에서 형상화된 가련의 모습은 기생임에도 여느 사대부 못지않은 소양을 지닌 ‘정치 논객’, ‘남인의 총아’로 보이기에 손색이 없다.…대체로 가련은 명절名節 있는 여협女俠이자 노래에 뛰어난 명기名妓로 묘사되었다. --- p.96 가련은 갑술환국으로 인해큰 시련을 겪었으나 끝까지 변절치 않고 “남인의 종이 될지언정 노론의 첩이 되진 않겠다”라고 다짐했었다. --- p.107 글에 대한 그녀의 집착은 가히 민망할 정도였다. 그녀는 유명한 양반이 함흥을 찾아오면 반드시 가서 대화를 나누고 한시를 부탁하곤 했다. 몸이 불편할 경우 기어서라도 방문했다고 한다. 또한 한양에 세 번이나 걸음하여 공경대부들을 찾아가 마치 수금하듯 한시를 수집해 오기도 했다. --- p.110 그녀의 무덤은 훗날 어사로 이름을 날린 박문수朴文秀(1691~1756)의 글씨로 ‘여협 가련의 묘’라 소개되었다.…100여 년 후인 19세기 중반에 가서는 함흥 지역 읍지에 함흥을 대표하는 인물로 수록되는 영광을 누렸다. 그것도 조선시대 여성들이 읍지에 수록되었던 일반적인 항목인 열녀, 효녀가 아닌 ‘여협’ 항목으로 말이다. --- p.113 가련은 한편으로는 ‘명예 남인’을 자처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양반 남성이 주도한 정치 논리의 ‘성실한 학습자/체현자’에 그치지 않았다. 가련은 사랑할 만한 남자를 알아보고 열성적으로 사랑하면서도, 그 남자를 통해 기생에서 벗어나 신분 상승하는 길을 도모하지 않았다. --- p.1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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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여성들, “딱딱하고 무거운 역사책은 가라”
시리즈에는 고려시대 절부(節婦)에서 20세기 식모, 커리어우먼까지 다양한 여성들이 등장한다. 모두 역사의 ‘주역’이라기엔 거리가 있는, 낯선 인물들이다. 하지만, 지은이들은 몇 줄, 혹은 기껏해야 몇 쪽 되지 않는 사료를 뒤져내 그들의 진솔한 목소리에 귀 기울인 끝에 옛 여성들의 기억, 욕망, 분투, 노동을 온전히 되살려냈다. 사료의 행간을 읽고 사실의 균열 지점을 섬세하게 추적해서 상류층 남성과 가부장적 국가의 기록에 담기지 않은/못한 여성의 목소리를 드러내고자 한 이들의 노력은 그 자체로 값지다. 여기에 때로는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때로는 주인공의 독백처럼 당시 상황을 재구성한 허구적 서술을 적극적으로 시도한 점도 눈길을 끈다. 역사학자의 글은 딱딱하고 무미건조하다는 편견에서 벗어나 독자들과 조금이나마 가까워지려는 장치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녀들의 목소리를 소환하여 좀 더 쉽게 널리 전달하고 싶다는 소망을 반영한 성과이다. 스스로 기록할 수 없었던 이들의 ‘역사’ 시리즈의 1권 『여자, 기록을 가로채다』는 한국사에서 여성과 기억, 그리고 기록의 문제를 다룬 두 편의 글을 실었다. 경험에 기반한 생생한 기억이 있음에도 직접 기록을 남길 수 없었던 절부 조씨. 자신을 기억시키고자 남성 지식인과 공모해야 했던 기생 가련이 주인공이다. 장지연이 쓴 〈여자, 기억하다〉는 역사적 상상력을 동원해 절부 조씨의 일생을 생생히 재구성한다. 동시에 조씨가 직접 겪은 고려 말 전란의 참화는 물론이고 인재 유출을 막기 위해 신하들에게 첩을 허락하자는 “개 풀 뜯어먹는 소리” 같은 상소라든가 몽골어 역관이 되어 왕의 장인이 되었던 ‘명문가’의 내력 등 당대 사회상을 그려낸다. 윤민경이 쓴 〈여자, 기억되다〉는 17~18세기 숙종 연간을 살아간 함흥 기생 가련의 삶을 복원한다. 그녀의 기구한 사랑과 더불어 “남인의 종이 될지언정 노론의 첩이 되진 않겠다”던 당찬 정치 논객, 가까운 양반들의 글을 그러모아 시첩 『가련첩』을 엮어낸 문인이자 가객으로서의 가련을 보여준다. 가련은 기생이었으나 누구보다도 세상의 인정을 갈망하고 기억되기를 열망한 인물이다. 이 시리즈는 ‘오로지 여성 사학자들에 의해 쓰인 여성사’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의미는 ‘여성’을 넘어선다. 1권의 경우, 문자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하층 여성이 남성의 기록을 이용하여 자신의 욕망을 어떻게 실현시켰는가를 보여주면서 이들의 구전 지식이 어떠한 경로로 축적, 반영되었는지, 편향은 없는지 등에 관해 의문을 제기하고 나름의 해석을 더했다. 이 과정에서 ‘여성’을 중심으로 하되 역사적 맥락을 놓치지 않아 잊힌 역사의 속살을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덕분에 대중서로서의 흥미와 역사서로서의 의미를 두루 갖춘 ‘작품’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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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역사는 이야기인 바,
이 책은 몹시도 투명한 이야기책이다. 이야기를 짓는 이들과 이야기를 남기고 싶었던 이들이 서로 손을 뻗고 있다. 두 손 사이에서 피어나는 이야기들을 응원할 수밖에! - 옥자연 (배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