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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찬란한 슬픔
김영랑 평전
황주홍김현철 감수
시공사 2026.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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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감수를 마치며 - 김현철
감사의 글
일러두기
책을 내면서

1부: 시작

1장_영랑과 강진
2장_휘문의숙
3장_김은초
4장_일본 유학
5장_안귀련

2부: 일면

1장_자식들의 아버지
2장_아버지 현창의 일등 공신
3장_영랑의 음악
4장_페어플레이
5장_큰 손
6장_무적응의 천품

3부: 시인

1장_시문학파
2장_창간
3장_영랑의 탄생
4장_민족언어의 완성자 영랑용아지용
5장_초기, 중기, 후기 시
6장_영랑의 독자들

4부: 해방 전후

1장_항일
2장_1945년 8월 15일
3장_제헌의원 선거
4장_처음이자 마지막 직장

5부: 죽음을 넘어

1장_예견
2장_우연의 죽음
3장_필연의 죽음
4장_가난
5장_역사가 되다

참고한 글과 책
사람 이름 찾아보기
발문 - 황지우

저자 소개 2

광주일고, 연세대 정외과를 다녔다. 미국 미주리대에서 정치학 석사, 박사를 받았다. 미주리대 정치학과 강사, 건국대 정외과 교수, 강진군수, 국회의원을 지냈다. 『서양정치사상』(문학과지성사), 『현대정치와 국가』(공편)(연세대출판부), 『지도자론』(공저)(건국대출판부), 『미래학 산책』(조선일보사) 등 여러 권의 책을 번역하고 지었다.

황주홍의 다른 상품

감수김현철

관심작가 알림신청
 
경복고를 졸업하고, 홍익대 신문학과를 다녔다. 10년간 MBC 사회부 기자를 지냈다. 1974년 미국으로 건너가 『한겨레 저널』을 창간해서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 활동했다. 『이래도 미국을 믿을래?』(신아출판사), 『시대의 어둠을 밝힌다』(서울의 소리), 『이래도 미국이 우리 우방이냐?』(좋은땅) 등의 저서를 출판했다. 2006년 잠시 귀국해서 강진군 영랑·현구문학관 관장과 한국시문학파기념관 건립 추진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아버지인 김영랑에 관한 회고록 『아버지 그립고야』(동아일보사 2010, 예다인 2024, 개정증보판)를 내었다.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3월 26일
쪽수, 무게, 크기
360쪽 | 140*210*18mm
ISBN13
9791171259168

책 속으로

영랑의 아들로서 이 책의 내용과 수준에 대해서 최고로 만족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부디 많은 독자들께서 이 책을 읽으셔서 가족보다도 시와 나라를 먼저 생각하셨던 아버지의 모습이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았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내 나이 구순이 된 마당에 이것이 선친을 위해 해 드릴 수 있는 아마 마지막 기회일 것으로 믿고 있다. 그래서 더 각별한 마음으로 이 일을 해내었다.
--- 「김현철, 감수를 마치며」 중에서

이 책은 우리말 시인들의 시인이었고, 민족주의자였고, 조선 선비였던 영랑 김윤식 선생의 일화를 담고 있다. 일화의 대부분은 영랑의 3남 김현철의 직접 경험담과 구전 회고담에 따라 작성되었다. 김 선배는 이 책의 완성을 위해 아흔 고령에도 불구하고 귀한 말씀들을 상세하게 전달해 주셨다. 기억력도 비상하게 총총하셔서 나로서는 크게 의존하면서도 적이 안심이 되었다. 관련 자료도 많이 제공해 주셨다. 존 스튜어트 밀이, 자신의 『자유론』은 먼저 세상을 뜬 아내 해리엇 테일러 밀과 함께 공저한 거나 마찬가지라고 했었는데, 이 책이야말로 김현철 선배님과 공저라 해야 마땅할 정도이다. 물론 다른 생존자들의 회고와 그 밖의 문헌과 연구 자료의 도움도 받았다. 아무튼, 이 책을 통해 우리 역사의 이자랑스러운 시인의 시인, 민족주의자, 선비였던 영랑 김윤식의 참된 면모가 조금이라도 더 부각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 「황주홍, 책을 내면서」 중에서

휘문의숙 3학년 때 영랑의 일생에 중대한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1919년 “기미년 3월 1일 정오 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독립 만세, 태극기 곳곳마다 삼천만이 하나로” 뭉쳐 일어났다(=영랑·용아·지용 등과 더불어 시문학파의 창립 동인이었던 위당 정인보가 쓴 「삼일절」 노래). 영랑 역시 친구들과 함께 이날 떨리는 마음과 벅찬 감회를 안고 종로의 탑골공원엘 갔을 것으로 짐작된다. 어쩌면 2월 27일 천도교 인쇄소 보성사(普成社)에서 독립선언문 2만여 장을 비밀리에 찍어 거사 하루 전인 2월 28일 요소요소의 요인요인들에게 배포하였으니, 이때 이 기미독립선언문을 손에 넣었을 수도 있었겠다.
--- 「1부 2장 휘문의숙」 중에서

김영랑이 난생 처음 직장이던 해방 조국의 중앙청 공보처 출판국장에 재임 중일 때 중학생이던 현철은 아버지랑 같이 출퇴근을 했다. 행복했을 부자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상상된다. 당시 미군들로부터 불하받은 지프차가 출판국장에게 지급되던 관용차였다. 경복중이 바로 경복궁 옆에 있었으니 중앙청과 지척 거리였다. 그래서 아버지 관용차를 타고 함께 중앙청까지 와서, 거기서 걸어 학교로 등교했다. 신당동 집으로 돌아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 사무실에도 자연히 들르게 되었다. 학교가 일찍 파하면 아버지 사무실에서 아버지 퇴근 시간까지 기다리며 학교 공부를 하기도 했다. 그러니 중앙청 공무원들을 매일같이 보고 만나게 되었다. 열네 살 중학생의 눈으로 1949년의 중앙청을 관찰했던 셈이다. 당시 중앙청 공무원들은 99%가 조선총독부 공무원 출신들이었다. 이해가 가면서도 이해가 안 되는 일이다.

그 중앙청 공무원들은 백이면 백 모두 양복 차림이었다. 딱 한 사람이 유일하게 한복 차림이었다. 아버지 김윤식 국장이었다. 영랑은 날마다 한복을 입었다.

양복이 없어서나 양복 입을 줄 몰라서가 물론 아니었다. 영랑에게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겨레를 잊지 말고, 새 나라를 위해 멸사봉공하자는 뜻을 영랑은 한복으로 시위했을 것이다. 다른 어떤 중앙청 공무원도 그렇게 하지 않았고, 영랑처럼 하지 못했다. 겨레 앞에 떳떳했기에, 일제 35년을 당당했기에, 영랑은 그럴 수 있었다.
--- 「2부 2장 아버지 현창의 일등 공신」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김영랑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은 “민족의 대춘부(待春賦)”(=봄을 기다리며 쓴 시)다(김용성, 1973). 더 빼고 말고 할 것 없이 그대로 우리나라 명시 반열 최상단에 위치하는 시일 것이다. 청록파의 시인 박두진 교수는 이 시를 두고 “하나의 시로 완벽에 가까운 표현을 얻었”다고 얘기한다. 박두진은 “영랑의 주정적(主情的) 주제가 자연의 소재와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 “오래고 많은 시의 한 정점적(頂點的)인 성공을 기록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우리말이 도달한 가장 값진 것을 작품의 효과로 현상화하여 철저하게 영랑적이면서 민족의 서정시로서의 보편성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박두진, 93~94). 모란꽃이 피고, 모란꽃이 떨어지고, 모란 꽃잎이 떨어져 눕고, 자취도 없어지면서 5월은 시작되고 끝난다. 모란은 5월의 봄 내내를 관통해서 여름으로 변해 간다. 조물주의 차선의 발명품이 계절이고, 최고 발명품은 그 계절의 변화라 한다. 5월이 시작하고 끝나면서 한 생이 끝나고 다른 생이 시작한다. 영랑은 모란에서 한 넋이 가고 다른 넋의 인연이 오고, 한 세월이 가고 다른 시대가 오고, 그걸 그는 기다리겠다 했다. 희망은 이내 절망으로 변해 가지만, 이 절망이 머잖은 날 다시 희망을 낳으리라는 걸 시인은 믿고 있다.
--- 「-3부 5장 초기, 중기, 후기 시」 중에서

과거 독립운동으로 감옥에 갔다 온 영랑은 이미 확실한 불령선인(不逞鮮人)이었다. 영랑 김윤식은 조선총독부가 작성해 놓은 6천 장의 요시찰 감시 대상자 카드 속 인물이었다. 매주 토요일이면 강진경찰서 고등계(=정보과) 형사가 어김없이 영랑생가에 나타난다. 고등계 형사들이 토요일에만 오는 건 물론 아니었다. 자기들 필요 시 아무 때나 불쑥불쑥 나타났다. 김영랑의 동태를 관찰하고 파악해서 윗선에다 보고하기 위함이었다. 영랑생가 사랑채 대문 기둥에는 아예 ‘순찰함’이라는 것이 붙어 있었다. 담당 형사는 영랑이 집 안에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이 순찰함에 매번 확인 도장을 찍었다. 혹시라도 경찰의 감시망을 피해 어딘가로 빠져나가 또다시 ‘일’을 저지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 「4부 1장 항일」 중에서

1948년 8월 어느 덥던 여름날 영랑 일가는 마침내 강진을 뜬다(*강진에서 서울로 이사 갈 때 영랑 가족은 경찰서 구급차 같은 차량을 이용했다. 영랑이 치안대 고문이었으니 편의를 제공받았을 것이다. 어쩌면 ‘도요다 부장’이 은혜를 갚기 위해 경찰 선배로서 강진 경찰에다 부탁을 했을런지도 모르겠다.). 이미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려 한 해가 서서히 기울어 가던 어느 여름날 아침 그는 이렇게 강진 땅을 떴다.

다산 정약용은 강진 땅으로 유배 올 때 몇 년 정도 살면 해배(解配)되어 다시 한양으로 올라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시 조정에 나가게 될 걸로 기대했다. 그러나 다산은 조선의 임금과 그의 조정으로부터 잊혀진 존재가 되어 무려 18년을 낯설고 물설은 강진 땅에서 유배 생활을 해야만 했고, 끝내 조정에 다시 복귀하지 못하고 눈을 감는다. 동생과 한날한시에 유배되어 흑산도에서 살아가던 다산의 형 정약전은 끝내 사면 복권(=해배)을 보지 못하고 이웃에 유배 중이던 동생 얼굴 한번 보지도 못한 채 흑산에서 불귀의 원객(怨客)이 되었다. 세월은 늘 이리 무심하고, 세상은 이리 무정하다.

--- 「5부 1장 예견」 중에서

출판사 리뷰

슬픔은 어떻게 찬란해지는가
아름다운 시구에서 시작해, 한 인간의 결기로 완성되는 서사


이 책의 출간 의의는 단순한 전기 출간에 머물지 않는다. 세대마다 다르게 기억되어온 ‘영랑’을 하나의 서사로 엮어, 오늘의 독서로 되돌려 놓는 데 있다. 50-70대 독자에게 김영랑은 학창 시절 암송하던 시인의 이름이며, 청춘의 풍경과 겹쳐지는 서정의 원형이다. 반면 20-30대 독자에게 그는 필사 노트와 SNS 속에서 다시 발견된 감성의 언어다. 『저 찬란한 슬픔』은 이 두 기억을 연결하며, 시구 뒤편의 시간을 복원한다.

독자는 한 줄의 문장을 따라가다 어느새 한 인간의 결단과 고독을 마주하게 된다. 왜 그는 끝내 타협하지 않았는가. 왜 그는 시대의 중심이 아니라 변방에서 자신의 언어를 지켜냈는가. 시문학파 동인들과의 우정과 긴장, 문단과 거리를 둔 채 고향에 머물렀던 선택, 그리고 해방 이후에도 변함없이 곧았던 삶의 태도는 한 편의 드라마처럼 전개된다.

이 평전은 문학 애호가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자신의 언어를 더 정직하게 쓰고 싶은 사람, 아름다움이 현실을 어떻게 견디는지 알고 싶은 사람, 타협하지 않는 삶의 가능성을 고민하는 모든 이에게 건네는 제안이다. 슬픔을 밀어내지 않고 끝까지 품어 찬란함으로 바꾼 한 시인의 시간은, 지금 우리에게도 유효한 질문을 남긴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결국 한 사람의 삶을 읽는 일임을, 그리고 그 삶이 우리의 기준이 될 수 있음을 이 책은 깊이 있게 증명한다.

추천평

이 책은 우리 순수 서정시의 본류를 이루는 위대한 시인 김영랑의 삶과 시세계를 깊이 있고 폭넓게 복구하였다. 방대한 주제를 다루는 저자의 실력이 실로 대단하다. 저자의 노력과 값진 성취에 한 국문학자로서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 유종호 (문학평론가, 연세대 전 특임교수)
나는 김영랑 선생의 시라면 무조건 외웠던 사람이다. 지금도 가슴에 금이 가는 전율 증세를 느끼면서 영랑의 시를 읽는다. 김영랑은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모국어의 천재적 마술사였다. 저자인 황주홍은 빼어난 글솜씨로 김영랑을 오늘 우리 앞에 다시 되살려 냈다. 삼가고 삼가면서 모자를 벗고 읽어야 하는 평전 중의 평전이다. 이 책은 우리들의 새로운 필독서다. - 한승원 (소설가이자 한강 작가의 아버지)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감동과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책을 읽다 말고 나는 아내에게 “황주홍 이 사람, 조선 시대에 태어났다면 장원 급제할 사람!”이라고 여러 차례 흥분했을 정도였다. 저자인 황주홍의 문장력과 필력에 솔직히 많이 놀랐다. 지금까지 나온 영랑 관련 책들 가운데 단연 최고다. 보통 잘 쓰여진 책이 아니다. - 신영호 (강진군 문화해설사이며 저자의 고향 친구)
김영랑의 평전, 『저 찬란한 슬픔』은 식민지의 차압된 땅, 강진에서 태어나 한국전쟁이 끝날 무렵까지 살다 간 영랑 김윤식의 만만치 않은 삶을 편년체의 일화들로 서술하고 있다. 그 일화들은 특히, 영랑의 역사를 육친의 눈으로 목격했던 그의 3남 김현철의 증언과 감수를 통해 보다 믿을 만하며 친숙한 디테일들을 부여해 주는 듯하다. - 황지우 (시인, 한국예술종합학교 전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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