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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시작하며
서님, 마님 그래 좋아, 걸어서 가자 착한 도깨비 마을 가치 없는 것은 없다 행복과 불행을 맞바꾸다 5일장에서 구한 오공 갈대 보름달이 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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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빨리 일어나지 못하는 이유.
이걸 생각하다가 저걸 까먹는 이유. 잘 챙겨 둔 물건을 찾지 못해 하루 종일 갈팡질팡하는 이유. 엊그제 인사한 사람의 이름과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이유. 그게 다 세상이 너무 복잡해서 그런 것이라고 어중씨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중씨가 살기에 세상은 정말 너무나 복잡하고 복잡합니다. 여기서는 이래야 되고 저기서는 저래야 되고, 여기 작동법이 다르고 저기 작동법이 다르고, 어제 했던 방식 다르고 오늘 해야 될 방식이 또 다릅니다. 세상의 기기들이 어중씨를 골탕 먹이려고 자꾸 새로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요즘 누구나 다 가지고 다니는 스마트폰을 가지지 못하는 이유만 해도 그렇습니다. 작동법이 너무 복잡합니다. 아 참, 그보다 기능이 너무 많다고 해야 하겠군요. 스마트폰을 손에 넣고 만지다가 뭘 눌렀는지 요금을 몇십만 원이나 낸 적이 있고 그 이후로 스마트폰은 자기와 인연이 없다고 단정해 버렸습니다. --- p.24 그렇지만 어중씨는 김씨 아저씨의 다음 한 마디에 결국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납니다. -맛있는 술을 좀 구해 왔는데……. 이거라도 좀 전해 드려야 하는데……. 어디 가셨나?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기세로 벌떡 일어난 어중씨의 바짓가랑이를 마님이 부여잡습니다. 그리고 책장에서 두꺼운 책 하나를 꺼내 손에 쥐어 줍니다. -독서삼매에 빠졌다 나온 분이 그렇게 황급히 움직이면 어떻게 해요. 저 아저씨 도망 안 가니까 천천히 나가세요. 천천히. 어중씨는 마님이 건넨 책을 받아 옆구리에 낍니다. 벗어 두었던 안경도 씁니다. 그리고 천천히 밖으로 나가 대문을 엽니다. 도야마을의 으뜸 해칭이 김씨 아저씨입니다. -한서방, 댁에 계셨구만. 그런 줄도 모르고 난 그냥 가려고 했지 뭐야. --- p.46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셨어요? 시골에 살수록 그게 더 필요할 것 같은데요. 세상과 완전히 인연을 끊을 작정이세요? -그렇게 거창한 각오는 아니고요. 한 번 그래 보고 싶어서요. 평소에 늘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자동차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 휴대폰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 이젠 그걸 실천에 한 번 옮겨 보고 싶어요. -자동차와 휴대폰 없는 세상이 뭐 별거겠어요. 꼼짝없이 세상과 두절되는 거잖아요. -그렇지는 않을 거예요. 도시에 살면서도 그런 경우 많잖아요. 휴대폰을 놓고 나오거나 잃어버렸을 때, 또 자동차가 고장 나 움직일 수 없을 때 세상과 단절된 듯한 초조와 불안을 느끼지만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잖아요. 단지 조금 늦게 대응하는 차이겠지만 그렇다고 하늘이 무너지지는 않아요. --- p.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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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식피식 웃음이 난다
어중씨가 발견한 일상의 새로운 의미 마을에 초상이 나서 염불을 좀 해달라고 마을 이장님이 어중씨 집을 찾았다. 어떻게 된 일일까? 어중씨는 언제부터인가 아내를 마누라님으로 부르고 있다. 마누라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여보라는 호칭보다 훨씬 다정하고 친근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마님으로 줄여 부르기 시작하자 마님 역시 어중씨를 따라 서방님을 서님~ 서님~ 하고 불렀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 이장님이 불쑥 찾아와 염불을 부탁하며 묻는다. “스님 아니세요? 이 댁 아주머니가 스님 스님 불러서 환속한 스님인 줄 알았는데.” 시종일관 무겁지 않고 유쾌하게 흘러가는 이 소설을 피식피식 웃음을 흘리며 정신없이 읽다 보면 어느새 잊고 있었던 일상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상대방을 부르는 호칭이나 길, 이웃, 마을 등에 대한 어중씨 특유의 유쾌하고 엉뚱한 상상으로 우리 앞에 놓인 일상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 최영철 시인이 실제 살고 있는 도요마을 배경 도요마을에 함께 사는 그림 작가도 참여 소설에서 어중씨가 마님과 함께 한눈에 반한 도야마을은 실제 최영철 시인이 살고 있는 김해 생림면 도요마을이다. 우편물을 보내도 한참이 지나야 도착하는 외딴 시골 마을에 최영철 시인은 부인과 함께 글 쓰며 살고 있다. 도요마을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과 최영철 시인이 가진 섬세하고 투명한 감수성이 이 소설에서 잘 녹아들어 한 편의 아름다운 동화 같은 소설로 읽힌다. 이 소설에 그림을 그린 이가영 작가 역시 도요마을에서 그림을 그리며 살고 있다. 어중씨가 바라보던 강물처럼 아름다운 강이 마을을 감싸고 있는 풍경을 모티브로 삼아 문밖으로 나가 강가를 거닐고 나무를 어루만지며 길에서 만난 강아지와 말을 나누듯 교감하는 시간을 통해 그림을 완성했다. 작가는 소설의 배경이 되는 도요마을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그 감각과 정서를 고스란히 담아내 독자의 상상력을 한층 풍부하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