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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비워진 자리마다 찾아오는 세밀한 위로 004
1부 | 낡은 라디오와 순리의 선율 그 겨울의 ‘렛잇비’ 011 어느 식탐의 기록 015 철로 위에서 발견한 진리 019 금팔찌의 무게와 영혼의 가치 023 뇌사라는 경계선 위에 서서 027 에쿠스의 무게와 목회자의 중심 031 흰 눈 위에 새긴 핏값과 사랑의 역설 035 밥상 위에 내려앉은 작은 천국 039 하늘을 수놓는 연과 우리의 ‘나잇값’ 043 ‘서로’라는 신비 047 정치와 복음 051 제사의 숫자보다 중요한 것 055 봄의 문턱에서 묻는 생명의 주인 059 맨발의 전도자 최춘선 목사 063 무속의 신당과 하나님의 시험 067 2부 | 엉겅퀴 꽃 위에서 부르는 하늘 노래 280그루의 감나무 성도 073 계절의 여백에 핀 허수아비의 노래 077 하나님이 닦아주실 눈물 081 잊을 수 없는 물음, 대답 없는 바다 085 찬양의 주인은 누구인가 089 거문고의 선율 위에 임하는 하늘의 손길 093 성전의 소란 속에 피어난 순수의 찬가 097 가장 작은 자들의 안식처 101 바다의 경계선에 새겨진 창조주의 서명 105 작은 날개의 기적 109 호흡, 그 지극한 은총과 사명 113 산정(山頂)에서 짓는 찬양의 집 117 동백꽃, 태초의 붉은 증언 121 엘 콘도르 파사 125 가장 낮은 자를 통한 공급 129 3부 | 1,435㎜, 타협 없는 복음의 궤도 복음의 뿌리, 사도들의 전통과 편지 135 성경이 말하는 ‘동방’의 진실 139 이단 천지의 시대를 살다 143 흔들리지 않는 뿌리, 부르심의 확신 147 일곱 집사의 사역과 직분의 본질 151 유한한 시간 속에서 영원을 걷다 155 십자가의 길과 왕관의 환상 159 진리와 비진리를 가르는 영적 분별력 163 철학의 성전과 그리스도의 십자가 167 진리의 위장술, ‘이긴 자’라는 이름의 오해 171 불 속에서 정련된 신실한 그루터기, ‘남은 자’ 175 담장 너머의 불길과 예배의 본질 179 다니엘 기도의 본질 183 눈보다 더 희게, 직분보다 더 거룩하게 187 성군(聖君)의 그늘에 가려진 욕망의 덫 1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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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지친 오후였다. 미아리에서 하월곡동과 종암동으로 이어지는 지름길을 택해 걷다 보니, 이른바 ‘미아리 텍사스촌’이라 불리던 거리의 골목에 접어들게 되었다. 붉은 조명이 드리워지기 전의 낮 시간, 그곳은 비현실적으로 고요했다. 희멀건 화장기로 얼굴을 덮은 여인들이 줄지어 서서 나를 향해 “학생, 놀다 가”라고 무심하게 말을 건넸다. 하지만 그 외침은 유혹이라기보다 사무적이고 건조한, 삶의 비애가 섞인 낮은 웅얼거림에 가까웠다. 그녀들의 짙은 화장 뒤로 가려진 퀭한 눈동자에는, 무거운 라디오를 짊어진 나의 어깨만큼이나 깊은 삶의 고단함이 역력히 배어 있었다. 우리는 서로 다른 형태의 짐을 지고 있었을 뿐, 서울의 변방에서 하루를 버텨내는 처지는 매한가지였다.
그때였다. 내 손에 들려 있던 포터블 라디오에서 지직거리는 잡음을 뚫고 낯선 선율이 흘러나왔다. 비틀즈(The Beatles)의 ‘렛잇비(Let It Be)’였다. 피아노의 전주가 시작되자마자, 그 노래는 좁고 어두운 골목의 습한 공기를 단숨에 정화하며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처음 듣는 노래였지만 선율은 마치 내 영혼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다정하게 두드리는 듯했다. “순리에 맡겨두라(Let it be)”는 그 나직한 읊조림은 절망의 끝에서 희망을 찾던 열여덟 청년의 가슴팍을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영어를 다 알아듣지는 못해도, 반복되는 그 구절은 ‘괜찮다, 다 지나갈 것이다’라는 신의 음성처럼 들렸다. --- pp.11-12 철로의 가장 큰 신비는 두 줄기의 선이 절대 만나지 않으면서도 끝까지 함께 간다는 데 있다. 만약 두 선이 서로 가까워지거나 멀어진다면 기차는 파멸적인 전복을 피할 수 없다. 우리 신앙에도 이와 같은 두 줄기 철로가 필요하다. 하나는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이고, 다른 하나는 그 말씀을 치열하게 살아내는 우리의 ‘삶’이다. --- p.20 비극의 현장을 굳이 찾아가 대면하는 일은 견디기 힘든 고통이지만, 우리에게는 꼭 필요한 영적 통과 의례다. 망각은 용서가 아니라 또 다른 비극을 잉태하는 토양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세월호를 잊는 순간, 우리는 다시금 생명을 수치로 계산하는 세속의 논리에 굴복하게 된다. 목포 외항에 흉터처럼 남겨진 낡은 선체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묻는다. “당신들이 생명보다 귀하게 여겼던 세속의 가치들이 무엇이었느냐”고, 그리고 “그날 이후 우리가 회복해야 할 참된 인간다움은 어디에 있느냐”고 말이다. 뒤틀린 고철 덩어리는 역설적으로 우리 영혼의 뒤틀린 단면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 p.83 안데스산맥의 아찔한 절벽 위에서 날개를 펴는 콘도르는 자신의 힘만으로 요란하게 날갯짓하며 허덕이지 않는다. 콘도르는 조류 중에서도 가장 무거운 축에 속하지만, 그 거대한 날개를 펴고 하늘의 상승 기류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유유히 창공을 누빈다. 만약 콘도르가 참새처럼 필사적으로 날개를 파닥였다면, 그 거대한 몸집을 지탱하지 못하고 이내 추락했을 것이다. 자신의 파닥거림이 아닌, 하늘이 예비한 기류에 몸을 완전히 맡긴 채 소리 없이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그 자태는 인간의 수고나 노력이 아닌 전적인 하늘의 은혜를 입어 살아가는 성도의 삶과 묘하게 닮았다. 성도의 비상 역시 자신의 혈기가 아닌 성령의 바람을 타고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힘을 뺄 때, 비로소 성령의 기류가 우리를 떠받치기 시작한다. --- p.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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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위로처럼, 메마른 영혼을 적시는 산정의 찬가”
김성길 목사의 글에는 꾸밈이 없다. 잔칫집 육회 한 접시 앞에서 무너진 자신의 식탐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시골 면 단위의 좁은 길을 달리는 고급 승용차의 무게를 ‘허영의 무게’라고 아프게 꼬집는다. 그의 글은 관념에 갇힌 신학이 아니라, 땀 냄새 배인 작업복과 흙 묻은 신발이 느껴지는 ‘현장의 언어’다. 특히 1970년대의 풍경을 묘사한 자전적 에세이는 한 편의 영화처럼 선명하게 다가온다. 비틀즈의 ‘렛잇비(Let It Be)’를 하나님의 위로로 치환해내는 감수성은, 자칫 딱딱해질 수 있는 신학적 주제들을 삶의 맥락 속으로 부드럽게 녹여낸다. 이 책은 세상의 계산법에 지친 이들에게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다”는 철로의 진리를 전하며, 호박벌처럼 자신의 한계를 잊고 믿음으로 비상하도록 독려한다. 진정한 치유와 쉼이 필요한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책은 시원한 바닷바람과도 같은 선물이 될 것이다. 서문 돌아보니 인생은 무거운 라디오 두 대를 짊어지고 하월곡동의 가파른 산동네를 오르내리던 열여덟 청년의 달음박질과 같았습니다. 살을 에듯 매서웠던 1970년의 겨울, 제 어깨를 누르던 것은 단지 차가운 기계의 무게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앞날을 알 수 없는 청춘의 고단함과 지독한 외로움이었습니다. 그때 좁고 어두운 골목길에 울려 퍼졌던 ‘렛잇비(Let It Be)’의 선율은 제게 단순한 팝송이 아니었습니다.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도 “그냥 그대로 두어라, 결국 순리대로 흘러갈 것”이라며 다독여주시는 하나님의 세밀한 위로였습니다. 당시 실적 없던 하루를 보상해 주던 그 노래처럼, 하나님의 은혜는 늘 제가 무언가를 가득 채웠을 때가 아니라 가장 비어 있고 낮아진 자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억지로 움켜쥐려 했던 손을 펴고 내 안의 아집을 비워낼 때, 비로소 그 빈자리에는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과 하늘의 소망이 차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은 그 비움과 채움의 길목에서 만난 기록들입니다. 산꼭대기 교회에서 280그루의 감나무 성도들과 함께하며 발견한 창조주의 섭리, 목포 평화광장에서 짠 바닷바람을 맞으며 만난 이웃들의 고단한 삶, 그리고 세월호의 아픔이 서린 목포 외항에서 흘린 통한의 눈물까지 모두 이 지면에 담았습니다. - 4쪽(머리말 일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