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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가 되지 않는 법
이사야가 아닌 것이 되는 법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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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순간 나는 어린 시절, 숙제를 미뤘을 때 혼내던 엄마의 커다란 손바닥을 보았다. 분명 환영이었다. 꼿꼿한 다섯 손가락이 영혼을 짓눌렀다. 죽은 몸 안으로 억지로 욱여넣는 느낌이 들었다. 육체와 영혼이 재결합하자 온 세상에 난폭한 빛이 쏟아졌다. 스티커보다 찐득하게, 물풀보다 끈적하게, 녹은 사탕보다 질척하게. 영혼이 강제적으로 살과 피부에 다시 달라붙으려 했다. 죽은 몸을 떠났던 그림자가 돌아오는 중이었다.
--- p.13 “이로써 연쇄살인 사건의 피해자, 주인연 양이 16번째 복생자가 됐음을 선언합니다.” --- pp.15-16 공기마다 기쁨이 흘러넘쳤다. 잘 채운 슈크림 빵처럼 쿡 누르면 어떤 방향으로든 팍, 하고 터질 것만 같았다. --- p.17 “복생자는 죽음을 극복한 성스러운 사람이야. 보통의 인간과 다르고, 보통의 인간과 섞여서도 안 되지. 너는 보통의 사람보다 더 높은 계급의 존재가 된단다.” --- p.18 아마 저 여자아이가 아파트에서 판을 제외하고 유일하다는 이웃이겠지. 나는 달려가는 와중에도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작은 꽃 하나를 눈에 심는 마음으로 그 아이를 시선 속에 새겼다. 찰나의 순간, 우리의 눈이 마주쳤다. --- p.39 이사야는 온갖 미움과 경멸, 혐오와 원망으로부터 인간의 마음을 깨끗하게 정화한다고 숭배받았다. 태초의 순수함을 복원함으로써 어른들은 불결한 현재를 잊고, 찬란한 미래를 맞이했다. 만약 오늘 구원을 받고, 내일 미움이 끓어 차면 다시 이사야에게 구원받을 수도 있다. 신이 살아 있는 이상 구원은 무한히 충전된다. 그것이 도시에는 무서운 일이 없다는 명제의 근거다. --- p.41 나보다 두 뼘은 더 큰 키와 너르지만 상냥한 어깨. 나는 한참 동안 낯선 채집자를 바라보았다. 영원히 이 순간을 잊지 못할 것만 같았다. 왜냐하면……. “드디어 다시 만났어. 주인연, 나랑 연애해줘.” 지독하게 이상한 녀석과의 첫 만남이었으니까. --- p.46 채집자의 두 다리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어둠을 세로로 절단하듯이 달리는 모습이 마치 복생하기 직전, 영혼을 육체에다 데려다준 바람의 움직임 같았다. 차이가 있다면 바람은 차가웠고, 나를 업은 채집자는 따뜻했다. --- pp.52-53 채집자가 한 걸음 물러나더니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올린 채로 고개를 숙였다. 단순한 포즈가 아니었다. 우리의 세계에서 ‘맹세’라고 불리는 행위다. “내 이름은 진초원이고 열여섯 살. 너를 지키기 위해 지금 여기에 있어.” 맹세의 행위로 선언한 문장은 영원히 어기지 못한다. 만약 어겼다가는, 태초의 이사야가 우주에 걸어둔 ‘거짓의 재앙’으로 천벌을 받는다. 그러므로 어른들은 누구도 감히 맹세하지 않았다. --- pp.54-55 “두려워 마세요. 괜찮습니다.” 수도사는 망치를 들었다. 그대로 나의 어깨에 내리꽂았다. 또 죽고 만다! “비명을 삼가세요.” 번쩍거리는 망치가 양쪽 어깨를 번갈아 가격했다. 입가에 침방울이 고일 정도로 비명을 질렀다. 그런데…… 아프지가 않았다. --- p.79 성당에 있는 존재가 사실 신이 아니고 신으로 만들어진 인간이라면, 오래전부터 나 같은 복생자를 신으로 만들어 전시했다는 의미다. 어떻게 인간이 같은 인간을 정화할 수 있다고 믿어온 걸까. --- p.82 늘 혼자였던 그녀는 어느 순간부터 의사와 함께 산책했고, 밥을 먹었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제법 즐거운 시간들이었다. 타인이 존재하지 않던 세계가 타인으로 채워지자, 그녀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외로움이 무엇인지를. --- p.116 꿈은 보석과 같았다. 그 자체로 찬란하고 아름답지만 뾰족하게 세공하면 쥘 때마다 아팠다. 타인의 꿈을 쥐고 사는 일은 특히나 더 아팠다. --- p.139 행복과 안녕이 타자에게 부탁해서 받아내는 것이라면 왜 우리는 자기 자신으로서 살아가는 걸까. 신이 모든 걸 해줄 수가 있다면 누구도 개별적인 존재로 살 필요가 없다. 그냥 신의 여섯 번째 발가락 정도로 대충 포함되면 그만이었다. --- p.149 “신이 돼.” “싫어요.” “신이 돼!” “왜 하필 저예요!” 횃불을 피하며 거듭 뒷걸음질 쳤다. 어느덧 나는 성당의 중간 지점까지 와버렸고 뒤로 계속 달아났다가는 초원을 들킬 위험이 있었다. 이사야가 끔찍한 표정을 지었다. 눈물과 웃음이, 분노와 허무가 복잡하게 손을 잡고 있었다. “그러면 나는 왜 하필 나였는데.” “네?” “나는 왜 나여야만 했냐고!” --- pp.186-1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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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되라고요? 왜 하필 난데요?”
연쇄 살인마에게 육신이 도륙 나 죽은 인연은 그 끔찍한 살해 방법 ‘덕분에’ 치열한 경쟁을 뚫고 16번째 복생자로 선택된다. 복생자는 죽음을 극복한 성스러운 사람이다. 보통의 인간과 다르고, 보통의 인간과 섞여서도 안 된다. 보통의 인간보다 더 높은 계급이자 신에 가장 가까운 존재가 복생자다. 복생자는 늙지 않고 죽지 않고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상처 또한 치유 크림을 바르면 순식간에 회복된다. 복생자를 죽이는 건 단 하나, 오직 ‘불’뿐이다. 사람들의 경배를 받는 도시의 신 이사야는 복생자 중에서도 미성년자이며 몸과 마음이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이만이 될 수 있다. 그 순수를 지키기 위해 미성년 복생자는 가족들과 떨어져 복생자 아파트에서 혼자 살아야 한다. “유리 성 안에서만 사는 하얀 새는 신성하게 느껴지지만, 내 손 위의 새는 얼마든지 더럽힐 수 있어 신성하지 않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차기 이사야 후보가 된 인연 역시 이러한 규율에서 벗어날 수 없다. 선택권은 없다. 복생자로 두 번째 삶을 시작한 순간 차기 이사야 후보로서 지켜야 할 책임과 의무와 극복해야 할 고행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엄마의 믿음. 아니 집착. 두 눈에 이상한 열기를 번뜩이며 엄마가 말한다. “나는 너를 신세기의 신으로 만들 거야.” 그리고 복생자 아파트 원룸에 남겨진 엄마의 쪽지. “잘해낼 거라고 믿을게.” (36쪽) 쪽지를 확인한 인연은 호흡이 멎는 듯한 질식감을 느낀다. ‘신뢰 강박’ 증세다. 귀를 틀어막고 비명을 지르다 급기야 밖으로 달려 나간다. 어둠이 내린 뒤 신도들도 모두 떠나고, 인연이 쪼그려 앉은 성당 앞은 텅 빈다. 쌀쌀한 날씨에 몸을 감싸는 순간 어둠 지렁이가 신발 위로 기어오르고 그 때문에 혼이 쏙 빠진 인연 앞에 한 소년이 나타난다. 계급인 중에서도 가장 멸시받는 밤의 채집자, 초원이다. 이사야가 되지 않을 방법 “어떤 어른도 널 지켜줄 수 없지만, 나는 너를 지켜줄 수 있어.” 초원이 말한다. “나랑 연애해줘.” 가장 손쉽게 이사야 후보에서 탈락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사야 후보는 그 누구든 마음에 담아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올리고 ‘너를 지키겠다’고 맹세의 행위를 하는 초원을 보며 인연은 혼란에 빠진다. 맹세는 함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맹세의 행위로 선언한 문장은 영원히 어기지 못한다. 만약 어겼다가는 그 순간 목숨을 잃는다. 그런데 초원은 왜 알지도 못하는 자신을 위해 맹세의 행위를 하는가. 하나는 확실하다. 초원이 수상쩍은 녀석이긴 하지만 위험하지는 않다! 계급인임에도. 무려 밤의 채집자임에도. 고행을 겪은 날 밤이면 인연은 아파트를 벗어나 거리로 나선다. 그때마다 초원이 나타나 곁에서 함께 걷는다. 둘은 점차 가까워지고 인연은 마음속 고민들을 털어놓는다.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복생자 아파트에서의 방화와 도시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에 관해서도 의견과 정보를 주고받는다. 계급인의 짓이라 의심 받는 방화는 인연의 목숨과 직결된 문제이며 연쇄살인 역시 인연이 피해자 중 한 명이자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밤에만 자유로운 인연과 밤에만 활동할 수 있는 초원이 밤마다 만나 마음을 나누던 어느 날, 화기라곤 일체 없는 복생자 아파트에 또다시 화재가 발생한다. 그 화재로 미성년 복생자인 수연이 죽고, 이제 차기 이사야 후보는 인연이 유일하다. 인연을 옥죄는 족쇄가 더욱 치밀하고 견고해진다. 스스로 만들어가는 미래의 길 “우리들이 자유가 신이 뜻조차 초월하기를!” 인연과 초원은 방화 사건을 조사하러 나온 신입 형사 인아를 도와 방화의 단서를 찾는다. 인연이 계급인과 가깝게 지내는 것을 알게 된 엄마는 괴물처럼 다그친다. “나는 너를 반드시 신으로 만들 거야. 이건 맹세야. 이제 네가 신이 되지 않으면 내가 죽어.” 폭력과 미움으로 가득한 도시, 엄마의 광적인 집착. 달아나고 싶은 끔찍한 현실에서 인연이 간절히 원하는 것은 자신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다. 엄마에게서 달아나고는 싶어도 엄마를 해치고 싶지는 않았다. [……] 나를 둘러싼 온 세계가 끝내 평화를 되찾고, 구원받기를 바랐다. 궁극적으로 나의 염원은 간단했다. “모두에게 자유를 주고 싶어요.” (201쪽) 인연과 초원은 방화범과 살인범을 잡았을까. 인연은 끝내 신이 되기를 거부하고 스스로의 길을 찾았을까. 그리하여 마침내 행복에 다다랐을까. 이온화 작가는 특유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자유로운 영혼을 지키며 진정한 행복을 찾아가는 주인공의 여정을 아프게 그린다. 세계 11개국에 수출된 첫 소설 『시간이 멈춰 선 화과자점, 화월당입니다』와는 또 다른 색채로 독자를 사로잡는 판타지 성장소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