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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의 여우 라이네케
최초로 번역된 괴테의 우화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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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 성령강림절의 분노
2. 왕의 첫 번째 사자 곰 브라운
3. 왕의 두 번째 사자 고양이 힌째
4. 왕의 세 번째 사자 오소리 그림바르트와 여우의 변호
5. 보물 이야기
6. 여우의 눈물
7. 사자 왕 노벨의 분노
8. 여우의 친척들
9. 여우의 지혜
10. 위대한 거짓말
11. 늑대의 도전
12. 최후의 결투

저자 소개 2

요한 볼프강 폰 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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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ann Wolfgang von Goethe

고전파의 대표자이자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 독일 고전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로, 1749년 8월 28일 마인 강변의 프랑크푸르트에서 부유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법학을 공부한 황실 고문관이었던 아버지 요한 카스파르 괴테와 프랑크푸르트 시장의 딸이었던 어머니 카타리나 엘리자베트 사이에서 부족할 것 없는 교육을 받고 자랐다. 라틴어 등 어학에 뛰어났으며 독서량도 많았다. 어렸을 때 라틴어와 그리스어, 불어와 이탈리아어 그리고 영어와 히브리어를 배웠고, 미술과 종교 수업뿐만 아니라 피아노와 첼로 그리고 승마와 사교춤도 배웠다. 괴테는 아버지의 서재에서 2000권에 달하는 법률 서적
고전파의 대표자이자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 독일 고전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로, 1749년 8월 28일 마인 강변의 프랑크푸르트에서 부유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법학을 공부한 황실 고문관이었던 아버지 요한 카스파르 괴테와 프랑크푸르트 시장의 딸이었던 어머니 카타리나 엘리자베트 사이에서 부족할 것 없는 교육을 받고 자랐다. 라틴어 등 어학에 뛰어났으며 독서량도 많았다. 어렸을 때 라틴어와 그리스어, 불어와 이탈리아어 그리고 영어와 히브리어를 배웠고, 미술과 종교 수업뿐만 아니라 피아노와 첼로 그리고 승마와 사교춤도 배웠다. 괴테는 아버지의 서재에서 2000권에 달하는 법률 서적을 비롯한 각종 문학 서적을 거의 다 읽었다고 한다.

괴테는 아버지의 바람에 따라 1765년부터 1768년까지 당시 “작은 파리”라고 부르던 유행의 도시 라이프치히에서 법학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전공인 법학 강의보다 문학 강의를 더 열심히 들었다. 1770년 독일 질풍노도 운동의 실질적 선도자인 고트프리트 헤르더를 만나 독일 민속과 정신에 대한 깨우침을 얻었다. 슈트라스부르크에서 법학 공부를 마친 후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프랑크푸르트에서 작은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지만, 문학에 대한 열정에 더 사로잡혀 있었다.

이때 쓴 작품은 ‘질풍노도’ 시대를 여는 작품으로 『괴츠 폰 베를리힝겐』과 『초고 파우스트』와 같은 드라마와, 문학의 전통적인 규범을 뛰어넘는 찬가들을 쓰게 된다. ‘질풍노도’ 시대를 여는 작품인 『괴츠 폰 베를리힝겐』이 1773년 발표되자 독일에서는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는데, 독일에서 드라마의 전통적인 규범으로 여기고 있던 프랑스 고전주의 극을 따르지 않고 최초로 영국의 셰익스피어 극을 모방했기 때문이었다. 프로이센의 왕까지 가세한 이 논쟁으로 인해 괴테는 독일에서 일약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1768년 건강상의 이유로 요양 생활을 했는데, 그 무렵 신비주의와 중세의 연금술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770년 스트라스부르에서 법학 공부를 위해 머물다가 헤르더를 알게 되면서 셰익스피어 문학에도 심취했다. 변호사가 된 그는 1772년 제국 고등법원의 실습생으로서 몇 달 동안 베츨러에 머물렀다. 이때 이미 약혼자가 있는 샤를로테 부프를 사랑하게 되는 아픔을 겪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1744)을 써, 문단에 이름을 떨쳤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이때의 경험에서 나온 것으로, 주인공 베르테르의 옷차림이 유행하고 모방 자살까지 일어나는 등 유럽 전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1774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발표되자 괴테는 일약 유럽에서 유명 작가가 되었다.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 젊은 작가를 만나기 위해 프랑크푸르트로 몰려들었다. '슈투름 운트 드랑'(질풍노도시대, 문예의 혁명 운동)의 대표작으로서 전 독일 뿐만 아니라 전 유럽에 알려졌다. 1775년 제2의 고향이 되는 바이마르로 가서 공작의 고문이 되고 1782년에는 귀족 반열에 들었다. 1786년의 이탈리아 여행은 괴테의 생애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는데, 이 여행을 통해 그는 고전주의를 지향하게 되었다. 1794년부터 실러가 기획한 잡지에 협력하여 우정을 맺은 괴테는 이후 실러의 격려와 이해에 용기를 얻어 많은 작품을 완성했다. 오랫동안 중단되었던 『파우스트』에 다시 손을 댄 것도 이 시점이다.

자신의 장래에 대해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던 괴테를 18세에 불과했던 바이마르(Weimar)의 카를 아우구스트(Karl August, 1757∼1828) 공작이 초청했다. 처음에는 잠시 체류하면서 자신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보고 아버지의 권유대로 이탈리아로 여행을 다녀올 예정이었다. 그러나 괴테는 이미 유럽에 널리 알려진 유명 작가로 그곳에서 극진한 환대를 받았고, 빌란트(Wieland)를 비롯해 많은 예술가들이 모여 있는 바이마르의 예술적 분위기와 첫눈에 반해 버린 슈타인 부인의 영향으로 그곳에 머무르게 된다. 괴테에 대한 공작의 신임은 두터웠고 공국의 많은 일들을 그에게 떠맡기게 되었다.

여러 해에 걸친 국정 수행으로 인한 피로와 중압감으로 심신이 지친 괴테는 작가로서의 침체기를 극복하기 위해 바이마르 궁정을 벗어나 이탈리아로 여행을 감행했다. 1년 9개월 동안 이탈리아에 체류하면서 괴테가 느꼈던 고대 예술에 대한 감동은 대단한 것이었다.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얻게 된 고대 미술의 조화와 균형, 그리고 절도와 절제의 정신을 자기 문학을 조절하는 규범으로 삼아 자신의 고전주의(Klassik)를 열 수 있었던 것이다.

독일 문학사에서는 괴테가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1788년부터 실러가 죽은 1805년까지를 독일 문학의 최고 전성기인 “고전주의” 시대라고 부른다. 이 시기에 괴테와 실러는 바이마르를 중심으로 자신들의 고전주의 이상을 실현하는 활동을 했는데,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면서도 “유형(類型)”을 통해 “유형적인 개성”으로 고양(高揚)되는 과정을 추구했던 것이다. 괴테와 실러의 상이한 창작 방식은 상대의 부족한 면을 보충해 주어 결과적으로 위대한 성과를 올릴 수 있게 해 주었다. 실러의 격려와 자극으로 괴테는 소설『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를 1796년에 완성하고, 프랑스 혁명을 피해 떠나온 피난민들을 소재로 한『헤르만과 도로테아』를 1797년에 발표해 대성공을 거두었으며, 미완성 상태의 『파우스트』작업도 계속 진행해 1808년에 드디어 1부를 완성하게 된다.

실러는 지나친 의욕과 격무로 인해 1805년 5월 46세의 나이로 쓰러지는데, 실러의 죽음은 괴테에게도 커다란 충격이었다. 1815년 나폴레옹이 권좌에서 물러나자 바이마르 공국은 영토가 크게 확장되어 대공국이 되었다. 괴테는 수상의 자리에 앉게 되지만 여전히 문화와 예술 분야만을 관장했다. 1823년『마리엔바트의 비가』를 쓴 이후로 괴테는 대외 활동을 자제하고 저술과 자연연구에 몰두해 대작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 시대』(1829)와『파우스트 2부』(1831)를 집필하게 된다. 서사시와 서정시, 산문과 시극, 비평과 수기, 4편의 소설과 1만여 통의 편지를 남긴 괴테는 독일민족이라는 정체성의 태동기에 독일문화와 독일어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1832년 3월 22일 낮 1시 반, 괴테는 심장 발작으로 사망한다. 그는 죽을 때 “더 많은 빛을(Mehr Licht)” 하고 말했다고 전한다. 그리고 3월 26일 바이마르의 카를 아우구스트 공작이 누워 있는 왕릉에 나란히 안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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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N,YONG-HO,尹庸鎬

고려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오스트리아 빈대학교에서 페테 한트케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는 고려대학교 인문대학 명예교수다. 저서로는 『페터 한트케 연구』 윤용호 명예교수의 인문학 강좌1,2,3,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과 해설(문학편)』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과 해설(문학편)』 『지중해 연안의 고대 신화들(신화편)』, 옮긴 책으로는 한트케(노벨문학상 수상자) 『반복』 『소망 없는 불행』,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관객모독』 괴테의 『시와 진실』, 『여우 라이네케』 그리고 『악커만, 신의 법정에서 죽음과 논쟁하다』(요하네스 폰
고려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오스트리아 빈대학교에서 페테 한트케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는 고려대학교 인문대학 명예교수다.

저서로는 『페터 한트케 연구』 윤용호 명예교수의 인문학 강좌1,2,3,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과 해설(문학편)』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과 해설(문학편)』 『지중해 연안의 고대 신화들(신화편)』, 옮긴 책으로는 한트케(노벨문학상 수상자) 『반복』 『소망 없는 불행』,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관객모독』 괴테의 『시와 진실』, 『여우 라이네케』 그리고 『악커만, 신의 법정에서 죽음과 논쟁하다』(요하네스 폰 탭플의 독일 최초의 인문주의 작품) 그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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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1년 02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254쪽 | 475g | 148*210*20mm
ISBN13
9788987444222

책 속으로

그러면 빗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술가는 이것을 만드는데 표범의 뼈를 사용했습니다. 고귀한 피조물의 유골이지요. 이들은 인도에서 그리고 낙원에서 거주합니다. 가지가지 색깔들이 그의 털을 장식하고 있으며 달콤한 향기가, 그가 가는 곳마다 널리 퍼져납니다. 그래서 다른 동물들도 그의 냄새를 따라 즐겨 뒤쫓아가곤 합니다. 그 향기를 맡으면 건강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들 모두가 그것을 느끼고 그렇다고 고백을 합니다. 그 우아한 빗은 그와 같은 뼈들로 공들여 만들어졌던 것입니다. 은처럼 맑고,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순수한 하얀 색깔이었습니다.
그리고 빗의 향기는 정향이나 계피 향기를 능가했습니다. 그 동물이 죽으면, 향기는 모두 뼛속으로 스며들어서 그 안에 변함없이 남아, 결코 소멸되는 법이 없었습니다. 그 향기는 모든 전염병과 모든 독성을 물리칩니다.
더욱이 빗의 등 부분에는 가장 값진 그림들이 볼록하니 조각되어 있어 황금빛 나는 우아한 넝쿨과 붉고 푸른 염료로 장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중앙부분에는 트로야의 왕자 파리스 이야기가 예술적으로 새겨져 있었습니다.

--- p. 178

출판사 리뷰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괴테의 작품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나 『타쏘』 그리고 『빌헬름 마이스터』 같은 작품들은 거의 파멸적인 내적 긴장 속에서 진행되었다면, 『여우 라이네케』는 작가 자신에게 위안과 기쁨을 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괴테의 『여우 라이네케』는 여우가 의인화되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동물설화이다. 여우가 등장하는 동물설화는 이미 중세부터 유럽 전역에 널리 알려져 있었고, 괴테도 유년시절부터 잘 알고 있었던 소재이다.

그러나 그때까지 유럽 각국의 이 작품 내용들은 도덕적이고 정치적이며 교훈적인 통찰이 주된 주제였으나 괴테의 손을 거치면서 완전히 새롭게 각색된 『여우 라이네케』로 탄생한다. 작가는 동물설화 속에서 그 당시의 시대적, 정치적 상황 및 교회, 성당 그리고 정치인과 종교인의 생활과 의식뿐만 아니라 민중들의 의식과 생활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 작업은 민중시가(民衆詩歌)의 건강하고 힘찬 세계 속으로의 침잠이었으며, 훗날 독일을 중심으로 한 세계 각국의 민요와 민중시가에 대한 그의 애착과 비교될 수 있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파우스트』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노년에 이를 때까지 그는 옛 민중의 지혜처럼 들리는 작은 격언들을 시화(詩化)했다. 만약 괴테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나 『타쏘』의 영역 속에서만 호흡했다면, 그것은 그를 파멸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내부에 존재하고 있던 전혀 다른 면의 본질이 문학적인 영역에서 민중시가와의 접촉으로 나타나고 있다. 서로 모순되는 내적 가능성들의 균형이 괴테의 삶에서 업적이라고 한다면, 바로 이점에서 『여우 라이네케』는 그의 문학적 창조작업에서 무시할 수 없는 하나의 축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동물왕국에서 여러 동물들을 등장시키고 개개의 특성에 따라 후기 중세의 봉건사회 계층과 질서 그리고 인물들을 패로디하였다. 여우의 온갖 악행에 대항하여 많은 동물들이 사자왕에게 여우를 고발하나 그의 영악한 지혜로 말미암아 좌절되고 만다. 여우의 수사학적 변론을 어느 누구도 당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여우는 위기에 처할 때마다 기발한 거짓말과 엉뚱한 논리로 교묘하게 위기 상황을 모면한다. 때로는 현재와 과거를 혼합하거나, 원인과 결과를 뒤바꾸어 오직 자신의 논리로 변명하기도 하지만 약육강식의 사회에서 피지배자가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혼신의 힘을 다해 마음껏 발휘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우에 관한 다른 모습이 형상화된다. 여우는 악하고 거짓에 찬 궁전의 인물이 아니라 장난꾸러기로 묘사되고 있다. 그에게 희생당하는 어떤 다른 동물들도 여우의 거짓을 통해서 불행으로 빠지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우둔함이나 탐욕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내용면에서 작가가 변화시킨 것은 전혀 없다. 그러나 작가는 시대적 배경과 상황을 서술하여 전혀 다른 효과를 내고 있다. 다시 말하면 시대적 상황과 정치적, 역사적 상황을 그 소재로 첨가하여 사용했던 것이다. 여러 등급으로 나뉜 신하들이 있는 동물왕국은 봉건제도의 국가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독일은 소국가로 분리된 절대국가였으며 당국과 신하들로 구성된 근대적인 조직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작품에서 사자가 지배하고는 있으나 곰과 늑대가 고문직에 앉아 있으며, 힘이 세거나 술책이 능한 동물(여우)들이 비록 사자가 금지하고 있음에도 그들의 충동이나 모험을 추구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자세히 언급되고 있는 교회와 성당의 상태, 즉 교황청의 매수, 독신주의자의 불경, 교황의 파문 그리고 로마 등은 그 시대의 살아 있는 현실이었다

여우는 이러한 시대에 사회의 정의는 무엇이며, 민중은 어떠한 모습으로 착취당하고 있으며, 정치인과 종교인은 민중을 어떻게 핍박하고 있는가를 적나라하게 고발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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