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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는 사람들
I. 1930년대 초엽 상하이 II. 1930년대 중반 도쿄 III. 1940년대 초엽 도쿄 에필로그 해설 지은이에 대해 기노시타 준지 연보 옮긴이에 대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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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 내 말 좀 들어 봐요, 존슨. 일본에서 제가 할 임무는, 일본의 지배층을 어떻게 바꿀지를 고민하는 거예요.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일본의 지배층이 가지고 있는 힘을 어떻게 이용할지를 궁리하는 거예요.
존슨 : 지배층이 가진 힘에만 한정해서 말한다면, 나도 전적으로 동의해. 그걸 동의하지 않는다면, 나도 나치스 당원으로 잠입해 들어갈 이유가 없지. 도쿄 주재 독일 대사나 독일 본국의 선전장관을, 내가 왜 절친한 친구로 삼았겠어. 남자 : 우리는 단지 목적이 다를 뿐이에요. 존슨 : 목적? 이봐, 단어 선택 똑바로 해. 궁극적으로 우리가 무슨 목적이 다르다는 거야? 남자 : 그건 감정, 아니, 감각의… 존슨 : 감정이니 감각 문제를 말할 거면… 미안하지만, 다시 한번 말해 줄게, 넌 국수주의자야! 남자 : 말도 안 돼! 그건… 당신도 단어 선택 똑바로 해요. 당신이 쉽게 독일을 버리듯 내가 일본을 못 버린다고 이러는 거면, 나는 민족주의자라 그래요. 존슨 : 국수주의와 민족주의, 이 두 개를 본질적으로 구분 짓는 지점이 어디에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 있어? 국수주의라는 말이 마음에 안 들면, 전체주의자라고 불러 줄게. 남자 : 전체주의? 어떻게, 존슨, 어떻게 나를… 지금, 나치스를 규정지을 때 쓰는 단어로 나를 규정지으려고 하는 거예요? --- pp.122-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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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라는 광기의 시대,
국가를 구하려고 국가를 배신한 어느 지식인의 초상 전후 일본 정신의 버팀목이라 불리는 기노시타 준지는 1962년, 한 문제적 인물의 삶을 무대 위로 소환한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전설적인 스파이 리하르트 조르게와 공모해 일본 정부의 기밀을 소련에 넘긴 죄로 처형당한 실존 인물, 오자키 호쓰미가 그 주인공이다. 이 희곡은 암호명 ‘오토’로 활동했던 그의 삶을 다루고 있다. 애국과 매국 사이, 경계에 선 인간 이야기는 소련의 이상을 쫓는 독일인 조르게(존슨)와 일본을 사랑하기에 일본을 궁지로 몰아넣어야 했던 오자키(오토) 사이의 팽팽한 갈등을 축으로 전개된다. 조르게는 조국보다 이데올로기를 상위에 둔 반면, 오자키는 평범한 국민들을 구하기 위해 지배층의 힘을 이용하려 했던 민족주의적 면모를 보인다. 작가는 오자키를 일편단심의 영웅이나 단순한 범죄자로 박제하는 대신 시대의 격랑 속에서 번민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자신의 선택을 지켜 나간 인물로 묘사한다. 희곡은 아시아 침략, 오키나와 희생, 조선 식민지화라는 일본의 ‘세 가지 원죄’를 비추고 있다. 2024년 일본 현지에서 3시간 40분에 달하는 대작으로 다시 무대에 오를 만큼 이 희곡이 지닌 생명력은 여전하다. 광기 어린 군국주의 시절, 국가 운명을 좌지우지했던 한 지식인의 고통스러운 발자취는 오늘날 우리에게 묻는다. 거대한 시대의 흐름 앞에서 개인의 양심은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