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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겹치는 국상
2. 여인천하 3. 을사사화 4. 세월의 강 5. 드디어 친정 6. 혼돈과 곡절 7. 달도 차면 기우나니 8. 처량하다, 이 내 신세 9. 동인과 서인 |
辛奉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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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봉은사로 가는 문정왕후와 중전 심씨의 시주는 무려 스무 사람의 내시가 지고 가야 할 만큼 필요 이상으로 많았다. 일종의 과시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왕실의 불사를 기정 사실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위엄과 의지를 확고히 해두려는 것이었다.
보우선사는 봉은사에 당도한 양 궁의 시주를 인수하고 나서 이상궁으로부터 언문으로 된 문정왕후의 친필 서찰을 받았다. - 이번 불사는 조정 중신들의 양해가 있었으니, 명산대찰의 주지를 불러 이를 알리고 많은 불도들을 불러 성대한 불사가 되게 하시오. 보우선사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서둘러 문정왕후의 당부를 실행에 옮겼다. 전국의 명산에 산재한 대찰에서는 일제히 범종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것은 지난 날의 범종 소리가 아니었다. 불교의 진흥을 알리는 우람한 종소리였다. 범종 소리뿐이 아니었다. 법고와 운판과 목어와 대종을 치는 소리도 들렸다. 이 네 가지를 불가에서는 사물이라고 부른다. 법고를 치는 것은 모든 축생들을 천도하고 해탈하며, 운판을 치는 것은 허공 중생들을 일깨워 주는 것이며, 목어를 치는 것은 수중 중생을 천도 해탈하는 것이며, 대종을 치는 것은 인도 중생을 위한 것이니, 죽은 자의 영혼까지를 천도 해탈하는 것이 아니던가. ---p.1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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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이 땅에는 일본 제국의 망령이 살아서 꿈틀거리고 있다. 그들이 조선반도를 식민지로 다스리면서 수많은 악행을 저질렀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간악한 소행을 한 가지만 들라면 조선 지식인들에게 모국의 역사를 왜곡하고 비하하게 한 일이다.
이른바 '조선은 당파 싸움 때문에 망했다'는 식민사관은 광복 이후에 태어난 지식인들의 역사 인식까지 병들게 했고, 그런 망국적인 사고가 우리 민족의 역사를 '당쟁의 역사'로 매도하게 하였다. 당쟁으로 나라가 망한다면 우리는 지금 망해야 한다. 패거리를 지어서 상대를 모함하고 헐뜯는 행태는 지금이 조선시대보다 훨씬 더 유치하고 천박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의 당쟁은 일제가 헐뜯어 놓은 것처럼 그렇게 맹목적인 패거리 싸움이 아니었다. 예학을 숭상하여 사회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한 논란이 정치적인 시류를 탔다 하여 당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당쟁'이라는 말은 마땅히 '정쟁'으로 고쳐서 불러야 하고, 또 그렇게 부르자는 논의도 심심찮게 진행되었으나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아직도 '당쟁'이며, 그 당쟁 때문에 조선 왕조가 망했다는 자기 학대에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정치적 특징은 붓을 든 문신이 칼을 든 무신들을 철저하게 억눌렀던 문치의 시대로 요약된다. 문치란 사림에 의한 정치를 의미한다. 사림이란 무엇인가. 그들은 정도가 아니면 걷지를 않았다.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일이라면 목숨을 버릴지언정 임금의 명도 거역했다. 집권한 세력들이 정의와 청렴을 부르짖으며 자신들에게 항거하는 사림들을 제거하기 위해 패거리를 짜서 옥사와 환국을 거듭해 갔다. 이것이 어찌하여 당쟁이 되는가. 사림들은 의리와 명분을 위해 목숨도 버렸을 뿐만 아니라, 왕실은 물론 누항의 일에 이르기까지 건전하고 품위 있는 도덕적 기반을 유지하기 위해 물불을 가니지 않았다. 그들의 기세를 꺾기 위한 갖가지 행태는 당연히 '정쟁'으로 불리어서 마땅하다. 이 소설은 '당쟁'을 '정쟁'으로 고쳐 불러야 하고 그것이 우리 민족의 역사 인식을 바로 세우는 일임에 역점을 두고 쓰여졌다. 그런데 소설에 담겨야 하는 주제가 아무리 가치있고 소중한 것이라고 해도 소설은 우선 재미있게 읽혀야 한다. 재미로 소설을 읽으면서 잘못된 역사 인식을 가다듬을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횡재는 없다. 그렇다. 이젠 '조선왕조가 당파 싸움으로 망했다'는 식민사관을 떨쳐내고, 우리 역사를 바로 살피는 것으로 미래를 열어가야 하지를 않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