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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조 반정
2. 화친과 척화 3. 화냥년 돌아오다 4. 북벌의 꿈 5. 예송논쟁 6. 거듭되는 정권 교체 7. 장옥정 8. 노 · 소로 갈라지다 |
辛奉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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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 1년(1660) 4월. 이른바 '예송(禮訟)'이라고 불리는 길고도 지루한 예론(禮論) 싸움이 시작된다. 소위 조선의 당쟁을 정쟁으로 불러야 하는 진면목을 드러내 보이는 수준 높은 논전이었다.
남인의 대표적인 논객 중 하나인 사헌부 장령 미수 허목의 상소가 그 시발이었다. 이미 효종이 승하하였을 때, 자의대왕대비의 복제는 송시열, 송준길 등의 주청을 받아들여 '기년복'으로 정해진 바가 있었다. 이제 5월이 되면 소상이라 자의대왕대비는 상복을 벗어야 했다. 따라서 자의대왕대비가 삼년복을 입으려면 지금 재론하여야 마땅한 일이었고, 허목이 상소를 올린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송시열, 송준길 등의 예론을 뒤집어 엎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이던가. 더구나 예론에서 정통성을 잃는다는 것은 곧 학문의 열세를 인정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양자의 논쟁은 격렬해질 수밖에 없었고, 그 논전이 어찌나 첨예하고 치열했던지 사람들은 남인(南人)과 서인(西人)의 생사를 건 싸움이라고까지 했다. ---pp.166~1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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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이 땅에는 일본 제국의 망령이 살아서 꿈틀거리고 있다. 그들이 조선반도를 식민지로 다스리면서 수많은 악행을 저질렀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간악한 소행을 한 가지만 들라면 조선 지식인들에게 모국의 역사를 왜곡하고 비하하게 한 일이다.
이른바 '조선은 당파 싸움 때문에 망했다'는 식민사관은 광복 이후에 태어난 지식인들의 역사 인식까지 병들게 했고, 그런 망국적인 사고가 우리 민족의 역사를 '당쟁의 역사'로 매도하게 하였다. 당쟁으로 나라가 망한다면 우리는 지금 망해야 한다. 패거리를 지어서 상대를 모함하고 헐뜯는 행태는 지금이 조선시대보다 훨씬 더 유치하고 천박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의 당쟁은 일제가 헐뜯어 놓은 것처럼 그렇게 맹목적인 패거리 싸움이 아니었다. 예학을 숭상하여 사회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한 논란이 정치적인 시류를 탔다 하여 당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당쟁'이라는 말은 마땅히 '정쟁'으로 고쳐서 불러야 하고, 또 그렇게 부르자는 논의도 심심찮게 진행되었으나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아직도 '당쟁'이며, 그 당쟁 때문에 조선 왕조가 망했다는 자기 학대에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정치적 특징은 붓을 든 문신이 칼을 든 무신들을 철저하게 억눌렀던 문치의 시대로 요약된다. 문치란 사림에 의한 정치를 의미한다. 사림이란 무엇인가. 그들은 정도가 아니면 걷지를 않았다.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일이라면 목숨을 버릴지언정 임금의 명도 거역했다. 집권한 세력들이 정의와 청렴을 부르짖으며 자신들에게 항거하는 사림들을 제거하기 위해 패거리를 짜서 옥사와 환국을 거듭해 갔다. 이것이 어찌하여 당쟁이 되는가. 사림들은 의리와 명분을 위해 목숨도 버렸을 뿐만 아니라, 왕실은 물론 누항의 일에 이르기까지 건전하고 품위 있는 도덕적 기반을 유지하기 위해 물불을 가니지 않았다. 그들의 기세를 꺾기 위한 갖가지 행태는 당연히 '정쟁'으로 불리어서 마땅하다. 이 소설은 '당쟁'을 '정쟁'으로 고쳐 불러야 하고 그것이 우리 민족의 역사 인식을 바로 세우는 일임에 역점을 두고 쓰여졌다. 그런데 소설에 담겨야 하는 주제가 아무리 가치있고 소중한 것이라고 해도 소설은 우선 재미있게 읽혀야 한다. 재미로 소설을 읽으면서 잘못된 역사 인식을 가다듬을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횡재는 없다. 그렇다. 이젠 '조선왕조가 당파 싸움으로 망했다'는 식민사관을 떨쳐내고, 우리 역사를 바로 살피는 것으로 미래를 열어가야 하지를 않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