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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화 장희빈
2. 인현왕후의 비극 3. 또 한번의 환국 4. 처참한 종말 5. 혼돈의 시대 6. 탕탕평평의 정치 7. 아버지와 아들 8. 세자는 뒤주 속에서 죽고 9. 시파와 벽파 |
辛奉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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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조에서 폐비의 복위 절차를 갖추어 아뢰었다. 4월 12일에 다시 대궐로 뫼신다는 내용이었다.
승지 황재명이 왕명을 받들고 인현왕후에게로 달려갔다. 실로 5년 만에 안국동 사가의 대문이 열렸다. 마당으로 들어서던 황재명은 걸음을 멈추었다. 폐가나 다름이 없어서였다. 창호는 찢어져서 넝마와 같았고, 마당에는 잡초가 치솟아 허리에 차일 지경이었다. '마마께서는 이런 곳에서 오 년이나….' 승지 황재명은 눈물을 쏟으면서 시녀들의 인도를 받았다. 인현왕후는 수척할 대로 수척한 모습이었으나, 단아한 자태로 황재명을 받았다. "중전마마, 승지 황재명 문후 여쭈옵니다." "찾아 준 것은 고맙기 이를 데 없으나…." "중전마마, 기쁜 소식이옵니다. 전하께서 마마를 복위하신다는 어명을 내리셨사옵니다." "……!" 인현왕후는 한 치의 흐트러짐없이 잠시 침묵을 두었다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내 지난 오 년 동안 국법을 지키며 신민된 도리를 다한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어찌 죄인의 신분에서 벗어났다 하리오. 돌아가거든 주상전하께 전해 주오. 성은에는 감읍하나, 죄인의 처지로 다시 중전의 자리에 오를 수는 없다고 말씀이오." ---pp.142~1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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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이 땅에는 일본 제국의 망령이 살아서 꿈틀거리고 있다. 그들이 조선반도를 식민지로 다스리면서 수많은 악행을 저질렀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간악한 소행을 한 가지만 들라면 조선 지식인들에게 모국의 역사를 왜곡하고 비하하게 한 일이다.
이른바 '조선은 당파 싸움 때문에 망했다'는 식민사관은 광복 이후에 태어난 지식인들의 역사 인식까지 병들게 했고, 그런 망국적인 사고가 우리 민족의 역사를 '당쟁의 역사'로 매도하게 하였다. 당쟁으로 나라가 망한다면 우리는 지금 망해야 한다. 패거리를 지어서 상대를 모함하고 헐뜯는 행태는 지금이 조선시대보다 훨씬 더 유치하고 천박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의 당쟁은 일제가 헐뜯어 놓은 것처럼 그렇게 맹목적인 패거리 싸움이 아니었다. 예학을 숭상하여 사회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한 논란이 정치적인 시류를 탔다 하여 당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당쟁'이라는 말은 마땅히 '정쟁'으로 고쳐서 불러야 하고, 또 그렇게 부르자는 논의도 심심찮게 진행되었으나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아직도 '당쟁'이며, 그 당쟁 때문에 조선 왕조가 망했다는 자기 학대에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정치적 특징은 붓을 든 문신이 칼을 든 무신들을 철저하게 억눌렀던 문치의 시대로 요약된다. 문치란 사림에 의한 정치를 의미한다. 사림이란 무엇인가. 그들은 정도가 아니면 걷지를 않았다.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일이라면 목숨을 버릴지언정 임금의 명도 거역했다. 집권한 세력들이 정의와 청렴을 부르짖으며 자신들에게 항거하는 사림들을 제거하기 위해 패거리를 짜서 옥사와 환국을 거듭해 갔다. 이것이 어찌하여 당쟁이 되는가. 사림들은 의리와 명분을 위해 목숨도 버렸을 뿐만 아니라, 왕실은 물론 누항의 일에 이르기까지 건전하고 품위 있는 도덕적 기반을 유지하기 위해 물불을 가니지 않았다. 그들의 기세를 꺾기 위한 갖가지 행태는 당연히 '정쟁'으로 불리어서 마땅하다. 이 소설은 '당쟁'을 '정쟁'으로 고쳐 불러야 하고 그것이 우리 민족의 역사 인식을 바로 세우는 일임에 역점을 두고 쓰여졌다. 그런데 소설에 담겨야 하는 주제가 아무리 가치있고 소중한 것이라고 해도 소설은 우선 재미있게 읽혀야 한다. 재미로 소설을 읽으면서 잘못된 역사 인식을 가다듬을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횡재는 없다. 그렇다. 이젠 '조선왕조가 당파 싸움으로 망했다'는 식민사관을 떨쳐내고, 우리 역사를 바로 살피는 것으로 미래를 열어가야 하지를 않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