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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도래하는 현재
I. 프랙털 삼위일체: 테크놀로지/신체/사회 1. 신체의 기술·경제적 배치 2. 스크린의 질서 3. 고정된 신체의 자본주의 II. 현실의 재가공 1. 감시받는 세계 2. 초개인화된 삶 3. 생성형 인공지능의 전환점 III. 또 다른 유령 1. 관계의 새로운 경제 2. 원격 관계의 보편화 3. 타자의 증발 IV. 탈주체화 과정 1. 자기다움의 피로 2. 인류의 ‘식물인간화’ 3. 사기적 담론들 지평(들). 진실의 시간 주 |
Eric Sad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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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28일, 페이스북 창립자이자 최고경영자인 마크 저커버그는 사전 녹화한 영상을 통해 회사의 전략적 방향 전환을 발표한다. 회사 이름은 ‘메타Meta’(고대 그리스어로 ‘저 너머’라는 뜻)로 바뀌었다. 저커버그는 일상생활에서 원격으로 수행될 수 있는 활동의 범위를 끊임없이 확장하는 기술 환경을 구축하여 인간 삶의 새로운 시퀀스를 열고자 한다. … 이제 그의 궁극적 목표는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프로세서와 픽셀만을 통해 행동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p.13~14 우리는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먼저 데이터, 네트워크, 인공지능 산업이 계속해서 정교해지고 영향력을 강화하면서 사회, 타인, 현실과 맺는 관계, 주관을 구성하는 도식이 무한히 변화하도록 일조하는 길이 있다. … 다른 한 갈래는, 수많은 요인으로 기어이 발생하고야 말 것처럼 보이는 그 어떤 상황도 필연적인 것으로 간주하지 않는 길이다. 이는 무엇보다 근본적이고 불가침하다고 여겨지는 가치를 지키려는 우리의 완강한 의지 때문이다. --- p.38~39 서비스 경제가 지배적이던 약 반세기 전, 많은 사람들은 사무실에서 온종일 모니터 앞에 붙어 있었지만, 이 현상은 전혀 다른 국면을 맞이했다. 몇십 년 뒤 그들은 이번에는 스마트폰 액정을 손에 쥐고 시선을 고정한 채 끊임없이 움직이게 되었다. 2010년대 무렵부터는 멈춰서 화면을 보는 상태와 움직이면서 화면을 보는 상태가 번갈아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이라는 장치 안에서 하나로 겹쳐진 것처럼 느껴진다. 오늘날 우리는 스마트폰을 넘어 스크린을 보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 p.68~69 우리가 직면한 것은 쇼샤나 주보프가 주장한 소위 ‘감시 자본주의’가 아니다. 이는 매우 구시대적인 관점의 오류일 뿐이다. 오히려 갈수록 더 실시간화되는 일상의 흐름에 대한 자동 모니터링에 직면했다고 봐야 한다. 픽셀화된 몰입, 훨씬 더 전지적인 시스템, 생성형 인공지능을 보면 오늘날의 쟁점은 더 이상 현실 세계와 최대한 조율하는 데 있지 않고, 오히려 현실을 일종의 반죽처럼 주무르고 현실에 여러 궤적을 도입해 현실 위에 또 다른 현실을 포개고야 마는 데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종류의 현실은 우리와 더 이상 부딪히지 않으며 오히려 우리를 홀리는 마법처럼 인간의 의도와 욕망에 맞춰준다. --- p.86 거의 감지할 수 없지만 ‘유령으로 가득한 픽셀 철창’이 형성되고 있다. 이는 막스 베버가 말한 ‘철창’에 빗댄 표현이다. 베버는 산업화와 자본주의화를 거친 사회에 내재된 극도의 합리화 과정을 철창에 비유하면서, 대다수가 냉혹한 철창에 갇혀 있다고 말했다. … 우리를 끊임없이 조이고, 낯선 질서에 종속시키는 현시대의 철창은 굴욕적인 타율성에서 비롯되었지만 전혀 억압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매혹적인 장신구로 치장한 채 일종의 마성을 뿜어내고 인체공학적 편리함을 제공하며 거의 모든 요청을 들어주는 ‘황금’ 철창인 것이다. --- p.101 삶의 디지털화가 심화되면서 타인의 육체로부터, 즉 있는 그대로의 타인으로부터의 거리두기가 은밀히 자리 잡았다. 이는 타인이 우리에게 베풀 수 있는 물리적이고 정서적인 온기에서 그만큼 거리를 두는 일이기도 하다. … 시간이 갈수록 육체적 존재보다는 스크린에 나타나는 말이나 이미지가 우선 인식된다. 이로써 우리는 유령과도 같은 삶의 체제를 시각이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그 결과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기 자신은 보이고 읽히는 존재가 된다. --- p.124~125 접속의 시대는 사람들을 하나의 ‘지구촌’으로 연결하고 ‘정보와 지식의 고속도로’를 열어줄 것 같았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 그 접속의 시대는 가까운 곳의 가치가 떨어지는 시대로, 훨씬 더 은밀하게는 우리 스스로의 가치가 떨어지는 시대로 변하고 말았다. 유령의 삶 속에서 인간의 정신은 자신이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성향, 게으름, 신경증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외부의 힘에 장난감처럼 휘둘릴 따름인 것이다. --- p.148 우리가 마주한 것은 단순히 사회적 사실이 아니라 문명적 현상이다. 다시 말해, 타인 및 현실과 맺는 관계를 언제나 우리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재정의하는 세계에 우리가 흡수된 것이다. --- p.150 어느 때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현재의 흐름과는 완전히 반대 방향에 존재한다. 자기 표현을 위해 SNS 플랫폼에 끊임없이 포스팅을 올리는 것처럼 일방향적이고 단정적인 언어 체제는 필요하지 않다. 우리에게는 전적으로 자유롭고 다원적인 정치 공동체에서 각자 자기 이름을 걸고 고유한 목소리를 내는 일이 필요하다. --- p.153 어떤 경우에도 인공지능의 편향성을 교정하는 것이 쟁점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 대신 철저한 경각심을 품고 이 순응주의에 단호히 반대하여 인간상 자체가 편향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즉, 인간을 결함 있는 대상 또는 단점투성이로 취급하고, 이를 보완하려면 인공물이 필요하며 결국 인공물에 인간의 속성을 모두 일임해야 한다는 그 편향된 믿음에 저항해야 하는 것이다. --- p.178 위대한 폭로의 시간이 도래했다. 산업혁명에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쉬지 않고 달려온 도구적 합리성과 그 역사의 본질을 백일하에 밝히는 시간이다. --- p.185 그렇다. 우리의 가장 크고 영예로운 의무는 이 생성형 인공지능, 즉 우리의 고유한 목소리를 없애고 각자 자유롭게 길을 선택하지 못하도록 하는 인공지능을 당장 금지하는 것뿐이다. 따라서 각국의 국가 원수만이 아니라, 국가 및 국제 공공기관, 시민사회 전체는 신체와 정신 표현을 말살시키는 도구의 사용을 금지하도록 하는 내용의, 전 세계적 구속력을 지닌 규제안을 작성해야 한다. --- p.1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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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 작가, 전치형 교수 강력 추천*
*〈르뷔데되몽드〉 올해의 책 최종 후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기술사상가 10인’ 선정* “이 책을 읽는 동안 몇 번 머리 위에서 벼락이 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_장강명 작가, 『먼저 온 미래』 저자 ‘오늘 어떤 도움을 드릴까요?’ ‘지금 무슨 생각을 하시나요?’ 어떤 질문이든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는 인공지능이 오늘도 우리에게 말을 건다. 해를 거듭하며 정교해지고 있는 인공지능은 작업 속도를 줄여주고 맞춤화된 서비스를 제안하거나 아예 인간의 일을 대신해줌으로써 엄청난 편리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편리성이 근본적으로 인간의 존재 방식을 바꿔놓는다면 미래는 어떻게 될까? 현대 프랑스를 대표하는 철학자 에릭 사댕은 『유령의 삶』에서 스마트폰, 생성형 인공지능, 메타버스로 대표되는 디지털 체계를 '유령'이라 명명한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급속도로 발전했고, 수많은 알고리즘은 우리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이러한 인공지능 유령에 ‘중독’이 걱정될 만큼 사람들이 의존해온 데 대해 에릭 사댕은 ‘중독’은 표면적 현상에 불과하며, 우리가 마주한 것은 단순히 ‘사회적 사실’이 아닌, ‘문명적 현상’이라고 정의 내린다. 그는 철학자 귄더 안터스의 말을 인용해 이렇게 말한다. “유령이 현실이 되면, 현실은 유령처럼 된다.” 이 책은 출간 직후 프랑스 주요 매체에서 대대적으로 보도되었고, 프랑스의 권위 있는 문예지 〈르뷔데되몽드〉 올해의 책 최종 후보에 올랐다. 〈르몽드〉는 에릭 사댕을 ‘디지털 세계의 철학적 파수꾼’으로 일컬으며 찬사를 보냈고, 스페인의 유력 일간지 〈엘파이스〉는 2025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기술사상가 10인’ 중 한 명으로 쇼샤나 주보프, 도나 해러웨이, 루치아노 플로리디, 한병철 등과 나란히 에릭 사댕을 선정하며 화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스크린에 갇힌 신체, 인간은 프롬프트를 입력하는 존재인가 사댕은 증기기관의 등장부터 전기 시대, 그리고 디지털 시대에 이르기까지 테크놀로지·신체·사회 사이에서 '프랙털 삼위일체'의 구조가 반복적으로 나타난다고 보았다. 서로 다른 대상들에서 매우 다양한 규모로 동일한 구조가 반복된다는 의미이다. 석탄을 태워 기계를 작동시키던 시대에 신체는 기계로 환원되었고 사회는 노동계급과 자본계급으로 양분되었다. 이후 전기가 발명되면서 인간의 신체는 훨씬 정교하게 기계화된 동시에 상품 소비와 오락을 즐기며 자본에 예속되었다. 이후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테크놀로지 발전으로 신체는 스크린 앞에 고정되었고, 세계가 우리에게 다가오는 방식으로 우리 삶은 재편되었다. 화상회의, 온라인 쇼핑, 원격 진료, 생성형 인공지능이 모든 영역에서 보편화되는 이 흐름이 낳는 것은 편리함이 아니라 결국 "고정된 신체의 자본주의"이다. 이때 타인은 픽셀 속으로 사라지고 관계는 기능적으로 환원되며, 물리적·감각적 세계와의 접촉은 급격히 줄어든다. 나아가 사댕은 생성형 인공지능이 인간 지성의 근간을 흔들려고 한다고 강도 높게 비판한다. 2022년 대화형 로봇 챗GPT를 선두로 여러 인공지능 시스템이 등장했다. 사람들은 이 시스템이 인간과 유사한 언어를 사용한다고 믿지만, 이는 ‘통계적 분석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알고리즘이 만든 산출물’일 뿐이라고 사댕은 규정한다. 인간의 언어는 과거와 현재, 불확실성과 맥락이 얽히는 고유한 발화 행위인 반면, 기계 언어는 파라미터 설정의 결과이자 정해진 규칙에 대한 응답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장보기 목록을 짜고 편지를 쓰고 소설을 창작하는 일까지 시스템에 맡기는 순간, 인류는 "호모 파베르"(도구적 인간)의 자리를 잃고 "프롬프트를 입력할 따름인 존재"로 전락한다고 그는 경고한다. 교육 현장의 디지털화, 학교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배우게 될까 교육 분야의 대규모 디지털 전환은 그런 점에서 무척 우려할 만한 사안이다. 학교는 지식을 통합하고 사유하며 노력과 협력, 타자성과 안목을 배워야 하는 곳이다. 그런 교육 현장에서마저 시대에 뒤처질까 봐 두려워 혁신을 무조건 바람직하다고 여기게 될 때 신체적·지적 능력을 포기하게 되고 인간의 존엄성, 창의성이 설 자리는 점진적으로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사댕은 경고한다. 교실마다 컴퓨터가 있는 것은 물론이고 학생들이 학교에서 개인 태블릿을 사용하는 오늘날, 글보다 표현이 중시되고 교사가 코치로 인식되는 흐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학생들이 언어의 풍요로움에 발을 담그고 고유한 문장을 써내려가는 노력에서 즐거움과 성취감을 느끼며, 공통의 유산과 주관성 사이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창조적 긴장을 느낄 기회를 박탈”당하지 않게 하려는 노력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스크린 너머에서 현실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기술은 인간의 신체를 무력화했고(1부), 알고리즘이 현실을 재가공해 우리의 상상력과 판단력을 마비시켰으며(2부), 디지털 환경의 심화로 인간 관계는 급격히 픽셀화되면서 소통의 본질이 변했다(3부). 이 단계별 소외의 종착지는 인간 주체성의 상실이다(4부). 우리가 맞닥뜨린 위기는 장강명 작가의 말처럼 ‘스크린 중독’이 아닌 ‘현실계의 거대한 변질’인 것이다. 사댕은 이를 ‘인류의 식물인간화’라 명명한다. 이런 위기의식의 심각성은 인공지능의 대부라 불리는 제프리 힌턴의 돌연한 입장 변화에서도 감지할 수 있다. 인공지능을 수십 년간 연구하고 구글에서 생성형 인공지능 출현에 상당한 공을 세웠던 그는 “평생 일궈온 업적이 후회스럽다”며 지금은 인공지능의 위험성을 알리고 있다. 하지만 사댕은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어서야 힌턴이 입장을 선회한 데 대해, 자신의 연구가 초래할 수 있는 결과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해보지 않았음을 강도 높게 비판한다. 그의 비판은 신경망 고도화를 이끈 튜링상 수상자인 얀 르쿤에게로 이어지고, 유발 하라리가 엄밀성이 떨어지는 막연한 미래 전망으로 대중의 시야를 흐리게 만들었다고도 비판한다. 디지털 기술을 감시하고 규제하는 역할을 맡은 정부 기관이 문제의 핵심을 비껴가고 있고, 언론이 인공지능에 관한 기사 제목에 물음표만 다는 식으로 모호한 태도를 보인다고도 꼬집는다. 인공지능이 만병통치약처럼 인식되는 시대에 사댕의 이 같은 날선 외침은, 일방향적인 시대 흐름에 맞서는 예언자적 메시지로 울려 퍼진다. 유령의 시대, 인간식물화에 맞서기 위해 필요한 것은 수많은 상황을 판단하고 적절한 행동을 알려주며, 권유에서 강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수준으로 행동을 유도하는 추천형 인공지능이 도래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헤게모니를 장악한 테크놀로지·경제 복합체가 지배력을 가진 이 시점에 마지막 한계를 넘어서지 않게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사댕은 철학자 베르그송이 규정한 생명의 본질, 곧 엘랑 비탈(élan vital)을 회복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현실을 주의 깊게 해부하고 그 무엇도 필연적인 것으로 간주하지 말아야 한다. 법과 규칙으로 형성된 공동체 안에서 주체성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각자의 고유한 엘랑 비탈을 싹트게 하여 자기 능력을 온전히 발휘하고 타인과 감각적이고 건설적인 유대를 형성하며 공동의 삶의 방식을 구축해야 한다. 미래 세대의 생명력을 버리지 않을 새로운 파도를 만들어야 한다. 정교한 유혹의 힘에 맞서 존엄성과 창의성을 지키고 가꾸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 문명적 차원의 전례 없는 사건 앞에서 갈림길에 서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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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리즘에 명령을 내리고 있는 걸까, 알고리즘의 명령을 수행하고 있는 걸까. 우리는 진짜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스크린과 관계를 맺고 있는 걸까. 상상계는 삶을 잠식하기 시작했고, 현실은 점점 더 초현실이 되어간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몇 번 머리 위에서 벼락이 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번갯불은 때로는 우아하게, 때로는 섬뜩하게 우리가 길을 잃고 깊숙이 들어온 유령의 숲이 얼마나 기괴하고 앙상한 장소인지 보여줬다. 우리가 맞닥뜨린 위기가 단순히 ‘스크린 중독’ 따위가 아니라, 현실계의 거대한 변질임을 감지하는 분들이라면 이 벼락을 함께 맞아보시기를. - 장강명 ( 작가, 《먼저 온 미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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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생성형 인공지능, 그리고 이를 연결하고 떠받치는 것들을 에릭 사댕은 유령이라 부른다. 유령은 우리 곁에서 정답게 속삭이고 우리를 매혹적인 길로 인도한다. 유령에게 정신과 몸을 맡긴 채 우리는 생각하기를, 행동하기를, 창조하기를 멈춘다. 모두가 그 유령의 발끝이라도 잡으려 황급히 따라나서는 지금, 사댕은 유령의 속삭임을 끊어내고 유령에 맞서야 한다고 외친다. 우리에겐 지켜내야 할 것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의 용기 있는 외침에 깜짝 놀라 나는 비로소 내 곁의 유령을 째려본다. - 전치형 (교수, 《로봇의 자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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