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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어제’가 ‘오늘’에게
1부. 낯설게 바라보는 나 1장. 나는 나를 알고 있을까 생긴 대로 산다는 말 └-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 『인지부조화 이론』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가족 └- 『다섯째 아이』 × 『가족, 사적 소유, 국가의 기원』 나로 산다는 건 무엇인가 └- 『데미안』 × 『인간에 대한 오해』 2장. 타인과 나, 어디까지 괜찮을까 공감할 수 없는 나와 너 └- 『자기 앞의 생』 × 『타인의 고통』 ‘다름’에 관용을 붙여넣기 └- 『앵무새 죽이기』 × 『관용론』 너무 멀지도 지나치게 가깝지도 않게 └- 『페스트』 × 『고독한 군중』 3장 사랑이 우리를 구원할까 낭만적 사랑은 오해다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사랑의 기술』 진화한 사랑의 끝은 결혼일까 └- 『안나 카레니나』 × 『욕망의 진화』 혼란과 맞바꾼 영원한 사랑 └- 『콜레라 시대의 사랑』 × 『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 2부. 산책하며 바라보는 세상 4장. 우리는 왜 소비하며 존재할까 내가 알아야 할 자본 └- 『위대한 유산』 × 『자본론』 행복을 위한 욕망의 크기 └- 『고리오 영감』 × 『유한계급론』 자유 의지로 살아간다는 착각 └-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 『프로파간다』 5장. 정치는 생각보다 내 삶과 가깝다 정치 아닌 것이 없는 일상 └- 『1984』 × 『자유론』 누구나 공평하게 불평등 └- 『레 미제라블』 × 『편견』 숨 쉬듯 정치하라 └- 『파리 대왕』 × 『소명으로서의 정치』 6장. 일하는 존재로 살아간다는 것 일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의 수고로움 └- 『소송』 × 『사치와 자본주의』 게으름을 위한 몸부림 └- 『자기만의 방』 × 『게으를 수 있는 권리』 삶이 예술이 되는 순간 └- 『노인과 바다』 ×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작품』 7장. 건강한 지구가 나를 살린다 내 삶의 우연과 필연 └-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 『우연과 필연』 자연의 소박한 일부 └- 『설국』 × 『월든』 광막한 우주에서 아주 작은 나 └- 『멋진 신세계』 × 『코스모스』 |
인식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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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특징은 씨줄과 날줄처럼 얽힌 ‘문학과 비문학의 겹쳐 읽기’입니다. 인류가 반복하는 고민, 누군가 이미 마주했던 선택,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인간의 욕망에 관한 경제, 사회, 심리, 과학, 예술 분야를 다루는 픽션의 주인공과 논픽션의 고민은 현실 속의 ‘나’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모든 책은 개별 독자와 만날 때 완전히 다른 빛깔과 향기를 냅니다. AI도 결국 이들의 지혜를 빌릴 수밖에 없습니다.
--- 「프롤로그」 중에서 오스카 와일드가 남긴 유일한 장편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인지부조화를 겪었던 자신에 대한 성찰과 탐구로 가득하다. 오스카 와일드 혹은 도리언 그레이가 21세기를 살았다면 인플루언서가 되었을지 모를 일이다.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고 내가 누구인지 말해주는 외모는 그 자체로 미추를 따질 수 없는 고유한 본성이다. 꾸준한 운동과 성형으로 가꾼 외모가 또 하나의 사회적 자아라는 사실 또한 부정할 수 없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눈부신 외모는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자산이기에 이를 바탕으로 직업을 선택하고 사업을 일구는 일을 비난할 수는 없다. 다만 이런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는 일은 스스로 초상화를 찌른 도리언 그레이처럼 자멸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에 감탄하거나 실망하더라도 바로 이 순간이 남은 생의 가장 젊고 아름다운 시절이다. 오롯이 ‘나’로 살기 위한 노력은 자신의 현재 모습을 긍정하는 일에서 출발한다. 오스카 와일드는 아름다운 외모와 젊음을 지키려는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려는 게 아니라 블랙홀 같은 욕망과 영원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보내고 싶어 이 소설을 쓴 듯하다. 관능적, 육체적 쾌락에 대한 경고가 아니라 회색빛 머리카락, 주름이 팬 얼굴에 스민 자기 삶의 소중함을 확인하라는 충고로 읽힌다. 세상에 유일무이한 존재로서의 나를 사랑해야 한다는 당위는 오늘을 사는 나에 대한 긍정이자 위로다. --- 「생긴 대로 산다는 말」 중에서 코로나 이후 ‘거리 두기’는 상식이 되었다. 그것은 상대를 배려한 사회적 거리뿐 아니라 일방적인 기대와 원망이 불가능한 마음의 거리이기도 하다. 지나치게 가까워도, 너무 멀어도 불편하다. 가족, 연인, 친구 등 관계마다 각기 다른 거리 두기가 인생의 ‘희로애락’을 결정한다. 현재 맺고 있는 거리에 대한 보정 값이 우리를 보호하는 백신이 아닐까? 타인과의 거리 두기는 홀로 선 개인이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인간은 누구나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 삶과 죽음을 나눈다. 오랑의 시민들이 그러했고 현실 속의 우리도 다르지 않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 속에 둘러싸여 있어도 고독은 어쩔 수 없다. 사람들과 어울려 웃고 떠들며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SNS에서 수천 명의 이웃, 팔로우들과 소통하며 지내면서도 내가 누구인지, 타인과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 「너무 멀지도 지나치게 가깝지도 않게」 중에서 사랑은 ‘선택’일까, ‘운명’일까? 현대 사회에서 사랑은 ‘조건’을 살펴보고 선택해야 할 거래의 대상이다. 두근거림과 망설임이 가능한 대상과 유무형의 교환이 이루어질 거라는 기대는 사랑에 대한 오해다. 그러면 어떤 사랑이 우리를 충만한 행복감으로 채울 수 있을지 궁금하다. 에리히 프롬은 인간이 사회적 환경에 적응하며 겪는 욕망과 갈등에 관심이 많았다. 개인은 사회와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행복을 얻거나 위기에 직면한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사랑도 마찬가지다. 사랑과 결혼은 단순히 개인적 취향과 선호에 따라 결정할 수 없는 사회적 상호 작용의 결과다. 토마시와 테레자처럼 서로 사랑하는 방식이 다르다면 결국 파국이다. 사비나와 프란츠도 다를 바 없다. 그들의 감정과 행동이 공존 불가능한 이유는 무엇일지…. 에리히 프롬은 사랑을 제대로 알고 실천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플러팅 비법’이나 ‘연애 테크닉’이 아니라 『사랑의 기술』이라면 모두가 배워야 하지 않을까? --- 「낭만적 사랑은 오해다」 중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속은 물질적 ‘부’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에 의하면 경제 자본뿐만 아니라 사회 자본, 문화 자본, 상징 자본의 영향으로 취향, 습성 등 제2의 본성인 ‘아비투스’를 물려주는 것이 진정한 상속이다. 핍으로 대표되는 빅토리아 시대의 가난한 하층 계급은 경제 자본뿐 아니라 지식과 학력, 교양과 예술적 취향까지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자본이 부족한 사람들은 상층 계급과 취향이 다르고 사고방식도 차이가 크다. 사회문화적 환경 차이로 결정되는 아비투스가 결국 핍이 진정한 신사로 성장하지 못하게 만든 걸림돌이었는지 모르겠다. 찰스 디킨스는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하거나 인간의 속물근성을 비난하고 물질만능주의 세태를 염려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이 소설은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지, 세상은 어떤 곳인지 비춰주는 거울의 역할을 할 뿐이다. 우리는 경제력이 곧 삶의 조건과 태도를 결정하는 세상에 산다. 탄생 배경과 사회적 환경이 삶을 결정하는 사회에서 여전히 묻지 않을 수 없다. ‘나’에게 ‘위대한 유산’은 무엇이냐고. --- 「내가 알아야 할 자본」 중에서 조지 오웰은 “모든 예술은 프로파간다다. 디킨스 본인도, 빅토리아 시대 대다수 소설가도 이를 부정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은 물론이고 『위대한 유산』과 『고리오 영감』 등을 모두 일종의 프로파간다로 간주한 것이다. 프로파간다는 심리학과 정신분석에 기초해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대를 사는 대중을 쥐락펴락한다. 정치, 경제뿐만 아니라 교육, 문화, 예술 분야도 다르지 않다. 앞서 베블런이 설명한 ‘유한계급’의 구별 짓기는 피에르 부르디외의 ‘아비투스’에다가 자본주의적 욕망을 자극하는 ‘프로파간다’가 더해진 결과가 아닐까? 그러니 우리가 믿는 자유 의지와 선택은 결국 양육과 교육 등 사회화 과정을 거치며 만들어진 성향과 욕망에 쉼 없이 조작되는 정치와 자본의 힘에서 나온다. --- 「자유 의지로 살아간다는 착각」 중에서 우리는 차별받으면서도 차별하는 존재다. 한쪽에는 법과 양심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관습과 편견이 있다. 둘 사이에 명백한 갈등이 존재하는 경우 차별은 주로 간접적 방식으로 암암리에 일어난다. ‘을’들의 싸움, ‘병’과 ‘정’의 전쟁이 그렇다. 충분한 근거 없이 감정이 먼저 반응하는 편견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고든 올포트는 ‘관용’을 제시한다. 관용은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관용이 본능이 아니라 능력이라고 말하는 건 학습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말하자면 편견에 맞선 관용은 ‘다른 사람을 파악하는 능력’, ‘사회적 지능’, ‘사회적 감수성’이라고 할 수도 있고, 독일어 단어를 빌리자면 ‘인간 이해’라고 할 수 있다. --- 「누구나 공평하게 불평등」 중에서 K가 엮인 소송, 카프카가 겪었던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상황은 밥벌이의 지겨움과 먹고사니즘에 대한 직업인의 애환과는 거리가 있다. 언젠가 우리 삶에 출현할 수 있는 ‘느닷없는 사건들’에 관한 이야기다. 미래를 생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을 때 ‘나’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내일은 알 수 없고 평안한 오늘이 반복되지 않으며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고 기대와 희망은 늘 ‘나’를 비껴간다. 요제프 K에게 벌어진 일이 더 이상 남 얘기가 아닐 수 있다. 오늘도 열심히 사는 모두에게 삶의 의외성은 준비된 미래다. 그래도 내일 눈을 뜨면 출근 준비를 해야 한다. 그래서 K가 죽으면서 남긴 외마디 비명이 의미심장하다. “개 같군!” --- 「일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의 수고로움」 중에서 앎에 대한 갈증은 곧 삶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인간과 자연, 우주와 나 사이에 얽힌 코스모스의 비밀은 내일을 향한 밑거름이다. 칼 세이건은 반복해서 ‘자유로운 탐구 정신’을 강조한다. 생명, 우주, 신화, 죽음, 시간에 관한 개념과 지식이 인생을 역전시켜 주진 않는다. 어찌 보면 로또 복권 1등 당첨조차 반전의 기회가 아닐 수도 있는데 칼 세이건이 들려주는 우주 이야기가 무슨 대수랴! 그러나 아주 작은 모래 알갱이 하나에 온 우주가 들어 있듯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시간과 공간에 관한 무한한 상상력이 전혀 다른 ‘나’의 미래를 꿈꾸게 할 수 있다. --- 「광막한 우주에서 아주 작은 나」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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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흔들리는 나를 지켜줄 단단한 사유의 무기
우리의 오늘을 만든 현대 고전의 문장들 AI가 발전하는 속도가 하루가 다르다. 조만간 휴머노이드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고 인간이 운전을 안 해도 되는 시대가 눈앞에 펼쳐질 것만 같다. 그러나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답은 주지 못한다. 그렇다면 ‘지금-여기’ 우리에게 필요한 삶의 무기와 우리를 둘러싼 세상을 해석할 도구로 무엇일까? 저자 류대성 작가는 눈부신 속도로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사회가 무섭게 변해도 인간의 본성과 욕망, 세상이 돌아가는 근본적인 원리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며 독자들에게 생각의 근육을 키우는 고전 읽기를 권한다. 고전의 문턱은 늘 높게만 느껴진다. 고전을 설명하는 유튜브의 짧은 요약 영상이나 누군가의 명강의가 당장의 호기심을 채워줄 수는 있어도 그 지식이 내면에 단단하게 자리 잡기는 힘들다. 진정으로 나만의 안목과 통찰을 얻기 위해서는 고전과 대화하며 사유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고전 읽기의 본질이자 이 책의 목적이다. 왜 지금, 현대 고전을 권하는가? 내 삶의 질문에서 시작하는 문학과 비문학의 크로스 오버 19세기 시민혁명과 자본주의의 태동 이후 탄생한 고전은 지금의 우리에게 여전히 공감과 사유를 하게 만든다. 오늘 우리의 삶에 공기와 물과 같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라는 현대 사회의 뼈대가 세워지고 국가와 정치 체계가 확립되어 가며 개인들은 혼란을 느끼던 시기에 쓰인 책들이기 때문이다. 『현대 고전을 권함』은 당대의 텍스트를 ‘현대 고전’으로 명명하고 이를 선별하여 독자 앞에 내놓는다. 그 시절의 고민과 고군분투가 현재 우리 삶의 불안과 맞닿아 있기에 우리는 오래된 문장 앞에서 공감하며 현실 문제의 실마리를 찾는다. 이 책의 특징은 문학과 비문학을 짝지어 읽는 ‘겹쳐 읽기’ 큐레이션에 있다. 문학은 서사의 힘으로 주인공의 삶에 나를 이입하게 만든다. 반면 비문학은 세상을 꿰뚫어 보며 현실보다 한발 나아간 시선을 제안한다. 픽션이 개인의 삶에 밀착하여 질문을 던진다면 논픽션은 인간과 심리, 경제, 노동, 과학, 사회 구조를 해부하며 그 질문에 방향을 내놓는 것이다. 나는 나를 잘 알고 있는가, 타인과 나의 거리는 어디까지 괜찮을까? 우리는 왜 소비하며 존재감을 느낄까, 정치는 얼마나 우리 삶에 영향을 줄까? 문학의 서사 X 비문학의 시선, 그 교차점에서 찾는 삶의 좌표 이 책은 문학의 위로와 비문학의 통찰을 7가지 주제로 엮어 다채롭게 접근한다. ‘1부 낯설게 바라보는 나’에서는 관계, 차별, 연애, 결혼, 외모, 자아 등을 중심 키워드로 내면과 타인과의 관계를 깊이 있게 탐구한다. ‘2부 산책하며 바라보는 세상’에서는 시선을 세상 밖으로 확장하여 소비, 편향, 자유, 불평등, 정치, 노동, 예술, 그리고 기후와 미래에 이르기까지 삶의 핵심 주제들을 폭넓게 조망한다. 예컨대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와 볼테르의 『관용론』을 짝지어 읽으며 ‘다름’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돌아보고 ‘톨레랑스(관용)’라는 개념을 이해하게 된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와 데이비드 버스의 진화심리학 『욕망의 진화』를 만나며 비극적인 낭만적 사랑의 서사와 짝짓기를 둘러싼 인간 본성을 살펴본다. 또한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과 마르크스의 『자본론』, 조지 오웰의 『1984』와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교차하여 읽을 때 우리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체계 안에서 자유와 평등의 의미, 정치 무관심이 어떻게 삶에 영향을 주는지 잘 알 수 있다. 문학 속 주인공이 겪는 갈등이 곧 현실 속 ‘나’의 고민으로 이어지고, 비문학 이론이 내 삶의 뼈대를 세우는 과정은 무척이나 흥미롭다. 이렇게 문학의 온도와 비문학의 밀도가 온전히 채워지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고전 읽기에 재미가 붙는다. 나와 무관하지 않은 질문을 품고 다가갈 때 고전 읽기는 더 이상 지루한 숙제가 아니라 즐거운 실존 탐험이 된다. 『현대 고전을 권함』은 막연한 두려움을 넘어 고전 읽기를 희망하는 독자 그리고 한층 더 폭넓은 고전의 세계에 도전하고 싶은 독자에게 책 제목 그대로 현대 고전을 권한다. 혼란스러운 일상에서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나를 지키며 세상을 이해할 단단한 무기를 원한다면 이 책에서 보여주는 고전의 이중주에 귀를 기울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