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Lucius Apuleius
루키우스 아풀레이우스 의 다른 상품
이제하의 다른 상품
송병선의 다른 상품
|
"언니들, 우리 집으로 들어오세요. 우리 처마에서 당신들의 프쉬케와 함께 편히 쉬세요. 제가 언니들을 행복하게 해 드릴게요."
프쉬케는 언니들에게 화려한 방과 보석으로 가득 찬 궁전의 곳곳을 보여주었다. 또한 목소리의 하인들에게 지시하여 언니들의 시중을 들도록 했다. 프쉬케는 하인들에게 지시하여 언니들이 목욕 시중을 들게 했고, 신들이나 먹을 수 있는 온갖 진귀한 음식들로 저녁 식사를 대접했다. 프쉬케는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언니들을 대접하면서 몹시 행복해 했다. 그러나 언니들은 이렇게 온갖 융숭한 대접을 받으면서 프쉬케가 마치 여신처럼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며 사는 것을 보자 불같은 질투심이 일어났다. 질투심은 이내 깊은 증오심으로까지 발전하여 프쉬케가 불행해지기 위한 온갖 간계를 짜내기 시작했다. 특히 평소부터 프쉬케에 대해 질투심을 갖고 있던 작은 언니는 프쉬케에게 옺갖 것을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했다. 이토록 화려한 궁전의 주인이 누구인지, 남편은 어떻게 생겼는지, 남편이 프쉬케를 어떻게 대해 주는지 등을 집요하게 캐묻기 시작했다. 그것은 사악한 호기심의 발로였다. 하지만 프쉬케는 남편에게 약속한 것을 잊지 않고, 남편의 말 대로 언니들의 호기심에 거짓으로 대답했다. 프쉬케는 남편은 아주 근사하고 멋진 미남자이며, 하루의 대부분을 산이나 들에서 사냥을 한다구 둘러대었다. 하지만 언니들이 계속해서 집요하게 캐묻자 프쉬케는 자칫하면 비밀을 누설할지 몰라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실수로 모순되는 말을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 pp. 43-45 |
|
"언니들, 우리 집으로 들어오세요. 우리 처마에서 당신들의 프쉬케와 함께 편히 쉬세요. 제가 언니들을 행복하게 해 드릴게요."
프쉬케는 언니들에게 화려한 방과 보석으로 가득 찬 궁전의 곳곳을 보여주었다. 또한 목소리의 하인들에게 지시하여 언니들의 시중을 들도록 했다. 프쉬케는 하인들에게 지시하여 언니들이 목욕 시중을 들게 했고, 신들이나 먹을 수 있는 온갖 진귀한 음식들로 저녁 식사를 대접했다. 프쉬케는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언니들을 대접하면서 몹시 행복해 했다. 그러나 언니들은 이렇게 온갖 융숭한 대접을 받으면서 프쉬케가 마치 여신처럼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며 사는 것을 보자 불같은 질투심이 일어났다. 질투심은 이내 깊은 증오심으로까지 발전하여 프쉬케가 불행해지기 위한 온갖 간계를 짜내기 시작했다. 특히 평소부터 프쉬케에 대해 질투심을 갖고 있던 작은 언니는 프쉬케에게 옺갖 것을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했다. 이토록 화려한 궁전의 주인이 누구인지, 남편은 어떻게 생겼는지, 남편이 프쉬케를 어떻게 대해 주는지 등을 집요하게 캐묻기 시작했다. 그것은 사악한 호기심의 발로였다. 하지만 프쉬케는 남편에게 약속한 것을 잊지 않고, 남편의 말 대로 언니들의 호기심에 거짓으로 대답했다. 프쉬케는 남편은 아주 근사하고 멋진 미남자이며, 하루의 대부분을 산이나 들에서 사냥을 한다구 둘러대었다. 하지만 언니들이 계속해서 집요하게 캐묻자 프쉬케는 자칫하면 비밀을 누설할지 몰라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실수로 모순되는 말을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 pp. 43-45 |
|
큐피드와 큐피드를 사랑한 프쉬케의 불멸의 러브스토리
이 소설은 그리이스 로마 신화의 실질적인 모태가 되었던 작품 『황금 당나귀』중에서 가장 사랑받는 에로스 신화만을 작품으로 묶은 것이다. 큐피드와 프쉬케의 사랑 신화는 이미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다시 소개하는 것은 그동안 원작자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수 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으로 만들거나 작자 미상의 신화처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큐피드와 프쉬케의 불멸의 러브스토리가 갖는 영광은 서기 175년 경 『황금 당나귀』의 작가인 루키우스 아풀레이우스의 것이어야 한다. 이번 『큐피드의 화살』은 『황금 당나귀』의 빛나는 문학적 성과를 다시 재고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프쉬케와 큐피드』에서 말하는 에로스는 현대에 이르러 비로소 겨우 권리를 되찾고 있다. 정신과 육체가 결합된 상호간의 사랑이 자유롭게 이루어지면 사랑하는 연인들 사이에는 비극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성해방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요즘도 현대인의 심금을 울리는 애달픈 러브스토리들이 존재한다. 자유로운 선택 끝에 서로의 육체를 탐하고 사랑의 씨앗을 공유하고자 마음먹은 두 남녀의 실연을 우리는 주위에서 너무도 흔하게 목격한다. 도대체 왜 그럴까? 자유와 사랑을 외치면서도 정작 사회가 공인하는 결혼이 이루어 질 때면, 상대방의 경제사정과 사회적 신분을 들여다보려는 현대인은 한 둘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그들은 어쩌면 에로스의 화살만 맞았다 하면 인간이고 신이고 가리지 않고 덤벼든 유피테르보다도 더 위선적인 사람들이다. 사랑이란, 우리가 가장 많이 생각하면서도 가장 복잡한 주제이다. 우리 모두는 사랑을 경험하지만, 그것은 객관적이라기보다는 주관적으로 경험한다. 그러므로 사랑이란 객관적으로 표현될 수 없다. 사랑이란 복잡하다. 그것은 복합체이다. 즉 여러 상이한 것으로 싸여져 있다. "사랑해"라는 말은 간단하고 명료하지만, 그 뒤에는 수많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으며, 이런 요소들이 서로 모여 "사랑해"라는 말을 이루는 것이다. 사랑에는 육체적 요소가 간과될 수 없다. 물론 "육체적"이란 말은 "생물학적"인 요구이다. 이것은 섹스의 구성요소일 뿐만 아니라, 또한 육체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런 사랑에는 신화적이고 상상적인 차원의 요소도 필요하다. 신화와 상상은 단순한 상부구조가 아니며, 환상도 아니라, 심오한 인간적 현실이다. 그리고 이런 신화성은 바로 성욕을 인간의 마음과 만나게 한다. 육체의 에로스라는 욕망은 우리를 소유하고 있지만, 신화적이고 상상적인 차원은 우리를 지배하는 육체의 에로스를 소유하는 인간의 권리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