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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1부 [불안] 두려움을 순종이라 부르던 날들 은혜라는 이름의 텅 빈 열심 한때 나를 가두었던 그 시간 속에서 가벼운 말들이 남긴 무거운 흔적 맹목의 숲을 빠져나오며 2부 [질문]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말들이 쌓인 자리 의심과 회의 사이에서 마주한 믿음 다시, 기도의 이유를 헤아리는 시간 질문 없는 신앙에 드리운 그늘 평화라는 이름으로 삼켜 버린 언어들 3부 [공감] 판단이 물러간 자리에 이해가 스민 날 거룩한 소명과 밥벌이 사이에서 차가운 신념이 지나간 자리에 역할에 가려 잃어버린 이름 깨어진 환상을 끌어안고 4부 [성장] 처음으로 내 발로 서는 법을 배우는 시간 고통을 통과하여 비로소 어른으로 스스로 내 안의 품이 되어 부서짐을 기록하는 밤 환상을 걷어낸 자리에 피어나는 우정 자아의 끝에서 맞이하는 은혜 5부 [동행] 아직 끝나지 않았기에, 그래도 함께 기꺼이 아파하기를 선택하며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곁이 되어 상처가 존재의 무늬로 새겨질 때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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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딸로 태어나, 교회 여자로 자랐다. “나는 주의 화원에 어린 백합꽃이니 은혜 비를 머금고 고이 자라납니다. 주의 은혜 감사해. 나는 무엇 드리리. 사랑하는 예수님 나의 향기 받으소서.” 어릴 적 부르던 이 찬송의 어린 백합꽃은 그냥 나였다. 나 자신을 철저히 그 가사와 동일시했다. 내게 ‘은혜 비’란 순종의 대가로 주어지는 인정과 칭찬이었다. 시험 기간과 교회 문학의 밤이 맞물리면 시험을 버리고 문학의 밤 준비에 올인했고, 주일과 겹치는 수학여행이나 직장마저 두 번 생각하지 않고 포기했다. 토요일이면 교회로 퇴근해 주보를 만들고, 밤늦도록 청년부 활동을 했다. 주일에는 다시 새벽같이 달려가 어린이 성가대 지휘를 하고, 주일학교 봉사를 하고, 제자훈련을 하고, 또 무언가를 하며 쉼 없이 순종했다. 신앙 사춘기가 찾아오자, 어린 백합꽃을 자처했던 과거의 내가 부끄러웠다. 부모와 교회의 기대에 부응하여 예쁜 짓만 하는 백합 따위는 뿌리째 뽑아 버리고 싶었다. 어제의 나와 싸우다 보니, 과거의 나를 닮은 타인들까지 다 미워졌다. 은혜, 순종, 감사와 같은 두 글자의 거룩한 단어들이 그저 역겨울 뿐이었다. 한마디로 짜증 나고 재수 없었으니, 그야말로 진짜 제대로 된 사춘기였다.
--- pp.163-164 수능을 앞두고 ‘어머니 기도회’에 나온 엄마들의 가슴속에 단지 자기 자식 시험 하나 잘 보게 해달라는 기도 제목 하나만 들어 있을까. 결단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 명확히 인식하든 못 하든, 그 엄마에게는 더 깊은 욕구, 타는 듯한 영적 갈망이 자리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왜 굳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그 기도의 자리에 나와 앉아 있겠는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영적 존재인 우리의 자아실현 욕구 그 너머에는 자기초월의 갈망이 숨 쉬고 있다. 영적으로 성숙하여 자아실현에 도달한 이들은 필연적으로 예수님 닮은 자기초월의 길을 지향하고 선택하게 되어 있다. 당장의 내 필요를 구하는 기도로 시작했을지라도, 마침내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기도로 진보할 수도 있다는 벅찬 사실을 심리학이 말해 주고 있는 게 아닌가. 기도하는 사람은 무죄다. 설령 그 기도가 개인적인 안위에만 머물러 있거나 때로 기복적이기만 할지라도 그렇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더 큰 힘을 향해, 그나마 하나님을 향해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리는 것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귀한 일인가. --- pp.81-82 전처럼 기도할 수 없고, 전처럼 천진하게 교회 봉사의 기쁨을 누릴 수 없고, 모두 “아멘” 하는 자리에서 나만 “노멘” 하면서 겪는 소외감과 두려움을 안다. “적어도 저는 당신의 ‘노멘’에 ‘아멘’입니다.” 누구에게는 모나고 까칠하게 비치고, 심지어 믿음 없는 사람, 교회를 무너뜨리는 사람, 꽃뱀이나 이단으로 몰릴지언정, 모두 “아멘” 하는 분위기에도 자기 안에 울리는 “노멘”의 진실을 포기하지 못하는 그 심정에 공감하고 싶었다. 돌아보면, 나의 신앙 사춘기 시절에 가장 두려웠던 것은 ‘싫음’을 느끼는 나, 곧 내가 문제라는 생각이었다. 은혜는 사라지고 먼지 날리는 사막 같은 상태가 된 것은 하나님이 나를 버리신 증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다시는 그 따뜻했던 품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은 절망감 말이다. --- pp.178-179 광야,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린 시간. 신앙 사춘기의 메마른 나날이 내게 안겨 준 선물이다. 온몸을 칭칭 감고 있던 종교적 장신구를 떼어내고 비루한 나를 마주하고 나서야 자아 중독의 실체가 보였다. 길들이지 않은 뒤뜰의 말이 비로소 눈에 들어왔고, 복종할 줄 모르는 의지와 열정이 유발한 고통이 감각되었다. 그것은 나를 혐오하고 타인을 통제하며 나와 남을 향해 안팎으로 찌르는 율법의 칼날이었다. 더 늦기 전에 나르시시즘의 곪은 병증을 확인한 것이 천만다행이라 여기며 감사한다. 이것이 악성인지 진행중인지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양성인 것은 확인했으니 바른 섭생을 시작하려 한다. --- p.230 앞서 언급한 목사는 “그냥 꿇으라는 거 아냐?”라는 아들의 말이 이 시대 ‘목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실존적 답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아, 꿇어야겠구나! 목사로 인해 상처 입은 이들을 위해 목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목사의 이름으로 기꺼이 져 주고 꿇어 주는 것이 소명임을 발견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잠재적 독재자로 감시받는 느낌에 억울하고 비참했다. 이러려고 신학을 했나 싶어 탈출할 꿈만 꾸었다. 그런데 아들의 말이 자신의 소명을 일깨웠다. 의심하면 의심당해 주고, 때리면 맞아 주고 꿇어 주는 목사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목회 로드맵이 그려진 것이다. 감동이었다. “교회가 대체 뭔가요?”라는 아픈 질문에 하나의 정답은 없겠지만, 상처로 인해 반항하고 찌르는 질풍노도의 교인에게 기꺼이 꿇어 주는 성찰적인 목사라면 훌륭한 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 p.2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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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진솔한 내면의 기록은 읽는 이에게 거울이 된다. 특히 치열한 ‘소울 서칭’(soul searching)의 기록은 믿음의 길을 걷는 이들에게 위로와 도전과 격려를 가져다준다. 그 길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회의와 유혹, 번민은 누구에게나 공통된 것이며, 그 모든 것을 품어 안은 채 결국 그분에게 안기고 싶은 열망 또한 한결같기 때문이다. 이 공통의 여정을 담아내는 정신실 작가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길러 온 탄탄한 글힘이 있고, 의문과 회의를 대면하여 끝까지 씨름하는 집요함이 있으며, 그 생각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용기가 있다. 글을 읽는 동안 저자의 걸음을 응원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이유다. 그것은 또한 자기 자신에 대한 응원이기에, 결코 끝나지 않을 영적 여정에서 이 책은 더없이 좋은 친구가 되어 줄 것이다. - 김영봉 (와싱톤사귐의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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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길을 걷다 보면 누구나 ‘이것이 정말 맞는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에 직면하는 계절을 만난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성경과 목사의 가르침을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믿으라며 맹목적인 신앙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존재한다. 이런 환경에서 ‘나와 하나님’,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를 통해 공동체 안에서 성숙해가는 주체적인 신앙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저 부모나 목사의 신앙을 답습하는 ‘타인의 신앙’에 머물거나, 반대로 나의 유익과 이데올로기에 충성하는 신앙으로 변질되기 쉽다. 하지만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인 동시에, 믿는 자의 인격적인 응답이자 결단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정직한 의심과 질문조차 깨달음과 진리의 길로 인도하는 통로로 삼으시며, 그 과정을 통해 우리의 신앙을 자라게 하신다.
정신실 작가의 『신앙 사춘기 너머』는 바로 그 흔들림의 시간들이 우리를 얼마나 더 단단한 신앙으로 인도하는지를 증명하는 책이다. 저자는 믿음의 상처를 단지 연약함이나 퇴보로 보지 않고, 더 깊은 성숙으로 나아가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으로 재정의한다. 이 책은 신앙 안에서 겪는 혼란과 아픔을 정직하게 응시하면서도 결코 절망에 머무르지 않는다. 섣부른 정답으로 상처를 덮기보다, 질문하는 마음과 흔들리는 내면의 결을 끝까지 존중하는 저자의 시선이 참으로 귀하다. 그 덕분에 독자들은 위로를 얻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시 자기 발로 서서 하나님을 향해 나아갈 용기를 얻는다. 교회로 인해 아프지만 여전히 진실한 신앙을 꿈꾸는 이들, 확신을 잃은 자리에서 더 깊은 은혜를 갈망하는 모든 이에게 이 책을 권한다. 좋은 친구처럼, 깊이 공감하며 든든하게 곁을 지켜 줄 것이다. - 박종운 (사회선교사, 법무법인 에셀 변호사, 교회개혁실천연대 공동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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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되는 글에서 자신의 내면과 가족의 내밀한 이야기를 드러내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아버지와 남편, 남동생이 모두 목회자이거나 목회자였으며, 자신과 아이들이 ‘목회자 가족’이라는 자리에 놓여 있다면, 심지어 ‘사모’라 불리는 삶을 현재형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이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정신실 작가는 치열하게 신앙의 사춘기를 ‘넘어’ 왔기에, 또한 상담가로서 ‘전문가 증인’의 역량을 가지고 있기에 수평적 눈높이에서 먼저 겪은 경험과 깨달음을 용감하고 진실하게 담아냈다. 분명 나에게는 ‘이물감’인데 신앙의 이름으로 꿀꺽꿀꺽 삼켜 온 ‘타자의 욕망’을 혐오하고 내치는 대신, 성찰하고 넘어서며 한 뼘 더 성장한 나로서 하나님과 이웃, 가족을 다시 마주하는 과정과 지혜가 이 책에 담겨 있다. 이토록 정성 가득한 고백들을 곁에 두고, 부디 오래도록 천천히 곱씹으며 읽어 보기를 권한다. - 백소영 (강남대학교 기독교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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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실 작가의 글을 읽으며 마음이 깊이 포개지는 수많은 지점을 만났다. 교회에서 경험한 마음 저린 일들이 단지 한 개인의 독특한 경험에 머물지 않는 이유다. 저자는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태어나 평생 공동체의 중심에 서 있었으나, 한편으로는 덩그러니 홀로 남겨진 듯한 고독을, 다른 한편으로는 익숙한 교회의 언어를 쓰면서도 쉽사리 그 언어에 안착하지 못하는 낯섦을 동시에 품고 살아왔다.
그렇기에 저자는 비슷한 처지를 경험한 이들을 섣부른 신앙의 언어로 다독이는 대신, 그저 공감의 눈빛으로 묵묵히 지켜본다. 이러한 이중적 감각은 독자로 하여금 익숙한 신앙의 풍경을 새롭고 낯설게 바라보게 한다. 저자는 그 낯섦과 불편함을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신앙의 토대를 단단히 세우며 사람과의 관계를 다시 묻고 공동체를 새롭게 사유하려는 시도를 끈질기게 이어간다. 본질적인 교회와 온전한 신앙을 향한 갈망 덕분에, 이 기록은 냉소로 흩어지지 않고 한 구도자의 깊은 성찰로 응축된다. 이 책이 설득력을 더하는 이유는 누구나 기대하는 아름다운 결말로 끝맺으려 하기보다, 여전히 고뇌하고 흔들리면서도 중심을 붙잡으려는 치열한 분투를 정직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교회라는 배의 한가운데 안전하게 머물러 있는 이들에게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폭풍우 속에서 배 안에 들어찬 물을 퍼내고 있는 이들에게는 묘한 위로와 깊은 동질감을 전하는 밀도 높은 신앙 고백록이다. 불안한 신앙의 사춘기를 지나는 이들뿐 아니라, 근원을 되묻는 신앙의 갱년기를 경험하는 이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더 나아가, 내면의 깊은 고민과 물음을 끄집어내어 자기만의 진실한 기록을 써 내려갈 용기를 선사한다. - 최종원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