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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2부 부록 미국판 서문 1957년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문 1957년 노벨문학상 시상 연설 요약 옮긴이 해설 알베르 카뮈 연보 |
Albert Cam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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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일지도, 모르겠다. 요양원에서 보내온 전보를 한 통 받았다. “모친 사망. 내일 장례식. 삼가 조의를 표함.” 이걸로는 알 수 없다. 아마 어제였을 것이다.
--- p.9 그다음에는 모든 것이 아주 급하게, 매우 확실하고 자연스럽게 진행되어서 지금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단 한 가지, 마을 입구에 들어섰을 때 담당 간호사가 나에게 말을 건 것만 기억난다. 그녀는 얼굴과 어울리지 않는 특이한 목소리, 노래하듯 떨리는 목소리를 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천천히 가면 일사병에 걸릴 위험이 있어요. 하지만 너무 빨리 가면 땀을 많이 흘리게 되고, 그러면 성당에 들어갔을 때 오한이 날 수도 있어요.” 맞는 말이었다. 빠져나갈 길이 없었다. --- p.24 오늘 아침, 마리는 돌아가지 않고 있었고, 나는 같이 점심을 먹자고 했다. 나는 내려가서 고기를 사 왔다. 올라오는데 레몽의 방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조금 뒤엔 살라마노 영감이 자기 개를 나무랐다. 나무 계단에서 신발 밑창 소리와 개의 발톱 소리가 들렸고, 이어서 “빌어먹을 놈, 못된 자식”이라는 욕설이 들렸다. 영감과 개는 거리로 나갔다. 나는 마리에게 영감 이야기를 해 주었고, 그녀는 웃었다. 마리는 내 잠옷 하나를 꺼내 소매를 걷어서 입고 있었다. --- p.44 바다는 활활 타오르는 짙은 숨결을 실어 왔다. 하늘이 통째로 열리며 불이 쏟아져 내리는 것 같았다. 나의 존재 전체가 팽팽하게 당겨졌고, 나는 권총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방아쇠가 당겨졌고, 나는 손잡이의 매끈하고 불룩한 부분을 만졌다. 그리고 그렇게, 둔탁한 동시에 귀청이 찢어질 듯한 소리 속에서 모든 게 시작되었다. 나는 땀과 태양을 털어냈다. 나는 내가 한낮의 균형을, 내 가 행복을 맛보던 해변의 이례적인 침묵을 깨뜨렸음을 깨달았다. 그런데 움직임이 없는 몸 위로 네 발을 더 쏘았고, 총알은 별다른 흔적 없이 박혔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린 네 번의 짧은 노크와도 같았다. --- p.70 그렇다, 아주 오래전에 내가 만족감을 느꼈던 바로 그 시간이었다. 늘 가벼운, 꿈 없는 잠이 기다리던 시간이었다. 그런데 무언가가 바뀌었다. 내일의 기다림을 안고 내가 간 곳은 나의 감방이었기 때문이다. 여름 하늘에 그려진 낯익은 길들이 죄없이 누리던 잠으로 이어졌듯이 감옥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것 같았다. --- p.109 또한 내가 늘 깊이 생각하던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새벽 그리고 내 사건의 상고였다. 그렇지만 이것저것 따져보고 난 뒤 나는 그 문제는 더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냥 드러누워 하늘을 바라보았고, 하늘에 관심을 두려고 애를 썼다. 하늘이 초록빛이 되면 저녁이었다. 나는 여전히 내 생각의 흐름을 돌리려고 노력했다. 내 심장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 p.125 누구도, 그 누구도 엄마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는 없다. 나 또한 모든 걸 다시 살아갈 준비가 된 기분이었다. 마치 징조들과 별들로 가득 찬 이 밤 앞에서, 이 거대한 분노가 나의 고통을 씻어내고 희망을 비워 내기라도 한 듯, 나는 처음으로 세상의 다정한 무관심에 마음을 열었다. 세상이 이토록 나와 닮아 있음에, 그러니까 너무도 형제처럼 느껴져서 나는 행복했었고, 여전히 행복하다고 느꼈다. 이 모든 게 완성되도록, 내가 덜 외롭다고 느끼도록 내게 남은 일은 내가 처형되는 날 구경꾼이 많이 와서 증오에 찬 함성으로 나를 맞아주길 바라는 것뿐이다. --- p.136~1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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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결국 누군가의 이방인이다
세상은 왜 어떤 인간을 끝내 이해하지 못하는가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은 단순한 실존주의 소설이나 철학 소설로 설명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이 소설은 한 인간의 범죄를 다루고 있지만, 실제로 문제 삼는 것은 범죄 자체보다도 사회가 인간에게 요구하는 감정과 태도에 가깝다. 카뮈는 뫼르소라는 인물을 통해 세상이 요구하는 슬픔과 사랑, 죄책감과 인간다움이 얼마나 폭력적으로 강요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카뮈는 『이방인』을 “우리 사회에서 자기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는 사람은 누구라도 사형선고를 받을 위험이 있다”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하기도 했다. 뫼르소는 거짓 슬픔을 연기하지 않았고, 자신의 감정을 과장하지 않았으며, 사회가 원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설명하려 하지 않았다. 삶을 그럴듯하게 포장하거나 자신의 감정을 꾸며 말하기를 거부했다. 법정에서 자신의 범죄를 후회하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도 그는 관례적인 참회 대신 그저 ‘갑갑한 기분’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바로 그 미세한 표현의 차이 때문에 그는 끝내 사회로부터 단죄된다. 세상의 다정한 무관심 그 불모의 사막에서 버티기 『이방인』이 지금까지도 오래 읽히는 이유는 단순히 부조리를 말하는 데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카뮈는 삶이 본질적으로 불완전하고 설명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냉정하게 바라보면서도 그런 세계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를 끝까지 놓지 않는다. 인간은 끊임없이 삶의 의미를 묻지만, 세계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카뮈는 바로 그 침묵을 외면하지 않는다. 그가 말한 ‘세상의 다정한 무관심’은 절망이 아니라,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태도에 가깝다. 냉혹할 만큼 절제된 문장, 알제리의 눈부신 태양 아래 흔들리는 감각, 삶과 죽음 사이를 가르는 담담한 시선까지. 『이방인』은 읽을수록 더 깊은 고독과 자유를 발견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난 뒤에도 독자는 쉽게 뫼르소를 떠나보내지 못한다. 출간 이후 8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이방인』은 현재진행형의 고전이다. 타인의 시선과 사회의 기준 속에서 살아가는 오늘의 독자들에게 이 작품은 가장 낯설고도 가장 다정한 질문을 건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