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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서문 제1의 수기 제2의 수기 제3의 수기 후기 후지산 백경 한량 의리 작품 해설 / 최재철 옮긴이의 글 다자이 오사무 연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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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말로 그 아이의 미소 띤 얼굴은 뜯어보면 볼수록 정체를 알 수 없는 혐오스러움과 징그러움이 느껴져 온다. 뭐야? 이건 웃는 얼굴이 아니군. 이 아이는 전혀 웃고 있지 않아. 그 증거로 이 아이는 두 손 다 주먹을 불끈 쥐고 서 있어. 사람이란 주먹을 불끈 쥐고 웃을 수 있는 존재는 아니야. 원숭이다. 원숭이가 웃는 얼굴이야. 단지 얼굴에는 밉살스러운 주름이 잡혀 있을 뿐이야. ‘쭈글쭈글 도련님’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질 정도로 참 기묘하고 비열하여 이상하게 사람을 화나게 하는 표정이 담긴 사진이었다. 이런 불가사의한 표정을 한 아이를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 p.10 유소년 아이에게 그와 같은 행위를 하는 것은 범죄 가운데에서 가장 추악하고 저급한 것으로 잔혹한 범죄라는 사실을 나는 지금은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참았습니다. 이것으로 또 하나 인간의 특질을 보았다는 느낌마저 드는 바람에 무기력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혹시 나에게 진실을 말하는 습관이 있었다면 주눅 들지 않고 그들의 범죄를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호소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러나 나는 그 아버지와 어머니조차도 전부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에게 호소해 봤자 어머니에게 호소해 봤자 경찰에게 호소해 봤자 정부에 호소해 봤자 결국 처세술이 강한 사람, 세상에 잘 통하는 사람의 변명으로 휘둘릴 뿐 아닐까요? --- p. 25 그러나 나는 인간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 하룻밤의 작은 휴양을 얻고자 그곳으로 가고, 그 때문에 나와 ‘동류’인 매춘부들과 노닥거리는 사이 어느 틈엔가 무의식적인 어떤 불길한 분위기가 늘 신변을 감도는 듯한 모습이 되었고, 이것은 스스로도 예상치 못했던 이른바 덤으로 얻은 부록이었습니다만 점차 그 ‘부록’이 선명하게 떠올라 호리키에게 그것을 지적받고는 아연실색하여 혐오스러운 기분이 되었습니다. 옆에서 보면, 속된 말로 나는 매춘부와 함께하며 여성에 대해 수행을 하고, 게다가 최근 눈에 띄게 솜씨가 늘었고 여자에 대한 수행은 매춘부와 관계하는 것이 가장 확실하고 또한 그만큼 효과가 있다고 하니 이미 나에게는 그 ‘바람둥이’라는 냄새가 감돌고 여성은(매춘부뿐 아니라) 본능적인 후각으로 그 냄새를 알아채고는 다가왔습니다. 그와 같은 외설적이고 볼썽사나운 데다 불명예스러운 분위기를 ‘덤으로 얹어주는 부록’으로 받은 결과 그쪽이 내 휴양 따위보다 몹시 두드러지고 만 모양새가 되고 말았습니다. --- p. 49 내 음주량은 점점 늘고 있었습니다. 고엔지역 부근뿐 아니라 신주쿠, 긴자 쪽까지 원정 가서 마시고는 외박하는 일까지 생기고 다만 이미 ‘관례’에 따르지 않으려고 바에서 폭력배처럼 굴거나 닥치는 대로 키스를 해대거나 다시 말해 동반자살 시도 이전의 그때부터, 아니 그보다 훨씬 거칠고 저속한 술주정뱅이가 되어 돈에 쪼들려서 시즈코의 옷을 내다 파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 p. 96 지금 나는 이미 죄인 처지가 아니라 미친 사람이었습니다. 아니, 결코 나는 미치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 미친 사람은 대개 자신을 그렇게 말한다고 합니다. 즉 이 병원에 수용된 사람은 광인, 수용되지 않은 사람은 정상인이 되는 모양새였습니다. 하나님께 묻는다. 무저항은 죄인가? 호리키의 저 이상하고 아름다운 미소에 나는 울먹이고 판단도 저항도 잊은 채 자동차를 타고 그래서 이곳으로 연행되어 와서 광인이 된 것이었습니다. 당장 이곳에서 나가더라도 나는 역시 광인, 아니 폐인이라는 각인이 이마에 찍히겠지요. 인간, 실격. 이미 나는 완전히 인간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 p.131 소박한 자연 그대로의 것, 따라서 간결하고 선명한 것, 그런 것을 단번에 포착해서 그대로 종이에 옮겨 쓰는 일, 그보다 괜찮은 것은 없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생각할 때는 눈앞 후지의 모습도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이 모습과 표현은 결국 내가 생각하고 있는 ‘단일 표현’의 아름다움인지도 모른다며 약간은 후지와 타협을 시도하지만 역시 어딘가 후지의 통 모양의 지나친 소박함에는 질린 적도 있었고 이것이 훌륭하다면 호테이님 장식도 훌륭할 것이다. 호테이님 장식은 도저히 참을 수 없다. 그런 것은 도저히 좋은 표현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이런 후지의 모습도 역시 어딘가 잘못되었다. 이것은 아니다 하며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이다. --- p. 158 “이렇게 터벅터벅 걷고 있는 것도 촌스러운 이야기 아냐?” 문어는 가마를 타고 언덕을 넘고 싶었던 것이다. “역시 말을 타는 편이 좋을까요?” 가츠타로는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뭐, 말이라고?” 말이라면 넌더리가 난다. 말도 안 된다. “말도 나쁘지는 않지만, 암튼 일장일단이 있다고 할까?” 애매하게 얼버무렸다. “정말로”라며 가츠타로는 순진하게 받아들여 고개를 끄덕이며 “사람도 새처럼 하늘을 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죠.” “멍청한 소리를 하고 있군.” 단자부로는 비웃으며 “하늘을 날 필요는 없지만.” 가마를 타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솔직하게 터놓는 것은 과연 조금은 꺼려졌다. --- p.1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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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가 그린 인간의 풍경
인간이라면 누구나 반추해 볼 근원적 화두, 인간 실격 1948년 전후의 혼란 속에서 발표된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은 사회 속에서 제자리를 찾지 못한 한 인간이 점차 내면으로 침잠하는 과정을 냉정한 시선으로 기록한 작품이다. 평생 자신과 세상 사이의 간극을 예민하게 의식했던 다자이는 말년에 이 작품으로 인간의 취약함이 어디까지 밀려갈 수 있는지를 드러낸다. ‘요조의 수기’라는 외형을 취하고 있지만, 요조는 다자이 자신의 경험과 내적 갈등이 투영된 인물이며, 작가 문학의 핵심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존재다. 요조는 타인을 기쁘게 하려는 듯 웃음을 띠지만, 그 웃음은 세상과 거리를 두는 방편이자 자신을 보호하는 마지막 장치에 가깝다. 그는 사람들에게 완전히 다가가지 못하고 주변을 맴돌며, 상처를 감추고자 더 큰 우스움으로 스스로를 소모해 간다. 그러한 악순환 속에서 결국 자신이 ‘인간으로서 실격되었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요조만이 아니라 그와 관계를 이루는 주변 인물들이다. 착해 보이나 불균형한 상황에서는 요조의 취약함을 감싸지 못하는 넙치, 충동적으로 움직이며 요조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호리키는 요조가 사회와 연결되지 못하는 지점을 더 분명히 보여준다. 넙치는 동정과 의존 관계가 한 사람의 불안을 어떻게 고착하는지를 드러내고, 호리키는 사회적 규범과 속도에 적응하지 못하는 요조의 현실적 한계를 상징한다. 두 인물의 대비는 요조의 고립이 개인의 성격만이 아니라 관계의 구조 속에서 형성된 것임을 보여준다. 출간 후 7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인간 실격』이 꾸준히 읽히는 이유는 인간 존재의 불안과 복잡성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이 소설의 시선이 시대를 넘어 유효하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무게 그리고 살아간다는 일 자체의 어려움이 절제된 문장 속에 담겨 있으며, 이러한 문제의식은 지금의 독자에게도 여전히 현실적인 질문으로 남는다. 다자이 오사무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단편 후지산 백경, 한량, 의리 이 책에는 『인간 실격』과 함께 다자이의 다양한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단편이 세 편 실려 있다. 작가가 가장 안정되게 생활하며 건강하게 글을 쓸 때 집필한 「후지산 백경」은 실생활이 삽입된 작가의 자유분방한 사유가 돋보이는 수필풍 작품이다. 일본의 상징인 후지산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에는 장난기와 유연한 감각이 담겨 있으며, 후지라는 하나의 피사체에 대한 판이한 묘사로 급류처럼 변화무쌍한 작가의 심상 풍경을 읽을 수 있다. 이하라 사이카쿠의 고전 설화를 다자이가 새롭게 해석한 「한량」과 「의리」는 또 다른 방향에서 그의 개성을 보여준다. 「한량」은 인간 욕망을 해학적으로 비틀며 시대를 초월한 풍속을 재치 있게 그려내고, 「의리」는 일본식 무사 도덕의 형식성과 모순을 드러내며 인간 생명보다 규범을 우선하는 가치관의 허구성을 비판한다. 두 작품 모두 다자이가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을 더 넓은 맥락에서 확인하게 한다. 시대가 바뀌어도 남는 인간의 문제들 『인간 실격』과 세 단편은 시대와 형식은 각각 다르지만 인간이 살아가며 겪는 불안과 갈등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한다. 제자리를 찾지 못해 흔들리는 마음, 그 마음을 감추려는 노력,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불균형 그리고 결국 마주하게 되는 인간의 본모습. 네 작품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인간이라는 존재의 구조를 탐색한다. 다자이 오사무의 문학은 특별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 대신 인간이 어떤 조건 속에서 흔들리고, 그 흔들림의 끝에서 무엇을 마주하게 되는지를 꾸준히 들여다본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은 지금의 독자에게도 여전히 설득력을 지닌다. 불안, 관계의 균형, 자기 인식 같은 문제는 시대를 넘어 반복되는 경험이니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