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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방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조안 마틴 양의 일기 옮긴이 해설 21세기, 왜 다시 버지니아 울프인가 옮긴이의 글 버지니아 울프 연보 |
Adeline Virginia Woo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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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할 수 있었던 건 하나의 사소한 의견을 제안하는 것뿐이었죠. “여성이 소설을 쓰려면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이 말은 여성의 본질이나 소설의 본질이라는 거대한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해요. 저는 여성과 픽션이라는 이 두 질문에 결론을 내리지 않고 남겨두었어요. 저에게 그것은 여전히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는 주제랍니다.
--- pp.10-11 그 모든 여성이 일 년 내내 일해서 2천 파운드 모으기도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고, 3만 파운드를 마련하려고 갖은 고생을 다 했다는 사실을 생각하자 우리는 여성의 지독한 가난을 경멸했어요. 우리 어머니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느라 우리에게 남길 재산이 없었을까요? 콧잔등에 분이나 바르고 있었나요? 상점 진열장이나 들여다보고 있었나요? 몬테카를로의 햇살 아래서 사치라도 부리고 있었나요? 벽난로 선반에 사진 몇 장이 있었어요. 그것이 메리 어머니의 사진이라면, 그녀는 흥청망청 낭비하며 여가를 보냈었는지도 모르지요. --- p.35 정말이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같아요. 당시 거의 모든 남자가 노래나 소네트 한 수쯤은 거뜬히 지어내던 그 놀라운 문학의 시대에, 왜 여성은 단 한 마디의 글도 남기지 못했을까요? 여성들은 어떤 조건 속에서 살았을까? 저는 자문해 보았어요. 픽션, 그러니까 상상력이 필요한 작업은 과학처럼 땅 위에 툭 떨어진 조약돌 같은 게 아니거든요. 소설은 마치 거미줄 같아서, 어쩌면 아주 가볍게 붙어 있는 듯 보일지라도 네 귀퉁이가 여전히 우리 삶의 구석구석에 단단히 매여 있답니다. 흔히 그 연결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아요. --- pp.64-65 가만히 눈을 감고 예전에 읽었던 유명한 소설들을 떠올려 봤어요. 그러면 그 소설 특유의 ‘모양’이 우리 마음속에 어떤 감정의 물결을 일으키잖아요? 그런데 그 감정은 금세 다른 감정들과 섞여버리고 말아요. 왜냐하면 소설의 모양이라는 건 차가운 돌덩이를 쌓아 만든 게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뜨거운 관계들로 빚어진 것이니까요. 그래서 소설을 읽다 보면 우리 마음속에선 온갖 복잡하고 모순된 감정들이 소용돌이치게 돼요. 진짜 우리네 ‘삶’이, 삶이 아닌 그 무엇(예술이나 관습 같은 것들)과 팽팽하게 맞서게 되는 거죠. 그렇기에 소설에 대해 어떤 합의에 이르기가 어렵고, 우리의 사적 편견이 우리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는 거예요. --- p.112 마지막 장을 읽으며 저는 이렇게 결론지었습니다. 그녀에게 100년의 시간을 더 주자고요. 누군가 거실의 커튼을 홱 젖힌 덕분에,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배경으로 사람들의 코와 드러난 어깨가 고스란히 비치고 있었지요. 그녀에게 자기만의 방과 매년 500파운드의 소득을 주고, 그녀가 마음껏 생각한 바를 말하게 하며, 지금 써넣은 것들의 절반쯤은 덜어내게 한다면, 머지않아 그녀는 더 훌륭한 책을 써낼 거예요. 메리 카마이클의 『인생의 모험』을 책장 끝에 꽂아 넣으며 저는 혼잣말을 했습니다. 100년쯤 뒤에 그녀는 시인이 되어 있을 거라고요. --- p.148 제 마음을 뒤져보아도 누군가의 반려자가 되라느니, 평등한 존재가 되라느니 혹은 세상을 더 높은 목표로 인도하라느니 하는 식의 고결한 감정은 찾아볼 수 없네요. 그저 저는 짧고 세속적으로 이렇게 말하게 됩니다. 그 무엇이 되기보다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말이지요. 만약 제가 이 말을 아주 고상하게 들리게 할 방법만 안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미치겠다는 꿈은 꾸지 마세요. 사물 자체를 생각하세요. 우리의 준비 없이, 우리의 노력 없이, 그녀가 다시 태어났을 때 비로소 삶을 영위하고 시를 쓰는 것이 가능하게 해주겠다는 결의 없이는 그녀가 찾아오리라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니까요. 하지만 저는 주장합니다. 우리가 그녀를 위해 노력한다면 그녀는 반드시 올 것이며, 비록 가난과 무명 속에서일지라도 그렇게 노력하는 것 자체가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고 말입니다. --- p.173 저는 남편과 가정 그리고 편안하게 늙어갈 집 대신 누런 양피지 조각 몇 개를 선택했어요. 그 양피지는 읽을 수 있는 사람도 몇 안 되지만, 읽을 줄 안다 해도 굳이 읽고 싶어 하는 사람은 더 적은 그런 물건들이죠. 하지만 어머니들은 가장 못나고 어리석은 자식을 제일 아낀다는 이야기를 여성 문학에서 흥미롭게 읽은 적이 있는데요. 제 가슴속에서도 이 쭈글쭈글하고 바랜 작은 땅속 요정들(gnomes)을 향한 일종의 모성애 같은 열정을 느끼게 되었답니다. --- pp.181-182 그가 뭐라고 하든 저는 ‘조안 할머니’를 팔에 꼭 끼고 저택을 나섰답니다. 베티 부인은 이 기묘한 꾸러미의 정체를 숨겨야 한다며 굳이 갈색 종이로 일기장을 싸주었죠. 마침 자전거로 우편물을 배달하러 가는 소년 편에 보내주겠다는 제안도 하셨지만, 저는 단호하게 거절하고 제가 직접 소중히 안고 돌아왔답니다. --- p.202 제가 정말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전 그것을 갈망하고 있고, 아주 은밀한 방식으로 기대하고 있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자주, 너무나 잘 아는 이 땅의 표면에서 낯설고 새로운 표정을 발견하고는 걷다가 갑자기 멈춰 서곤 해요. 그것은 무언가를 암시하는 듯하지만, 그 의미를 깨닫기도 전에 금세 사라져 버리죠. 마치 아주 잘 아는 얼굴에서 낯선 미소가 슬며시 배어 나오는 것 같다고 할까요? --- p.2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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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글을 쓰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 울프가 남긴 가장 근본적인 질문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은 수많은 인용과 논쟁을 만들어낸 작품이지만, 결코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다. 문장은 길고 사유는 촘촘하며 맥락도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럼에도 이 책이 한 세기를 건너 여전히 새로운 독자를 만나는 이유는 울프의 질문이 지금도 유효하기 때문이다. 울프는 여성의 창작이 오랫동안 제한되어 온 이유를 개인의 능력 부족이 아니라 구조적 결핍, 즉 경제적 자립의 부재와 사유할 공간의 부재에서 찾는다. 그래서 울프는 상징적 문장, ‘연 500파운드의 수입과 자기만의 방’을 던지며 창작의 최소 조건을 분명하게 제시한다. 이 문장은 단지 여성의 문제를 넘어 지적 활동이 특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울프의 근본적인 선언이다. 이 책은 여성들의 경험이 어떻게 문학에서 배제되어 왔는지를 차분하지만 날카롭게 드러내며, 우리가 어떤 목소리를 읽고 어떤 목소리를 잃어버렸는지 다시 묻게 만든다. “여성이 글을 쓰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울프는 이 단순한 질문으로 창작이 특정 집단의 특권으로 남아서는 안 된다고 선언한다. 여성들이 교육에서 배제되고, 사유할 공간을 갖지 못하고, 경제적 독립을 허락받지 못한 현실을 차분하지만 정교하게 분석한다. 울프가 제시한 ‘연 500파운드의 수입과 자기만의 방’은 특정 시대의 요구가 아니다. 오늘날에도 창작의 기본 조건이 무엇인지 되묻게 하는 보편적 메시지다. 이 책이 발간 후 한 세기가 지나도록 고전으로 남아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스무 살 울프의 단편과 함께 읽는 ‘사유의 원점’ - 「조안 마틴 양의 일기」 이 책에는 울프가 스무 살 무렵에 쓴 초기 단편 「조안 마틴 양의 일기」가 함께 수록되어 있다. 『자기만의 방』에서 울프는 주디스 셰익스피어라는 가상의 인물을 통해 ‘재능이 있어도 쓰지 못했던 여성들’의 침묵을 상징화한다. 반면 「조안 마틴 양의 일기」는 이름 없는 젊은 여성이 쓰고자 하는 욕망을 품고도 시대의 조건 때문에 끝내 글을 이어갈 수 없었던 현실을 담담하게 드러낸다. 두 작품을 함께 읽으면 울프의 사유가 어떻게 싹트고, 어떤 고민이 20년 뒤의 고전으로 완성되었는지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이는 단순한 보너스 텍스트가 아니라 울프 사상의 기원을 보여 주는 또 하나의 창이다. 읽기 쉽지만 깊이를 잃지 않은 번역 - 문턱 없는 고전 읽기 울프의 산문을 이해하기 어려워 번역본마다 난도가 갈리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책의 번역은 “울프가 한국어로 쓴다면 이런 문장을 선택했을 것이다”라는 원칙 아래 원문의 결을 살리면서도 자연스러운 흐름을 담아냈다. 또한 풍부한 각주와 해설은 울프의 시대적 배경, 인용된 문학·사상적 맥락을 친절히 짚어주어 처음 책을 읽어도 무리 없이 따라갈 수 있다. 고전의 깊이를 유지하면서도 읽기의 장벽을 대폭 낮춘, ‘문턱 없는 고전’이라는 평가가 가능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