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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무늬동물들
양장
하가람
은행나무 2026.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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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햇빛무늬동물들 007
작가의 말 217

저자 소개 1

202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수박」으로 등단. 『소설 보다: 여름 2023』에 단편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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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6월 22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220쪽 | 128*188*20mm
ISBN13
9791167376633

책 속으로

“나는 화면 안에 들어가고 싶었다. 들어가서 금동이를 만나고 싶었다. 금동이의 푸른 회색 눈동자를 마주하고 큰 빗으로 노란 털을 빗겨주고 싶었다. 많은 이들이 금동이를 귀여워했지만 나는 그 호랑이가 귀엽지 않았다. 사랑스럽지도 않았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그 호랑이가 나와 무척 닮았다고 생각했다.”
--- p.16

“그날 이후 매일 병에 손을 넣어 젤리를 꺼내 먹었다. 빨간 곰. 노란 곰. 초록 곰. 번갈아가며 한 마리씩. 종종 영선에게 꾸중을 듣는 날이면 한 번에 세 마리를 집어 먹기도 했다. 나는 아저씨에게 젤리를 받았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영선은 물론이고 언니에게도 숨겼다. 그 병은 내가 가족이 아닌 바깥사람에게 받은 최초의 선물이었다. 혼자서 소유하고 싶었다.”
--- p.26

“웅은 렁이 온 것이 좋았다. 렁이 오기 전 웅의 밤은 늘 혼자였다. 같은 야행성인 붉은 여우나 수리부엉이는 2급 구역에 있는 탓에 울음소리가 닿지 않았다. 웅은 고요히 제 앞발을 핥거나 유리벽 앞을 서성이는 밤을 반복해왔다. 그러니 렁이 우리 안으로 들어온 날, 처음 자신과 같은 종을 마주한 날, 철사에 가죽을 덧댄 박제본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진짜 호랑이를 만난 날, 그 호랑이와 함께 음식을 먹고 서로의 이름을 부르게 된 그날, 웅의 가슴은 얼마나 뛰었을까?”
--- p.42

“우리는 방 안에 틀어박혀 수십 편의 영화를 몰아 보았다. 보다가 졸고 졸다가 다시 보았다. 잠에서 깰 때마다 새로운 얼굴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연달아 사랑 영화를 보기도 했다. 그럴 때 흐린 날씨와 침묵 속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지나간 시대의 연인들이었다. 모든 사랑과 이별, 그리움이 그곳에 있었다. 어떤 움직임은 말보다 강했다.”
--- p.98

“나도 모르게 소리 내었다. 지나가는 누군가 들었다면 말이 아니라고, 그저 작은 웅얼거림이라고 여겼을 터였다. 하지만 웅은 뒤돌아보았다. 회색 눈동자가 나를 보았다. 투명한 햇살 아래서 전에 볼 수 없었던 푸른 기가 비쳤다. 가슴 안쪽에서부터 천천히 번져나가는 문장이 있었다.
너는 호랑이.
사랑은 햇빛무늬.”
--- p.100~101

“눈을 감으면 꿈은 이어졌다. 나는 여전히 환한 섬에 있었고, 손바닥 위에는 정오의 빛 무늬가 아름답게 부서졌다. 웅도 나와 같은 꿈을 꾸고 있을 거라고 믿었다. 빛이 무늬를 남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림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그 눈부심 뒤편에 드리워진 웅의 긴 그늘을, 나는 외면하고 있었다.”
--- p.134

“따듯해진 주스병을 들고 말없이 걸었다. 한참 뒤 웅이 입을 열었다. 신기해.
우리가 방금 대화를 나눴어.
그렇구나, 하고 생각했다. 웅과 대화를 나눈 건 처음이었다. 우리가 같은 언어로 말을 주고받은 것은.”
--- p.145

“뒤돌아 손전등을 비추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 여기 있어. 검은 수풀 사이로 몸을 감추고 있는 웅을 발견한 건 잠시 후였다. 정말 사라진 줄 알았는데…… 나는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말을 삼키며 웅에게 다가갔다.”

--- p.170

출판사 리뷰

처음부터 알아봤다.
나와 같은 외로움, 슬픔, 상실감을 가진 웅을.
하지만 모든 게 내 오해였던 걸까?

웅은 무로군 항구에서 배를 타고 네 시간을 달리면 도착하는 키키섬의 멸종위기동물원 키키주에서 자랐다. 매일이 평화롭고 안온했지만 혼자라 조금 외롭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육지에서 포획된 다른 호랑이 ‘렁’이 웅이 지내고 있는 구역에 합사가 된다. 더 넓은 세상에서 살던 렁은 웅에게 매일 밤 이야기를 들려주고, 렁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웅의 세상은 한 뼘씩 넓어진다. 하지만 웅과 달리 렁은 자유롭게 뛰어다니던 야생의 호랑이. 동물원 생활이 지속되자 렁은 답답함과 외로움에 점점 수척해진다. ‘너는 이곳이 답답하지 않아?’ 웅은 처음으로 자신이 살고 있는 공간이 세계의 전부가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웅은 음식까지 거부하는 렁을 보며 친구를 잃을 것 같다는 두려움에 렁과 함께 탈출을 감행하지만, 인간들이 쏜 총에 맞은 렁은 죽음을 맞는다.

“웅은 렁이 온 것이 좋았다. 렁이 오기 전 웅의 밤은 늘 혼자였다. 같은 야행성인 붉은 여우나 수리부엉이는 2급 구역에 있는 탓에 울음소리가 닿지 않았다. 웅은 고요히 제 앞발을 핥거나 유리벽 앞을 서성이는 밤을 반복해왔다. 그러니 렁이 우리 안으로 들어온 날, 처음 자신과 같은 종을 마주한 날, 철사에 가죽을 덧댄 박제본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진짜 호랑이를 만난 날, 그 호랑이와 함께 음식을 먹고 서로의 이름을 부르게 된 그날, 웅의 가슴은 얼마나 뛰었을까?”(42쪽)

한편 연오는 우연히 길에 쓰러져 있는 또래 아이를 발견한다. 몸에 호랑이 줄무늬 같은 옅은 무늬가 새겨진 아이였다. 웅이 호랑이였다는 사실을 모르는 연오는 아이를 이방인의 집, ‘세오하우스’로 데려온다. 세오하우스에는 혼자가 된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다. 따로 또 같이,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며 함께 따듯한 밥을 나눠 먹고 하루의 일상을 나눈다. 큰 상실을 겪은 뒤에 만난 둘은 같은 슬픔의 냄새를 감지한다. 서로의 외로움을 알아보기라도 한 듯 조금씩 소통을 시작한다. 늘 혼자라고 생각해온 연오는 웅에게 마음을 활짝 열어 보이고, 웅의 비밀을 일찍이 눈치챘음에도 함구를 택한다. 하지만 서로 다른 언어와 배경을 가진 존재가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현실의 벽 앞에서 연오는 조금씩 혼란을 느낀다. 어쩌면 내가 너를 오해하고 있던 걸까? 우리의 마음은 양방이 아니라 일방이었던 걸까?

“나도 모르게 소리 내었다. 지나가는 누군가 들었다면 말이 아니라고, 그저 작은 웅얼거림이라고 여겼을 터였다. 하지만 웅은 뒤돌아보았다. 회색 눈동자가 나를 보았다. 투명한 햇살 아래서 전에 볼 수 없었던 푸른 기가 비쳤다. 가슴 안쪽에서부터 천천히 번져나가는 문장이 있었다.
너는 호랑이. 사랑은 햇빛무늬.”(100~101쪽)

빛이 무늬를 남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림자가 필요하다는 것

우리가 서로를 발견했던,
청명하고 시린 여름의 이야기

책의 제목이기도 한 ‘햇빛무늬’는 이야기 안에서 소외와 고독의 존재론적 인장으로 작동한다. 햇빛무늬증후군을 앓는 이들에게 피부 위에 새겨진 무늬가 세상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표식이라면, 인간의 형상을 한 호랑이에게는 그럼에도 타자와 완전히 섞일 수 없는 이종(異種)의 한계를 일깨우는 상징이다.

하가람은 이 모든 ‘다름’의 궤적을 그려내는 과정에서 현실과 비현실, 동화와 설화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알레고리화한다. 이는 우리에게 익숙한 서사 그 이후의 세계를 상상하게 만드는 동시에, 연오와 웅, 영선과 세오, 그리고 사가르의 관계를 통해 고독이라는 실존적 무게를 견디는 이들의 연대가 얼마나 애틋하고 눈부신 것인지 절실히 깨닫게 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타자를 온전히 환대하는 ‘진짜 사랑’의 윤리가 무엇인지까지도.

“따듯해진 주스병을 들고 말없이 걸었다. 한참 뒤 웅이 입을 열었다. 신기해.
우리가 방금 대화를 나눴어.
그렇구나, 하고 생각했다. 웅과 대화를 나눈 건 처음이었다. 우리가 같은 언어로 말을 주고받은 것은.”(145쪽)

추천평

“더 이상 길이 없을 때 길을 만드는 이야기. 한계와 불가능, 딱딱한 편견까지 녹이는 전개. 호랑이와 사람의 만남이 동화와 설화의 틀을 훌쩍 뛰어넘을 때 만나게 되는 세계. 투명한 그림자가 기어이 피부가 되고 무늬가 되는 이 자유로운 소설이 좋다. ‘자유는 멀리 가는 것’이니까.” - 정용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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