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Hans Christian Andersen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다른 상품
변용란의 다른 상품
|
작품으로 승화된 작가의 슬픈 자화상
우리가 어린 시절 읽었던 안데르센 동화는 슬픈 결말임에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인어공주’는 왕자님의 사랑을 얻지 못하고 물거품이 되어 사라진다. 혹은 디즈니 판에서는 인어공주가 왕자님과 행복하게 살았다는 결말로 각색되었다. 하지만 〈인어공주〉, 〈성냥팔이 소녀〉, 〈빨간 구두〉, 〈엄지공주〉 등으로 대표되는 안데르센 동화의 원전을 살펴보면 설정이 참으로 가혹하고 결말이 비정하다. ‘인어공주’는 왕자님의 사랑을 얻지 못하고 물거품이 된 후 공기의 정령이 되어 삼백 년이나 허공을 떠돈다. 그리고 춤추는 ‘빨간 구두’ 때문에 카렌은 발목이 잘리고, 끔찍한 참회의 시간을 보낸다. 싸늘하게 식은 ‘성냥팔이 소녀’의 몸은 사람들에게 그대로 발견되고, ‘빵을 밟은 소녀’ 잉게는 지옥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안데르센의 동화는 일반적으로 아름답고 환상적으로 쓰인 동화와 달리,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없앴다는 특징이 있다. 안데르센은 어떤 배경에서 이런 동화를 쓰게 되었을까? 안데르센은 당시 사회의 하층 계급 출신으로, 기껏해야 재단사나 장사꾼이 될 운명이었다. 하지만 문화와 교육을 동경한 그는 열네 살의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나 계급 상승을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고 노력해, 가난과 무지를 힘겹게 딛고 작가라는 위치에 올랐다. 이런 그의 성장 배경 때문에 그의 작품에는 동전의 양면처럼 현실과 동화의 세계가 맞닿아 있다. 또한 작가의 개인 경험이 작품에 반영될 수밖에 없듯 안데르센의 동화에도 자신의 경험이 녹아들어, 우리가 그의 동화를 접할 때 어쩐지 마음이 조금 불편하고 색다르게 느껴지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니 그에 대한 비평에도 냉혹한 비관론과 낙관론이 혼재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가 태어난 지 이백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변함없는 사랑을 받는 이유도 독특한 안데르센의 작품성 때문이다. 사랑을 찾아 떠나는, 혹은 사랑의 실연을 경험하는 동화의 주인공들 ‘인어공주’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사로잡은 동상의 실체인 왕자를 찾아 떠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사랑은 비극으로 끝난다. 그리고 ‘엄지공주’는 사랑하지 않는 두꺼비나 두더지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여러 차례 모험을 하게 되며 결국 꽃의 요정 왕자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엄지공주를 요정 왕자에게 데려다준 제비는, 공주를 사랑하는 마음을 감춘 채 떠나가야 한다. 한 무희를 사랑한, 한쪽 다리가 없는 ‘장난감 병정’은 온갖 시련과 역경을 견뎌내어 다시 무희 곁으로 돌아오지만, 아무런 설명도 없이 뜨거운 난로 속에 던져져 쇳덩어리로 변한다. 이렇듯 안데르센은 사랑을 찾거나 실연의 아픔을 경험하는 여러 인물을 작품에서 그리고 있다. 안데르센은 평생 사랑을 이루어 보지 못했다. 그의 미천한 출신 성분 때문이었는지, 사랑 표현에 미숙했기 때문인지, 혹은 최근 연구대로 그가 동성애자였기 때문에 생겨난 성 정체성의 혼란 때문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하지만 사랑에의 실연은 그의 작품에서 매번 처절하지만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승화되었다. 그러니 아이러니컬하게도 독자들에게는 고마운 일이 되었다. 어른이 되어 다시 읽는 동화 ‘안데르센 동화’ 중 ‘빨간 구두’에서 모티프를 따온 영화 ‘분홍신’을 비롯하여 최근 ‘그림 동화’에서 모티프를 딴 할리우드 영화 ‘그림 형제’까지, 근래 들어 동화는 단순 패러디를 넘어서서 다른 예술장르의 소재로까지 확장되어가고 있다. 그런 와중에서 ‘동화’의 진실 혹은 원작 동화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게 거론되면서 ‘동화’를 다시 보고자 하는 관심의 눈길이 많아지고 있다. 특히 ‘안데르센 동화’ 원전은 작가의 삶과 사랑을 알고 난 후 다시 읽을 때, 분명 어린 시절과는 다른 감동과 깨달음으로 독자를 사로잡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