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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군주들은 함부로 정치 권력을 휘두르지 못했다. 법적으로는 누구도 제지할 수 없는 최고 권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군주들은 그 어떤 국가의 군주들보다 역사의 평가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바로 『조선왕조실록』이 있기 때문이었다. 군주가 어떤 행동을 하는지 정치가가 어떤 발언을 하는지 『조선왕조실록』은 빠짐없이 기록하여 길이길이 후손에게 전하기 때문이다. 『조선왕조실록』은 말 그대로 역사가 담겨 있고, 그 자체가 역사였던 것이다. 실로 이런 유산은 세계적으로도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선 태조에서 철종까지 472년간의 역사적 사실을 각 왕별로 기록한 편년체 사서이다. 일부 필사본을 포함하여 활자본으로 2,077책으로 이루어진 이것은 1413년(태종 13년)에 『태조실록』이 처음 편찬되고 25대 『철종실록』은 1865년(고종 2년)에 완성되었다. 물론 『고종실록』,『순종실록』이 있지만 이것은 일제 강점기 때 이루진 것으로 생략과 왜곡이 심해 조선 시대 이루어진 실록의 성격과는 차이가 많아 『조선왕조실록』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것이다. 대신 이 시기 실록을 대신할 만한 기록물로는 『일성록』과 『승정원일기』가 있다. 『조선왕조실록』이 찬란한 기록 문화의 유산으로서의 위상을 확보할 수 있는 이유는 기록의 공정성에 있다고 하겠다. 기록의 공정성이 확보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보다는 실록의 편찬 과정에 있다. 실록의 편찬은 해당 군주가 죽고 나서야 시작된다. 즉 한 군주가 죽으면 그제서야 그 군주의 실록 작성을 위한 실록청이 구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도 후왕들은 결코 선왕들의 실록을 열람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권력의 이름으로 공정의 역사 기록을 훼손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군주가 죽은 후 구성되는 실록청은 역사를 담당하는 춘추관 내에 임시로 설치된 실록청(또는 수찬청 : 일기청)에서 담당하였다. 실록청의 총재는 대개 재상이 맡았으며, 대제학 등 당대 최고 문필이 실록청 당상에 임명되었다. 이들은 해당 군주의 객관적 평가를 위해 전국적으로 자료를 수집하였다. 시정기와 사관이 개인적으로 작성한 사초, 각사 등록『승정원일기』는 물론 개인이 소장하거나 기록한 문집이나 일기, 야사류까지도 수집하여 실록을 작성하였던 것이다. 실록 방대하고도 객관적인 자료가 동원되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