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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 일기
계사년 일기 갑오년 일기 을미년 일기 병신년 일기 정유년 일기 무술년 일기 이순신 연보 핵심정리 및 내용 해설 |
李舜臣, 본관 : 덕수(德水), 자 : 여해(汝諧), 시호 : 충무(忠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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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는 충무공 이순신의 진중 기록이다. 이것은 이순신이 전라 죄수사로 부임한 1592년(선조 25년) 1월 1일부터 전사하기 이틀 전인 1598년 11월 17일까지 7년간의 병영 생활을 기록한 개인 일기이자 공적 일기이다. 이 일기는 이순신이 직접 쓴 필사본으로 국보 제76호로 지정되어 현재 아산 현충사에 소장되어 있다. 그리고 초고 필사본과 『이충무공전서』에 수록된 것 등 두 종류가 있다. 여기에 수록된 난중일기는 초고본에 없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임진년 1월 1일부터 4월 22일까지, 을미년 1월 1일부터 12월 20일까지, 무술년 10월 초8일부터 12일까지의 일기가 더 첨가되어 있다. 본래 일기에는 특별한 이름이 붙어 있지 않았으나, 『이충무공전서』의 편찬자가 편의상 ‘난중일기’라는 이름을 붙인 뒤부터 그렇게 불리게 되었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이라는 조선의 위기를 맞이하여, 이순신은 제1차 옥포 앞바다에서 적선 30여 척을 무찌르고, 이어서 제2차로 사천에서 스스로 만든 거북선을 이용하여 적선 13척을 불태웠으며, 당항포에서 100여 척을 각각 쳐부수거나 불태웠다. 그 해 7월 제3차로 한산도에서 적선 70여 척을 무찔러 역사상 유명한 ‘한산대첩’의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1597년 모함을 받고 서울에 압송되어 사형을 받게 되었으나, 정탁의 변호로 사형을 면하고 권율의 부하 장군이 되었다. 같은 해 정유재란 때, 이순신 대신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원균이 참패하였다. 이에 이순신은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되어, 남은 배 12척으로 왜선 133척과 대결하여 31척을 쳐부수었다. 일본군은 다시 200여 척의 배를 몰고 울돌목 쪽으로 들어왔다. 70척은 입구에 대기하고 있었고, 130여 척이 해협 안으로 들어왔다. 조금도 동요하지 않는 이순신의 위세에 용기를 얻은 수군들은 배를 진격시키고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이순신의 활약을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다른 배들도 용기를 얻어 적진으로 돌격했다. 전부 배 12척, 150문의 함포뿐인 조선의 수군들은 30여 척씩 좁은 해협으로 들어오는 일본군 전함을 모두 무찔렀다. 적장을 사살하자 일본군의 사기는 크게 떨어져 앞을 다투어 도망갔다. 결과적으로는 우리 수군은 배 1척도 피해를 입지 않고 133척의 일본 전함을 모조리 격퇴시킨 것이다. 1598년(선조 31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이 죽자 전쟁의 의욕을 상실한 왜군은 몰래 퇴군을 계획하나, 이를 눈치 챈 이순신 장군은 이들을 노량 해협에서 무찌르니 이것이 저 유명한 ‘노량 해전’이다. 1598년 11월 9일, 이 노량 해전에서 이순신은 그만 적의 총을 맞고 쓰러지고 만다.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는 최후의 유언을 남겨 놓고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