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시인의 말
|제1부| 지금은 나만의 질문으로 목향장미 민들레 행성 감자수프 몰랐어 꽃의 둘레 경계를 지우다 빈칸 여름밤 앙금 민달팽이 외딴집 메밀베개 꽃누루미 절정 꽃씨 함박눈 |제2부| 한 목청 높이는 초록 꽃잎 지는 날 오후 무늬 곁을 빌리다 모자를 뜨는 오후 봄눈 부채춤을 추는 시간 봄날의 합주 생강나무 꽃망울 디지털 노마드 소녀상 앞에서 숨겨둔 감정 청매실 수신인 불명 벽 버려진 자전거 가을 저녁 보인다 |제3부| 낮아짐을 생각하는 가을날 꽃배 물봉선 저녁 제비꽃 봄 편지 복사꽃 새깃유홍초 섬에서 섬을 보다 갈증 고로쇠나무 질문과 대답 한달살이 첫눈 소식 새들처럼 가을에는 정선아라리를 찾아서 매듭을 풀다 아우라지 |제4부| 가야 할 그 먼 곳의 풍경 초록 문장 감자 심는 날 오동꽃 무한꽃차례 봄날의 고백 동그랗게 그린 봄 시간의 뒤쪽 그늘에 핀 꽃 정월 초엿새 저물녘 새벽 무작정 여행 진도 미르길 감 늦은 밤 곰솔과 바람 그리고 비 죽림마을 해설/오종문 꽃의 시학과 생명의 서사-김영희 시조에 나타난 자연·기억·존재의 시학 |
김영희의 다른 상품
|
민들레 행성
담장 밑 가장자리 본부가 세워졌다 세상을 바꾸는 건 조그만 눈빛 하나 좁다란 오솔길들도 봄 한 폭을 완성했다 허공에 공중정원 나부죽이 문 열었다 노랑과 초록 둘레 환히 밝힌 행성 한 채 저 우주 통로를 돌아 다시 온단 약속이다 꽃잎 지는 날 바람이 꽃핀 꽂고 한동안 즐기는 사이 날씨를 빌려다가 몸치장 지우는 꽃 극진한 눈물 한 채로 고요 한 줌 심는다 꽃의 둘레 슬픔이 우리에게 말을 걸 때 꽃이 진다. 바람을 타고 가다 그곳에 닿을 순간 꽃잎은 고요를 꺼내 봉분 하나 지었다 오늘을 닫아놓고 꽃 지듯 떠나는 날 그늘을 지워내고 빛을 이고 가는 모습 찬란함 다 접어놓고 네 이름을 심는다 기록은 까만 한 점 약속은 여백이다 또 다른 나를 만나 아픔 없이 피기 위해 깊은 숨 지극한 눈빛 한 우주를 건넌다 모자를 뜨는 오후 눈꽃이 산마루에 털옷을 입힙니다 괄호에 묶인 시간 탈주를 꿈꾸면서 이 짧은 날빛을 모아 털모자를 짭니다 아프고 절망적인, 뭉클하고 따사로운 손가락 그 사이로 헐렁하게 빠져버린 이내 속 뻐꾹새 울음 빈칸들을 채웁니다 건너간 사람들을 코에 걸어 잇습니다 망설임 조바심에 혼잣말 키우다가 금이 간 마음의 틈새 또 한 코를 뜹니다 감자수프 속엣말 한마디를 끝내는 묻어둔 채 호흡을 감춘 표정 몸짓도 고요하다 우중충 날씨 같아서 다 못 읽은 저 마음 감았다 다시 뜬 눈 바닥에 닿은 말들 휘저어 섞어 보면 뒤엉키는 뜨거운 속 묵음은 떠난 사람처럼 어디서나 자라고 세상을 닫은 저녁 혼자 먹는 감자수프 내 말을 감춘 죄로 네 속을 모르는 형벌 뜨겁다, 암전의 무대 뒷면 같은 저녁밥 빈칸 화려한 상자였던 그런 때가 있었다 긴 여름 장맛비에 맨몸으로 누운 자리 투명한 실로폰 소리 꿈결인 듯 들린다 돌아서 우는 사람 그림자도 안아주고 저녁이 다녀가면 일어나 말리는 몸 어깨가 결릴 때마다 모서리를 지웠다 떨어진 꽃잎들이 세상 이름표 달고 덜어낸 속내까지 나였음을 증명하듯 무심한 마른 바람이 내 알몸을 채워간다 함박눈 상처를 털어내고 돋아난 생각이다 애쓰던 지점에서 삽시에 피어나며 어둠이 깊어질수록 가속도를 올린다 몸으로 밀고 가는 절정의 순간이다 눈 질끈 감은 채로 다급하게 타전하며 개화한 꽃숭어리들 빈 들판을 채운다 한 계절 꽃 피우려 몇 번이나 울었을까 아득한 허공에서 부딪히고 흔들려도 끝끝내 말하지 못 한 이야기가 쌓인다 벽 꽉 다문 입술들은 잘 구운 벽돌 같다. 마음을 조인 틈새 서로가 훔치다가 맞물림 풀어놓아도 열고 닫기 어렵다 하루가 지나가고 한 달이 훌쩍 넘고 생각을 뒤섞다가 제풀에 지는 마음 벽 너머 허공 속에다 이름 하나 써본다 민달팽이 자꾸만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슬픔의 마디 맨 처음 향한 그곳 오롯이 그 방향으로 떠돌이 방랑자처럼 이름 하나 밀고 가네 내일을 읽으면서 그 길로 가기 위해 세상을 통과하는 나만의 더딘 걸음 소낙비 대신해 울어 들꽃처럼 눈부시네 천천히 조금만 더 마침내 도달할 곳 온몸을 밀고 당겨 기어이 가야 할 곳 길 끝에 가닿지 못해도 가는 길이 우주네 초록 문장 한겨울 무명씨의 머리말을 쓰는 꽃씨 적빈의 흙 한 줌에 내력을 묻어뒀다 어둠을 깨고 일어나 빛을 켜는 문장들 햇살이 지나는 길 하루치를 여는 시간 소소한 기록들이 리듬으로 연결되고 바람은 몇 번의 몸짓으로 방향을 일러준다 계절이 문을 열고 서로의 안을 살피면 스치고 닿을 때마다 넝쿨들이 올라간다 씨방 속 맺음말 속엔 다시 온단 약속 하나 --- 본문 중에서 |
|
[ 평론가 서평 ]
꽃의 시학과 생명의 서사 『모자를 뜨는 오후』에 실린 시편들은 개별적으로 독립된 의미를 지니면서도 전체적으로 하나의 유기적 시학 체계를 형성한다. 그 중심에는 시간과 공간과 관계와 기억이라는 네 개의 축이 놓여 있으며, 그 내부에는 존재와 관계, 생성과 소멸, 기억과 회복에 대한 깊은 철학적 성찰이 자리한다. 자연 서정의 외형을 지니고 있으나 자연을 노래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연을 매개로 인간 존재와 세계의 관계를 새롭게 사유하는 깊이 있는 정신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자연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존재를 이해하는 통로이며, 인간은 자연의 질서를 통해 자신과 세계를 다시 읽게 된다. 또한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김영희의 시조는 삼장 구조와 운율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적 감각과 사유를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이러한 확장은 형식을 해체하는 방식이 아니라 정형 안에 새로운 인식 구조를 담아내는 미학적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는 전통과 현대가 충돌하지 않고 조화롭게 결합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현대시조의 확장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모자를 뜨는 오후』는 자연을 읽는 시조집이 아니라 존재를 읽는 시조집이다. 자연을 노래하는 시조가 아니라 자연을 통해 존재의 의미를 탐색하는 시조이며, 풍경을 묘사하는 시조가 아니라 관계와 생명의 질서를 성찰하는 시조이다. 김영희는 시조의 형식 위에 현대적 존재론과 생태적 사유를 통해 김영희만의 목소리, ‘생태적 서정의 존재론적 확장’이라는 독자적인 성취를 이뤄가고 있다. 이번 시조집을 통해 인간과 자연, 기억과 시간, 고독과 관계를 하나의 생명 구조 안에서 통합적으로 이해하게 만들며, 현대시조가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 보인다. 김영희의 시조를 읽는 일은 곧 자연을 읽는 일이 아니라 생명의 질서를 읽는 일이며, 관계의 의미를 되새기는 일이고, 잊혀가는 존재들의 목소리에 다시 귀 기울이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모자를 뜨는 오후』는 오늘의 현대시조가 도달한 의미 있는 성취이자, 앞으로의 가능성을 예고하는 깊고도 단단한 시적 성과라 할 수 있다. -오종문 시인 「해설‘ 중에서 [시인의 말] 마른 꽃잎들이 낮아지는 모습을 본다. 모자를 뜨면서 한 올씩 이어보는 나를 지나간 얼굴들 저녁만큼 저문 꽃밭을 지나간다. 이 세상에 없는 길은 열 수가 없어 나를 깨운다. 2026 여름, 김영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