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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서문: 선한 영혼과 순수 언어 그리고 담금질__이석규 제1부 단시조 각시붓꽃 서산 마애삼존불상 노점 할머니 산사의 법고 독도에게 아버지ㆍ1 아버지ㆍ2 어머니 ․ 2 어머니ㆍ3 봄나물 손주 사랑에 취하다 빈 둥지 첫 발자국 풍란 쉼 친구야 널, 그리다 친구 무이숲카페 다문화가정 공부방에서 다소니 꽃 4월 소나무 가을이 되면 초가을 입새 꽃바구니 비 갠 오후 ․ 1 밤바다에 서면 아침 단상 어느 봄날 아, 수련 함박눈 오는 날 해돋이 겨울나무 산책길에서 풀꽃 하나 매미는 이삿짐 정리 지리산을 오르며 사라오름 유럽의 지붕 명옥헌 여행길에서 북촌의 한옥 허난설헌 생가 청와대 본관 무궁화 홀로코스트 추모공원 정림사지 5층 석탑 나전칠기 백자 첫 도자기를 빚으며 치유 첼로 협주곡을 들으며 발레리나 피정 사찰음식 붓, 다시 잡다 마음 챙김 병상일기 ․ 2 우산을 쓰고 광장 아, 여의도 숨은 영웅 눈 먼 사랑 업보 코로나 터널 핸드폰 단상 여의도 풍경 디지털 시대 재난 제2부 연시조 산불 소방대원 시리아 난민 또 하나의 기억 눈빛 백제금동관음보살입상 어머니ㆍ1 아버지ㆍ3 첫돌, 손녀 지우는 길 나의 오월 텃밭의 하루 봄이 오면 운곡습지 바닷가에서 벚꽃길을 걸으며 비 갠 오후 ․ 2 늦가을에 봄이 핀다 달성습지 담양 죽녹원 백운차실에서 청산도에서 둘레길 낙산사를 거닐며 베스트라혼 산정山頂 산수유 축제 제주의 여름 한식韓食 깊은 밤에 병상일기 ․ 1 여정 평설: 매화 정원을 거닐며__김흥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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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자 시인의 첫 시조집 『하나, 둘 일어서다』는 사람과 자연, 문화와 현실을 아우르는 맑고 단단한 시선의 기록이다. 시인은 부모와 자녀, 손주와 친구를 향한 사랑과 그리움을 담담한 언어로 풀어내고, 이름 없이 자기 자리를 지키는 이웃들의 삶을 따뜻하게 비춘다. 「아버지」와 「어머니」 연작, 「손주」, 「빈 둥지」, 「친구」에는 가족과 벗을 향한 깊은 정이 배어 있으며, 「노점 할머니」, 「다문화가정 공부방에서」, 「숨은 영웅」, 「산불 소방대원」에서는 타인을 위해 묵묵히 헌신하는 이들의 선한 마음이 드러난다.
자연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도 섬세하다. 꽃과 나무, 햇살과 바람, 눈과 바다를 노래한 작품들은 작고 여린 생명들이 제 몫의 시간을 견디며 피어나는 순간을 선명한 이미지로 되살린다. 특히 「소나무」와 「겨울나무」에는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본성을 잃지 않고 푸르름을 키워가는 생명의 의지가 담겨 있다. 「독도에게」, 「지리산을 오르며」, 「서산 마애삼존불상」, 「백제금동관음보살입상」 등은 우리 국토와 문화유산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을 보여준다. 이 시조집은 따뜻한 서정에만 머물지 않는다. 사회의 갈등과 디지털 문명의 그늘, 재난과 질병의 고통까지 외면하지 않으며, 이를 성찰과 성숙의 계기로 바꾸려 한다. 작고 여린 존재들이 끝내 다시 일어서는 순간을 정갈한 시조의 가락으로 담아낸 이 책은, 조용하지만 오래 남는 울림으로 독자에게 삶을 다시 바라보는 힘과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 평설 매화 정원을 거닐며 김흥열 (한국시조협회 고문) Ⅰ. 시작하며 먼저 매원梅苑 시인의 시조집 첫 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매원 시인과의 인연은 2018년 10월 송파여성문화원의 시조 교실에서 첫 만남으로 시작된다. 벌써 햇수로 8년째이다. 시조 입문 8년 만에 작품집을 내는 매원 시인의 감회는 남다를 것이다. 설레는 마음에 들떠있을 것이다. 내가 아는 김현자 시인은 결혼 후 남편을 따라 해외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것으로 알고 있다. 영어와 일본어 독일어를 구사할 수 있는 재원才媛이다. 당시에 교포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직도 상당 기간 유지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매원 시인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시조협회나 여타 유관 단체에서도 그의 사회적 능력을 잘 아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시인은 매사에 정확하고 겸손이 몸에 밴 시인이다. 한 마디로 이른 봄 매화꽃 같은 정결함이 풍기는 여류 시인으로서의 고결高潔한 품격을 유지하고 있는 시인이다. 매원 시인의 이러한 점을 볼 때면, 필자는 늘 윤두서(조선 후기 문인)의 작품 “옥에 흙이 묻었으니 오는 이 가는 이 모두 흙이라 하는구나”라는 시구詩句가 생각나곤 한다. 사실 요즘 세상은, 시중 말로 남보다 튀고 싶은 충동으로, 스스로 과대 포장하는 인격자가 많은 시대이긴 하다. 자기 PR을 하지 않으면 누가 알아주지 않는 시대이다. 이번에 상재되는 작품을 보면서 느낀 점은 매원 시인은 정이 많은 시인임을 재발견하게 되었다.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 친구에 대한 그리움, 손주에 대한 사랑, 등등 곳곳에서 시인의 정情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립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고백이다. 『하나, 둘 일어서다』라는 책 제목에서부터 그의 고운 마음이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매원 시인은 시조의 작품성도 뛰어나서 3년 전에 모상철 문학상을 받은 이력을 갖고 있다. 시인이 등단 이후 이번 작품집을 내기까지 상당한 세월 흐른 것 역시, 시인의 꼼꼼하고 빈틈없는 성격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등단하고 나면 선배 시인들의 작품에 큰 매력을 느껴 자신도 그처럼 잘 쓰려는 조급함이 생기거나, 또는 자기만의 독창적인 시 세계를 구축하려는 욕구가 솟구쳐 어떤 압박감이나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이런 현상을 미국의 문학 비평가 해럴드 블룸은 ‘영향의 불안; Anxiety of Influence’라고 말한 바 있다. 이러한 심리적 작용 때문에 매원 시인 역시 완벽에 가까운 시조를 창작하여 세상에 선보이려는 욕구로 작품집을 서둘러 내지 않았으리라는 추측을 해본다. 매원 시인은 시조의 정체성을 중시하는 분이다. 막상 창작을 시도해 보면 맘대로 글이 나오지 않는다. 내적 외적 형식을 맞추기가 녹록하지 않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도 매원 시인은 시조에서 요구하는 여러 조건을 무난하게 소화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시조 창작에 있어 가장 어려운 부분이 구와 장의 의미 단락을 짓는 일인데 이러한 정체성을 벗어난 작품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100여 편의 작품이 비유와 상징이 적절하고 문장 구성이 거의 완벽하다 할 만큼 잘 짜여 있다는 점을 발견하였다. 이제 매원 시인의 시 세계로 들어가 오색 꽃향기 가득한 정원을 거닐며 그 맛을 음미해 보고자 한다. Ⅱ. 작품 감상과 시평 석공의 손재간에 돌부처가 따라 나와 백제의 고운 숨결 금시라도 전해줄 듯 온화한 미소를 띠고 대중 앞에 나와 섰다. - 「서산 마애삼존불상/백제의 미소」 이 작품은 ‘삼존불상’ 바로 앞에 서 있으면 돌부처님의 부드러운 음성이 귀에 들릴 것만 같다. 돌부처는 석공이 만들어 낸 예술품이다. 그러나 작가는 지금 석공의 손재간을 따라 나온 부처로 상상하면서 초장을 끌어낸다. 석공의 손재주가 얼마나 섬세했으면 시대를 거슬러 백제로 돌아간 듯할까? 중장의 ‘백제의 숨결’이란 낯선 표현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다. 화자가 말하는 ‘숨결’은 백제시대의 문화적 융성과 백성들이 느끼는 평화스러운 삶을 모두 아우르는 말로 이해된다. ‘서산 마애 삼존불상’은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국보로서 일명 “백제의 미소”라 불리기도 한다. 백제를 살아가던 백성들의 순박하고 평화로운 모습을 닮았다 하여 ‘미소’라는 별칭을 붙이지 않았을까. 돌부처는 대중 앞에서 서서 지금 곧 입을 열어 말할 듯하다 하니 얼마나 생동감 있게 표현했는지 실감이 간다. 대중은 마애불상을 구경하러 온 관객일 것이다. 자리에 앉아 있던 돌부처가 벌떡 일어서서 대중 앞에 서 있는 모습이 눈앞에 선하게 그려진다. 이 작품은 시조의 맥을 그대로 이어받은 순혈주의를 보는 아름다움이 있다. 운율과 문장 짜임이 부드럽다. 미학적으로 말하자면 우아미優雅美 매우 돋보이는 작품이다. 구句와 장章의 의미 단락이 분명하고 작가의 감정이 절제된 작품이다.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느낌이다. 땡볕 속 땀방울로 다듬어진 하얀 쪽파 자그마한 할머니가 덕담까지 얹어주면 따스한 인정 한 줌이 속가슴에 전해온다. - 「노점 할머니」 초장을 보면 정말 예술적인 언어의 조합이다. ‘땀방울로 다듬어진 쪽파’라는 이 표현은 정말 절창이다. 할머니의 거친 손으로 다듬어진 쪽파라고 했다면 완전한 설명문이 될 테지만, ‘땀방울로’라는 시어 하나가 이 작품을 빛내고 있다. 이 말 한마디에 할머니의 노동과 거친 손과 가난한 삶과 인생 전체가 담겨 있는 표현으로 만드는 글재주를 발휘하였다. 중장에서 ‘자그마한 할머니’라는 표현은 무엇일까? 물론 할머니의 체구가 작다는 의가 되겠지만 작가가 말하는 의미는 할머니의 사회적 크기를 말하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어렵고 사회적 지위도 별로 없고 그저 삶에 찌들어 작아진 모습을 말하고 싶은 것뿐이다. 그런 할머니가 덕담까지 덤으로 얹어주면 고객으로서는 더없이 만족스럽다. 종장은 인간애이다. 진심 어린 할머니의 덕담에 가슴은 만평 행복을 채우게 된다. 작가의 박애주의博愛主義(Philanthropism)의 사상을 발견하게 된다. 할머니의 현실적 어려움을 나누어서 갖고 싶은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만든다. 그리스도적 사랑이며 부처의 자비慈悲이고 공자의 인仁이다. 작가의 시어 선택 하나가 이처럼 우리를 따스하게 만들어 주며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된다. 봉숭아 곱게 찧어 묶어주던 그 손길이 고운 별빛 되어 그리움 젖는 날에 온후한 당신 미소가 보름달로 오셨네. - 「아버지ㆍ2」 전문 심금을 울리는 작품이다. 부모의 사랑은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다는 말은 예나 지금이나 진리이다. 우리는 종종 나이를 먹어가면서 철이 좀 든다고 말한다. 이 말은 철이 들 때쯤이면 이미 부모는 곁에 계시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효도하고 싶어도 효도할 부모는 계시지 않음을 알고 때늦은 후회를 하곤 한다. 딸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은 참으로 애틋하다. 화자의 말처럼 봉숭아 물들여주던 따스한 손길은 평생을 두고 잊히지 않는 추억으로 자리 잡는다. 별빛 같은 그리움에 젖을 때 보름달처럼 환히 웃으며 오는 아버지의 그윽한 미소가 마냥 그리워지는 날이다. 요정의 몸짓인가 축복 받은 꽃봉오리 맑은 눈망울로 내 마음 사로잡아 어느새 온몸을 데운다, 네가 틔운 내리사랑. - 「사랑에 취하다」 전문 꽃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을 꼽으라면 누구나 서슴지 않고 아기라고 말할 것이다. 아기의 향기는 그 어느 꽃의 향기보다도 곱고 아름답다. 작가는 아마 손자나 손녀를 보고 이 작품을 지었을 것이다. 초장부터 아기의 아름다움을 다 표현하려는 듯 온갖 형용사를 동원하였다. 그래도 머릿속에서 그리는 그림이 뜻대로 그려지지 않아 답답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한 아름다움을 지닌 아기이기 때문이다. 초장에서 못다 한 표현을 중장에서 보충하려 하지만 그래도 부족하다. 그래서 화자는 종장까지 못다 한 말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는 시조를 지을 때 초장에서는 시의詩意를 끌어내고 중장에서 이를 보완하거나 확장한다고 한다. 이 원칙의 대표적인 사례를 매원 시인의 작품에서 발견한다. 종장의 ‘온몸을 데운다.’ 함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삶의 활력을 되찾는다는 표현이다. 말하자면 ‘내리사랑’ 때문에 삶의 의미가 새로워졌다는 은유이다. 이 작품을 읽는 독자는 누구나 공감을 하게 되므로 많은 기쁨을 함께 누릴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천사가 찾아왔다 봄바람을 타고 온 듯 여물어 간 밤톨처럼 몸짓 벌써 야무지다 집안에 기쁨이 넘쳐 웃음꽃이 화사하다. - 「손주」 전문 앞 작품에서도 보았듯이 시인은 손주 사랑꾼이다. 「손주」 는 누구나 좋아하는 정의 표시이다. 한 가정에 아기가 태어나는 일은 하느님의 선물이다. 왜냐하면 이 선물만큼은 우리의 욕구대로 채워지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기는 하늘이 주시는 가장 큰 선물이며 축복이다. 아기는 가정에 행복을 전달해 주는 천사이다. 작품을 읽으면 아기가 커가고 있는 동영상을 보는 것 같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날마다 새롭게 선보이는 재롱을 보면 천국이 따로 없다. 온 집안이 행복으로 가득하다. 아기는 천사이다. 그것도 봄바람에 실려 온 천사이다. 할머니의 자랑이 벌써 행간마다 가득하다. 우는 소리는 천상의 음악 같고 똘망똘망한 눈동자는 천상의 별빛 같고 어설픈 몸짓마저도 할머니의 눈에서는 야무진 밤톨이 된다. 그러니 집안에는 언제나 웃음꽃이 만발하고 꽃향기가 가득한 것이다. 앞에 예시한 「사랑에 취하다」 와 마찬가지로 할머니의 사랑이 철철 흘러넘친다. 매몰찬 혹한 속에 온몸을 맡기고도 의젓한 몸짓으로 하늘을 우러르며 나이테 덧입혀가며 푸르름을 키운다. - 「소나무」 전문 이 작품은 우리 민족의 끈질긴 얼을 보는 듯하다. 현실이 아무리 매몰차고 힘든 고비가 파도처럼 겹겹이 몰려온다 해도 반드시 극복해 내겠다는 의지가 묻어 있다. 살을 에는 혹한에도 의젓한 소나무의 자태는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을 보여준다. 소나무는 하늘을 휘어잡기 위해 치솟고 있지만 서두르는 법이 없다. 인내와 끈기이다. 뒤엉킨 잡목은 4계절을 푸를 수 없지만, 소나무는 푸르다. 우리의 기상이다. 외압에 굴복하지 않는 지절志節을 보여준다. 요즘 사회의 한 단면을 보면 출세를 위해, 권력을 위해, 돈을 모으기 위해 온갖 비열한 수단을 동원하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모리배들이 많다고 하지만 화자는 지금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의젓하게 제 자리를 지킨다. 변절을 밥 먹듯 하는 무리도 상당히 있다. 그러나 소나무는 푸르름만 키워낸다. 종장은 그 비유가 뛰어나다. ‘세월이 ‘흘러간다.’라거나 ‘해가 간다.’라는 등의 일상적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나이테를 덧입힌다.’라는 표현으로 시적 묘미를 극대화한다. 언어예술의 미학적 가치를 높이는 수사법修辭法이다. ‘푸르름을 키운다.’라는 표현은 단순히 푸른빛이 더해간다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다. 푸르름은 청순淸純, 지절志節, 정조貞操, 평화平和 등 다양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색깔이다. 계절에도, 세월에도, 변치 않는 굳은 의지일 것이다. 마치 소나무가 변절자에게 외치는 절규를 듣는 것 같다. 숨통을 조여 온다, 꽉 막힌 도시의 벽 화합이 떠난 광장 텅 비어 스산한데 계절은 또다시 와서 시간만 밀고 간다. - 「아, 여의도」 전문 시 작품은 앙가주망(engagement: 參與詩)이다. ‘숨통’, ‘도시의 벽’, ‘화합이 떠난 광장’과 같은 시어들이 말해주고 있다. 초장의 ‘벽’이라는 이미지는 소통이 안 되는 대상의 상징적 이미지이다. 여의도는 소통, 대화 같은 상징적 이미지다. 정치의 본산이기도 하다. 화자는 실마리를 찾지 못해 대화가 단절된 상태로 자꾸 부딪쳐 평화가 깨질까 염려하고 있다. 암시적 은유가 짙은 작품이다. 초장에서 “숨통을 조여 온다, 도시의 벽”과 같은 표현들은 답답한 화자의 심정이다. 자기의 권리를 조금도 양보하지 않고 대립하는 양상을 보면 정말 숨 막힐 지경이다. 민초의 아픔은 안중에도 없이 오직 기득권 유지에만 몰두하거나 함정의 덫을 놓고 상대를 죽이는 모습은 조선 시대 사화士禍의 망령이 되살아 난 듯하다. 광장의 이미지는 대화 화합이다. 대화가 없는 광장, 화합할 줄 모르는 광장은 아무리 북적거려도 텅 빈 공간일 뿐이다. 종장의 의미는 무엇일까? 화자가 말하는 ‘계절’은 정치적 변화이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선다는 은유적 표현이다. 여야는 또 바뀌어도 아무런 소득도 없이 시간만 흘러간다는 화자의 독백이다. 시인들은 이런 참여시 쓰기를 꺼리고 서정시에만 몰두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필자는 생각이 다르다. 시인의 품격이 높은 만큼 책임 또한 막중하다. 권리를 주장하기 이전에 책임 또는 사명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불의를 보고 눈을 돌리는 행위는 비열한 짓이다. 가끔은 이처럼 경종을 울리는 창작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간결하면서도 울림이 있어 숭고미崇高美를 느끼게 한다. 꽃대를 추켜들고 유월을 노래하며 연분홍 치맛자락 살짝 여며 잡은 모습 고왔던 어머니 얼굴 수줍은 듯 얼비친다. - 「풍란」 전문 이 작품은 서정성抒情性이 아주 짙다. 초장을 보면 ‘꽃대를 추켜들고 유월을 노래한다.’라는 표현은 꽃대를 의인화하려고. ‘추켜든다’와 ‘노래한다’와 같은 시어를 선택했다. 유월을 노래한다는 말은 6월에 피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중장은 꽃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것이지만 역시 ‘살짝 여며 잡다.’라는 의인법으로 시조의 맛을 한껏 내고 있다. 종장은 그런 꽃을 보면서 단정하고 여인다웠던 어머니를 떠올린다. 한국의 여인상은 단정하고, 아름답고, 연약하고, 수줍고, 지혜롭고, 자애롭지만, 세상 누구보다도 강인하다. 풍란 역시 척박한 토양에서 바람에 시달리며 자라지만 마침내 고난을 극복하고 피워낸 꽃은 아주 작아도 곱고 향기롭다. 한국의 어머니상이다. 어머니가 얼마나 그리웠으면 작은 하나에서 어머니를 찾아내고 자애로우신 어머니의 얼굴이 어른거릴까? 시제時制의 선택도 아주 적절하다. 종장 첫수에 ‘고왔던’이라는 과거형 시제를 도입하여 어머니가 지금은 안 계신다는 의미를 슬쩍 드러냈으나, 끝에서는 ‘얼비친다’라는 현재형 시제를 도입함으로써 시조 생명의 영속성을 유지하고 있다. 작품이 간결하지만, 함축적이고 우아미가 돋보인다. 누군가의 손길 따라 낯선 땅에 뿌리 내려 푸른 혼 품어 안고 갓 맑은 몸짓으로 장하다, 대한의 얼아 끈질기게 피어나라. - 「무궁화/- 취리히에서」 전문 외국 여행을 하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있듯이 작가 역시 외국에서 보는 무궁화는 옆집 사는 친구를 만난 것만큼이나 반갑고 소중했을 것이다. 그래서 더 애착이 갔을 것이다. 무궁화 씨가 그곳까지 날아갔을 리는 만무하고 누군가 조국이 그리워 가져다 심었을 것이다. 낯선 땅에서 뿌리 내린 무궁화는 파독 광부나 간호사를 연상케 한다. 작가는 독일로 나간 우리 동포라는 의미의 보조관념으로 무궁화를 선택했다고 본다. 그 이유는 중장의 ‘푸른 혼’이라든지 종장의 ‘대한의 얼’이라는 시어에서 찾을 수 있다. 물론 무궁화도 ‘장하다’ 할만하지만, 그보다는 우리 민족의 부지런함, 끈기, 인내 등을 대표하는 말이 ‘얼’이다. 종장 끝 구절의 ‘끈질기게 피어나라.’라는 의미는 ‘대한민국이여 끊임없이 발전하고 성장하라’는 외침으로 들린다. 짧은 단시조에 중의적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독자에게 이해의 폭을 넓혀주고 있는 우수작이다. 희생자 역사 속에 아득했던 생의 흔적 벽면에 가득 담아 추모하는 마음마다 녹여 낸 평화와 자유 소리 없는 메아리다. - 「홀로코스트 추모공원/-베를린」 전문 ‘홀로코스트(Holocaust)’는 가슴 아픈 추억이 서려 있는 곳이다. 1941~1945년 사이에 나치 독일이 저지른 유대인 제노사이드(genocide)를 추모하는 공원이 홀로코스트 공원이다. 제노사이드라는 말은 렘킨(Lem kin)이 처음으로 사용한 ‘대학살’을 의미하는 용어이다. 중장 ‘벽면에 가득 담아 추모하는 마음’들이 녹여 만든 메아리라고 작가는 절규하듯 외친다. 추모객들이 마음으로 비는 것은 오직 하나 세상의 자유와 평화이다. 작가는 그들의 외침을 메아리로 듣고 있다. 메아리는 반향反響이다. 산울림이 아니라 과거의 아픔이 현실과 부딪쳐 생기는 반응이다. 이 반응이 바로 인류의 공존을 가져오는 자유와 평화다. 요즘 벌어지고 있는 테러, 전쟁과 같은 폭력은 인간이 망각의 동물이며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작가가 이 글을 통하여 독자에게 외치는 요지는 바로 종장의 행간에 숨겨져 있는 의미들이라 하겠다. 마음을 두드리며 찾아온 설렘들을 붓질로 다듬어서 화폭에 풀어낼 때 살오른 오색 캔버스 실핏줄이 돋아난다. - 「붓, 다시 잡다」 전문 작품의 제목부터 강한 의지가 나타난다. 꺾은 붓을 다시 잡는 행위는 대단한 각오가 있어야 하는 일이다. 초장의 설렘을 중장에서 화폭에 풀어낸다고 했다, 중국 북송 시대의 시인 소식의 말이 떠오른다. 즉, 시중유화詩中有畵라는 말이다. 이 글을 읽으면 캔버스가 보이고 돋아나는 실핏줄이 보인다. ‘실핏줄이 돋아난다.’라는 의미는 죽어가거나 죽은 생명체가 소생함을 의미한다. 이 얼마나 희망을 주는 표현인가? 의욕이 솟구치고, 용기가 생기고 삶에 대한 희망이 보이는 표현이다. 작가가 존재하는 이유는 독자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작가는 독자에게 언제나 희망과 용기를 주어야 한다. 어찌 보면 시인의 사명 같은 것이다. 잔가지 눈보라에 오들오들 떨면서도 앙증맞은 꽃송아리 피우려는 당찬 꿈에 칼바람 호된 담금질에 기세 더욱 굽힘 없다. - 「겨울나무」 전문 강한 의지력이 돋보인다. 눈보라 치는 날이면 나뭇가지 때리는 바람 소리가 매섭다. 화자는 이 소리를 바람 소리로 듣지 않는다. 나뭇가지가 추위에 떨며 우는 소리로 연상한다. 매서운 추위 속에서도 참고 버티는 목적은 꽃을 피워낼 당찬 꿈이라고 강조한다. 화자는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굴하거나 포기하지 말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꿈이 있다는 것은 삶의 목적이 된다. 살아가는 활력이 된다. 마침내 종장에서 극치를 이룬다. 동장군이 아무리 쇠를 담금질하듯 매섭게 몰아붙여도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외침이다. 총칼 앞에 맞서있는 민족의 3·1정신이다. 자유와 정의를 갈구하는 4·19 정신이다. 매원 시인의 야무진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난 작품이다. 필자는 시조를 접할 때마다 선조들의 지혜에 늘 감탄하곤 한다. 그 이유는 작품에서 보여주듯이 깊은 사유의 세계가 함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철학이 있고 선비의 지절이 있고 인간애가 들어 있고, 등등 짧은 3장 안에 온 우주를 담아내고도 남는 문학이 시조이기 때문이다. 문명은 꽃이 펴도 계절은 길을 잃어 도미노 현상처럼 무너지는 땅을 보며 하늘도 노여웠는지 우렛소리 쏟아낸다. 「업보」 전문 업보業報라는 말은 생각이나 행동, 말로 지어낸 결과물이다. 불교에서 쓰는 말로 윤회사상과 깊은 관련이 있다. 첨단 산업의 발전으로 문명의 꽃은 피지만 계절은 길을 잃었다는 초장은 많은 시사성을 제시한다. 문명이 발전할수록 인간성은 파괴되고 있는 것일까? 많은 학자가 걱정하는 사회상이다. 화자가 말하는 ‘계절은 길을 잃는다.’라는 의미를 짚어보면 지구가 망가지고 있다는 현실을 꼬집고 있다. 환경파괴로 인한 지구의 본 모습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괴물이 되어 우리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 치료가 어려운 각종 질병. 기후변화로 인한 천재지변, 전쟁으로 인한 무차별인 살인, 등등 이는 모두 인간의 탐욕이 빚어낸 업보이다. 이제부터라도 지구를 보존하려는 인류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 이 지구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만의 것이 아니다.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줄 유산이기 때문이다. 화자는 마침내 종장에 가서 조물주의 진노를 경고하고 있다. 우렛소리는 단순한 자연의 이치가 아니라 조물주가 진노하는 목소리임을 깨달아야 한다. 의인 ‘노아의 방주’를 보며 우리는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측하면서도 가슴속에 불타는 탐욕을 멈추지 않는다면 제2의 방주 시대가 올지도 모르겠다. 옥토에 똬리 틀고 멋대로 자란 잡풀 짙은 안개 휘감고서 햇살을 가로막네, 철없는 들 까마귀 떼 하루 종일 울어대고. - 「여의도 풍경」 전문 이 작품도 하나의 앙가주망이다. 옥토에는 마땅히 좋은 곡식이 자라야 할 것이지만 잡풀에 점령된 땅이 된다. 도덕성과 알찬 지식을 가진 의인들은 어디 가고 시중 모리배가 달려들어 제 배만 채우고 있는가? 짙은 안개는 사물의 형체를 잘 알지 못하게 하는 훼방꾼이다. 햇살은 생명의 원천이 된다. 백성의 살림살이를 살펴보는 세종 임금이 필요한 때이다. 안개는 눈을 가려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게 만든다. 철없는 들 까마귀가 온종일 울어댄다는 표현도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사리사욕에 익숙한 무리가 귀담아들어야 할 대목이다. 까마귀는 영리한 동물이지만 탐욕이 많은 짐승이다. 고시조 전하는 정몽주의 모친이 쓴 시조 한 수가 떠오른다. 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 마라 성난 까마귀 흰빛을 새올세라 청강에 일껏 씻은 몸을 더럽힐까 하노라 -정몽주 모친- 옛날이나 지금이나 탐관오리가 날뛰는 세상은 늘 불안하다. 틈새에 자리 잡아 눈길은 못 받아도 두 귀 쫑긋 세워 행여 발길 멈춰줄까 쉼 없이 자맥질하여 키 돋우며 꽃 피운다. - 「풀꽃 하나」 전문 이 작품은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말이다. 길가나 풀숲에 있는 듯 없는 듯 자리를 잡고 사는 풀꽃은 단 한 번도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 보지 못하고 사는 연약한 풀, 약자일 뿐이다. 우리 사회에도 이 풀꽃처럼 존재감 없이 사는 약자들이 너무 많다. 작가는 이들을 보며 마음이 상당히 아팠든 모양이다. 지나가는 사람들마저 눈길을 주지 않는다. 철저히 외면당한 고독이다. 그렇지만 이 풀꽃은 이 지구상에 태어나 자기가 해야 할 사명을 알고 있기에 꽃을 피워낸다. 중장에 ‘두 귀를 쫑긋 세운다.’라는 표현은 혹시나 자기의 존재를 알아줄지 모른다는 한 가닥 희망의 소리를 듣기 위해서이다. 자신의 존재를 알아주는 발길 하나만 있어도 그 풀꽃은 큰 행복을 얻은 것으로 생각한다. 종장에 ‘쉼 없이 자맥질한다.’에는 무슨 메시지를 담은 것일까? 자맥질은 오리 같은 물새들이 물고기를 잡기 위해 머리를 물에 담그는 행위이다. 그 순간만은 숨을 참아야 한다. 숨을 참는다는 말은 고통이며 위험이다. 풀꽃 역시 흙 속에서 양분을 찾아내기 위해 자맥질한다는 역설적 발상으로 그 의미를 넓히고 있다. 시조는 이처럼 때로는 엉뚱한 발상이 작품의 예술성을 높인다. 이러한 문장의 짜임은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라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의 결과물이다. 포연이 덮인 산하 가득한 비극 속에 불타던 전우 눈빛 너무나 생생한데 살이 된 그 날의 고통에 절고 있는 유월이여 불도장 찍어 만든 역사의 통증마저 이념의 벽에 갇혀 암호를 찾다 말고 무궁화 피는 계절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 「눈빛/-다큐멘터리를 보고」 이 작품도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강하다. 전쟁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우리는 모두 당사자들이기 때문이다. 첫수는 6월을 맞이하여 그날의 비극이 떠오르는 글이다. 전우는 피로 맺어진 우정이다. 전장에서는 죽음과 생生이라는 두 글자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숨 막히는 현장이다. 전쟁이 끝나고 그 전우의 불타던 눈빛은 영원히 잊지 못할, 뇌리에 박힌 내 몸의 일부이다. 종장을 보면 ‘살이 된 고통’이라는 비유로 우리의 기억을 더욱 생생하게 살려낸다. 6·25전쟁에서 살아남은 전우는 당시의 죽음 같은 고통은 이미 살이 되어 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알고 있다. 영원히 잊을 수 없다는 표현이다. 둘째 수는 더욱 강렬한 인상을 던진다. 그렇다. 6.25는 불도장을 찍어 만든 우리의 뼈아픈 역사이다. 그 아픔이 가시기도 전에 이념이란 벽에 갇혀 아직도 출구를 찾지 못하고 남남으로 철천지원수처럼 살아가는 우리 민족의 현실은 참으로 암담하다. “민족 통일”이라는 대전제를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했지만, 그 비밀번호는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화자는 피는 무궁화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울고 있을지도 모른다. 종장에서 작가가 ‘계절’이란 시어를 굳이 사용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서 말하는 계절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다. 수없이 정권이 바뀌어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의미로 이 시어를 사용했을 것이다. 무궁화는 해마다 피고 있지만, 어느 정권도 민족의 과업인 ‘통일’은 이루지 못했다는 안타까운 심정을 토하는 것이다. 멈춘 채 울며 가는 세월호 멈춘 시계 또다시 찾아와서 심장이 저리는데 천지간 꽃비를 날리는 봄날조차 야속하다 봉오리 진 자리마다 고여 있는 그리움에 노랑나비 찾아와서 봄바람을 타고 앉아 덧쌓인 세월의 피멍에 봄 햇살을 덧바른다. - 「또 하나의 기억」 전문 ‘세월호’ 사건은 엄청난 비극이다. 그 시계는 멈춘 지 오래지만, 우리의 마음속에는 아직도 가고 있는 시계이다. 그래서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가슴에 저려온다. 야속한 세월이기에 꽃비를 날리는 봄날조차 아파할 수밖에 없다. 중장의 봉오리는 희생된 아이들이다. 그 아이들이 보고파서 노랑나비가 봄바람을 가져왔다. ‘노랑’ 색은 당시 아이들을 추모하던 노란 리본을 상징하고 찾아온 나비는 부모 친구들의 상징이다. 피로 멍든 그 세월에 봄 햇살을 덧바른다. ‘햇살을 덧바른다.’라는 뜻은 봄이 무르익었음을 의미한다. 봄은 희망이다. 그래서 멍든 상처에 봄볕을 바르면 상처는 치유된다. 이제는 모두 잊고 새 출발 하라는 작가의 메시지로 읽힌다. 문장의 구성이 뛰어나서 그 의미하는 바가 행간에 들어 있고 비유와 상징을 잘 처리한 작품이다. 구와 장의 의미가 분명하고 장의 독립성과 완결성, 연결성도 훌륭하다. 운율도 아주 좋은 시조의 본보기라 할만하다. 일상을 잠시 접어 숲길에 맡겨 두고 마음을 다독이며 사념에 잠긴 오후 감잎에 내린 가을이 까치밥을 짓고 있네 산사의 범종 소리 골골마다 퍼져가면 풍경에 짙게 물든 저녁놀이 우러날 듯 계절은 수묵화 한 폭 절집에다 펼쳐낸다. - 「낙산사를 거닐며」 전문 낙산사는 많은 전설이 얽힌, 오래된 사찰이다.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이 사찰은 천오백 년의 역사를 자랑했지만 6·25 때 전소되어 1953년 다시 지었다. 2005년 산불로 다시 전소되어 그 후에 다시 복원하였다. 이때 국가 보물인 동종이 녹아 소실되는 불행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낙산’이라는 말은 관세음보살이 살고 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이 작품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역시 언어의 새로운 조합을 통하여 신선한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글재주를 보였기 때문이다. 첫수 종장의 표현이 대표적이다. ‘가을 맞아 감잎이 누렇다’라는 말을 ‘감잎에 내린 가을이 까치밥을 짓는다.’라는 표현으로 대체하여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것은 독자들이 감탄을 자아내게 만드는 미다스의 손과 같다. 둘째 수 중장도 기막힌 표현이다. ‘저녁놀이 풍경소리에 우러난다.’라는 역발상으로 시적인 맛을 더해 준다. 완전한 공감각적 이미지이다. 종장도 의인법을 통하여 실감하도록 만든다. 계절이라는 관념어가 수채화를 그리는 화가가 되는 순간이다. 이만하면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우수 작이다. 글재주가 부럽다. 솥단지 숨어 살다 일본으로 끌려가서 혈육을 코앞에 두고 한 세기가 흘러갔네 그리움 피멍이 되었나 살갗마저 시퍼렇다 - 「백제금동관음보살입상/-백제의 미소」 첫수 이 유물은 백제시대의 걸작품이다. 강탈이 무서워 솥단지에 감춰두기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발각되는 불행이 발생하였다. 그 후 일본으로 반출되는 과정을 일본에 강제로 끌려간 징병처럼 표현함으로써 그 이미지를 단단히 만들고 있다. 중장에 ‘혈육을 코앞에 둔다.’라는 말이 너무 멋지다. 일본으로 끌려간 “백제금동관음보살입상”의 처지에서 보면 지리적으로는 지척이지만 떨어져 산 세월이 반세기이다. 종장은 더욱 멋있다. ‘녹슬었다.’라는 표현을 ‘그리움이 피멍이 들었다고’ 표현하였다. 그래서 살갗이 시퍼렇다고 말한다. 아마 시조는 이런 아름다움이나 소름 돋는 표현으로 만들었을 때의 짜릿한 쾌감을 얻기 위해 창작에 더욱 심혈을 쏟을지도 모른다. Ⅲ. 평설을 마치며 많은 이들이 언어예술의 꽃은 문학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다양한 문학 중에서 무엇이 꽃 중의 꽃이 될까? 필자는 당연히 시조라고 말하고 싶다. 작가의 숨결을 먹고 피어난 꽃이 시조라는 창작물이기 때문이다. 감명을 주는 작품 하나는 잔잔한 독자의 가슴에 던진 돌멩이다. 지금까지 매원梅苑 시인의 작품집 『하나, 둘 일어서다』에 수록된 100여 편의 작품을 열람하면서 한마디로 느낀 감정은 ‘참 잘 쓴다.’라는 점이다. 누구나 멋진 불후의 명작을 꿈꾸고 있지만 그런 걸작은 평생 한두 수 나오기가 어렵다. 그런데도 매원 시인은 이러한 걸작들이 수십 수에 달한다. 그냥 적당히 넘어간 작품이 거의 없다. 여류 시인들은 일반적으로 감상적이라, 서정성 짙은 작품을 쓰려고 노력하지만, 매원 선생은 작품이 다양하면서도, 시어 하나 선택에도 허투루 하는 법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평하고 싶은 작품은 많지만, 몇 수의 수준만 보아도 시인의 창작 수준은 쉽게 파악되므로 더 이상 평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무엇보다도 매원 시인은 정체성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는 시인이다. 시조의 짜임새에 어긋남이나 흐트러짐을 발견하지 못하였지만, 특히 언어의 새로운 조합을 통하여 ‘낯설게 하기’를 시도한 점이 매우 돋보인다. 앞으로도 더욱 정진하셔서 시조계의 큰 별이 되시기를 소망한다. 다시 한번 시조집 『하나, 둘 일어서다』 상재를 축하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