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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서문: 작품집 『여지餘地』에 부쳐__김흥열 1부 자연의 여지餘地 사유의 비상飛上 삶의 매무새 하룻봄 풍경 무지개 꿈 소금의 때垢 복숭아의 유혹 억새[芒]의 붉은 가을 하루살이의 저물녘 물빛 젖은 꿈 매미의 침묵 하얀 무게 눈물샘 대보름달의 여정 큰제비고깔, 치욕으로 큰다 밤의 회한 1. 봄밤의 회한 2. 여름밤의 회한 3. 가을밤의 회한 4. 겨울밤의 회한 2부 생활의 여지餘地 잎으로 살아가리 낙엽이 선 자리 본래로 돌아가는 길 봄물 봄날의 하루 뿌리의 역설 생의 제자리에서 지우개 엄마 말복末伏에 가을밤의 위로 가을에 기대어 서서 1. 민들레 2. 엄나무 3. 허수아비 4. 가을 들판 헛물덩이 호박琥珀구슬 하룻밤 눈처럼 검은 도자기 3부 사랑의 여지餘地 님 발길만 돌담 가족 임의 별 나는 새의 행복 빛바랜 꽈리의 추억 원圓, 사랑의 줄 노을길을 걷는다 어머니의 그날들 1. 그 겨울에 장독대 2. 엄마의 베틀 3. 도라지무침 4. 엄마의 눈길 사랑의 에너지 보존 법칙 솔개[鳶]의 하루 그 사람 황소, 멍에를 벗다 해독 천사의 검은 얼굴 거스러미 4부 군상의 여지餘地 여지餘地 여백의 빛깔 긍정하라 말한다 미역 알고리즘의 그림자 먼저 가는 삶 질통의 현장 금붕어의 꿈 교차 직선의 미학 시인과의 대화 1. 권력에게 2. 자본주의에게 3. 민주주의에게 4. 양심에게 시간 열차를 타고 팔레스타인의 아이들 백육십 개 별 신세계의 판사 나사못 박힌 자리에서 5부 인생의 여지餘地 파도의 달 앓이 주름살 다시 소풍 가는 날 닳은 신발 천년의 춤사위 바람개비 인생 안개 속 넋두리 한 조각 한뉘 헛걸음 뜰 앞의 잣나무 거돈사지 느티나무 아래에서 시간이란 이름의 희망 빗속 주포리미륵불을 보다 생의 물가에서 평설: 삶의 여지餘地 속에서 건져 올린 감성의 미학美學__김성수 시인 |
性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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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철 시인의 시조집 『여지餘地』는 빠르게 흘러가는 시대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살아가는 ‘마음의 자리’를 되돌아보게 하는 작품집이다. 여기서 ‘여지’는 단순히 남겨진 공간이 아니다. 한 걸음 물러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틈이며, 타인을 받아들이는 포용의 자리이고, 절망 속에서도 다시 희망을 품게 하는 여백이다.
유성철의 시조는 삶과 밀착되어 있다. 자연을 바라보는 눈, 일상의 작은 장면을 포착하는 감각, 가족과 사랑에 대한 기억, 사회 현실을 향한 문제의식, 그리고 생의 끝자락까지 바라보는 성찰이 서로 맞물리며 한 사람의 삶을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시인은 거창한 관념보다 구체적인 삶의 순간에서 시적 의미를 길어 올린다. 그래서 그의 시에는 생활의 온기가 있고, 직접 보고 걷고 부딪치며 얻은 현장성이 살아 있다. 이번 시집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비움’과 ‘포용’의 태도다. 「삶의 매무새」에서 시인은 욕망을 덜어내고 마음을 다시 여미는 삶을 말하며, 「잎으로 살아가리」에서는 화려한 꽃보다 오래 푸른 잎으로 살아가며 다른 이에게 그늘을 내어주는 삶을 꿈꾼다. 이러한 태도는 개인적 수양에 머물지 않는다. 타인과 관계 맺는 방식,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 인생을 받아들이는 자세로 자연스럽게 확장된다. 표제작 「여지餘地」는 이러한 시인의 시선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시인은 대립과 갈등이 가득한 현실 속에서도 완전히 닫히지 않은 공간을 찾는다. 그것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소통할 수 있는 자리이며, 삶이 다시 움직일 수 있도록 남겨 둔 가능성의 공간이다. ‘여지’는 결국 우리 삶을 지탱하는 최소한의 숨구멍이자,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하는 힘으로 읽힌다. 유성철의 시선은 개인의 내면에만 머물지 않는다. 「알고리즘의 그림자」에서는 인공지능과 알고리즘이 인간의 선택과 판단을 대신하게 될지도 모르는 미래를 우려하고, 사회적 갈등과 인간성의 위기를 바라보는 작품에서는 동시대 현실에 대한 긴장을 놓치지 않는다. 전통 시조의 형식을 바탕에 두면서도 오늘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점은 이 시집의 중요한 특징이다. 그의 시조는 문장이 간결하면서도 함축적이다. 길게 설명하기보다 한 장면, 한 이미지, 한 문장 안에 생각을 눌러 담는다. 익숙한 자연과 사물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일상어 속에서 낯선 의미를 길어 올린다. 전통적인 시조의 리듬과 구조를 지키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놓치지 않으려는 시인의 의지가 작품 곳곳에서 드러난다. 『여지餘地』는 결국 삶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시집이다. 각박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그 안에서 사람다움을 지킬 수 있는 틈을 찾고, 욕망과 상처를 내려놓으며, 타인을 품을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을 마련하려 한다. 삶이 너무 빽빽해 숨 쉴 틈조차 없다고 느껴질 때, 이 시집은 우리 안에도 아직 비어 있는 자리가 남아 있음을 조용히 일깨운다. 그 여백은 비어 있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무엇이든 다시 채울 수 있고, 누구든 받아들일 수 있으며, 새로운 희망이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성철 시인의 『여지餘地』는 바로 그 작은 공간의 가치를 시조의 언어로 오래 들여다본 작품집이다. ▪평설 삶의 여지餘地 속에서 건져 올린 감성의 미학美學 ― 유성철 시인의 시조 작품 읽기 김성수 시인 유성철 시인이 ‘여지餘地’라는 표제表題로 다섯 번째 시조집을 발간하게 되었다. 유성철 시인은 2020년 계간지 《시조사랑》으로 등단하여 남달리 강한 의욕과 타고난 재주로 주옥같은 작품을 창출했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발간한 저서는 나름대로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뚜렷한 개성과 재능을 발휘하여 편편이 절창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 뛰어난 문학적인 역량을 인정받아 ‘등용문상’, ‘대은시조문학상’ 등을 수상하였고 그 외에도 많은 우수작을 문학잡지에 발표하고 있으며 시조의 대중화와 저변 확대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번에 발간하는 『여지餘地』라는 책 제목은 조금은 낯설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지만 그 뜻을 자세히 음미해 보면 참으로 많은 뜻이 내포되어 있으며 또 친근하게도 느껴지기도 한다. 여지餘地란 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이 해석되어 있다. “무언가 현실화할 가능성을 나타내는 말” 또는 “생각하거나 설명할 필요성을 나타내는 말”이다. 쉽게 말하면 “틈이나 자리”라고도 말할 수 있으리라. 현대 역사의 시곗바늘은 참으로 빨리 돌아간다. 물질문명의 발달로 인해 눈코 뜰 새가 없다. 특히 인공지능(AI)의 출현으로 인해 수천수만 배로 그 속도감을 높이고 있다. 이렇듯 각박하고 속도감 있는 생활 속에서 우리들 인간성과 예술성, 그리고 인간 본연의 아름다운 감성은 어디에서 찾아야 한단 말인가? 나중에는 인간이 기계문명에 정복당하는 날이 오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유성철 시인은 이러한 관점에서 ‘여지餘地’라는 명제를 찾아 조금의 여유와 안정을 생활의 틈서리에 넣어보고 싶었던 것이라 생각된다. 인간성 회복을 위해 이 시집을 출간하였고 시조 작품 한 편 한 편을 그 행간마다 정성스레 갈무리하여 두었다고 생각된다. 이 시집의 짜임을 살펴보면 다섯 개의 부문으로 구분되어 있다. 자연의 여지餘地, 생활의 여지餘地, 사랑의 여지餘地, 군상의 여지餘地, 그리고 인생의 여지餘地로 세분되어 각 분야에서 생각해야 하는 이야기들을 우리 고유의 전통문학 장르인 시조 속에 3장 6구 12소절의 운율로 아름답게 녹여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1. 자연의 여지(餘地) 속에서 시적 자아(詩的自我) 찾기 자연은 아름답고 또 위대하다. 자연에는 우주 만물의 섭리가 운행되고 있으며 자연은 스스로의 존재만으로도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무위자연無爲自然이라는 말이 있다. 즉 사람의 힘을 더하지 않는 그대로의 자연, 이는 일체의 부자연스러운 행위, 인위적인 행위가 없음을 뜻한다. 도가道家의 사상이 아니더라도 이 말은 누구나 쉽게 이해되는 상식적인 이야기이다. 인간의 욕심으로 인하여 자연을 개발한다는 이유로 자연을 훼손毁損하여 그 피해가 끝내는 우리 인간들에게 돌아오는 예는 너무나 많이 볼 수 있다. 노자의 『도덕경』 제45장의 말씀을 인용해 본다. “크게 바른 것은 마치 굽은 듯하고, 크게 솜씨가 좋은 것은 서툰 듯하며, 크게 말 잘하는 것은 마치 어눌한 듯하다. 고요함은 떠들썩함을 이기고 차분함은 열기를 이긴다. 맑고 깨끗한 것은 천하의 길잡이가 된다.”라고 한 이 말은 무책임하게 자연을 개발한 사람들에게 주는 경고의 메시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염되지 않은 자연의 순수 속에서 어느 한순간 지극히 짧고 맑고 고운 상념想念으로 시를 쓰고 싶은 마음, 그것이 유성철 시인이 원하는 창작의 길이며, 다시 말하면 자연의 여지餘地 속에서 시적 자아詩的自我를 찾고 싶은 소망일 것이다. 마음속 붓 하나로 무지개를 띄운 하루 앞자락 몰씬대는 봄기운 가이없어 아침을 색으로 풀어 꽃잎 위에 덮는다 숭어리 구석구석 꽃 햇살이 사리물어 나른한 바람결에 시나브로 물이 든다 심지 속 봄의 숨결로 벌써부터 따스하다 무지개 색을 풀어 구름에 붓질하자 하늘로 꽃불 피워 번지기 직전이다 막바지 노을을 열어 달빛까지 부푼다 ― 「하룻봄 풍경」 전문 자연은 바라볼수록 싱그럽다. 자연을 바라보면 새로운 힘이 솟는다. 아름다움과 그리움, 그리고 무언지 모르는 친근함이 느껴진다.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에서 건져 올린 시심詩心이야말로 우리들 일상日常에서 지친 생각을 정화해 준다. 위의 작품 「하룻봄 풍경」의 경우 글 속에 녹아 있는 정경情景을 보면 참으로 아름답고 그윽한 시심詩心을 자아내게 한다. “마음속 붓 하나를 들고 무지개를 띄우는 하루, 아침을 색으로 풀어 꽃잎 위에 덮는다.”는 표현은 첫수부터 우리 마음 깊이 내재해 있는 향수 같은 그리움을 불러일으켜 주는 듯하다. 그리고 또 세 번째 수에서 피력한 “무지개 색을 풀어 구름에 붓질하자, 하늘로 꽃불 피워 번지기 시작하고, 끝내는 노을을 열어 달빛으로 부푼다.”는 표현은 아름다운 봄 풍경을 주제로 아름다움에 대한 소망을 피력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 같은 생각을 시조時調라는 운율韻律 속에 무리함이 없이 담아내는 유성철 시인의 필력筆力이야말로 참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2. 감성(感性)의 그물로 건져 올린 생활의 여지(餘地) 씨앗에 불 밝히는 봄볕은 생의 손길, 어둠 속 희망으로 눈 뜨는 싹을 본다 바람이 스친 자리에 햇살 꿈을 엮는다 강변에 아지랑이 자오록이 피어나면 복사꽃 입맞춤에 마술 걸린 들녘으로 생명이 깊은 잠 깨어 동그랗게 돋아난다 백로가 꿈을 물고 숨어드는 숲 너머엔 너나없이 두세두세 산을 일궈 봄을 캐며 소망이 분수에 맞춰 제자리를 털고 선다 ― 「생의 제자리에서」 전문 위의 시조를 가만가만 음미해 보노라면 귓가에 자연의 숨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은은하고 그윽하고 또 정겨운 그 소리들은 우리 주위에서 아름다운 기척이 되어 어지러운 일상日常을 흔들어 깨우는 작은 깃폭처럼 그렇게 나부껴 오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씨앗에 불 밝히는 봄볕”, “어둠 속에서 희망으로 눈뜨는 싹”, 바로 그 위에 “꿈을 엮는 햇살”이라는 시어詩語들로 수놓아진 초장初章의 이미지는 작고 다정한 목소리로 우리들 잠든 감성感性을 깨워 주는 것 같고, “강변에 피어오른 아지랑이”, “복사꽃 입맞춤에 마술 걸린 들녘”, “잠이 깬 생명이 동그랗게 피어나는” 정경을 묘사한 중장中章의 이미지는 우리 생각에 싱그러움을 더해 주며, “백로가 꿈을 물고 숨어드는 숲”, “산을 일궈서 봄을 캐는 사람들”, “분수에 맞춰 자리를 잡는 소망”으로 마무리한 종장終章의 이미지는 우리들 어지러운 삶의 현실 속에서 고요한 안식과 평화로움을 전해 주고 있는 듯하다. 실수만 꾸짖다가 입술이 다 닳았네 까매진 생채기로 가슴까지 너덜대도 허물을 깨끗이 감싸 지우시길 바라네 과오의 단편斷片들을 하나둘 끌어안아 품 가득 걸머쥐다 끝내는 삭아가도 소홀히 떠날 수 없네, 연필 가진 어미는 ― 「지우개 엄마」 전문 「지우개 엄마」라는 시조 작품은 두 가지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제목 그대로 엄마라는 어원이 말해주는 모성애를 말해주는가 하면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땅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할 수가 있다. 땅은 모든 생물을 나게 하고 자라게 하며 끝내는 생명이 없어져도 다 받아들이는 포용과 이해와 관용의 의미까지 지니고 있다. 우리 생활의 잔잔한 일상에서도 자연의 고마움을 생각하게 하는 유성철 시인의 폭넓은 시심詩心은 분명 문학의 지평地平을 살찌게 할 것이며 생활의 여지餘地 속에서 더욱 빛나는 작품을 창작할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 3. 사랑의 여지(餘地), 그 빛나는 언어의 영역(領域) 이 세상의 말 중에 가장 그립고 아름다운 단어가 무엇인가에 대해 조사한 일이 있는데 첫 번째가 “어머니”라는 말이고 두 번째가 “사랑”이라는 말이었다고 한다. 사랑이라는 말은 그 어감語感부터가 정겹고 친근감이 넘친다. 사랑이란 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다른 사람을 애틋하게 그리워하고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 “다른 사람을 아끼고 위하며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라고 표현되어 있는데, 어쩐지 이 표현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은 아쉬움이 있다. 그만큼 사랑이라는 단어는 말로는 표현이 모자랄 만큼 큰 울림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성경에서는 사랑을 네 가지로 정의하고 있다. 그 첫 번째가 아가페 사랑(Agape)― 무조건적 사랑, 의지적 사랑, 신이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 두 번째가 필리아 사랑(Philia)― 우정, 형제의 사랑, 세 번째가 스토르게 사랑(Storge)― 가족 혈육의 사랑, 네 번째가 에로스 사랑(Eros)― 낭만적 사랑, 이성 간의 사랑.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게 없겠지만 성경은 그중에서 아가페(Agape)를 상위 개념으로 말하고 있다. 사랑은 그냥 사랑인 것이다. 거기에 무슨 조건이 있고 계산이 있겠는가, 그냥 다함 없는 마음이 사랑이 아니겠는가. 그러기에 사랑의 여지餘地 속에서 창출되는 생각과 언어는 우리의 삶을 더욱 값지고 아름답게 표현하리라 생각된다. 시작과 끝이 만나 손잡고 둘러서서 들어갈 수도 없고 벗어날 수도 없어 크기 큰 우주마저도 벗어날 수 없는 선線 ― 「원圓, 사랑의 줄」 전문 1. 그 겨울의 장독대 장독대 서리 맞던 우물가 옆 양지 녘에 그림자 추를 달아 햇살이 뒤로 돌면 부르튼 언 손만 홀로 시린 겨울 넘는다 2. 엄마의 베틀 등잔을 밝혀 놓고 밤을 새워 베를 짜며 멍울져 떨군 눈물 올 사이 피로 스며 젖은 실 시린 무명에 자식 삶이 얹힌다 3. 도라지무침 소금물 살짝 삶은 생도라지 건져 올려 옹기에 우려내고 깨소금 살짝 얹자 푸르름 입가에 들어 엄마 향이 터진다 4. 엄마의 눈길 아무 말씀 안 하시며 ‘지나면 알게 된다’ 뚫어져라 쳐다보며 ‘내 심정 알게 된다’ 세상 삶 돌고 도는 걸 떠나서야 깨닫는다 ― 「어머니의 그 날들」 전문 유성철 시인은 사랑을 원圓의 개념과 원을 이루고 있는 선線의 연속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사랑은 끝없이 이어져 있으며 시작과 끝이 손잡고 있어서 그 안을 들어갈 수도 나올 수도 없으며 크디큰 우주마저도 벗어날 수 없는 아름다운 불문율不文律이라고 말하고 있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사랑의 법칙 아래에서는 모두가 다 허용되고 모두가 다 용서가 되며 화합과 배려, 연민의 감정들이 서로서로 융합되어 있기 때문이리라. 그처럼 큰 사랑을 대표하는 언어의 모티브를 유성철 시인은 「어머니의 그 날들」이라는 작품으로 대변代辯하고 있다. 이 작품은 1. 그 겨울의 장독대, 2. 엄마의 베틀, 3. 도라지무침, 4. 엄마의 눈길 등 네 개의 소제목으로 작품을 구성하고 있는데 구구절절이 어머니의 사랑이 스며 있어 독자들의 가슴을 뜨겁게 한다. 어머니는 사랑의 실타래를 자식을 위해 한 땀 한 땀 풀어 가면서 옷을 만들고 있다. 올실이 없어지는 양만큼 사랑의 에너지는 소실되어 가지만 그 에너지는 다시 자식들의 가슴에 더 크게 전도되어 더 아름다운 삶의 에너지로 변환變換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말 그것은 어머니, 그리고 사랑이 아니겠는가. 4. 군상(群像)의 여지(餘地)에서 통로를 찾는 인간적 고뇌 한 길 마음속을 코드로 엮는 세상, 증폭된 거미줄이 수십억을 뒤흔든다 인간형 에이아이가 인류 위에 올라선다 외로운 가슴들을 한 올로 꿰어내어 선택의 운전대를 훔쳐 든 거인들이 인간을 바퀴에 묶어 가차 없이 굴린다 극단을 부추기는 추천이란 올가미로 진실과 거짓마저 주파수에 얽어매어 젖먹이 영혼까지도 최면 속에 휘둘린다 사람을 위한다는 알고리즘 매트릭스, 돌아설 문도 없는 외길의 발걸음이 냉혹한 지옥의 굴로 소리 없이 끌고 간다 ― 「알고리즘의 그림자」 전문 도리질 치는 세상 밑바닥 반지하에 만 근의 눈을 비벼 하루를 밝힌 새벽, 주먹을 불끈 쥐고서 지푸라기 품을 판다 질곡을 동여매어 떨어지지 않는 발로 생사가 날름대는 나락의 벼랑에서 질통에 가족을 지고 시시포스 길을 간다 정신줄 날을 세워 온몸에 감고 서서 닿을 듯 닿지 않는 안갯속 번한 빛에 오늘도 부스러기 꿈을 부둥키는 하루다 생계의 동아줄로 붙잡은 삶의 끝에 어제와 다르리라 오늘을 다잡고서 굴곡진 아침을 펴려 발걸음에 힘을 준다 ― 「질통의 현장」 전문 위의 두 편의 시조는 물질문명으로 점차 잃어가는 인간성과 각박해지고 있는 군상群像들의 세태를 절박한 심정으로 묘사한 작품들이다. 「알고리즘의 그림자」의 경우 인공지능에 우리들 자리를 빼앗기고 그들이 하자는 대로 끌려가는 무기력한 우리들의 자존심을 한탄하는 자책의 글이기도 하다. 선택의 운전대를 든 거인들이 인간을 바퀴에 묶어 가차 없이 굴리기도 하고 진실과 거짓마저 주파수에 얽어매어 어린 영혼까지도 최면 속에 가두어 놓는 시간의 지옥 속에 우리들 이성理性과 감성感性은 스스로의 위치를 지키지 못하는 무력함…… 생각할수록 답답하기만 하다. 두 번째의 작품 「질통의 현장」이라는 작품 속에는 군상群像들의 절박하고 어려운 삶의 현실을 눈물겹도록 묘사해 놓았다. 네 번째 수 종장의 표현은 더욱더 가슴을 아프게 한다. 생계의 동아줄로 붙잡은 삶의 끝에 그래도 미래의 꿈을 다잡으며 발걸음을 옮긴다는 표현은 최후의 안간힘 같은 애절함마저 느끼게 한다. 이 작품들을 곰곰이 읽어보면 유성철 시인이 피력하는 인간적인 고뇌를 실감할 수가 있는 듯하다. 인간성이 무너져 가는 작금의 현실에서 우리들 유토피아는 어디에 있을까? 어두운 동굴 속에서 밝음을 향하는 삶의 통로는 어디에 있을까를 고뇌하는 한 시인의 절박한 외침이 소리 없는 메아리처럼 독자의 가슴을 울려오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유성철 시인은 암울한 절망의 틈서리에서 작은 소망 하나를 피워 올린다. 그 소망이 새로운 장章의 시작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그런 의미에서 아래에 소개하는 「여지餘地」라는 작품은 새벽 여명 속에서 새로운 일출을 보는 듯한 소망을 갖게 한다. 진동이 일었다가 멎어지는 공간에서 그대와 나 사이에 열리는 소통의 문, 리듬 속 쉼표의 의미가 새하얗게 풀어진다 무시로 드나드는 대립의 골 막바지에 오로지 함께해서 그려지는 여백으로 있음은 없음을 밝혀 틈 너머를 바라본다 등라藤蘿가 칡에 얽혀 뒤척이는 세상에서 남김의 빈자리가 포용으로 기다린다 묵묵히 허공에 서서 희망으로 피어난다 ― 「여지餘地」 전문 5. 비움과 내려놓음, 그리고 아름다운 인생의 여지(餘地) 인생이 무엇이냐고 질문을 한다면 많은 사람이 각기 다른 견해로 말한다. 인생은 “나그네”라고 말하는 이도 있고, 인생은 “잠시 소풍 나온 것”이라고 대답하는 이도 있고, 인생은 “고해苦海”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참으로 많은 뜻으로 말들을 하지만 분명한 것은 누구나 인생을 살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삶이 여유롭고 편한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생生이란 글자를 써 놓고 자세히 관찰하면 참으로 묘한 점을 찾아낼 수가 있다. ‘生(날 생)’ 자는 ‘牛(소 우)’ 자 밑에 ‘一(한 일)’이 그어져 있다. 이것을 의역意譯해 본다면 소가 외나무다리 위를 건너간다는 뜻이니 얼마나 아슬아슬하고 힘든 과정인가. 이것은 다만 하나의 위트(wit)에 불과한 말이지만 그런대로 설득력도 있다고 생각된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각박한 세상 속에서 삶의 여지餘地를 제대로 마련하는 것 또한 중요한 것이리라. 같은 곳 다다라서 끝내 다 그뿐인걸 헛똑똑이 철도 없이 언죽번죽 떠들고선 헛된 꿈 애만지다가 은빛으로 서 있다 다행히 곁에 있던 행운을 깨달아서 세상은 살 만하다 말할 수 있는 덕에 다가선 종착역에도 저린 마음 다잡는다 혹독히 몸 부리며 겁 없이 걷던 삶에 마음을 공글리어 어리석음 깎아간다 덧없는 시간이라도 그 하나로 족하다 ― 「시간이란 이름의 희망」 전문 짓무른 메주 밟듯/ 세상을 누비다가// 여닫는 문밖으로/ 가지런히 놓인 신발,// 거닐다 해진 사연이/ 봄꽃보다 더 곱다 ― 「닳은 신발」 전문 유성철 시인은 나름대로 열심히 인생을 살아온 것 같다. 스스로를 낮추어 헛똑똑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세상을 살아오면서 모든 것을 정성껏 어루만져 스스로의 삶에 소망을 걸고 오로지 한길로만 걸어온 것 같다. 때로는 고난도 있었고 외로움도 있었으나 마음을 공글리며 스스로의 삶에 최선을 다한 흔적이 보인다. 그래서 “덧없는 세월이지만 그 하나로 족하다”고 자기 삶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가. 그에게 시간이란 것은 언제나 희망이란 의미로 존재했으며 그 아름다운 명제命題를 위해 마치 무지개를 좇아가는 소년처럼 달려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세상을 메주 밟듯 누빈다”는 말에서 얼마나 많이, 그리고 열심히 노력해 온 삶의 발자취가 눈에 보이는 듯하다. 그러고 나서 “문밖에 놓인 해진 신발이 봄꽃보다 환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자신감과 여유는 유성철 시인의 인생의 여지餘地를 더 빛나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6. 맺는말 유성철 시인은 참으로 색다른 주제로 시조집을 기획企劃하였다. ‘여지餘地’라는 표제表題 속에 자연, 생활, 사랑, 군상, 인생이란 다섯 개의 명제命題로 연시조와 단시조를 알맞게 배열하여 편집상에 조화를 이루었으며, 모두 75편의 빛나는 작품들을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그런데 본인은 너무나 겸손하여 졸작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좋은 시조를 쓰기 위해 신발이 다 닳도록 헤매기만 했지, 끝내는 찾아내지 못했다고 자신을 낮추어 말하고 있다. 끝으로 나옹선사懶翁禪師가 지었다고 전하는 「심춘尋春」이라는 오도송悟道頌을 인용해 본다. 진일심춘불견춘盡日尋春不見春 망혜답파농두운芒鞋踏破壟頭雲 귀래우과매화하歸來遇過梅花下 춘재지두이십분春在枝頭已十分 날이 저물도록 봄을 찾아 헤맸으나 찾지 못하고 짚신이 다 닳도록 구름 언덕만 밟고 다녔네 지쳐 돌아와 우연히 매화나무 밑을 지나는데 봄은 이미 가지 위에 한껏 와 있었네. 위의 작품에서와 같이 유성철 시인의 노력과 애씀도 그 모두가 작품 속에 이미 내재해 있어 충분히 그 가치를 빛내고 있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이제 그 작품들은 송이송이 고운 꽃이 되어 새로운 봄날을 활짝 열어갈 것이라고 기대해 보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