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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트머리에 파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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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파티마다.
이슬람에서 상징적인 인물에서 따온 이름이다. 명예롭게 지켜야 하는 이름이다. 우리 집에서 말하던 대로라면 “더럽히지” 않아야 하는 이름이다. 더럽힌다는 건 명예를 실추한다는 의미. 알제리 아랍어로는 Wassekh. 알제리 아랍어라는 건 우리 말로는 다르자, 혹은 다리자, 방언이라는 의미. Wassekh: 더럽히다, 똥칠을 하다, 먹칠하다. 사귀다, 얽히다, 처럼 다의적이다. --- p.9 니나는 내 왼편에 앉는다. 나는 그의 오른편에. 우리는 나무 아래에 있다. 휘어진 가지가 우리를 둘러싼다. 하늘이 환하게 드러난다. 해가 강하게 내리쬔다. 폭염. 비둘기가 걸어간다. 비둘기에 시선이 간다. 비둘기의 시선도 나에게로. 그리고 우리는 같은 순간에 뒤를 돌아본다. 마치 멀어지는 비둘기를 지켜보려는 듯. 비둘기에게서 시선을 거둔다. 니나를 본다. 니나는 여전히 비둘기를 보고 있다. 바람이 몇 차례 우리 몸을 훑고 간다. 니나가 미소를 띠고 말한다. “좋다.” 니나를 바라본다. 나는 바보같이 따라 한다. “좋다.” 그때와 같은 장소에 다른 사람과 있는 나. 내가 쳐다보지 않는 남자애와. --- p.36 학교에 가는 길에, 남자애들을 관찰한다. 내가 제일 나아 보인다. 남자애, 남자, 그게 뭔지 잘 모른다. 여자가 뭔지도 모르겠다. 우리 엄마가 내가 장래에 되기를 희망하는 거라는 것 정도. 남자애들은 싫지만 걔들이 하는 액세서리는 좋다. 내가 가진 남자애 같은 성질을 없애 보려고 한다. 없애보려는 건 엄마가 이 성질을 싫어하고, 끊임없이 내가 여자애라는 걸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여자애들이 바라는 건 다정하고, 섬세하고, 남자답고, 든든하고, 자기를 지켜주는 남자애와 사귀는 것. 그러니 문제는 나다. --- p.137 여자애가 아닌 여자애, 알제리도 프랑스인도 아니고, 클리쇼와즈도 파리지엔도 아니고, 무슬림은 맞지만 좋은 무슬림은 아니고, 레즈비언이지만 호모포빅한 이야기다. 또 뭐가 있을까? 속이 시끄럽다. 가짜 같은 목소리. 하지만 하나도 놓지 않는다. --- p.2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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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파티마 다아스다. 나는 마조지야, 예상치 못한 막내딸. 여자애가 아닌 여자애, 알제리도 프랑스인도 아니고, 클리쇼와즈도 파리지엔도 아니고, 무슬림은 맞지만 좋은 무슬림은 아니고, 레즈비언이지만 호모포빅한 이야기다. 또 뭐가 있을까?”
모순과 금기 위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선언하는 가장 현대적인 오토픽션 2020년 프랑스《레쟁로큅티블》신인소설상을 수상한 파티마 다아스의 데뷔작 『끄트머리에 파티마』가 처음으로 한국 독자들을 찾는다. 출간 직후 전 세계 1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칸영화제 여우주연상과 퀴어종려상을 수상한 영화 〈파티마가 사랑한 계절〉로 영화화되며 전 세계 문단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스스로를 ‘교차성 페미니스트’로 정의하는 작가 파티마 다아스는 프랑스 외곽 클리시수부아에서 자란 알제리계 이민자 2세이자 무슬림, 그리고 레즈비언이다. 작가 자신의 삶을 투영한 오토픽션인 『끄트머리에 파티마』는 사회가 결코 양립할 수 없다고 규정한 정체성들 사이에서 주인공 파티마가 겪는 갈등과 외로움, 그리고 모순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작가의 삶을 녹여낸 소설이지만, ‘파티마 다아스’라는 이름은 본명이 아니다. 가족을 보호함과 동시에 외부의 단일한 규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스스로를 재창조하기 위해 작가가 선택한 필명이다. 사회는 단 하나의 정체성을 선택하라고 요구하지만, 파티마 다아스는 그 어느 것도 포기하기를 거부한다. 책장을 덮은 후에도 독자는 주인공 ‘파티마’를 단 하나의 키워드로 규정할 수 없지만, 바로 그 불가능성 속에서 어떠한 외부의 틀에도 갇히지 않는 한 개인의 눈부신 자아 탐구를 목격하게 된다. 뒤라스와 에르노를 읽고 데팡트를 만나기까지 — 글쓰기라는 해방의 서사 고등학교 시절 탕기 비엘의 문학 워크숍에서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파티마 다아스는 아니 에르노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작품을 접하며 자신만의 문학적 목소리를 발견했다. 파리 8대학 문예창작 석사 과정 재학 중, 강연자로 찾아온 소설가이자 영화감독 비르지니 데팡트와의 만남이 결정적이었다. 데팡트는 프랑스 문학에서 희귀하게 다뤄졌던 이주민 2세 퀴어 여성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하며 “많은 이들이 당신의 이야기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후 데팡트는 출간된 소설에 대해 “불가능한 것을 창조해 내는 글쓰기”, “자신의 길을 개척한 작품”이라 찬사하며 적극적인 지지를 보냈다. 문학이 사람을 구원할 수는 없을지라도 해방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믿음 아래, 파티마 다아스는 숨 가쁜 현실 속에서 마침내 숨을 쉴 수 있는 단 하나의 공간으로서 글쓰기를 완성해 냈다. 언어의 질감을 섬세하게 살린 번역 『끄트머리에 파티마』는 불어뿐만 아니라 음차된 알제리 아랍어(다르자)와 영어, 도시 외곽에 사는 청년층의 은어가 경계 없이 뒤섞인 독특한 언어적 질감을 지닌다. 이 감각은 주류 문화에 편입되지 않는 이민자 2세의 다층적 삶을 언어 그 자체로 재현한다.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탈코르셋: 도래한 상상』 등의 저서와 『자본의 성별』,『워드슬럿: 젠더의 언어학』,『가부장제의 정치경제학』등의 번역서로 국내 페미니즘·젠더 담론을 이끌어온 이민경 작가가 원작 고유의 다개언어가 섞인 독특한 리듬감을 한국어로 섬세하게 옮겼다. 언어의 차이를 매끄럽게 다듬는 대신, 원작이 지닌 낯설고도 강렬한 문장의 생명력을 살려내어 한국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주변부의 목소리들이 빚어내는 첫 번째 다성 음악 독립된 여러 선율이 각자의 결을 유지하며 어우러지는 다성 음악에서 이름을 딴 ‘폴리포니카’는 단일한 중심에 흡수되지 않은 주변부의 다채로운 목소리를 세상에 소개하고자 첫 책으로 『끄트머리에 파티마』를 택했다. 주류 서사가 포착하지 못했던 목소리를 세상에 전달하는 폴리포니카의 철학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출발점이다. 세상의 끄트머리에 서 있는 이들을 위한 이 강렬한 선언은, 한국 독자들이 저마다의 정체성과 치열하게 마주할 수 있는 대화의 장을 열어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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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마 다아스는 인내심 있고 세심한 조각가처럼 혹은 단어 하나하나가 모든 것을 폭발시킬 수 있음을 알고 무한한 주의를 기울여 단어를 골라내는 지뢰 제거 요원처럼 한 인물의 초상을 깊이 파고든다. 여기서 글쓰기는 불가능한 것을 창조해 내고자 한다. 모든 것을 어떻게 양립시킬지, 수치심 속에서 어떻게 숨을 쉴지, 막다른 골목에서 어떻게 춤을 추며 벽이 있던 자리에 문을 열어젖힐지를. 이 작품에서 글쓰기는 지나치게 소란을 피우지 않고 나직하게 엎드린 채, 자신의 사람들을 향한 비할 데 없는 애정의 파동 속에서 승리를 거둔다. 바로 그 섬세한 문체를 통해 파티마 다아스는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나간다.” - 비르지니 데팡트 (『친애하는 개자식에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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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서 이토록 확실하고 육체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을 줄은 몰랐다.” - 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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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하는 리듬, 날카롭게 꽃히는 문장들, 주술처럼 흐르는 장들. “내 이름은 파티마 다아스다”라는 동일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장들은 매번 우리를 다른 곳으로 이끈다. 마치 다시 시작하듯, 몇 번이고 기워 나가듯, 새로운 홈을 파고 새로운 면모를 드러내며 스스로를 찾아 헤매는 오늘날 한 여성의 가슴 저미는 자화상에 새로운 조각을 더해간다. 타인, 부모, 이슬람, 교외, 프랑스, 그리고 사랑이 강요하는 수많은 ‘진실’ 속에서 균형과 자신만의 진실을 찾아 헤매는 인물의 자화상. 우리가 간절히 기다려온, 격렬하게 현대적인 목소리.” - 레쟁로큅티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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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레즈비언의 성장 이야기이자 신과의 사투다. (…) 이 소설은 삶을 불태우면서도 동시에 규율하는 성스러운 텍스트의 명백한 힘에 의해 이끌려 간다.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뜨거운 구절들. 그리고 결코 떨쳐낼 수 없는 금기들까지.” - 르몽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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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이라는 주제를 섬세하고 열정적으로 탐구하는 파편탄과도 같은 작품이다.” - 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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