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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2022 프랑스
맑은 눈동자 두 개만을 굴리기 위해 (1) 2020 한국 프랑스어를 배워야겠어. 중간에 잡힌다면 잠자코 물 아래로 끌어내려지겠지만 출구만 나간다면 아주 멀리 갈 수 있다. 밤도 아침도 아닌 시간에, 사지가 퇴화된 두 마리 동물처럼. (2) 2021 프랑스 세 가지가 얽혀 만들어지는 환상의 모양을 프랑스에서는 ‘제 꼬리를 문 뱀le serpent qui se mord la queue’이라 부른다. 나의 가설이 그리는 모양은 서로를 잠그면서 만들어내는 단단한 원. 샤틀레 역에서 방금 살해당할 뻔했다. (3) 2022 프랑스 계급위반자. 좀도둑. 걸맞지 않은 지위를 무려 즐기고 있는 자. (4) 2022 한국 대화는 사뿐하게 날아오른다. 그렇게 노는 해를 대충 사십 번쯤 하면 삶이 끝난다. 의심을 감소하고 확신을 늘린다. 나의 집chez moi에서.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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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만들면 항상 끝이 어떨지를 생각해야 해요(Il faut toujours penser a la chute).
---「첫문장」중에서 평생을 비일상 속에서 살고 싶다. --- p.12 지금은 보지 않는, 그러나 그 영험함이 두고두고 회자되는 친구는 말했다. “언니는 원치 않아도 웅크려야 하고 어떨 때에는 싫어도 짖어야 해요, 개처럼. 팔자가 그래요.” --- p.13 며칠이고 고정되었던 문단은 액체류의 중얼거림이 되어 손아귀를 빠져나간다. 모퉁이를 돌아 홱 하니 사라져버리는 가느다란 꽁무니. 저걸 붙잡아보려고 수없이 시간을 보냈다. --- p.36 나는 화자를 난감하게 할 정도로 생생하게 울리는 소리가 좋았다. 어머, 내가 지금 이런 말까지 왜 하고 있는 거야, 하고 입을 틀어막지만 결국은 끝까지 가고 마는 말소리. 혹은 냉정하게 유지하려 했던 얼굴을 결국 터뜨려버리는 웃음소리. 말하지 않으려는 사람을 제치고 들어줄 사람에게로 돌진하는 경험이 내는 기차 화통 같은 소리. --- p.46 2021년 11월 23일, 애인과 친구들의 선물을 부적처럼 두르고 출국을 했다. 이 문장을 쓰는데 눈물이 분수같이 솟구쳐 입을 막아야 했는데, 어쩌면 너무 바보 같은 것을 보면 즉물적으로, 안쓰러움이 성질처럼 솟아나는지도 모르겠다. --- p.62 프랑스 최고 기관에 명예롭게 입학하여 착실히 수학하는 일상과는 약간 거리가 있는 상상을 하며 살아간다. 가령 저 멀리 높은 곳에서 활시위를 당겨 광장을 절반으로 가르는 불줄기 같은 것. 부글거리는 속으로부터 활활 타오르는 것. --- p.74 그러니 웃음을 일으키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아버지에게서 아들에게로 내려오는 막중한 자산을 그 외부로 퍼 내보내면서 가부장제의 철로를 탈선시키기 위해서도 적어도 두 명이 필요하리라는 결론. --- p.87 어느 날 발신인 ‘.’으로 “당신이 프랑스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로 시작해 주소와 전화번호를 불러주는 메일을 받았다. 겁도 없이 주소대로 찾아가 전화번호로 문자를 보냈더니 철로 된 대문이 열렸다. --- p.95 중년 백인 남성이 허를 찔린 듯 어휴, 그나저나 프랑스어 끝내주게 잘하네, 하는 무의식적인 감탄을 자아내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말은 한국어로는 ‘기특하게도 우리 말을 잘하네’보다는 ‘어휴, 저거 징그럽게 기 센 거 봐’ 하면서 튀어나오는 한숨으로 번역해야 하거든. --- p.103 아마 그들에게 티가 났던 건 나의 계급위반자적 면모였을 것이다. (…) 왜 모든 딸은 자신의 집이 가난하다고 생각할까? 아버지가 분당 어디쯤의 센터장이건, 서울에서 성공한 사업가이건, 집에서 누워 있건, 죽었건, 없건 똑같았다. --- pp.117~118 ‘문밖을 완전히 빠져나가기 전까지는 들키지 마라.’ 나는 비자를 가진 밀항자였다. --- p.135 그래서 길을 걷다가 서점(librairie)이 발음되지 않아서 운다. 이백 번도 넘게 발음을 하는 동안 내내 꽁해 있다가 된다! 느껴지는 순간에는 웃는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포도(raisin)가 나온다. 또 분해서 운다. --- p.149 수없이 귓가에 흘려 넣어준 내 문장의 조각들이 타인의 고유한 질서 위에서 새로운 문장을 내게 돌려주었던 순간을 나는 꽃이 핀 날처럼 기억한다. --- p.170 만일 그렇게 놀 상대를 대충 이삼십 대에 만난다면, 보수적으로 가정했을 때 그렇게 노는 해를 대충 사십 번쯤 하면 삶이 끝난다. “신나게 놀았다!(It’s been a great ride!)” 하고 죽을 수 있을 정도다. --- p.1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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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를 문 뱀이 갖는 방향성과 운동성은 어떤 것일까. 그 방향으로 손을 뻗는다. 닿고 싶은 것일까 물리고 싶은 것일까. 답을 찾기 위해 글을 살피며 나는 이런 문장 앞에서 즐거워한다. “이거 좀 봐, 하며 어려서는 청자를 찾아 다닌 내 신기한 경험은 이후에는 청자가 되어주기 위한 성냥으로 쓰였다.” 이 책은 이민경이 청자로 살았던 시간에 대한 기록인 동시에 화자로 살았던 기록이다. “길은 주로 사람들 사이에 나 있었다”고 말하며 길 위에 선, 길을 만들어간 문장들이다. 이민경의 결론은 아직 먼 곳에 있다. 기쁜 마음으로 여정에 동참했다. - 이다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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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욕조에 물 받아놓고 들어가 읽으면 좋다. 욕조는 집에 달린 자기 것일 필요는 없고 한가한 대중탕이나 남의 집도 괜찮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문을 잘 열어준다. 목욕탕에서 읽을 책이 필요하다면 이것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생활과 정신, 저속과 숭고가 맞붙은 게 세상이구나 느낄 땐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겠지만. 목욕과 남의 욕조 쓰기를 이민경의 글과 행적에 대한 은유라고 생각해도 좋다. 당신이 목욕하면서까지 읽을 것을 찾는 사람이라면 이민경을 만나보는 것이 좋다. 그리고 다시…… 물에 들어가도 좋다. - 서한나 (작가, 보슈BOSHU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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