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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우리나라 미술관 중에서 어디가 가장 좋아요?
부소갤러리|잠깐만, 나 저 그림 다시 한번 보고 올게 이상원미술관|파괴될 수 있지만, 패배하지 않는다 박수근미술관|천국이 가까운 줄 알았는데 멀어, 멀어 구하우스미술관|예술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공유하는 것 석파정 서울미술관|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제주현대미술관|엄마 좋아하는 그림 실컷 봐서 행복했어? 본태박물관|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삼탄아트마인|오늘도 무사히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빈센트 반 고흐, 절망에서 역작을 그리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카라바조, 죄를 덮은 천재성 국립중앙박물관|시대에는 시대에 맞는 예술을, 예술에는 자유를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예, 저는 까치 그리는 사람입니다 이응노미술관|한국 근현대 여성 미술가들 서울시립미술관|이런 마당에 내가 어찌 향기 나는 백합을 그릴 수 있었겠느냐? 환기미술관|환기 블루 알천미술관|기이한 것은 아름답다 이우환 공간|이우환과 류이치 사카모토 호암미술관|천 원짜리 지폐에 새겨진 정선의 그림 리움미술관|인간은 무엇인가? 뮤지엄산|청춘은 시기가 아닌 마음가짐 에필로그|나도 혼자 있으니 혼잣말이 나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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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빤, 이 그림이 좋아요?” 내가 물었다. 부친은 “응. 좋아. 옛날 생각이 나서. 옛날엔 다들 이렇게 가난하게 살았거든.” 나는 한 걸음 뒤에서 부친의 그림 감상이 끝나기를 조용히 기다렸다. 관계자 두 분이 내 곁으로 왔다. 난 두 분께 우리 아버지가 저 그림을 가장 좋아하신다고 말했다. 한 분이 왜 그 그림이 좋은지 내게 물었고, 그 순간 난 구부정한 어깨의 부친이 두 손을 모으고 쓸쓸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쓸쓸하기 짝이 없는 그림을 지긋이 바라보는 걸 발견하고 말았다. 느닷없이 목이 멨다. 내 목 상태를 알 리 없는 부친이 나 대신 답했다.
---p.15 우리가 미술관에 가는 이유는 뭘까? 어떤 사람은 영감을 얻기 위함이겠고, 어떤 사람은 예술가의 삶과 작품을 통해 위로를 받고, 또 누군가는 아름다움을 관람하는 것 자체로 행복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미술관에 자주 가면서 아쉬울 때가 있다. 고가의 작품이기에 조심해야 하는 건 당연하지만, 지나치게 엄숙한 분위기로 관람객을 통제하거나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의자조차 없는 경우가 그렇다. 위안과 감동을 얻으러 왔다가 이런 사소한 불편감으로 인해 마음이 상하기도 하는데, 여기 전혀 그럴 위험이 없는 ‘집 같은’ 미술관이 있다. 더구나 이곳의 작품 규모는 그야말로 역대급이다. ---p.41 속이 편치 않은 내게 아들은 “엄마 좋아하는 그림 실컷 봐서 행복했어?”라고 묻는다. 이거 혹시 돌려 까긴가? 싶어 잠시 혼란이 왔지만, 그러기엔 아들의 표정이 해맑았다. 내가 〈한 땀! 한 땀!〉에 정신이 팔려 있을 동안 혼자 두 시간 기다리느라 저도 지루하고 힘들었을 텐데, 내 마음을 먼저 살피다니. 만일 그가 좋아하는 게임 하느라 내가 혼자 카페에서 두 시간이나 기다렸다면 어땠을까?(엄마 금쪽이 난동 예상) 나도 게임하면서 행복했냐고 진심으로 물을 수 있을까? 어쩌면 이런 그림을 다시 볼 수 없는 것처럼 아들과의 여행도 다시 올 수 없는 시간인데. 그러니 내가 해야 할 말은 타박과 빈정의 언어가 아닌 늦어서 미안하단 말이었다. ---p.74 왼쪽 그림은 두 사람이 한창 연인이었던 시절, 실레가 그린 노이칠의 모습으로 회색 망토를 두른 그녀가 사랑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다. 실레는 중산층 집안의 에디트와 결혼했으나 얼마 후 에디트는 임신한 몸으로 당시 유럽을 휩쓸었던 스페인 독감에 걸려 사망하고, 3일 후 실레 역시 같은 병으로 눈을 감는다. 1918년, 오스트리아는 클림트, 에곤 실레, 콜로만 모저, 오토 바그너라는 빈의 모더니즘을 이끌었던 거장 네 명을 한꺼번에 잃었지만, 그간 그들의 노력으로 빈을 예술의 주변부에서 다시금 중심부로 옮겨놓는 데 성공했다. ---p.131 〈나무와 새〉는 그의 시그니처(까치와 나무, 아이와 마을, 해와 달과 같은)가 모두 들어간 작품으로 1958년 뉴욕 월드하우스 갤러리에서 열린 〈한국현대회화전〉에 전시된 작품이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까치는 작가 자신의 분신으로 읽히는데, 이에 대한 일화가 있다. 1977년, 그가 양산 통도사 경봉스님에게 법명을 받을 때 스님은 그에게 “뭘 하느냐?”라고 물었고, 그는 “까치 그리는 사람입니다”라고 답했다. 스님은 “쾌하다”라며 그에게 ‘비공 거사’와 ‘까치 작鵲’을 두 번 붙인 ‘작작鵲鵲’이라는 법명을 지어줬다. 자기 자신을 그림 그리는 사람이 아닌 ‘까치를 잘 그리는 사람’이라고 콕 집어 표현했다는 점은 흥미롭다. 또 작작鵲鵲은 까치의 울음소리 ‘깍깍’을 떠올리게 해 이 또한 재밌다. ---p.140 절필을 선언했지만, 뼛속까지 화가인 그가 어찌 그림을 그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1995년 호암미술관에서 그의 대대적인 회고전이 열렸고,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인파가 몰려들었다. 한 달 새 8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다녀갔고 폐막식 날엔 너무 많은 사람으로 인해 산소부족이 발생했고, 한 사람이 쓰러지는 일까지 벌어졌다(다행히 금방 깨어났다). 전시와 동시에 그는 『천경자 화집』과 수필집 『탱고가 흐르는 황혼』을 출간했다. 당시 71세였던 천경자는 고령임에도 그림과 문학을 오가며 왕성한 창작활동을 했으며, 명실상부 대한민국 예술계의 가장 핫한 셀럽 중 하나로 입지를 굳혔다. ---p.161 ‘실험적이고 혁신적인’에 방점을 찍고 전시를 둘러보면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다소 도움이 될 것이다. 일단 그의 작품은 영상이나 설치 작품이 많은데, 완성작이 아니다. 전시장 안에서 계속 변화하고 진화한다. 영상 작품의 경우 전시장 곳곳에 설치해 놓은 센서에 의해 관람객의 몸짓, 음성 등 전시장의 환경이 감지되고, 감지된 정보들은 설치된 영상에 실시간으로 영향을 끼치며 영상들을 미묘하게 변화시킨다. 말하자면 일정한 세계를 만들어 놓고 외부에서 습득된 정보를 최첨단 기술을 통해 다시 그 세계로 집어넣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다. ---p.2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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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 따라, 마음 따라 떠나는 ‘국내 감성 미술관 큐레이션’
『미술적 인간』은 벽에 걸린 그림을 바라보는 일차원적인 관람기를 넘어 미술관의 건축미와 그것을 둘러싼 계절의 풍경, 독특한 아우라를 감각적인 필치로 담아낸다. 저자는 미술관을 단순히 작품을 수장하고 전시하는 건물이 아니라, 지친 현대인들이 잠시 숨을 고르고 자기 자신과 조용히 독대할 수 있는 ‘지상의 쉼터’로 재해석한다. 이처럼 저자가 안내하는 전국 각지의 미술관 지도를 따라가다 보면, 미술관 관람이 더 이상 어렵고 특별한 문화 행사가 아니라 주말에 가벼운 마음으로 떠날 수 있는 ‘근사한 여행’이자 ‘나를 다시 만나는 시간’임을 깨닫게 된다. 거장들의 숨겨진 인간미와 지독하도록 아름다운 삶의 서사 『미술적 인간』이 지닌 가장 강력한 매력은 화려한 명성 뒤에 숨겨진 화가들의 지극히 인간적인 서사를 저자의 삶과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데 있다. 본문에서는 화가들을 신격화하거나 거창한 미학적 수사로 포장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이 겪어내야 했던 지독한 가난, 고독, 질병, 그리고 시대의 폭력을 다루며, 그럼에도 끝내 붓을 놓지 않았던 예술가들의 삶을 우리와 다르지 않은 한 인간의 이야기로 들려준다. 나아가 아마추어 화가의 그림 앞에서 가난했던 옛날을 떠올리던 부친, 함께 제주를 여행한 아들, 벗어나고 싶었으면서도 그리웠던 엄마처럼 저자 자신의 삶도 그림 곁에 나란히 놓아둔다. 저자는 말한다. 작품 감상은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타인의 삶을 이해하고, 그 이야기에 비추어 자신의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일이라고. 옛 그림이 오늘의 우리에게 걸어오는 이야기들을 가만히 들어보자. 완벽하지 않아서 아름다운, 우리 모두는 ‘미술적 인간’이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완벽하지 않기에 어쩌면 완전할 수 있다. 미술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미술관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설렘, 창밖의 계절과 나무를 바라보는 여유, 그리고 수많은 그림 중 유독 내 마음을 흔드는 소박한 그림 한 점을 찾아내는 기쁨이면 충분하다. 감상에는 정해진 답도, 반드시 갖춰야 할 지식도 없기 때문이다. 쓸쓸한 풍경화에서 자신의 지난 삶을 떠올리고, 낯선 작품 앞에서 오래 잊고 있던 사람을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지식의 틀을 깨고 나온 가장 솔직하고 아름다운 ‘미술적 인간’이다. 일상의 무게에 짓눌려 마음의 휴식이 절실한 이들에게, 그리고 예술을 통해 삶의 의미를 재발견하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미술적 인간』은 조금 특별한 또 하나의 작품이 되어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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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은 단순히 그림을 전시하는 공간이 아니다. 인간의 오랜 숨결과 생의 흔적이 만나는, 영혼의 쉼터이자 내밀한 극장이다. 저자는 발길이 닿는 국내 여러 미술관에서 거창한 미학적 이론 대신 삶의 파고를 견뎌낸 인간의 온기와 선함, 그리고 상실의 흔적을 짚어낸다. 화가의 눈을 빌려 세상을 바라보는 일은 내가 가진 완고한 편견의 세계에 기분 좋은 균열을 내는 일과 같다. ‘미술적 인간’이란 결국, 타인의 고통과 지나간 시간에 깊이 공감할 줄 아는 성숙한 존재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 구정순 (구하우스미술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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