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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장자》를 다시 읽고 내 안의 힘을 새롭게 발견하다
제1부 마음의 도약: 나를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가 제1장 만물의 본질은 에너지: 모든 것은 흘러가니 붙잡을 것도 없다 제2장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는 삶: ‘경로 의존성’에서 벗어나라 제3장 유연하게 삶을 ‘소요’하는 법: 내면의 ‘흐름’에 귀를 기울여라 제2부 세상 속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제4장 일의 태도: 침착하고 여유롭게, 막힘없이 일하는 마음의 기술 알아차림 연습 ① 더 높은 차원의 목표 세우기 알아차림 연습 ② 인지 재구성 알아차림 연습 ③ 좁은 시야를 넘어서기 알아차림 연습 ④ ‘경청’에서 ‘마음 풀어주기’로 알아차림 연습 ⑤ ‘몰입’을 불러들이기 알아차림 연습 ⑥ 고요하게 하루를 ‘갈무리’하는 의식 제5장 뿌리 깊은 고요: ‘올바르게’ 살기보다 ‘온전하게’ 살아가기 알아차림 연습 ⑦ 스스로 ‘뿌리내리기’ 알아차림 연습 ⑧ 마음의 ‘해독’ 알아차림 연습 ⑨ 외부에 흔들리지 않는 ‘쓸모없음’의 태도 알아차림 연습 ⑩ 세속을 벗어난 마음으로 세속의 일을 하기 제3부 타인에게 스며들기: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 제6장 외부에 휘둘리지 않는 법: 끊임없이 비우고 유연하게 응수하라 맺음말 불안과 싸우는 대신 내면의 흐름을 회복하기 참고 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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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는데도, 우리는 그걸 조심스럽게 지킬 줄도, 제대로 쓸 줄도 모른다. 오히려 외부의 일이나 다른 사람이 함부로 빼앗아 가도록 내버려 둔다. 많은 이가 자신의 에너지를 아끼고 관리하는 일에 서툴다.
지난 몇 년간 종종 내 삶이 황폐하고 아무런 생기조차 없다고 느꼈지만,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이제야 알았다. 나는 줄곧 내 에너지를 아끼고 관리하는 일에 서툴렀다는 것을. ---p.10 《장자》는 마취제가 아니라, 정신을 깨우는 각성제이자 해독제다. 진정으로 자기 삶을 바꾸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장자》는 삶의 고통과 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도록 우리를 다그친다. 지금의 고통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하고,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 독소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내게 한다. 그런 다음, 우리 손에 칼을 쥐여 주며 그것을 잘라 내라고 말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피투성이가 될 수밖에 없는데도 말이다. ---p.22 삶은 한때 차고 기우는 일시적인 변화는 있을지언정 진정한 결핍이나 결함은 없다.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는 모두 같은 에너지에서 왔고 똑같이 풍요롭고 충만하다. 다만 그것이 드러나는 형식이 저마다 다를 뿐이다. 인생에는 단 하나의 길만 있는 것도 아니고, 성공의 본보기 역시 하나뿐이 아니다. 살면서 맞닥뜨리는 여러 가지 걸림돌도 영영 우리의 발목을 붙잡는 걸림돌로만 남는 것이 아니다. 관점을 바꾼다면, 우리를 성장시키는 주춧돌이 될 수도 있다. 모든 것은 에너지의 흐름이고, 천지 만물이 무상한 변화와 순환 속에 있다. 그렇다면 이 ‘무상함’이 우리에게 건네는 선물은 우리가 언제든 인생의 각본을 다시 쓸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p.34 경로 의존 이론은 폐쇄형 인격의 심리 상태를 매우 잘 설명해 준다. 폐쇄형 인격은 삶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 그는 사회가 이미 깔아놓은 경로를 열심히 따라가려고 한다. 그 길을 따를 때 자신이 갈망하는 것, 즉 사랑과 이익과 명성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똑똑하고 재능 있는 사람일수록 이 경로 위에서 ‘기득권자’가 되어 스스로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을 손에 넣는다. 그래서 오히려 이 경로에 더 깊이 의존하게 되고, 삶의 다른 가능성을 잃어버린다. ---p.60 그러므로 일하는 동안 몰입을 불러들이는 것뿐 아니라, ‘칼을 갈무리하는’ 기술도 배워야 한다. 일에 부드럽지만 확고한 경계를 세우고, 하루하루를 온전하게 마무리하는 ‘멈춤의 지점’을 만들어야 한다. 일과 사생활이 뒤엉키는 것은 대개 분명한 경계가 없기 때문이다. 퇴근할 때 자신만의 ‘칼을 거두는’ 의식을 만들어 보자. 복잡할 필요는 없다. 노트북을 덮고 모든 업무 창을 닫는 행동일 수도 있고,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는 일일 수도 있으며, 간단한 책상 정리일 수도 있다. ---p.146 포정이 추구한 도는 생명의 에너지를 세심하게 돌보는 일이다. 일에서 마주하는 도전 하나하나, 다른 사람과 나누는 상호작용 하나하나,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선택 하나하나가 모두 전환의 계기가 된다. 이를 통해 아집을 내려놓고, 타자의 말에 귀 기울이며, 구조에 순응하고, 막힌 흐름을 터주는 연습을 할 수 있다. 우리가 연마하는 것은 단지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아니다. 세상의 소란 속에서 내면의 에너지를 기르고, 마음을 맑게 지키는 힘을 단련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양생’, 즉 ‘생명의 에너지를 기르는 일’이다. ---p.152 장자는 순진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세속적인 가치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잘 알고 있었다. 생각해 보라. 사회와 타인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만 하면 풍부한 자원과 명성, 사랑을 얻을 수 있다. 이토록 강한 유혹 앞에서 길을 잃지 않을 만큼 굳센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p.180 모든 일을 허용하고 포용하며, 받아들일 수 있는 ‘텅 비고 어떤 구분에도 얽매이지 않는’ 마음이다. 마음을 골짜기처럼 비우면, 자연스럽게 깊은 안정을 얻을 수 있다. ---p.2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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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가 아니라, 내 몸과 마음에 흐르는
에너지를 다스리는 일 “붙잡으려 애쓰지 말고, 내 안의 흐름을 회복하라.” 10년 넘게 고대 철학을 연구하고 가르쳐온 저자에게 《장자》는 누구보다 익숙한 고전이었다. 그러나 서른여섯 살에 희귀한 만성 질환을 진단받으면서, 머리로 알고 있던 장자의 가르침은 현실의 고통 앞에서 힘을 잃었다. 저자는 《장자》를 처음부터 다시 읽기 시작한다. 그리고 비로소 자신이 일과 목표에 에너지를 쏟아부으며 극도의 ‘내적 소모’ 상태로 살아왔음을 깨닫는다. 장자가 바라본 세상의 본질은 ‘만화무상(萬化無常)’, 즉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한다는 것이다. 달이 차면 기울고, 밀물이 들어오면 다시 빠져나가듯이 얻음과 잃음, 성공과 실패, 기쁨과 괴로움도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변화하는 과정일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자연스러운 흐름을 거스르며 좋은 것은 붙잡고 나쁜 것은 밀어내려 한다. 더 많은 돈과 더 높은 성과, 타인의 인정과 안정된 미래를 붙들려고 한정된 생명 에너지를 끊임없이 바깥으로 쏟아붓는다. 저자는 우리가 삶에서 얻는 모든 것이 결국 다른 무언가와의 ‘에너지 교환’이라고 말한다. 눈앞의 성과를 얻는 대신 몸과 마음의 건강을 잃고, 타인의 인정을 얻는 대신 자기 삶의 가능성을 잃는다면 과연 그것을 ‘얻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장자의 핵심은 세상을 뜻대로 움직이는 데 있지 않다. 천하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몸과 마음에 흐르는 에너지를 다스리는 것. 그것이 장자가 말하는 삶의 기술이다. 그 중심에는 바로 ‘소요(逍遙)’가 있다. 소요란 아무것에도 붙잡히지 않은 채 변화의 흐름에 자신을 열어두고, 자신의 내면이 향하는 방향에 따라 자유롭게 움직이는 삶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무엇이 나를 고갈시키고 무엇이 나를 살아나게 하는지 알아차려야 한다. 《장자》에서 ‘도(道)’는 생명의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이 아니라, 기르고 순환시키는 방식이다. 억지로 힘을 써서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대신, 자신의 결을 알고 흐름을 따라 움직일 때 일하면서도 에너지는 고갈되지 않고 오히려 자라난다. 결국 내면의 에너지를 되찾는다는 것은 단순히 덜 일하고 더 쉬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끊임없이 변하는 세계를 붙잡으려 애쓰느라 자신의 생명 에너지를 소진하는 대신, 변화에 맞춰 움직이며 어디에 힘을 쓰고 어디에서 힘을 거둘 것인지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다. 세상을 통제하려는 힘을 내려놓고 자기 안의 에너지를 다스릴 때, 우리는 비로소 삶을 ‘소요’할 수 있다. “오래 일하고도 칼날이 무뎌지지 않는 사람처럼” 나를 소모해 성과와 맞바꾸지 않는 장자의 일의 기술 이 책에는 19년 동안 수천 마리의 소를 잡고도 칼날이 갓 숫돌에 간 것처럼 날카로운 요리사 ‘포정’이 등장한다. 보통 요리사는 한 달이면 칼을 바꾸고 솜씨 좋은 요리사도 일 년이면 칼을 바꾸는데, 어떻게 포정의 칼은 19년 동안 무뎌지지 않았을까? 비결은 힘을 덜 쓰는 데 있었다. 힘으로 밀어붙이는 ‘기술’의 단계를 넘어 흐름을 따르는 ‘도’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저자는 이 유명한 ‘포정해우(庖丁解牛)’의 우화에서 현대인의 일하는 방식을 돌아본다. 우리는 일이 어려울수록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고, 장애물을 만나면 정면으로 돌파하려 한다. 성과를 위해 자신의 에너지를 계속 태워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포정은 반대로 움직인다. 장애물과 맞서 싸우는 대신 그 사이의 틈을 찾고, 힘을 쏟아붓는 대신 가장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는 경로를 찾아낸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불합리한 제도부터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키는 상사와 동료까지 모두 내가 해결해야 할 ‘난제’로 받아들이면 에너지는 빠르게 고갈된다. 저자는 나와 일을 잠시 분리하고, 직장을 여러 업무와 절차, 인간관계가 얽힌 하나의 시스템으로 바라보라고 말한다. 모든 문제와 정면으로 맞서기보다 가장 원활하고 힘이 덜 드는 경로를 찾아 자신을 온전히 지킨 채 지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바로 포정에게서 배우는 일의 기술이다. 장자는 더 열심히 일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힘을 얼마나 많이 쓰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다. 저자는 자신의 에너지를 계속 태워 외부의 성과와 맞바꾸는 것을 ‘소모’의 방식이라 부르고, 일하는 동안 오히려 에너지가 자라고 순환하는 ‘도’의 방식을 제안한다. 목적은 더 높은 봉우리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흐름을 끊임없이 이어가는 데 있다. 성과를 위해 자신을 소진하는 대신, ‘일의 결’을 읽고, 몰입하며, 힘을 써야 할 곳과 흘려보내야 할 곳을 구분하는 것. 오래 일하고도 칼날이 무뎌지지 않았던 포정처럼, 나를 닳게 하지 않으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법이다. 《장자》는 23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에게 지속 가능하게 일하는 가장 오래된 기술을 들려준다. 고통을 없애려고 하지 마라, 그저 나를 통과하게 두어라 “슬퍼하고 분노하고 괴로워해도 괜찮다. 모든 감정은 지나가는 ‘때’가 있다.” 슬럼프에 빠졌을 때 우리는 어떻게든 빨리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려고 한다. 우울해하면 안 된다고, 이제 그만 털고 일어나야 한다고 자신을 다그친다. 그러나 저자는 정반대로 말한다. “한동안 슬퍼하고, 분노하고, 고통스러워해도 괜찮다고 자신에게 허락하라.” 슬럼프는 없애야 할 문제가 아니라 몸과 마음에 쌓인 독을 비워내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반응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인생이 슬럼프를 지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 시기가 스스로 물러갈 때까지 기다리는 것. 이것이 고통을 대하는 ‘장자식 태도’다. 장자가 살았던 전국시대는 생명의 안전조차 보장받지 못했던 혼란과 고통의 시대였다. “도덕과 가치관이 모두 허물어지고, 권력과 폭력, 교활한 술수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사회였다. 백성의 목숨은 벌레만큼이나 하찮게 여겨졌고, 형벌은 촘촘하고 잔혹했다.” 그런 시대를 살았던 장자가 고민한 것은 ‘고통을 어떻게 없앨 것인가가 아니라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도 어떻게 마음의 자유를 지킬 것인가’였다. 바로 그 답이 ‘초연함’과 ‘무정(無情)’이다. 무정은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사람이 되라는 뜻이 아니다. 장자는 기쁨과 슬픔, 고통과 질투, 후회와 원망 같은 감정이 그저 나를 ‘통과해’ 지나가도록 내버려두라고 말한다. 집착하지 않고, 얽매이지 않으며,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하늘을 흘러가는 구름에 비유한다. 감정은 구름처럼 자유롭게 펼쳐지도록 두면 된다. 햇빛이 비치든 비바람이 몰아치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언젠가는 흘러간다. 문제는 감정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붙잡고 막아서는 ‘나’다. 자아가 높은 산처럼 자연스러운 ‘흐름’을 가로막으면 구름은 빠져나가지 못하고, 오히려 거센 비바람을 만들어 불필요한 ‘자기 소모’를 일으킨다. 그렇다고 장자가 고통을 가볍게 여겼던 것은 아니다. 중병에 걸리고, 가까운 사람을 잃고, 배신과 상처를 겪었을 때 인간이 쉽게 초연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저자 역시 인정한다. 인간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삶의 중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고통받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붙잡아 더 오래 머물게 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감정을 억누르거나 뛰어넘으려 하지 않고 충분히 느끼되, 그것이 흘러갈 수 있도록 내버려두는 것. 지금의 괴로움 역시 나를 찾아온 하나의 과정일 뿐, 영원히 나를 규정하는 상태는 아니다. 저자는 장자를 두고 “한 사람이 이토록 막힘없이 삶을 꿰뚫어 볼 수 있다면, 길고 어두운 밤을 지나며 오랫동안 길을 찾아 헤맨 적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비로소 알게 되었을 것이다. “가장 밝게 빛나는 등불은 바로 자기 마음이라는 사실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