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책머리에
제1장 서론 제2장 두문동 72현의 이해와 인물 분석 Ⅰ. 절의파와 두문동 72현 Ⅱ. 두문동 관련 자료 Ⅲ. 72현의 인물 분석 제3장 고려 말 두문동 72현의 정치기반과 사상 Ⅰ. 고려 말 두문동 72현의 정치기반 Ⅱ. 정몽주의 생애와 사상 Ⅲ. 원천석의 생애와 사상 제4장 태조~태종대 두문동 72현의 정치성향과 사상 Ⅰ. 태조~태종대 두문동 72현의 정치성향 Ⅱ. 길재의 생애와 사상 Ⅲ. 이행의 생애와 사상 제5장 세종~세조대 두문동 72현의 사상 계승 Ⅰ. 하연의 생애와 사상 Ⅱ. 박서생의 생애와 사상 Ⅲ. 강석덕의 생애와 사상 Ⅳ. 박팽년의 생애와 사상 제6장 결론 부록 |
|
두문동 72현의 자료와 존재
조선 초기부터 절의를 지킨 충신에 대한 지속적이며 간헐적인 예우와 추숭이 조선 후기 영조 27년(1751) 두문동 72인의 충신에 대한 제사를 지내면서 역사상으로 드러났다. 두문동 72현은 누구인가? 그 구체적 인물상은 「두문동칠십이현록」과 「고려두문문동칠십이인」의 두 종류에 나타나 있으며 모두 조선 후기 자료라는 점에서 존재 여부의 신빙성을 두고 가타부타하지만, 이는 조선 초기부터 지속적으로 받은 예우와 추숭의 결과로써 남겨진 자료이다. 저자는 이들을 고서족보(古書族譜)를 통하여 일일이 대조 분석한 결과, 당대 실존한 인물이었음을 밝혔다. 두 종류의 자료가 존재하는 것은 고려 말 역성혁명을 반대한 사대부들 가운데 대표적인 두 세력으로서 정몽주당과 우현보당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조선 후기 당쟁의 가운데 남인과 노론의 입장에서 바라본 두문동 72현에 대한 견해도 달랐다. 남인들은 『기우집』 의 「두문동칠십이현록」에서 정몽주를 대표적 인물로 선정하였고, 노론들은 우현보를 대표적 인물로 선정한 「고려두문동칠십이인」의 출처인 『화해사전』을 서술하였다. 두문동 72현의 사상 계승과 의미 두문동 72현이란 용어는 ‘두문동’이 갖는 정치 사건과 ‘72현’이 의미하는 유학 사상(성리학)이 함께 함축되어 있다. 이들은 성리학의 대의명분을 올바르게 지키며 개국공신에 맞선 사상적 정치세력이었다. 정치적으로 두문동 72현은 고려 말 이색, 우현보, 정몽주 등이 중심이 되어 역성혁명을 전후하여 개국공신에 대립하는 정치세력으로서, 태조대 정치 탄압과 불합리한 정치 처우에도 불구하고 태종대 정치세력 내의 변화를 가져오면서 그 자손들이 대간 세력으로 성장하여 정치입지를 굳힌다. 이를 이어 두문동 72현의 자손들은 세종대 집현전학사뿐만 아니라, 재상의 반열에까지 오르는 등 조선의 정치세력을 이끌고 있다. 그러므로 조선 전기 정치세력의 흐름은 고려 말 절의파-두문동 72현-세종대 집현전학사-사육신-성종대 사림파 등으로 맥락을 잡을 수 있다. 또한 사상적으로 ‘72현’이 의미하는 것은 유학사상(성리학)의 도통(道統)이다. 조선의 국시(國是)는 성리학이다. 역성혁명을 반대한 근본이념은 바로 성리학의 대의명분에 있다. 두문동 72현은 단순히 충신이 아니라 성리학을 수용하고 이해하였으며, 이를 현실에서 행동으로 실천한 성리학자들이다. 이 책에서는 두문동 72현 가운데 대표적 인물로서 정몽주, 원천석, 길재, 이행 등과 그들의 사상을 계승한 하연, 박서생, 강석덕 그리고 사육신 박팽년 등 모두 8인의 사상을 살펴보았다. 대의명분을 따라 절의를 지킨 두문동 72현의 사상은 세종대 집현전 학사를 거쳐서 사육신으로까지 계승되면서 조선 초기 사상의 흐름을 주도하였다. 조선 초기 사상과 문화가 가장 꽃피웠던 시기를 이끌었던 세력은 두문동 72현의 자손들이었다. 이는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전환에서 사회 변혁을 이끈 진정한 주체는 역성혁명을 성공한 개국공신이 아니라 역성혁명을 반대한 두문동 72현이었음을 의미한다. 대의명분에 어긋난 행동은 시대와 사상을 불문하고 오늘날에도 적용되지 않을까 싶다. 두문동 72현의 진정한 화두는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 사고의 전환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