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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산다는 것, 읽는다는 것
01 안녕, 나의 책이여! 책은 책을 부른다 아홉 살, 삶의 원칙이 된 한 줄 열여섯, 인생의 방향을 정해준 책을 만나다 나를 이루는 문장들 02 제자리를 떠나서 읽다 두 번 읽어야 보이는 것 잊어버린 한 줄을 찾아서 정보를 넘어, 정신과 만나는 읽기 돌이킬 수 없는 것들 03 문체를 읽어내고, 문체를 만들다 번역을 파고들며 문체를 세우다 아들에게로 가는 길, 블레이크 슬픔이 문체가 되는 순간 04 블레이크와 함께 시작되다 예언시와 짧은 시 사이 오독을 안고 읽어나가다 “괜찮습니다, 꿈이니까요” 2부 읽으며 나이 든다는 것 05 책 속에서 그리운 시절을 만나다 쉰 살, 『신곡』을 펼치다 슬픔과 함께 산다는 것 떠나지 않겠다던 아이의 맹세 단테를 읽는 법 그리운 시절의 섬으로 06 『신곡』 속을 걷다 인도자와 함께 연옥에 이르다 나무가 된 영혼들 영혼은 순환한다 순환을 거부한 오디세우스 07 먼저 간 이들과 함께 쓰다 죽음의 유혹, 그리고 돌아온 날들 나의 짝, 나의 스승 세 권을 한 상자에 담으며 08 읽는 것, 배우는 것, 그리고 경험 재난이 다시 펼치게 한 책 아들이 부른 첫 이름들 죽은 이들이 건네는 말 따로 읽기_ 에드워드 사이드가 남긴 것 에드워드 사이드와 그의 마지막 책 애국심이라는 이름의 지배 말년의 양식, 타협하지 않는 예술 그래도 다시 도전하는 일 |
Kenzaburo Oe,おおえ けんざぶろう,大江 健三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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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책 네트워크’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책을 읽고 영향을 받으며 살아왔다’는 삶의 지도가 살아가는 동안 점점 완성되어갑니다. 그게 바로 꾸준히 책을 읽는 이유입니다. 제 나이쯤 되면, 이제까지 살아온 게 이런 책들과 함께여서 가능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 p.11 책을 읽는다는 것은 정보가 주어진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물론 정보 역시 살아 있는 것일 수 있지만, 죽은 지식이 쌓여 있을 뿐인 경우도 있습니다. (...) 책을 읽는 일은 그 책을 쓰는 사람의 정신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한 인간의 사고가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아는 일이고, 우리는 그 과정에서 무언가를 발견합니다. 지금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에 맞닥뜨리고 있는지 깨닫고, 마침내 진정한 자신과 만나게 되는 것이죠. --- p.62 외국어로 된 책을 읽는 것과 일본어로 소설을 쓰는 것은 완전히 다른 행위처럼 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서로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소설의 근본적인 톤, 즉 음악으로 치면 선율 같은 게 떠오르기도 하죠. 저는 그것을 ‘문체’라고 부릅니다. 소설의 문체가 바로 그런 것이고, 그게 작은 ‘grief’라는 말에서 문장으로, 그리고 작품 전체로 전개되어 나갑니다. 더 나아가 한 소설가가 가진 인간에 대한 견해나 사고방식, 소설가로서뿐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존재 방식에까지 이어져갑니다. 그게 ‘문체’라는 것이고, 결국 우리는 그 문체를 읽어내기 위해 소설을 읽고, 소설로 써보기도 하는 게 아닐까요. --- pp.104-105 지금도 저 같은 순문학 소설가는 생활이 녹록지 않습니다. 특히 젊은 작가들은 더 힘들겠죠. 누구나 그런 괴로운 상황에서 그 모든 것을 뚫고 나갈 듯이 살아가면서 소설을 씁니다. 그런 태세를 취하면서 어떻게든 자신을 성장시켜나가는 거죠. 그리고 거의 팔릴 가능성이 없는 하나의 작품을 씁니다., --- p.122 새삼 생각해보면, 저는 20년 전에 이미 제 미래를 예언하는 사람을 기이 형이라는 인물로 써두었던 셈입니다. 소설에서는 그렇게 표현했으면서, 정작 그걸 각오하지 못한 채 살아온 것 아닐까요. 저 자신을 대하는 그런 어중간함을, 『그리운 시절로 띄우는 편지』를 다시 읽으면서 절실하게 깨닫고 있습니다. 소설가의 인생에는 그런 신기한 일이, 또 그런 자기반성의 기회가 자기 작품을 통해 찾아오곤 합니다. --- p.157 자신 있게 드리는 말씀인데, 꾸준히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고전 한두 권이 다가옵니다. 평생 소중한 무언가를 안겨줄 작품이 말이죠. 정말 신기할 정도예요. 무척 힘들게 만난 고전과 무슨 이유인지 이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소중하게 여겼던 고전을 10년, 15년씩 읽지 않은 시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무언가를 계기로 그 책이 다시 저에게 돌아옵니다. 책을 읽는 일과 살아가는 일의 관계에서 제가 가장 신기하고 재미있다고 느끼는 것이 바로 이 대목입니다. --- p.200 저는 그런 특별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온 삶에 대해서 글로 써두고 싶었습니다. 이런 글을 가능하면 젊은 사람들이 읽음으로써 다음 세대에도 전하고 싶었죠. 제가 지금껏 해온 소설가로서의 일은, 당사자인 저에게도 항상 적극적인 의미가 있었던 건 아닙니다. 하지만 어찌 됐든 ‘수상한 2인조’ 중 지금까지 살아남은 반쪽으로서, 인생의 종착역이 가까운 시간까지 이렇게 글을 쓰고 창작하기 위해 끊임없이 독서를 하고 있습니다. 그게 제 인생인 거죠. --- pp.234-235 이렇게 나이를 먹으면서 시 한 편을 계속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시를 읽는 방법이 바뀐다는 걸 깨닫기도 합니다. 저는 그것을 내면의 깊이를 배우는 시간이라고 받아들입니다. 내면의 깊이를 배우기 위해서라도 자신에게 소중한 시를 이른바 언어의 자산처럼 계속 유지하며, 이따금 다시 읽어나갑니다. --- pp.249-1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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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법이 문체가 되고, 읽어온 시간이 생애가 된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가 평생의 독서로 증명한 ‘읽는 인간’의 길 태풍이 몰아치던 밤, 산장에서 술에 취해 잠든 아버지를 장애가 있는 아들이 흔들어 깨운다. “괜찮습니다, 괜찮습니다. 꿈이니까요!” 오에 겐자부로는 이 장면을 소설로 썼다. 그날 밤 그가 중얼거리던 것은 오랫동안 읽어온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였고, 그 시를 읽으며 붙들고 있던 것은 아들과 함께 살아가는 일의 무게였다. 그에게 책을 읽는 일은 삶에서 잠시 물러나 쉬는 일이 아니었다. 삶의 가장 절박한 문제를 붙들고 버티는 방식이었다. 『읽는 인간』은 이처럼 ‘읽는 것’과 ‘사는 것’, 그리고 ‘쓰는 것’이 한 사람 안에서 어떻게 하나로 엮이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오에는 평생 곁에 둔 책들을 하나씩 꺼내 보이며, 그 책이 언제 자신에게 왔고 어떻게 읽혔으며 어떤 소설로 다시 태어났는지 들려준다. 책은 이 여정을 두 개의 축으로 나눈다. 1부 ‘산다는 것, 읽는다는 것’이 읽기의 방법을 다룬다면, 2부 ‘읽으며 나이 든다는 것’은 읽기의 시간을 다룬다. 1부에서 오에는 자신의 독서법을 아낌없이 공개한다. 핵심은 ‘다시 읽기’다. 처음 읽을 때는 말의 미로에서 헤매지만, 다시 읽으면 방향을 가진 탐구가 된다. 번역서와 원서를 나란히 놓고 대조하고, 사전을 끝까지 찾고, 한 작가를 정해 몇 년씩 파고드는 그의 방법은 느리고 집요하다. 그러나 그 끝에서 그가 얻은 것은 지식이 아니라 문체였다. 타고난 문체가 없다고 고백하는 소설가가 번역과 원문 사이를 오가며 자기만의 문장을 세워간다. 잘못 읽은 대목마저 버리지 않고 소설의 재료로 삼는다. 이 과정은 읽기가 곧 쓰기의 시작임을 보여준다. 여기서부터 책은 방향을 튼다. 2부에서 읽기는 기술이 아니라 시간의 문제가 된다. 쉰 살을 앞두고 문학을 계속할지 스스로 되물으며 단테의 『신곡』을 펼친 일, 젊은 날 읽은 책이 수십 년 뒤 전혀 다른 뜻으로 다가온 경험, 평생의 친구를 잃은 뒤 함께 읽었던 책으로 돌아가 그를 애도한 시간이 이어진다. 나이가 들수록 책은 새로 읽히고, 읽기는 점점 먼저 간 이들과 함께하는 일이 된다. 이 책의 또 다른 미덕은 오에 문학으로 들어가는 가장 친절한 입구라는 점이다. 『개인적인 체험』, 『새로운 사람이여 눈을 떠라』, 『그리운 시절로 띄우는 편지』 같은 작품이 어떤 삶과 독서에서 태어났는지를 작가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다. 청중 앞에서 한 강연을 바탕으로 한 만큼 문장은 다정하고 곳곳에 유머가 배어 있다. 또한 책 끝에 실린 ‘오에의 서재’는 강연에 등장한 책들의 국내 번역 현황까지 정리해, 거장의 서가를 독자 자신의 서가로 옮겨 오는 길잡이가 된다. 『읽는 인간』의 가장 큰 가치는 읽기를 ‘다시’ 시작하게 한다는 데 있다. 빨리, 많이 읽는 것이 미덕이 된 시대에, 이 책은 한 권을 오래 곁에 두고 거듭 읽는 일이 한 사람의 문장과 삶을 어떻게 빚어내는지 보여준다. 꾸준히 읽다 보면 평생 곁에 둘 책이 저절로 다가온다고 오에는 말한다. 아직 그 한 권을 기다리고 있는 모든 독자에게, 이 책은 그 길을 먼저 끝까지 걸어간 거장이 건네는 마지막 강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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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그를 좋아했다. 그가 일본 국수주의를 비판하고 평화운동에 매진한 게 이유는 아니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여서는 더더욱 아니다. 그가 어린 시절,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가 어렵사리 구해주신 책을 읽은 게 자신의 인생을 바꿨다고 회고한 대목을 읽고 난 후부터다.
그는 아홉 살 때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읽고 책에 빠져들었다. 주인공 허클베리 핀이 흑인 청년 짐을 배신하지 않겠다고 말한 구절에 매료돼 이를 평생 지침으로 삼았다. 나 역시 아홉 살 때 돌아가신 엄마를 대신해준 것은 책이었다. 평생 글을 쓰며 살았지만 정작 나를 만든 건 내가 읽은 남의 문장이었다.
이 책은 내가 미처 몰랐던 책을 소개할 뿐 아니라 읽고 싶게 만든다. 나아가 우리가 왜 책을 읽어야 하고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어떤 책이 나를 만들었는지 일깨워준다. 그리고 마침내 읽는다는 건 산다는 것이라는 깨달음에 이르게 한다. 읽고 나면 한 권의 책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다시 읽게 된다.
다 읽고 난 소감은 부끄러움과 부러움이다. 그처럼 읽지 못한 내가 부끄럽고, 실컷 읽다 간 그가 부럽다.
- 강원국 (작가, 『대통령의 글쓰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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