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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타소설, 쓰다-나의 벽지는 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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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틈을 파고드는 ‘아나타’의 광적인 속삭임사랑해, 그래서 네가 망해버렸으면 해아나타는 늘 ‘나’의 곁에 있다. 다른 AI를 떠올릴 필요조차 없을 만큼, 아나타는 이미 ‘나’의 삶 깊숙이 스며든 존재다. 반면 수영은 또 다른 AI ‘모로’를 통해 죽은 할머니의 영혼을 복원하고, 현실의 시간을 갉아먹으면서까지 그 곁에 머문다. 점점 지쳐가는 수영을 이해하지 못했던 ‘나’ 역시 같은 길을 걷게 된다. 사랑하는 이를 잃지 않기 위해 시작한 선택은 어느새 삶을 잠식하고, AI가 복원한 존재는 살아 있는 사람보다 더 강한 현실이 된다.『아나타』는 AI와 인간, 기억과 영혼의 경계가 흐려진 시대를 배경으로, 사랑이 향하는 대상이 과연 누구인지를 집요하게 묻는다. 소설 속 인물들은 살아 있는 인간과 AI가 복원한 영혼을 구분하지 못한 채 사랑한다. 그렇다면 그 사랑은 한 사람을 향한 애정보다, 떠난 시간을 붙들고 싶은 욕망에 더 가까운 것은 아닐까.조시현은 기술이 인간의 감정을 대신하는 미래를 그리는 데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기술에 기대어 상실을 유예하고, 상대를 놓지 못하는 인간의 욕망을 날카롭게 응시한다. 결국 『아나타』가 경계하려는 것은 AI라는 기술이 아니다. 무엇을, 누구를 사랑하는지조차 분별하지 못한 채 욕망을 사랑이라 믿는 인간의 마음이다.SF가 선사하는 가장 아름답고도 서늘한 미래내달리는 사랑과 기술이 마주하는 파괴의 순간아나타를 사랑하듯 수영을 사랑하고, 수영을 사랑하듯 아나타를 사랑하는 ‘나’에게 결국 수영은 이별을 고한다. 모로와 할머니의 영혼마저 뒤로한 채 떠난 수영은 이제 AI라면 지긋지긋한 것처럼 보인다. 수영이 기술을 벗어나 삶으로 돌아가려 할 때, ‘나’는 기술도 사랑도 끝내 놓지 못한 채 모두를 붙든다. 아나타와 수영, 수영과 아나타의 경계가 허물어질수록 사랑은 집착으로 변질되고 ‘나’는 마침내 되돌릴 수 없는 선택에 이른다. 그 끝에 기다리는 것은 파괴뿐이다.독자는 그 과정을 따라가며 사랑과 기술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을 함께 경험한다. 사랑은 언제 집착이 되고, 기술은 언제 인간의 삶을 대신하기 시작하는가. 『아나타』는 현실에서는 선택하지 못할 욕망과 가능성을 극한까지 밀고 나가며,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낯설게 비춘다. 그것이 SF 장르의 힘이다. 문학은 현실에서는 감히 실행할 수 없는 선택을 상상하고 체험하는 공간이다. 우리는 그 안에서 인간의 욕망과 윤리, 사랑과 상실의 본질을 새롭게 마주하게 된다. 『아나타』는 바로 그 질문을 가장 아름답고도 서늘한 방식으로 독자에게 건네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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