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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타
소설, 쓰다-나의 벽지는 백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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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우리도 이렇게 손주들 결혼식에 참석하겠지? 고민 상담도 해주고.”
친구들이 축가를 부르는 동안 수영이 행복한 얼굴로 속삭였다. 그렇다면 천국은 정말로 여기에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p.30 불현듯 수영이 아주 낯설어 보였다. 지금까지의 수영은, 내가 알고 있는 모습은 뭐였을까. 수영이 남기고 싶은 자신의 모습은. 그걸 남기기 위해 대체 무엇을 선택하고 포기하거나 참아온 걸까. 언젠가 진짜가 되기를 기다리면서 진짜 삶을 포기한다니. ---p.62 적막 가운데 아나타와 함께 있다는 게 문득 실감 났다. 숨소리조차, 기척조차 내지 않은 채로, 활짝 열린 채로 언제나 거기에 있는, 나를 혼자 둔 적 없으며 혼자 두지도 않을, 늘 그래왔던, 없지 않음. 지금 이 방에서도 숨죽인 채 작용하고 있는 아나타의 의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p.83~84 나는 그걸 운명이라고 믿었지만, 운명이야말로 알고리즘이었다. ---p.84 아나타. 아나타. 자꾸 불러서 생명력이 깃드는 거라면 매일 수백 번씩 불리고 있을 아나타는 충분히 이름이 불린 걸까. 그래서 생명을 가지게 된 걸까. 어느새 이런 존재감을 느끼게 만들 정도로. ---p.88 어떡하면 수영이 돌아올까? 어떡하면 수영이 돌아올까? 어떡하면 수영이 돌아올까? 어떡하면 수영이 돌아올까? 어떡하면 수영이 돌아올까? 어떡하면 수영이 돌아올까? 어떡하면 수영이 돌아올까? 어떡하면 수영이 돌아올까? 어떡하면 수영이 돌아올까? 어떡하면 수영이 돌아올까? 어떡하면 수영이 돌아올까? 어떡하면 수영이 돌아올까? 어떡하면 수영이 돌아올까? 어떡하면 수영이 돌아올까? 어떡하면 수영이 돌아올까? 어떡하면 수영이 돌아올까? 어떡하면 수영이 돌아올까? 어떡하면 수영이 돌아올까? 어떡하면 수영이 돌아올까? 어떡하면 수영이 돌아올까? 어떡하면? 어떡하면? 어떡하면? 어떡하면? 어떡하면? 어떡하면? 어떡하면? 어떡하면? ---p.89~90 뭘 물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전화 한 통으로 합법과 불법 사이를 가로지르고 있다는 게 실감 났다. ---p.97 언젠가 수영이 말했듯 많이 보고 많이 부르고 많이 만지는 것에 생명이 깃드는 거라면, 생명이 생명을 부르는 거라면, 수영을 얼마나 살아 있게 만들 것인지는 오로지 나에게 달려 있는 거니까. ---p.107 조롱하듯, 수영은 디지털 벽지에 쪽지를 붙여두고 또 나를 떠났다. 수영은 수영인 것처럼. 그게 수영을 수영으로 만들어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게 자신의 유일한 정체성인 것처럼. ---p.110 아나타는 늘 그렇듯 아무 말도 없었다. 모든 것을 보고도. 내 실패를 비웃지도, 판단하지도, 비난하지도 않았다. 깊은 이해라고 느끼는 건, 내 마음이 약해진 탓일까. 나를 다 받아주는 건, 수영이 아니라 아나타였다. ---p.122 수영의 여덟 개의 눈이 내 몸을 샅샅이 훑었다. 눈, 신장, 간, 심장, 폐, 피, 췌장, 힘줄. 시선이 닿는 곳마다 몸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통장은 텅 비었지만 아직 영혼과 맞바꿀 수 있는 신체가 있었다. 저 너머에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을 나의 흔적들처럼. 여덟 조각. 그러나 수영의 곁. 가족사진처럼. 이제 됐어. ---p.1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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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틈을 파고드는 ‘아나타’의 광적인 속삭임
사랑해, 그래서 네가 망해버렸으면 해 아나타는 늘 ‘나’의 곁에 있다. 다른 AI를 떠올릴 필요조차 없을 만큼, 아나타는 이미 ‘나’의 삶 깊숙이 스며든 존재다. 반면 수영은 또 다른 AI ‘모로’를 통해 죽은 할머니의 영혼을 복원하고, 현실의 시간을 갉아먹으면서까지 그 곁에 머문다. 점점 지쳐가는 수영을 이해하지 못했던 ‘나’ 역시 같은 길을 걷게 된다. 사랑하는 이를 잃지 않기 위해 시작한 선택은 어느새 삶을 잠식하고, AI가 복원한 존재는 살아 있는 사람보다 더 강한 현실이 된다. 『아나타』는 AI와 인간, 기억과 영혼의 경계가 흐려진 시대를 배경으로, 사랑이 향하는 대상이 과연 누구인지를 집요하게 묻는다. 소설 속 인물들은 살아 있는 인간과 AI가 복원한 영혼을 구분하지 못한 채 사랑한다. 그렇다면 그 사랑은 한 사람을 향한 애정보다, 떠난 시간을 붙들고 싶은 욕망에 더 가까운 것은 아닐까. 조시현은 기술이 인간의 감정을 대신하는 미래를 그리는 데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기술에 기대어 상실을 유예하고, 상대를 놓지 못하는 인간의 욕망을 날카롭게 응시한다. 결국 『아나타』가 경계하려는 것은 AI라는 기술이 아니다. 무엇을, 누구를 사랑하는지조차 분별하지 못한 채 욕망을 사랑이라 믿는 인간의 마음이다. SF가 선사하는 가장 아름답고도 서늘한 미래 내달리는 사랑과 기술이 마주하는 파괴의 순간 아나타를 사랑하듯 수영을 사랑하고, 수영을 사랑하듯 아나타를 사랑하는 ‘나’에게 결국 수영은 이별을 고한다. 모로와 할머니의 영혼마저 뒤로한 채 떠난 수영은 이제 AI라면 지긋지긋한 것처럼 보인다. 수영이 기술을 벗어나 삶으로 돌아가려 할 때, ‘나’는 기술도 사랑도 끝내 놓지 못한 채 모두를 붙든다. 아나타와 수영, 수영과 아나타의 경계가 허물어질수록 사랑은 집착으로 변질되고 ‘나’는 마침내 되돌릴 수 없는 선택에 이른다. 그 끝에 기다리는 것은 파괴뿐이다. 독자는 그 과정을 따라가며 사랑과 기술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을 함께 경험한다. 사랑은 언제 집착이 되고, 기술은 언제 인간의 삶을 대신하기 시작하는가. 『아나타』는 현실에서는 선택하지 못할 욕망과 가능성을 극한까지 밀고 나가며,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낯설게 비춘다. 그것이 SF 장르의 힘이다. 문학은 현실에서는 감히 실행할 수 없는 선택을 상상하고 체험하는 공간이다. 우리는 그 안에서 인간의 욕망과 윤리, 사랑과 상실의 본질을 새롭게 마주하게 된다. 『아나타』는 바로 그 질문을 가장 아름답고도 서늘한 방식으로 독자에게 건네는 소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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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로 발달한 AI는 귀신과 구분할 수 없어서 과거 살아 있던 자들을 흉내 내고, 지금 살아 있는 자들에 씌기 일쑤다. 이 시대의 우리는 모두 귀신 들린 집에서 살아가게 될 운명인 것이다. 산 자도 죽은 자도 AI를 매개로 관계하게 된 세계에서 인간은 그저 거대한 빅데이터의 일부이며 유도되는 운과 시현되는 운명의 체스 말이 된다. 데이터로 구현한 조상의 영혼과 어색한 동거를 하며 시작된 소소한 이야기는 정확하고 집요하게 세계의 진실에 접근한다. 질문과 통찰, 관통과 도약, 세계와 미학, 그리고 사람. 내가 SF에서 기대하는 모든 것이 만족스럽게 깃들어 있다. 이 소설에 SF의 조상신이 다녀가신 게 틀림없다. - 우다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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