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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추천의 글 | 서문 | 한국어판 서문

Ⅰ 우리 모두의 팔레스타인

유럽 문제로서의 팔레스타인 : 가자 지구의 집단학살과 근대 500년의 식민주의

팔레스타인에서 추방된 유대인? | 집단학살이 끝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 하마스의 공격은 탈식민지화를 요구하는 저항 | 이스라엘 정부의 발표를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 집단학살은 어떤 체계를 통해 가능해졌는가 | 인문학으로부터 생각하다 | 가자 지구를 보면서 일본은 자국의 식민주의를 떠올릴 수 있는가 |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안락한 생활을 하는 자 | ‘인종’은 유럽 식민주의가 ‘발명’한 것 | 시오니즘 운동은 반유대주의에 대한 반응 | 국가 유지를 위해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이용하다 | 근대 학문에 내포된 인종주의

역사학자는 무엇을 물어야 하는가 : 독일 현대사 연구자들은 왜 팔레스타인 문제를 경시했는가?

나치즘 연구자는 나치즘을 제대로 직시하지 않는다 | 독일과 이스라엘을 이어주는 ‘배상’ | 두 차례의 역사가 논쟁 | 누구를 위한 ‘기억’인가 | 독일은 과거를 극복한 우등생인가 | “아우슈비츠는 유일무이한 악이다” | 노예제는 끝났는가 | 경제 문제, 노동 문제로서의 나치즘

Ⅱ 작은 역사로부터 생각한다

어느 서점 이야기 :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의 역사를 연결하기

두 전쟁의 연결 | 긴 척도로 문제를 파악하다 | 폴란드 서점 E. 노이슈타인 | 우크라이나-폴란드-이스라엘을 잇는 생애 | 이스라엘을 이끈 동유럽 출신자 | ‘국가(國家) 없는 민족’의 국가(國歌) | 시오니즘 운동은 드레퓌스 사건 이전에 시작되었다 | 민족운동의 모체가 된 지역 | 이주하여 국가를 건설한다는 발상 | 일본도 ‘외부자’가 아니다 | 적(敵)은 제도(制度), 아군은 모든 인간

식탁 위의 폭력 : 독일, 러시아, 이스라엘의 음식과 농업을 통한 폭력

우리 식탁에 존재하는 폭력 | 투기 자금이 초래하는 기아 | 푸틴의 농업 정책은 외교 무기 | 우크라이나의 곡물을 겨냥한 미국과 중국 | 국제곡물도시 오데사 | ‘기아 계획’을 주도한 헤르베르트 바케 | 홀로코스트의 그림자에 가려진 ‘정착과 기아’ | 굶으면 안 되는 사람과 굶어도 되는 사람 | 이스라엘의 음식과 물을 통한 폭력 | 기아는 ‘낮은 관심’에 의한 폭력

Ⅲ 좌담

‘진정한 의미의 세계사’를 배우기 위해

지금의 세계사는 지역사의 집합체일 뿐 | ‘서(West)’란 무엇인가? | 나치즘은 근대 서양적 가치관의 정수 | 음식을 통한 이스라엘의 폭력에 눈감은 것을 반성하다 | 우리의 생활은 여전히 노예제에 의존하고 있다 | 일본사, 서양사, 동양사라는 구분 | 서양사에서 팔레스타인 연구를 한다면 | 폴란드의 마다가스카르 계획 | ‘민족의 비애’를 지닌 폴란드의 대국주의 | 이스라엘 문제가 아니라 팔레스타인 문제 | 이스라엘 폭력의 기원은 동유럽에? | 지금 이스라엘의 방식은 이상하다 | 누르지 말아야 할 버튼 | 핵 시대의 세계사 | ‘반유대주의’라는 번역의 오류

마치며 | 옮긴이의 말 | 주

저자 소개 4

저오카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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おか まり ,岡 眞理

교토 대학교 대학원 인간·환경학연구과 교수를 거쳐 현재 와세다 대학교 문학학술원 교수. 현대 아랍 문학을 전공했으며 팔레스타인 문제를 주로 연구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가자에 지하철이 달리는 날》(마르코폴로, 2025), 《가자란 무엇인가》(두번째테제, 2024), 《기억?서사》(교유서가, 2024), 《그녀의 진정한 이름은 무엇인가》(현암사, 2016), 《대추야자나무 그늘 아래에서: 제3세계 페미니즘과 문학의 힘》, 《아랍, 기도로서의 문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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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고야마 사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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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山哲

교토 대학교 대학원 문학연구과 교수를 거쳐 현재 붓쿄 대학교 역사학부 특임교수. 중·동유럽사를 전공했으며 특히 폴란드사를 전문으로 연구한다. 함께 쓴 책으로 《중학생부터 알았으면 하는 우크라이나》, 《대학에서 배우는 서양사[근현대]》, 《인문학에 대한 접근법: 서양사를 배우다》 등이 있다.

저후지하라 다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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藤原辰史

교토 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교수. 독일 현대사를 전공했으며 특히 식량과 농업 정책의 측면에서 나치즘을 연구하는 데 주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주요 저서로 《먹는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유유, 2025), 《분해의 철학》(사월의책, 2022), 《전쟁과 농업》(따비, 2020), 《트랙터의 세계사》(팜커뮤니케이션, 2018), 《나치의 부엌》, 《중학생부터 알았으면 하는 우크라이나》(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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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중앙연구원 정치학 전공 조교수.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로 냉전사와 학술사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함께 쓴 책으로 《오늘의 한국 현대사(1·2)》, 《한반도 국제관계사의 재인식》 등이 있으며, 세계적인 냉전 연구자 오드 아르네 베스타의 《제국과 의로운 민족》, 《냉전의 지구사》(공역)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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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10월 06일
쪽수, 무게, 크기
208쪽 | 128*188*13mm
ISBN13
9791124638279

책 속으로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앞에 두고, 인간에게 어떻게 이토록 잔학한 짓을 할 수 있느냐고 묻는 것은 위선적이다”라고, 이탈리아의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렇게 되묻고 싶습니다.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오히려 그것은 도대체 어떤 체계(system)를 통해서 가능해졌는가 하는 것이 아닌가.” ‘체계’라는 말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이 거부권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 때문에 이스라엘은 지금까지 수많은 국제법 위반, 전쟁범죄, 반인도적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그때마다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해 한 번도 제재를 받지 않았습니다. 이 ‘이스라엘 불처벌’이라는 국제사회의 나쁜 ‘전통’이 21세기인 지금, 가자 지구 집단학살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80년 전 전쟁(제2차 세계대전)의 전승국이 세계 대부분 나라들의 의향을 거부할 수 있는 구조 자체가 부정의의 온상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국제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세계에는 이런 전쟁범죄를 공정하게 재판하는 체계 자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 pp.36-37

시오니즘도 서구 식민주의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양의 작은 제국이었던 일본도 예외는 아닙니다. 한때 일본이 중국 동북부에 만든 괴뢰국인 만주국에는 일본에서 “미개척지를 개척한다”는 선전을 통해 농민들이 바다를 건너왔는데 그곳에는 이미 논밭이 잘 정비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왜일까요? 한반도에서 온 이민자들, 일본의 식민주의를 통해 쫓겨난 사람들이 그 땅을 먼저 개척했기 때문입니다. 그 땅을 헐값에 사들여 무력으로 빼앗고 그곳에 일본 빈농을 정착시켰습니다. 그러자 그 땅의 중국인과 조선인들은 무기를 들고 저항하며 개척촌을 습격했습니다. 그런 그들을 일본인들은 ‘토비(土匪)’, ‘공비’라고 불렀고, 그들의 폭력이 싫다면서 총을 들고 정착을 추진했습니다. 이것은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들이 하고 있는 일과 겹칩니다.
--- p.75

동유럽에서 시오니즘과 같은 사고방식, 즉 국가 없는 민족이 차별과 박해를 받는 곳을 떠나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곳으로 이주해서 새로운 나라를 만들자는 발상은 이 지역에서 종속적인 입장에 놓인 다른 민족 집단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폴란드인 사이에서도 19세기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어딘가로 이주해 자신들만의 나라를 만드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논의가 나왔습니다. 볼레스와프 프루스(Bolesław Prus)라는 작가는 소설 〈복수(Zemsta)〉(1908년)에서, 독일령 폴란드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독일을 떠나 아프리카로 가자는 이념이 등장합니다. 대영제국의 지배를 받는 아프리카의 일부를 폴란드인이 물려받아 개척하여 신천지를 만들고, 그 이후 원주민도 폴란드인으로부터 유럽 문명을 배워 폴란드인을 문명의 교사로서 존경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독일이 폴란드인을 폭력적으로 지배하는 데 항의했던 프루스가, 유럽 열강이 무력으로 아프리카를 식민지화한 것을 비판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를 이용해 폴란드인의 나라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작품을 통해 이야기한 것입니다. 폴란드 민족운동도 유럽의 식민주의적 발상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죠.
--- pp.106-107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공격은 제초제 공격만이 아닙니다. (…) 건조지대에서는 수자원이 생사를 결정하는데, 이스라엘은 요르단강의 물과 지하수를 차례로 에워싸고 벽을 세워 팔레스타인 농민들이 농사를 짓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것도 바로 추방과 기아입니다. (…) 예를 들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오렌지가 아닌 채소를 생산하라고 압력을 가했습니다. 오렌지밭은 채소밭보다 2배의 물을 쓰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스라엘은 정착지에 계속해서 우물을 팝니다. 1984년 당시 가자 지구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1인당 물 소비량은 겨우 200세제곱미터인 반면, 이스라엘 정착민 1인당 물 소비량은 1만 4200~2만 8400세제곱미터에 달합니다. 물론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식수조차 예전처럼 자유롭게 쓸 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기업에서 물을 구입해야만 하는 상태로 내몰린 것입니다. 이런 팔레스타인의 상황은 이후 사반세기가 지나도록 개선되기는커녕 더욱 악화하고 있습니다. (…) 가자 지구도, 요르단강 서안 지구도, 이스라엘에 편리한 방식대로 물과 토지가 지배되고 있습니다. 그 결정판으로, 2007년부터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를 봉쇄하고 이듬해부터 식량, 의류, 전기 공급을 제한하기 시작했습니다. 한마디로 가자 지구는 ‘푸른 하늘이 보이는 감옥’입니다. 먹을 것도 잃고, 전기로 하수 처리를 할 수도 없어서 지하수와 바다도 오염됩니다.
--- pp.140-141

러시아 제국 내 유대교도 거주구에 모여 살던 사람들 중에는 상당히 세속적인 유대교도도 많고, 유대교 고유의 전통을 벗어나 근대 유럽 사회에 적응하려는 하스칼라(Haskalah) 운동의 영향으로 개인의 해방을 추구하는 유대교도도 많았습니다. 동화(同化)를 지향했던 그들은 전통적인 교육기관(예시바yeshiva)에서 탈무드를 배우기보다는 러시아 영내 대학에 진학하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러시아의 대학을 나와도 취직할 수 있는 직업은 제한되었고, 포그롬도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그들이 매우 ‘혁명적’으로 바뀌어가는 흐름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공산주의자 동맹에 참가하거나 멘셰비키 혹은 볼셰비키 정당에 들어가기도 하고, 때로는 시오니스트가 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다만 그들에게 공통적인 것은 바로 혁명을 긍정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이렇게 ‘혁명적’ 폭력에는 합당한 이치가 있다는 사상을 지닌 시오니스트들이 팔레스타인에 정착해갔습니다. (…) 야코브 라브킨(Yakov Rabkin)은 정착민 식민주의와는 또 다른 각도에서 이스라엘을 조명하며, 폭력을 통해 사회를 바꾸려는 동유럽 사람들의 정신구조(멘탈리티)가 지금의 이스라엘의 본질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학술적으로 검증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건국 이래 동유럽 출신 유대인이 줄곧 이스라엘의 정치적·군사적 지도자가 되어왔고, 이들의 사상적 조상들이 근대사를 거치면서 혁명적 폭력에 매료되어간 점, 그리고 현재에도 여전히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은 그 연결고리를 충분히 짐작게 합니다.
--- pp.172-173

출판사 리뷰

오카 마리의 질문, “이것이 왜 세계사가 아니란 말인가”

가자 지구에서 우크라이나까지, 홀로코스트에서 식탁 위 기아까지
유럽-중동-아시아를 잇는 ‘글로벌 히스토리’로 새로운 팔레스타인을 만난다

“이것은 집단학살 전쟁범죄이며, 우리도 외부자가 아니다!”
- 팔레스타인은 왜 ‘우리 모두’의 문제인가

오늘날의 팔레스타인 문제에는 근대 500년 세계사의 여러 모순이 응축되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는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유대인 25만 명이 갈 곳을 잃고 난민이 되었고, 유엔은 이 유대인 난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팔레스타인에 ‘유대 국가’를 만들 것을 결의했다(1947년 11월). 그 직후부터 팔레스타인에서는 점령, 집단학살, 강간, 강제추방 등 대대적인 ‘민족청소’가 벌어졌고, 그 결과 팔레스타인 주민 75만 명이 고향에서 쫓겨나 난민이 되었다. 즉 유엔은 25만 명의 유대인 난민 문제를 해결하려다가 75만 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난민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렇게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청소’한 땅에서 ‘유대 국가’임을 내세우는 이스라엘이 건국되었다(1948년 5월). 세계가 나치 독일이 저지른 범죄의 뒤처리를 위해, 이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대가를 지불하도록 한 것이다. 유엔은 이후 80년이 지나도록 해결되지 않는 분쟁의 씨앗을 스스로 뿌렸고, 그 부정의는 이제 가자(Gaza) 지구와 요르단강 서안 지구의 집단학살 사태에 이르렀다.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집단학살’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유대인의 홀로코스트와 시오니즘(새로운 땅에 유대인의 나라를 세워야 한다는 사상)을, 홀로코스트와 시오니즘을 이해하려면 러시아와 동유럽의 ‘종족 민족주의’를, 나아가 오늘날의 전쟁과 기아를 이해하려면 자본주의와 식민주의가 만들어온 세계적 연결망을 함께 살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문제의식이다.

· 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집단학살하는가.

2023년 10월 7일,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 전투원들이 이스라엘 영내로 넘어가 기습공격을 감행하자 이스라엘의 끔찍한 공격이 시작되었다. 이스라엘 정부는 이를 “이슬람 조직 하마스(Hamas)의 테러에 대한 이스라엘의 자위 전쟁”이라고 떠들어대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가자 지구는 이미 1967년 이래 이스라엘의 점령 아래 있었고, 2007년부터 지금까지도 이스라엘의 봉쇄가 지속되면서 ‘세계 최대의 야외 감옥’으로 불려왔다. 그럼에도 이번 이스라엘의 공격은 집단학살 연구자들이 “교과서에 실릴 만한” 전형적인 집단학살이라고 단언할 정도로 차원이 다른 공격이었다. 또한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기아로 가자 지구 주민의 절반 이상이 괴멸 상태에 이르러 지금은 절멸수용소나 다름없다.

사람만 대량 살육되는 것이 아니다. 지중해 세계에서 인류 문명의 역사를 중층적으로 일궈온 가자 지역의 역사적인 모스크와 교회, 박물관, 도서관 등이 표적이 되어 무너졌다. 역사적 진공 지대로 만들어서, ‘팔레스타인인’이라는 역사적·정치적 존재를 지상에서 지워버리려는 것이다. 1948년 이래로 오늘날까지 끊임없이 계속돼온 민족청소(점진적인 집단학살) 완수가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지금 가자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 유대인 ‘(민족)청소’가 어떻게 팔레스타인인 ‘청소’로 이어졌는가.

홀로코스트(유대인 집단학살)라는 사건에 대한 우리의 인식 또한 단편적이다. 일반적으로 홀로코스트는 나치 독일의 아우슈비츠 수용소 등에서 자행된 컨베이어 벨트식의 체계적인 살해라는 이미지가 있지만, 중요한 것은 이 유대인 ‘청소’와 팔레스타인인 ‘청소’가 역사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동유럽 지역에서 일어난 배타적 ‘종족 민족주의’와 ‘민족청소’의 폭력이 시오니즘 탄생의 배경이 되었고, 이들 시오니스트들이 팔레스타인에 정착해 이스라엘을 건국하면서 자신들이 당한 것과 똑같은 폭력을 자행한 것이다.
원래 독실한 유대교도는 처음부터 시오니즘을 비판하고 반대해왔다. 이에 대해 시오니스트들은 “유럽에서 홀로코스트에 희생된 유대인들은 저항도 하지 않고 순순히 죽임을 당한, 기개를 잃은 유대인”이며, 반면에 “조국을 지키기 위해 무기를 들고 싸우는” 자신들을 “새로운 유대인”이라고 했다(그래서 이스라엘로 건너간 홀로코스트 생환자들은 멸시를 받았다). 그런데 이스라엘 건국 후 세계 곳곳에서 많은 유대교도가 이스라엘로 이주하자, 이들 다종다양한 유대인을 어떻게 ‘국민’으로 통합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생겼다. 그때 ‘발견’된 것이 홀로코스트였다.

이스라엘은 “언제 제2의 홀로코스트가 발생할지 모른다”면서, ‘유대 국가’ 유지를 위해 점령을 확대하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즉 ‘박해받은 유대인’이라는 피해자 서사로서 홀로코스트에 대한 ‘기억’을 독점하고 특권화하면서, 시오니즘 비판 자체를 반유대주의라고 공격하며 자신들의 폭력을 정당화하고 있는 것이다.

· ‘유대인의 나라’를 꿈꾼 시오니즘이 어떻게 역설적으로 유럽의 반유대주의와 결탁해갔는가.

그런데 이들 시오니스트들과 결탁한 세력이 아이러니하게도 유럽의 반유대주의 세력이다. 애초에 시오니즘 운동을 지원했던 영국도, 또 1947년 유엔이 팔레스타인을 분할하기로 결의한 것도 “그들은 본래 유럽 사람이 아니고 팔레스타인에 있던 자들이니, 그곳에 그들의 나라를 만드는 것이 합당하다”는 인종주의에 근거한 인식 때문이었다(유럽에서 떠나주기를 바랐다). 특히 독일은 나치의 홀로코스트에 대한 반성의 징표로서, 희생자인 유대인의 조국이라 자칭하는 이스라엘을 정치적·군사적으로 계속 지원하고 옹호해왔다(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을 반유대주의로 간주하며 탄압했다). 이러는 가운데 또 다른 희생자인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거듭된 희생을 강요받고 있다.

‘진정한 의미의 세계사’를 배우기 위해

이 외에도 이 책은 현재 세계의 두 전쟁, 즉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우크라이나는 팔레스타인으로 건너간 유대인들의 고향이었다),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위치한 한 폴란드 서점을 통해 우크라이나-폴란드-이스라엘을 잇는 동유럽 유대인들의 팔레스타인 정착의 역사를 되짚어본다. 또한 우리 식탁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폭력의 실상을 식민주의와 거대한 곡물 카르텔, 식량을 무기화한 기아(飢餓) 정책 등을 통해 살펴보면서, 이러한 폭력이 팔레스타인에서 어떻게 펼쳐지고 있는지를 들여다본다.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인종주의와 민족주의, 전쟁과 폭력이 우리 일상의 ‘작은 역사’ 곳곳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유대인 집단학살이 단지 종교 대립이 아니었듯, 베트남과 아일랜드와 알제리의 독립 문제가 단순한 영토 싸움이 아니었듯, 팔레스타인을 둘러싼 문제 역시 종교 대립도, 영토 싸움도 아니다. 우리는 가자 지구 집단학살과 팔레스타인 민족청소를 ‘이슬람 테러 조직’ 대 ‘이스라엘의 자위권’의 전쟁으로 환원하려는 시도에 맞서 문제의 근원을 확실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은, 우리의 지식을 만들어온 서양 중심의 지역별로 분할된 역사를 대신할 ‘새로운 세계사’다. 즉 근대 500년의 역사를 거치며 지구적 차원으로 형성된 ‘역사의 지맥(地脈)’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이 현대 세계를 이해하려는 ‘글로벌 히스토리(지구사)’다. 이 책은 그 작은 첫걸음이다.

추천평

“팔레스타인의 ‘대재앙(나크바)’과 이스라엘의 시오니즘,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의 디아스포라, 홀로코스트와 가자 전쟁 등 중동을 무대로 복잡하게 얽힌 세계사적 사건들을 자기 문제로 끌어들여 사유하는 일본 지식인들의 비판적 감수성과 학문적 전문성이 돋보인다. 팔레스타인과 대만, ‘조센징’ 학살과 반유대주의, 나치 독일의 동유럽 점령과 일본의 만주 지배, 우크라이나 전쟁과 곡물 카르텔, 기아와 폭력, 폴란드-우크라이나-이스라엘의 국가(國歌)를 엮어서 볼 수 있는 안목은 ‘제국의 지식인’이라는 위치성에 대한 통절한 비판이 전제되어야 가능했을 것이다. 저자 중 한 사람인 고야마 사토시의 표현을 빌리면, ‘일본도 외부자가 아니다.’ 물론 한국도 외부자일 수 없다.” - 임지현 (서강대학교 석좌교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삶의 터전이자 존재의 근거를 박탈당한 일은 한반도 분단과 더불어 20세기 국제관계사에서 최악의 사건으로 기록될 만하다. 우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 참혹한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타는 목마름으로’ 기원한다. 그러나 이를 가로막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이스라엘의 시오니스트들과 결탁한 동유럽·서유럽의 반유대주의 세력이다. 홀로코스트를 특권화하며 이스라엘 정부를 무조건 옹호하는 것도 반유대주의와의 결탁이다. 독일이 저지른 홀로코스트에 대해 속죄하려면 팔레스타인이 아니라 독일 땅을 피해자들에게 떼어주라. 게으르고 무책임한 인문학과 ‘나의 무신경’이 팔레스타인의 지옥 고통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이 책은 보여준다.” - 한정숙 (서울대학교 역사학부 명예교수)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유대인의 오랜 방랑’은 역사적 근거가 전혀 없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에 대한 학살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런 그릇된 인식을 오랫동안 유포해왔다. 이스라엘의 시오니즘은 반유대주의의 인종주의를 적극 받아들였으며, 독일은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를 초래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이스라엘에 군사 지원을 제공했다. 또 하나의 전장인 우크라이나는 팔레스타인으로 건너간 유대인들의 고향이었다. 이 책은 전무후무한 집단학살의 깊은 역사성을 쉽게 풀어낸다. 특히 가자 지구의 참상을 보며 자국의 식민지배와 전쟁범죄를 떠올리는 일본 연구자들의 양심이 돋보인다.” - 전진성 (부산교육대학교 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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