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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개의 이름
정수일 평전
차병직 저
창비 2026.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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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추천의 말
책을 펴내며: 길 위에 새긴 이름

제1장 운명의 서막
제2장 실개천을 넘어
제3장 새로운 고통
제4장 중국의 대학생
제5장 남은 절차
제6장 아프리카의 꿈
제7장 이집트에서
제8장 알제리전쟁
제9장 새장 속의 연구실
제10장 먼저 찾은 반쪽의 조국
제11장 그림자의 삶
제12장 이국의 방랑자
제13장 낯선 조국 서툰 이국인
제14장 열린 연구실
제15장 대답 없는 질문
제16장 아버지의 편지
제17장 꿈, 여행, 휴식

에필로그
주

저자 소개 1

사회 한가운데서 법의 역할을 질문하는 변호사. 변론 활동과 시민운동, 대학 강의와 저술을 병행하며 법률가의 소임을 확장하고 실천해왔다. 현재 『법률신문』 편집인과 법무법인 클라스한결의 고문 변호사로 있다. 20년 동안 정수일의 곁에서 법적 조언과 개인적 교류를 이어가며 동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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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10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496쪽 | 140*210*24mm
ISBN13
9788936481667

출판사 리뷰

일곱개의 이름으로 살아야 했던 사람
그리고 목숨보다 소중했던 학문

이 책은 1996년 11월 28일의 법정 장면에서 시작한다. 이날 대한민국 검찰은 체포된 위장간첩 ‘무함마드 깐수’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선고를 앞둔 피고인 깐수, 즉 이제는 ‘정수일’로 밝혀진 역사학자의 머릿속에는 지난 60여년의 생애가 폭풍처럼 지나간다. 그리고 이어진 최후진술에서 정수일은 자신의 목숨 대신 다른 것을 간청한다. “저는 어떤 처벌을 받더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다만 한가지 간곡한 부탁을 드리고자 합니다. 압수된 컴퓨터에 저장된 ‘고대 동서교류사’에 관한 저의 졸고만은 꼭 살려내주십시오. 그것만은 살려주십시오.”(18면) 사형을 눈앞에 두고도 끝내 미련을 놓지 못한 것이 다름 아닌 연구성과였다는 이 장면은 그의 복잡한 생애의 연장선에서 깊은 인상을 남긴다.

면회를 온 아내에게 이제 ‘깐수’가 아니라 ‘정수일’로 처음 서게 되는 장면에서 그는 자신을 다시 소개할 필요를 느낀다. 만주국의 화전민 마을에서 태어난 조선인 소년, 전도유망한 베이징대학 학생, 신중국 최초의 아랍 지역 국비유학생이자 외교관, 북한의 대학교수, 남파 공작원, 위장 외국인 신분으로 살았던 남한의 역사학자이자 대학교수…… 이 책은 그렇게 자기를 소개하는 정수일의 시점을 따라간다.

20세기를 온전히 품은 역사적 인물의 일생
만주국 조선인 소년에서 남한의 역사학자가 되기까지

정수일의 출발점부터가 20세기를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1934년 지금은 사라진 만주국의 화전민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집에서는 조선어를, 학교에서는 일본어를, 바깥 사회에서는 중국어를 사용하며 자랐다. 하나의 언어와 하나의 국가, 하나의 정체성만으로 자신을 규정하기 어려운 삶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시작된 셈이다. 2차대전이 끝나고 만주국이 해산되자 중국 내전이 이어졌다. 조선인으로서 해방의 기쁨을 함께 체험했으나 얼마 안 있어 정수일과 그의 가족들은 신중국의 소수민족인 조선족 주민이 되었다.

그는 신중국 최초로 실시된 전국 단위의 대학 입시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베이징대학에 진학해 아랍어를 공부한다. 이후 총리 저우언라이의 특별 지시로 마련된 국비유학 프로그램에 선발되어 이집트로 건너가 아랍어와 아랍 지역을 공부했다. 장차 외교관으로 활동하기 위해서였다. 짧지만 강렬한 유학 기간을 마치고 중국의 공식 외교관이 되어 모로코 주재 대사관에서 일하게 된 정수일은 그곳에서 국제 감각을 익히는 한편 인근의 알제리 독립전쟁을 목격하며 민족의식을 점차 강렬하게 느끼게 된다. 중국에서 안정적인 외교관의 삶을 이어갈 수도 있었지만 그는 결국 ‘조국’ 북한행을 선택한다.

가족과 함께 평양에 도착한 정수일은 아랍어 전공 경력을 인정받아 대학에서 아랍어를 가르치며 정착한다. 보람있고 안락한 생활이었다. 또한 학문적 관심을 아랍 지역에서 동서 문명교류로 확장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러나 시대는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1974년 어느날, 정부 관계자가 찾아와 통일 사업의 일익이 될 공작원 활동을 제안했고, 그는 받아들였다. 그렇게 20년 넘게 이어질 공작원 생활이 시작됐다.

혹독한 훈련 과정을 거친 정수일은 가족을 뒤로 하고 공작활동을 위해 출국했다. 여러 국가를 떠돌며 위장 신분을 만들었고, 현지에서 자리를 잡아 남한으로 들어가기 위한 기회를 엿보았다. 레바논, 튀니지, 말레이시아, 파푸아뉴기니, 필리핀을 거쳤다. 그 수년의 시간 동안 석사학위를 따냈고 연구원 및 대학강사 경력을 쌓았다. 레바논과 필리핀 국적도 연달아 취득했다. 그리고 1984년 레바논계 필리핀인 신분 ‘무함마드 깐수’로 남한에 입국했다.

한국어학당을 거쳐 단국대학교 박사과정에 입학한 그는 한국 학계에 아랍어 원전을 활용하는 연구자로 등장해 주목받으며, 학위를 마친 뒤 단국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임용되었다. 방송 출연과 언론 기고도 했다. 그리고 생의 마지막까지 반려가 되어준 남쪽의 부인을 만나 결혼했다. 무엇보다 맹렬하게 연구하고 가르쳤다. 실크로드가 한반도까지 이어져 있었고 동서 문명교류에 있어서 신라가 분명한 존재감이 있었음을 알렸다. 그 기간에도 첩보 활동은 이어졌다. 10년 넘게 이어진 이중생활이었다.

깐수이자 정수일, 공작원이자 학자
닫힌 감옥에서 세계를 읽다

1996년 그가 국가안전기획부에 체포되면서 ‘깐수’라는 이름 뒤에 숨어 있던 정수일의 과거가 한꺼번에 드러났다. 아내와 동료, 제자뿐 아니라 그를 변호하러 온 이들마저 자신이 알고 있던 사람이 누구인지 다시 물어야 했다. “너는 깐수가 아니지?”라는 수사관의 질문 앞에서 그 자신조차 단순하게 답할 수 없었다. 그는 이미 정수일인 동시에 깐수였기 때문이다. 이름을 바꾸고 국경을 건넌 것은 때로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지만 분명히 이념적 신념의 결과였다. 한 인간의 삶 안에서 그 선택들은 쉽게 분리되지 않는다고 저자는 기록한다.

감옥은 그의 연구를 멈추지 못했다. 오히려 그는 감옥을 하나의 연구실로 바꾼다. 『이븐 바투타 여행기』를 아랍어 원전에서 우리말로 옮겼고, 『실크로드학』을 완성했으며, 『고대문명교류사』를 비롯해 출소 이후 책이 될 방대한 원고를 써나갔다.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분량의 책을 읽으며 연구했다. 아내의 헌신적인 옥바라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가석방으로 출소하는 당일에도 소란이 있었다. 교정 당국이 기록 반출을 불허했기 때문이다. 원고와 함께 나가지 않는다면 자신도 출소하지 않겠다며 교정 당국에 강경하게 맞서는 정수일의 모습은 사형 구형 법정의 최후진술 장면과 수미상관을 이룬다.

정수일은 자기 학문을 힘으로 밀어붙였다. 번득이는 통찰력이나 날카로운 지성보다는 집념과 끈기로 쟁기질하듯 읽고 쓰고 걷기를 멈추지 않았다. 일상 속에서 몇시간 집중하여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적게 자고 많이 확보한 시간에 파묻혀 성과를 냈다.(458면)

그 원고들은 차례로 세상에 나왔다. 출소 바로 이듬해 옥중에서 작업한 3종의 책이 출간되었다. 특히 『실크로드학』은 실크로드의 역사와 문명교류를 하나의 학문적 체계 안에서 파악하려 한 그의 대표작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정수일은 실크로드를 단순한 동서교역의 통로가 아니라 인간과 사상, 종교와 기술, 물질과 문화가 이동하고 뒤섞이는 문명교류의 길로 바라보았다. 그에게 실크로드는 어느 한곳에서 시작해 한곳으로 끝나는 길이 아니었다. 서로 다른 공동체들이 만나 인류의 세계를 형성하는, “혈관처럼 시작도 끝도 없이 순환하는 통로”였다. 그가 걸어온 파란만장했던 삶의 행로도 그와 닮아 있었다. 정수일의 삶과 실크로드는 이렇게 대위법적으로 어울렸다고 저자는 말한다.

열린 세상에서 다시 길 위로 나서다
경계를 넘나든 인간 정수일의 신념과 열정

2000년 출소 이후 정수일에게는 뒤늦게 ‘자유롭게 공부할 시간’이 찾아온다. 그러나 이미 그는 60대 중반이었다. 대학은 그를 다시 받아들이지 않았고 한동안 주민등록과 여권조차 제대로 갖지 못했다. 그럼에도 출판과 강연, 답사를 통해 다시 연구의 세계로 들어갔다. 여권을 발급받은 뒤 그의 연구는 책상에서 세계의 현장으로 이동했다. 2005년 중앙아시아를 시작으로 실크로드의 육로와 해로, 초원로를 직접 밟았고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유럽까지 답사를 이어갔다. 현지의 작은 안내판 하나, 가이드의 설명 한마디도 흘려듣지 않았다. 이미 해당 분야의 권위자로 알려진 뒤에도 처음 배우는 학생처럼 듣고 기록했다.

그의 주변에는 사람들이 모였다. 2008년 한국문명교류연구소가 만들어지면서 정수일에게는 대학 대신 새로운 연구실이 생겼다. 그곳에서 연구하고, 강의하고, 책을 쓰고, 제자와 독자들을 이끌고 답사를 떠났다. 『실크로드 사전』과 『실크로드 도록』, 여러권의 문명기행록은 이러한 만년의 작업에서 태어났다. 아흔을 넘긴 뒤에도 정수일은 멈추지 않았다. 심장 질환으로 건강이 급격히 나빠진 뒤에도 문명교류학 강의를 열어 원고를 완성해갔다. 병원에 입원하고 혼수상태를 겪은 뒤에도 유작 『문명교류학』 교정지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2025년 2월 24일 그는 남북의 가족과 남은 연구과제들을 뒤로 하고 세상을 떠났다.

저자 차병직은 그를 흔히 말하는 ‘경계인’으로 불러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정수일은 경계에 서서 어느 편에도 가지 못한 사람이기보다 끊임없이 그 경계를 넘어간 사람이었다. 그는 때로는 신념에 따라, 때로는 임무에 따라, 때로는 학문적 호기심에 이끌려 다음 길을 선택했다. 정수일이 마지막까지 탐구한 문명교류학 역시 경계를 넘어 교류함으로써 인류 보편의 가치를 만들어가자는 제안이다. 저자는 그 모든 선택을 옹호하지도, 하나의 잣대로 심판하지도 않는다. 대신 한 인간이 어떤 시대와 조건 속에서 무엇을 선택했고 그 결과 어떤 삶을 갖게 되었는지를 끝까지 들여다본다.

정수일은 어떤 조건의 경계에도 구애받지 않았다. 내면의 신념을 지키고 목표를 유지하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도전하고 타협하며 상황을 받아들였다. 그는 경계에서 머뭇거리지 않고 경계를 넘나들었다. 그는 미로 같은 삶의 길을 걸으며 항상 다른 길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10면)

끝내 문명교류 연구의 길을 열어젖힌 정수일의 삶
한 인간에게 끝까지 남는 것은 무엇인가

저자 차병직은 정수일과 20여년 가까이 교류했다. 광화문과 서촌 일대에서 수없이 점심을 먹으며 두시간 가까이 그의 이야기를 듣고, 사무실로 돌아와 기억을 되짚어 기록했다. 정수일과 함께 여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평전을 쓰기 시작하면서 저자는 자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정수일에게서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결점과 모순을 발견한다. 정수일 자신의 기억과 회고를 그대로 받아쓰는 대신 재판기록과 저작, 동시대 자료, 여러 사람의 증언을 대조한다. 사실과 맞지 않는 기억은 바로잡고, 학문적 업적 가운데 과장된 부분 역시 차분히 되짚는다. 저자는 한 인간의 장점뿐 아니라 결점이 모습을 드러낼 때에야 비로소 그 인간을 더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저자가 끝내 정수일에게서 발견하는 것은 학문과 삶에 임하는 태도다. 어떤 제도에도 제대로 속하지 못하고 대학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던 그는 책상만 있다면 어느 곳이든 연구실로 만들었다. 북한의 폐쇄된 사회에서도, 신분을 숨긴 해외 생활에서도, 감옥에서도, 출소 뒤의 재야에서도 읽고 쓰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자신을 둘러싼 조건을 바꿀 수 없다면 그 조건 안에서 자신이 원하는 일을 계속하는 것. 그것이 정수일이 평생 유지한 삶의 방식이었다.

문학평론가 백낙청은 이 평전을 두고 정수일의 “가장 완성도 높은 작품은 그의 저서와 생애를 합친 것”이라는 책의 주장에 독자 또한 공감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한 인간에게 끝까지 남는 것은 무엇인가. 역사 속 개인의 선택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그리고 한 사람의 생애를 평가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평전이 정수일 선생의 유일무이한 삶을 소개하며 독자들에게 건네고 싶어하는 질문은 바로 이런 것들이다.

추천평

고 위공 정수일 선생의 출현은 한국 학계의 홍복이자 하나의 기적이었다. 신분을 숨기고 한국에 입국하기까지의 시간을 ‘구절양장의 장도’로 스스로 표현한 바 있지만 한국의 학자로 정착하기까지는 다시 혹독한 통과의례를 치러야 했다. 소설 같고 영화 같은 그 생애를 평전의 저자 차병직은 한편의 드라마처럼 펼쳐놓는다. “피고인에게 사형을 구형합니다”라는 극적인 장면으로 바로 뛰어들어 시작한 서사는 가까운 과거와 먼 옛날 이야기를 능숙하게 오가면서 긴장감 넘치게 이어진다. 그러면서도 군데군데 우리의 현대사 인식 지평을 넓혀주는 배경설명을 더해주고, 정수일 자신의 개인적 기억이나 학문적 업적에 대해 세밀한 사실 확인도 마다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감동적인 것은 이런 업적을 남긴 뛰어난 석학의 초인적 분투와 고매한 정신을 만나는 경험이다. 실크로드학, 문명교류사의 새 지평을 연 학술서적과 저자의 체취가 짙게 묻어나는 답사기들을 이 책과 함께 읽는 독자는, “그의 가장 완성도 높은 작품은 그의 저서와 생애를 합친 것이다”라는 평전의 주장에 공감하는 바 있을 것이다. ‘작품’을 완성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되었던 부인의 헌신도 이야기 재미의 일부이며 감동을 더해준다. - 백낙청 (문학평론가, 『창작과비평』 명예편집인)
국경을 넘고, 이념을 넘고, 문명까지도 넘나들며 살아온 정수일의 삶은 어느 하나의 정체성으로 설명될 수 없다. 『일곱개의 이름』은 세상을 놀라게 했던 간첩 사건의 이면에서 출발해서, 중국과 이집트, 알제리, 그리고 북한과 대한민국을 가로지르며 자신만의 학문 세계를 구축한 한 인간의 복잡하고도 치열한 삶의 여정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그는 첩보원이었지만, 동시에 실크로드 연구자였다. 사형이 구형된 법정에서 그가 마지막으로 간청한 것은 자신의 목숨이 아니라 압수된 컴퓨터 속 『고대 동서교류사』 원고였다. 이 기이하면서도 강렬한 최후진술은 정수일이라는 인물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국가와 이념이 그의 삶을 규정하려 했지만, 학문만큼은 오롯이 그의 것이었다.
어느 국가의 경계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했던 사람, 그러나 인류가 걸어온 길을 평생 추적했던 사람. 이 책은 불가능해 보이는 그의 삶을 관조하며 우리 앞에 한 ‘20세기 인간’의 초상을 펼쳐 보인다. 그리고 묻는다. 우리는 무엇을 역사라 부르고, 무엇을 인간이라고 부를 것인가. 정수일은 한 사람의 이름이면서 동시에 한 시대가 던지는 질문이다. - 곽민수 (한양대 겸임교수, 한국이집트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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