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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1|어느 우연의 도시 2|기차역에서 3|칠기 박물관 앞에서 4|뮌스터의 푸른 반지 5|츠빙어Zwinger에서 6|소금길, 그리고 다른 길들-멀고도 가까운 전쟁· 8|중앙시장과 옛 시청 9|대성당과 그 주변 10|루드게리 거리와 쾨니히 거리에서 11|뮌스터아 강을 따라서 걷기 1 12|뮌스터아 강을 따라서 걷기 2 13|아호수에서 14|쿠피어텔에서 프라우엔 거리 epilogu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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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은 잘 정돈된 혼돈을 뜻한다. 김밥에 말려진 재료들은 강, 바다, 들판에서 온 것들이다. 채소, 어묵, 햄, 그리고 간을 한 밥. 이 모든 것들은 소금에 섞이면서 혼동을 갈무리하며 김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므로 김밥은 소금이 몰고 오는 혼동이 자물린 차가운 시간을 뜻한다. 소금을 친 음식을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더운 시간 속, 소금은 그냥 널브러져 있다가 음식이 차가워지면 진면목을 드러낸다. 절여진 시간이 입안으로 들어올 때 얼마나 짜고 쓴지 우리는 알지만 그 유혹을 차마 떨치지 못한다. 삶의 짠맛을 보기 위해 우리는 기차역으로 간다. 기차 안에서 김밥을 먹으며 자주 목이 막히고 떠나오던 기차역이 자꾸 눈에 어른거리는데도 말이다.
---pp.41~42 뭘 그려? 그냥…… 네가 원하는 것. 내가 원하는 것을 그려달라고 말하는 소녀 앞에서 나는 말을 잃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꽃이 가득 핀 마당에 서 있는 작은 집을 그렸다. 그리고 그 집안에서 분주하게 오가며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여자들을 그렸고 여자들 앞에서 구슬치기를 하는 아이들을 그렸다. 작은 구름 같은 연기가 나오는 굴뚝을 그렸고, 그 옆으로 날아가는 새를 그렸다. 그림 그리기를 마치자 소녀는 나에게 말했다. 창문 앞에 호두나무 한 그루도 그려줘. 왜? 겨울이 오잖아, 다람쥐도 먹을 게 있어야지. ---pp. 191~1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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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뮌스터는 인구 삼십만 명이 살고 있는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에 속합니다. 그 가운데 학생의 숫자가 오만 명이 넘어 학생 도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학생만큼 많지는 않지만 이 도시는 전통적인 행정 도시였으므로 지금까지 수많은 행정을 담당하는 건물들이 있고 그에 맞게 행정가들이 많이 있습니다. 물론 백여 개의 성당과 교회가 있어 사제들, 사제가 되려는 학생들, 교회 업무를 맡고 있는 성직자들도 많이 있지요. 비가 많이 오고 종소리가 자주 울리고 그 둘이 한꺼번에 이 도시를 채우면 일요일이라는 농담도 있는 도시. 독일 지도를 펴놓고 이 도시를 찾는다면 지도의 왼편 위쪽에서 검지가 멈출 거예요. 이렇게 간략하게 위치를 말하는 이유는 내가 숫자에 약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경도와 위도의 좌표로 자리매김되는 위치는 숫자로 꿈을 밀어버리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지요. 이 세계에 있는 모든 도시들과 마을들은 꿈이 아닐까요. 그곳에는 그곳만의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를 만들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이 있어요. 모르는 장소와 모르는 사람들은 일종의 꿈이라는 생각. 그래서 이렇게 느슨하게 이 도시의 위치를 꿈길처럼 설명합니다. 1. 유럽 지도를 펴세요. 2. 영국과 노르웨이 그리고 덴마크, 벨기에, 네덜란드가 둘러싸고 있는 바다인 북해를 찾으세요. 3. 손가락을 네덜란드에서 조금 오른쪽으로 움직이세요. 그러면 네덜란드와 독일의 국경 근처에 손가락은 놓일 겁니다. 그때 조금 더 오른쪽으로 손가락을 움직이면 뮌스터입니다. (네덜란드 국경에서 뮌스터는 약 70킬로미터 거리예요.) 만일 그 누군가가 날, 뜨악하게 바라보며 이것도 위치 설명이라고 하는 거요? 라고 말하면 나는 다짜고짜 이럴 겁니다. 그냥 한번 들르세요. 일부러 오기까지는 못하겠지만 이 근방을 지나가신다면 마치 기약 없는 나그네처럼, 훌훌 털어버린 가벼운 어깨를 하고, 그냥 한번. 이렇게 바쁜 세상에, 그럴 시간이 어디 있어요. 그렇군요. 하지만 만일, 정말 만의 만의 하나라도 시간이 난다면,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약 열 시간 거리를 날아오면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합니다. 공항의 역인 프랑크푸르트 페른반호프Fernbahnhof에서 기차로 약 세 시간 반 혹은 네 시간을 달리면 뮌스터에 도착하지요. 오전에 인천공항에서 출발해서 시차 여덟 시간(겨울), 혹은 일곱 시간(여름)을 통과하고 난 뒤 당신의 프랑크푸르트 공항 도착 시간은 저녁 무렵이에요. 여름이라면 아직 독일의 저녁은 밝습니다. 이곳의 여름 저녁은 놀라울 정도로 천천히 옵니다. 뭐 자동차를 빌릴 수도 있고 당신이 원한다면 아주아주 오래 걸리더라도 자전거를 타고 며칠씩 쉬엄쉬엄해서 올 수도 있겠지만 나는 기차를 타고 오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첫째는 직접 탈 것을 몰지 않으니 편한데다가 무엇보다도 기찻길이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질러 온 여행의 피곤함 속에서 당신은 앉아 있기만 하면 됩니다. 프랑크푸르트 역을 지나 마인츠와 코블렌츠, 그리고 쾰른을 지나는 이 길은 라인 강의 길이에요. (……) 당신은 누구냐? 라는 어떤 이의 질문에 하이네는 “나는 독일 시인이다”라고 대답했답니다. 시인은 노래하는 자이지요. 그가 바로 로렐라이입니다. 유혹하는 로렐라이. 시는 유혹하는 어지러운 글입니다. 유혹이 싫어 단정한 삶을 살고 싶어하는 당신에게도 어느 순간, 시적인 돌발 사태는 옵니다. 라인 강은 그런 힘이 있습니다. 라인 강뿐일까요. 이 세계의 모든 강들은 지구의 눈물을 머금고 있는 양, 우리를 설레게 합니다. 해가 지고 있는 라인 강을 기차 너머로 바라보며 겁을 잔뜩 먹으면서도 가야 하는 길들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겁니다. 여행은 그런 것입니다. 낯선 곳을 찾아가는 인간을 동반하는 것은 설렘과 고독이지요. 모르는 모든 것들 앞에서 설레지만 그 모든 것들을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것은 무시무시한 고독에 속합니다. 처음 도착하는 비행장이나 역에서 짐을 지켜줄 사람을 찾지 못해 꾸역꾸역 그 짐을 끌며 급히 화장실을 찾아야 하는 순간, 고독은 아주 구체적인 몸의 증상으로 나타나지요. 그리고 도착하면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나요? 이 지구 위에 존재하는, 아주 평범하고도 당신이 여행으로 선택한 곳이라 아주 특별한 한 장소. 뮌스터 역에 도착하면 어쩌면 이렇게 못생긴 역이 어디 있나, 당신은 어둠 속에서 혼자 묻겠지요. 아닌 게 아니라 이차대전으로 거의 폐허가 된 뮌스터에는 이렇게 못생긴 건물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곳은 어느 입구입니다. 낯선 곳으로 들어가는 입구이자 아, 사람들이 사는 곳은 똑같네, 식으로 말한다면 아주 익숙한 별의 입구입니다. 이 도시는 나그네들에게 친절하여 벌써 역 앞에 여관들이 보입니다. 이 여관들도 어쩌면 역 건물처럼 볼품없이 보일 겁니다. 하지만 하루 잘 만한 곳은 되지요. 하지만 조심할 것 하나. 쏜살처럼 달리는 이 도시의 자전거들! 자동차보다 더 많은 권력을 가진 것은 바로 이 도시의 자전거입니다. 그러니 조심. 자전거가 불쑥 나타났다 사라지면 그냥 눈웃음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