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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닮은 도시
강병융
난다 2015.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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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Preface_ 당신의 자리 8
Opening_ 25 12
Alkohol_ 취중 거리 19
Breg_ 그렇게 한번, 꼭! 26
Ces ta_ 빈으로 가는 길 38
Ce_ 절대 44
Dinoz aver_ 용보다 공룡 46
Et iketa_ 예의상 51
Fabula_ 원칙적인 공상 57
Grad_ 결혼을 다시 하고 싶다 60
Hladi lnik_ 그 거리는 냉장고 67
Imenovanje_ 호칭에 관하여 75
Jez ero_ 아름다움 앞에서 보고 싶은 사람 81
Kore ja_ 민주주의라는 이름 88
Ljubez en_ 류블랴나는 사랑입니다 93
Mos t_ 짧은 다리보다 긴 다리 98
Noz_ 칼퇴근아, 사라져라! 106

Osnovna sola_‘첫’ 무엇 112
Pokopal i sce_ 내가 죽거든 119
Roznik_ 도넛의 맛 126
Sanje_ 당신의 꿈 130
studi j_ 당신이 하고 싶어서 하는 일 136
Tivol i_ 지갑을 챙기세요 141
Ur in_ 길 위에서 오줌 145
Ven_ 포스토이나로 오세요 155
Zgoscenka_ 음반 사러 가는 길 163
ze_ 단골 카페에 앉아 170
Walking Sound Track_Play List 174
Appendix
[작가와의 수다권 + 녹용군과 사진 촬영권 + 바라북 에스프레소 시음권]

저자 소개 1

1975년 대한민국 서울에서 태어났다. 2013년부터 슬로베니아 류블랴나에서 살고 있다. 명지대학교와 모스크바국립대학교에서 문학을 공부했다. 현재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대학교 아시아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소설 『손가락이 간질간질』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나는 빅또르 최다』 『Y씨의 거세에 관한 잡스러운 기록지』 등을, 에세이 『아내를 닮은 도시』 『도시를 걷는 문장들』 『사랑해도 너무 사랑해』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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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05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176쪽 | 306g | 138*210*20mm
ISBN13
9788954635448

책 속으로

친구에게 인형의 이름이 ‘녹용Greeny Dino’이라고 말해줬다. ‘녹색 공룡’이라는 뜻이라고 설명해줬지만, 녹용이 한약재의 하나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대신 성별이 남성라고만 덧붙였다. 그래서 녹용은 녹용‘양’이 아닌 ‘군’이라는 말해주고 싶었는데, 이에 걸맞은 영어 표현이 생각이 나지 않아 관뒀다.
언젠가 한국 친구가 나의 SNS에서 녹용‘군’의 사진을 보고 이름을 물은 적이 있다. 그때 난 이렇게 대답했다.
─이름은 녹용이고 사람들이 활기를 찾기 위해, 혹은 몸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보약 녹용을 찾듯 인형 녹용‘군’의 사진을 보고 활기를 찾고, 마음이 따뜻해졌으면 좋겠다.
녹용이 한약재라는 것을 모르는 슬로베니아 친구에게는 구구절절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호기심이 많은 슬로베니아 친구는 또 물었다.
─그런데 왜 용이 아니고 공룡이야?
나는 공룡이 더 좋아서라고 짧게 답했다. 친구는 웃었다. 그는 선하게 웃으며 이어질 내 얘기를 기다리고 있는 눈치였다. 눈빛만으로 호기심이 충분히 전달되는 듯했다.
─용은 가짜잖아! 공룡은 진짜고! 난 진짜가 좋아. 공룡은 이미 다 사라져버렸지만 아직 많은 사랑을 받고 있잖아. 아직도 공룡을 좋아하는 사람이 무지 많잖아. 특히 아이들은 정말 좋아하지. 사라진 뒤에도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게 진짜 멋진 거 아닐까? 그리고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공룡에 대해 알고 싶어하고, 공부도 하잖아. 영원히 연구대상이 된다는 것 역시 정말 행복한 일 아닐까? 밝혀도 밝혀도 밝힐 것이 남아 있는 존재가 무지하게 매력적이잖아. 난 공룡이 좋아. 그래서 공룡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 사라진 뒤에도 사라지지 않는 사람! 그런 아빠, 그런 남편, 그런 선생, 그런 작가, 그런 인간이 되고 싶어. 공룡 같은 사람! 친구는 웃으며 말했다.
---「용보다 공룡」중에서

류블랴나 강 위에는 작고 아기자기해서 걷고 싶은 다리들이 꽤 있다. 나무가 자라는 다리도 있다. 동상이 서 있는 다리도 있다. 철길과 도로와 인도가 붙어 있는 다리도 있다. 시골길처럼 좁은 다리도 있다. 특히 걷기 좋은, 보행자만을 위한 다리들이 많아 좋다.
하지만 (조금) 아쉽다. 추억을 만들기엔 다리의 길이가 너무 짧다. 나는 길고도 볼품없는 다리를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 가장 좋아하는 다리를 꼽으라면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한민국의 한남대교를 댄다. 한남대교는 참 넓고도 길고도 볼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다만 길고도 넓고도 볼품없는 다리를 홀로 걸으면 안 된다. 그럼 청승이 되어버린다. 그럼 재앙이 되어버린다. 그럼 스스로 한없이 한심해질 수 있다.
살면서 딱 한 번 한남대교를 ‘내 다리’로 건넌 적이 있다. 아내와의 연애 초기였다. 아내의 회사가 한남동에 있었고, 여차저차해서 신사동에 가서 저녁을 먹기로 했고, 그때는 차도 없었다. 대신 두 다리는 지금보다 훨씬 튼튼했다.
아내가 언젠가 걷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한 것을 기억하고 있던 나는 차도 막히고 하니 걸어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내는 다행히 그러자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그 길고 지루한 한남대교를 걸을 수 있었다.
바람이 씽씽 부는 대교를 걸었다. 당연히 함께 걷는 사람은 없었다. 다리 위엔 아무도 없었고, 줄지어 서서 대교를 건너는 차들이 우리를 청승맞다는 눈길로 보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봤고 서로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다리가 무지 길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그렇게 걸을 수 있었고 다리 주변엔 11월 11일에 많이 팔리는 초콜릿 과자상자같이 볼품없이 서 있는 아파트들만 보였기 때문에 달리 눈 돌릴 곳도 없었다. 걸으며 바람과 그녀를 느꼈다. 그리고 바람과 그녀에게 집중했다.
다리를 건너 ‘강남’에 도착했을 때 난 아내의 손을 잡을 수 있었다. 그때 나눴던 대화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때 불었던 바람은 기억이 난다. 이상한 바람이었다. 둘 사이를 더욱 가깝게 해줬던, 심장을 뛰게 했던, 아내의 손을 잡을 수 있게 용기를 만들어줬던, 그런 바람.
그 시절 그 길고 지루한 한남대교가 없었다면 지금 류블랴나의 아름다운 다리들도 없었을지 모르겠다.
아름다움은 늘 눈이 아닌, 마음이 만드는 것이다.

---「짧은 다리보다 긴 다리」중에서

출판사 리뷰

난다의 [걸어본다] 네번째 이야기
유럽 한가운데 숨어 있는 작은 나라 슬로베니아!
슬로베니아에 숨어 있는 작은 수도 류블랴나!
우리가 함께 걷게 될!
『아내를 닮은 도시』

난다의 걸어본다 그 네번째 이야기는 ‘류블랴나’를 테마로 한 『아내를 닮은 도시』입니다.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 대학에서 한국문학을 가르치고 있는 소설가 강병융이 채워나간 이 책은 슬로베니아어로 A부터 ?에 이르기까지 해당 알파벳마다 단어 하나씩을 선택하여 이를 테마로 그가 사는 류블랴나의 곳곳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물론 걷고 보면서이지요. 예컨대 이런 식으로요.

*
Alkohol_물론 슬로베니아어로 ‘알코올, 술’이라는 뜻입니다. 그러고 보니 슬로베니아에 와서 술이 많이 줄었네요.
Breg_ 슬로베니아어로 ‘강가, 호숫가, 해변’이라는 뜻입니다. 슬로베니아에는 피란Piran이라는 작고 아름다운 해변 도시(혹은 마을)가 있습니다.
Cesta_슬로베니아어로 ‘길’이라는 뜻입니다. 슬로베니아에는 큰길cesta과 작은 길ulica이 있습니다.
?e_슬로베니아어로‘만약’이라는 뜻입니다.
Dinozaver_슬로베니아어로 ‘공룡’이라는 뜻입니다. 류블랴나에는 ‘공룡’이 아닌, 그냥 ‘용zmaj’이 많습니다.
Etiketa_예상할 수 있듯, 슬로베니아어로 ‘예의’라는 뜻입니다. 슬로베니아 사람들은 인사하는 것을 중요한 예절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Fabula_쉽게 알 수 있듯, ‘플롯’, ‘이야기’라는 뜻입니다.
Grad_슬로베니아어로 ‘성castle’이라는 뜻입니다. 류블랴나에는 류블랴나 성Ljubljanski grad이 있습니다.
Hladilnik_슬로베니아어로 ‘냉장고’라는 뜻입니다. 슬로베니아에서 따뜻한 냉장고를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Imenovanje_슬로베니아어로 ‘호칭’이라는 뜻입니다. 국어처럼 복잡하진 않지만, 슬로베니아어에도 존대법이 있답니다.
Jezero_슬로베니아어로 ‘호수’라는 뜻이고, 슬로베니아에는 블레드Bled라는 아름다운 호수가 있습니다.
Koreja_ 슬로베니아어로 ‘한국’이라는 뜻입니다. 북한이기도 하고, 남한이기도 하지요.
Ljubezen_슬로베니아어로 ‘사랑’입니다.
Most_슬로베니아어로 ‘다리bridge’라는 뜻입니다. 류블랴나에는 작고 아기자기한 다리가 많습니다.
No?_슬로베니아어로 ‘칼’이라는 뜻입니다.
Osnovna?ola_슬로베니아어로 ‘초등학교’라는 뜻입니다. 제 딸은 슬로베니아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Pokopali??e_슬로베니아어로 ‘공동묘지’라는 뜻이고, 류블랴나에는 잘레?ale라는 공동묘지가 있습니다.
Ro?nik_‘로지닉’은 류블랴나에 있는 작은 언덕입니다. 등산과 산책의 중간을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Sanje_슬로베니아어로 ‘꿈’이라는 뜻입니다. 제겐 당신이 비웃을지도 모르는 꿈이 있습니다.
?tudij_슬로베니아어로 ‘공부’라는 뜻입니다. 특히, 대학에서 하는 공부를 말하지요.
Tivoli_류블랴나를 대표하는 공원이 ‘티볼리’입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이 공원을 지납니다.
Urin_슬로베니아어로 ‘소변’이라는 뜻입니다. 당신은 길을 걷다가 소변을 보고 싶을 때 어떻게 하나요?
Ven_슬로베니아어로 ‘밖’이라는 뜻입니다. 가끔은 안보다 밖에 있는 것이 좋아요.
Zgo??enka_슬로베니아어로 ‘음반’이라는 뜻입니다. 물론, CD라고 해도 모두들 알아듣습니다.
?e_슬로베니아어로 ‘이미’이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항상 ‘이미’ 시간이 많이 흘러버렸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늘 우리에겐 ‘아직’ 긴 시간이 남아 있지요.

여러분들은 슬로베니아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신지요. 특히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라는 곳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 있으신지요. 우리에게 그 생소한 이름이 그나마 알려지게 된 계기는 아무래도 지젝이라는 학자의 이름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1943년생으로 세계적인 철학자이자 문화비평가인 지젝이 태어난 나라 슬로베니아, 그리고 그가 재직한 류블랴나 대학이 그가 소개되고 그의 저서들이 번역되면서 언급되었을 텐데요, 바로 그 류블랴나 대학에 한국인 교수 강병융이 재직하고 있습니다.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러시아, 벨라루스, 이탈리아 학생들에게 한국문학을 가르치면서 말이지요.

“유럽 한가운데 우리나라 대구광역시의 인구보다 사람이 적은 나라가 하나 있다(200만 명). 국토도 전라남북도를 합친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20,273㎞). 서울에서 서쪽으로 8,530㎞쯤 가면 이 나라의 수도를 만나게 되는데 면적은 성남보다 조금 크고(163.8㎢) 인구는 목포 정도 된다(27만 명). 그중 한국인은 열 명 남짓. 그 도시에서 동쪽으로 서울에서 대전(140㎞)만큼 가면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에 도착하고 남서쪽으로 서울에서 대구(240㎞)만큼 가면 이탈리아의 미항 베네치아를 볼 수 있으며 동쪽으로 그만큼 가면 헝가리가 나온다. 북동쪽으로 서울에서 부산(380㎞)만큼 가면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가 나오고 남쪽으로 서울에서 군산(206㎞)만큼 가면‘ 꽃보다 누나’로 유명해진 크로아티아의 관광명소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에 닿을 수 있다.”_류블랴나(Ljubljana)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헝가리, 크로아티아를 곁으로 둔 슬로베니아의 류블랴나는 유럽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으며 슬로베니아어를 공용어로 사용합니다. 작고 조용한 나라, 안전하고 고요하며 친절한 국민성을 자랑하는 나라, 특히나 세계평화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에서 여덟번째로 평화로운 나라! 이곳에서 ‘토끼’ 같은 아내와 ‘여우’ 같은 딸과 함께 살아가는 소설가 강병융은 흔한 말로 ‘아내 바보’이자 ‘딸 바보’인 참으로 가정적인 남자입니다. 알파벳을 따라 매 챕터마다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데 있어 빠지지 않는 두 여성이 바로 아내와 딸이었으니 말입니다. 특히나 그의 ‘아내’에 대한 신뢰는 절대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딸아, 내가 죽거든 여기에 묻어다오!
딸은 쿨하게 대답했다.
-그래!
난 덧붙여 엄마도 꼭 함께 묻어달라고 했다. 딸은 또 한번 쿨하게 대답
해줬다.
-그러지 뭐!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사는 것보다 힘든 것이 같이 죽는 것, 함께 묻히는 것! 그것은 자신의 의지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꼭 잘레가 아니더라도 정말 어딘가에 두 사람이 함께 묻혔으면 참 좋겠다. 같은 시간은 아닐지라도 같은 장소에서 죽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한 죽음이 될 것 같다.
그리고 바라건대 딸도 나처럼 공동묘지 산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컸으면 좋겠다. 일상적인 모습으로 죽은 나와 아내를 만나러 왔으면 좋겠다. 좀더 과한 욕심을 부리자면 먼 훗날 딸도 같은 장소에서 잠들 수 있다면 좋겠다. 물론 딸은 함께 잠들고 싶은‘ 다른’이를 만나겠지만.
내가 찍어온 잘레 공동묘지의 사진들을 보면서 우리는 길지 않게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가족들은 아름다운 공동묘지의 사진들을 좋아했고 우리는 다음에 공동묘지를 함께 산책하기로 했다. 두 여자의 손을 잡고 공동묘지를 산책하는 상상,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
-「내가 죽거든」(122쪽~125쪽)에서

물론, 그렇다고 해서 구구절절 아내에 대한 사랑을 갈구하는 남편의 애정놀음이 이 책의 전부가 아님은 물론입니다. 그는 사랑도 아내도 천국도 멀리서 찾는 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들이 곁에 있고 옆에 있어 살아갈 수 있음을, 그렇게 숨을 쉬며 하루하루 살아갈 수 있음을 만족해하는 긍정의 아이콘이자 행복의 전도사입니다. 그러니 어떤 도시의 어떤 길이든 어떤 다리이든 아름답지 않고, 어떤 사람이든 어떤 사물이든 면면이 이해되지 않을 수 있으며, 하루하루의 삶이 그저 감사와 만족으로 뒤범벅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이 책을 일컬어 단지 도시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작가의 가슴에서 태어난 사랑 이야기, 그 자체라고 류블랴나 대학 동료 교수가 정확히 짚어줬듯이 말입니다.

슬로베니아어로 ‘ljubiti(류비티)’가 ‘사랑하다’라는 동사이고, ‘ljubezen(류베젠)’이 ‘사랑’이라는 명사니까 당연히 이 도시의 어원도 ‘사랑’이 아닐까? 라고 그는 추측하고 있는데, 그런 연원을 따져 묻기 이전에 류블랴나는 작지만 아름답고 깨끗하고 친절한 느낌의 도시라고 합니다. 책장마다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용 한 마리가 류블랴나 곳곳에서 나침반처럼 제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제 귀여움을 마구 뽐내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 ‘녹용군’은 강병융 작가의 분신이자 친구로 류블랴나 곳곳을 함께 걸어주고 함께 보아준 소울메이트인 셈입니다. 마치 우리가 류블랴나 여행객으로 분한 것처럼 말입니다. 언젠가 이곳을 방문하게 된다면 이렇게 또 자리를 잡고 앉아 기념 촬영을 해봄직도 합니다. 가장 사진이 잘 나올 만한 곳에 턱 하니 죽치고 앉았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 아닐까 해서입니다.

살아생전에 김일성이 미친 듯이 사랑했다는 호수 블레드가 성과 함께 느리게 흘러가는 곳. 슬로베니아 관광청에서 적극적으로 추천한 도서. 걸으면서 듣기 좋은 사운드트랙을 보너스로 소개하고 있는 것이 또한 이 책의 묘미다 싶습니다. 걸어본다 시리즈의 작은 재미 중 하나가 책 커버를 벗겼을 때 나오는 산책 코스 지도지요. 이번 편은 변웅필 화가가 맡아주었습니다.


작가의 말

1.
제가 있는 곳은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입니다. 류블랴나는 인구 30만이 안 되는 유럽에서 가장 작은 수도입니다. (슬로바키아가 아닙니다. 슬로베니아입니다! 러시아와는 꽤 멉니다.)
슬로베니아어가 이곳의 공용어입니다. 슬로베니아 사람들은 외국어에 능통합니다. 이웃나라의 언어를 잘하는 편이고, 특히 류블랴나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영어를 자유롭게 사용합니다. 상점, 거리에서 영어로 무언가를 물어도 전혀 어색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러시아어는 전혀 통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언어 계통상 두 언어의 유사점은 무척 많습니다.)
슬로베니아의 이웃나라는 이탈리아(서), 오스트리아(북), 헝가리(북동), 크로아티아(남동)입니다. 이탈리아의 베네치아까지는 차로 두 시간남짓, 크로아티아의 자그레브까지는 두 시간이 채 걸리지 않습니다. 오스트리아의 빈까지는 기차로 다섯 시간 정도면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류블랴나에서 차를 타고 남쪽으로 한 시간 정도 가면 아드리아 해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동유럽이라고 알고 있는 슬로베니아는 사실 유럽의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슬로베니아의 1인당 GDP는 2만 달러가 조금 넘습니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수준입니다(2013년 기준). OECD 가맹국이며, EU 회원국이기도 합니다. 통화는 유로Euro입니다. 세계평화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슬로베니아는 세계에서 여덟번째로 평화로운 나라입니다(2012년 기준).
저는 이렇게 류블랴나에서 안전하고 평화롭게 살고 있습니다.

2.
저는 ‘국민’학교 동창인 ‘토끼’ 같은 아내와 결혼해서 함께 살고 있습니다. 첫사랑이라고 박박 우기고 있지만, 사실 어린 시절에는 서로 데면데면한 사이였습니다. 2000년대 초반 우리 사회를, 아니 우리 세대를 들뜨게 했던 ‘동창 찾아주기’ 사이트를 통해 만났습니다. 3년간 (아주 보통의)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해 지금은 ‘여우’ 같은 딸까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저는 류블랴나 대학에서 한국문학을 가르치고 있고, 아내는 슬로베니아 여행사 한국팀에서 근무하고 있고, 딸은 슬로베니아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저희는 이렇게 류블랴나에서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3.
슬로베니아어 인명과 지명 표기에 있어 슬로베니아어 원래 발음에 최대한 가깝게 표기하고 싶었지만, 제게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한국에 슬로베니아어 표기에 대한 어떤 기준이 있는 것 역시 아닙니다. 그래서 국립국어원이 제시한 ‘세르보크로아트어 자모와 한글 대조표’를 참조했습니다. 슬로베니아어와 가장 유사한 소리를 내는 소리라는 판단에서 그랬습니다. 제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해 표기해보았습니다. 하지만 실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언제든 지적해주세요.

4.
이제, 평화로운 이 도시 류블랴나와 토끼같은 아내에 대해 조심스럽고도 성의 있게 몇 마디 해보려 합니다. 참, 이 여정의 동반자는 아내가 아닌 녹용군입니다. (이 책에 실린 사진의 저작권 및 초상권은 모두 녹용군에게 있습니다.)
2015년 5월 13일
강병융

추천평

얼마간 류블랴나에 다녀온 후 나는 어떤 도시보다 자주 류블랴나를 들먹였다. 류블랴나는말이지, 로 시작하는 말은 대개 과장이었다. 당연했다. 나는 고작 며칠 그곳에 머물렀고, 본 것보다 보고 싶은 것, 간 곳보다 가고 싶은 곳이 여전히 많았다. 소설 쓰는 강병융이 그리로 간다고 했을 때 오랜 거짓말을 들킨 기분이었다. 동시에 함께 그곳을 그리워할 동지를 만나 즐거웠다. 그때부터 이 책을 기다려왔다. 활기와 고요가 뒤섞인 곳, 지나간 시간과 지금의 시간이 나란한 그곳의 거리를 누군가 말해주기를 기다려왔다. 아니다. 실은 기다리지 않았다. 영영 먼 곳으로, 고대의 말과 꽃의 골목과 느긋한 햇살로 남아주기를 바랐다. 이제 그 소망은 이루기 어렵게 됐다. 강병융과 그의 가족이 함께, 때로는 혼자서 다감하고도 사려 깊게 류블랴나 곳곳을 걸어준 덕분이다. 나는 흔쾌히 그 산책에 동행을 청할 작정이다. 류블랴나에 다시 가보리라는 희망은 서둘지 않아도 좋겠다.

편혜영 (소설가)
창의력과 상상력이 넘치는 나의 친구이자 작가인 강병융은 류블랴나에 와서 이 도시와 그의 사랑스런 아내의 공통점을 찾기 시작했다. 그는 이 도시가 자신이 사랑하는 아내와 무척 닮아 있다고 믿었고, 덕분에 류블랴나를 더 쉽게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은 단지 도시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작가의 가슴에서 태어난 사랑 이야기, 그 자체이다.
Luka Culiberg (Ph. D, University of Ljublj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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