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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산호 -9
허리케인 -35 소냐 -69 무언가의 끝 -111 발리 여인 -129 헌터 톰슨 음악 -153 여름 별장, 그 후 -185 카메라 옵스큐라 -213 오데르강의 이쪽 -227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
Judith Her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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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은 하는 일 없이 침대에 누워 있었고 그나마 입을 열 때면 오직 이 한 문장만 말했다. “나는 나 자신에게 관심이 없어.” 그의 방은 차갑고 먼지 구덩이였고, 이 방은 묘지를 향해 있었으며, 묘지에서는 줄곧 조종이 울렸다. 내가 까치발을 하고 서서 창밖을 내다보면 새로 판 무덤들, 카네이션 꽃다발과 애도하는 이들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자주 방 한구석 바닥에 앉아 있었고, 무릎을 끌어당긴 채 먼지 송이를 부드럽게 후 불어 방으로 날렸다. 자기 자신에게 관심이 없다니, 놀랍다고 생각했다. 나는 오로지 나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었다. ---「붉은 산호」중에서
말도 안 되는 찰나 동안 내 심장이 솟구쳤고, 나는 순간 생각했다. 아마도 이 솟구침이 내가 열망하던 변화일 거라고, 리듬이 덜컥하는 것. 나는 멈춰 서서 베레나와 소냐를 차례로 응시했고, 소냐가 읽던 책에서 눈을 떼고 나를 보았다. 그리고 이어서 베레나를 보았다. ---「소냐」중에서 헌터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배가 더욱 부푸는 것을 느끼지만, 금방 괜찮아진다. 그는 시작으로, 첫 질문으로 돌아가고 싶다. 자신이 혼란스러워하는 것을 숨기기가 어렵고, 자기가 늙은 멍청이 같은 인상을 풍긴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낀다. 그가 다시 한번, 이번에는 더 단호하게 말한다. “그래서 뭐.” 그러자 마침내 학생을 이해한 여교사의 어조로 소녀가 천천히 대답한다. “음악을 들으려고 이 방문 앞에 멈춰 섰어요.” ---「헌터 톰슨 음악」중에서 그 후 정기적으로 엽서가 왔고, 나는 기다렸고, 엽서가 하루 오지 않으면 실망했다. 늘 교회 사진 그리고 늘 네다섯 문장이었다. 작은 수수께끼들처럼, 때로 아름답고, 때로 이해할 수 없는. 슈타인은 자주 이렇게 썼다…… 만일 네가 오면. 그는 “와.”라고 쓰지 않았다. 나는 이 “와.”를 기다렸다가 출발하기로 마음먹었다. ---「여름 별장, 그 후」중에서 코베를링은 어느 시의 서두를 생각한다. 오데르강의 저쪽, 넓은 벌판이 있는 곳, 이런 비슷한 구절을. 당시에, 밤에 늪지대에서 터무니없는 산책을 할 때 안나의 광대 아버지가 낭송해 주던 수없이 많은 시 가운데 하나. “잘 들어 봐, 그리고 이것도.” 속수무책인 낭송, 쏟아져 나오는 말들. 코베를링은 안나를 뒤따라가고, 그게 왜 이토록 가슴을 뒤흔드는지-오데르강의 저쪽, 넓은 벌판이 있는 곳-설명하고 표현할 수 없음에 숨이 멎는다. “다 이해해.”라고 안나의 광대 아버지는 말했다. 자꾸만 “다 이해해.”라고. 하지만 이해했을 리가 없었다. 코베를링 자신도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으니까. 그는 안나의 틀어 올린 머리를 움켜잡고 그녀를 흔들어 대고 때리고 싶다. 세월의 이 자기기만이, 세월 그 자체가 싫어서. ---「오데르강의 이쪽」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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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편의 이야기에는 저마다 다른 인물들이 등장한다. 누군가의 손녀, 연인, 예술가, 옛 친구의 딸, 때로는 그 관계에 이름을 붙이는 것조차 어려운 사람들. 이들은 어느 날 갑자기 주인공의 삶에 들어와 잔잔한, 때로는 거친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흔적을 남긴 채 사라진다. 이들에게는 변치 않음이나 지속, 영원함과는 거리가 먼 존재들이다. 왜 그러는지 알 수 없고, 때로는 제멋대로인 듯 보이며, 어느 순간 유령처럼 사라져 버린다. 헤르만은 인물의 삶을 설명하거나 해석하지 않는다. 잠시 카메라를 비추듯 인물의 한순간을 포착한 뒤 조용히 화면을 거둔다. 그래서 이야기에는 늘 빈자리가 남는다. 인물의 진심도, 인과관계도, 그 후의 삶도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이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인가? 잘 모르겠다. 정말로 잘 모르겠다.” -11쪽, 「붉은 산호」 ‘잘 모르겠다.’ 안개 속을 걷는 듯한 모호함과 알 듯 말 듯한 진심. 소설 속 인물들은 자신의 마음을 쉽게 직시하지 못한다. 손을 내밀고 싶으면서도 망설이고, 알고 있으면서도 다가가지 않는다. 그러나 망설임과 후회, 외면과 회피는 오히려 말해진 마음보다 더 많은 것을 드러낸다. 작가는 말해지는 것과 보여지는 것 너머, 끝내 말할 수 없고 보여지지 않는 것들에 삶의 진실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 밤들에 내가 아마 행복했을 거라고, 오늘날 나는 생각한다. 과거가 늘 미화된다는 것, 기억이 완화 작용을 한다는 것을 나는 안다. 어쩌면 그 밤들은 그냥 춥고 냉소적으로 즐거웠을 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날 내게 그 밤들은 마음이 아플 만큼 중요하고 상실된 것으로 생각된다.” -90쪽, 「소냐」 지나간 시간은 기억 속에서 미화되기도 하고, 때로는 상실된 것일수록 더욱 선명해진다. 『여름 별장, 그 후』의 인물들이 간직한 것은 거창한 사건이나 극적인 결말이 아니다. “이유는 없어. 거기에는 아무 이야기도 없어. (…) 우리가 해결하지 않은 사소한 다툼들, 어떤 불화들. 내 생각에 우리는 서로 다르게 살았던 것 같다. 그게 전부야. 극적인 일도, 결정적인 사건도 없어.” -252쪽, 「오데르강의 이쪽」 『여름 별장, 그 후』를 읽다 보면 독자는 1990년대의 어느 순간으로 돌아가 결국 이어지지 못한 관계와 어긋난 마음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때의 우리는 분명 무언가를 잃었고, 그것은 오래도록 마음 한편에 남아 있다. 소설의 인물들처럼. 헤르만은 사랑과 고독, 상실의 어떠함을 거창하게 말하는 대신 지나간 시간의 한 장면, 스쳐간 사람의 표정, 끝내 이어지지 못한 관계의 흔적을 담백하고 투명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어느 순간 자신의 지나간 시간을 마주하게 된다. ‘극적인 일도, 결정적인 사건’도 없지만 ‘마음이 아플 만큼 중요하고 상실된’ 무언가를 안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소설집은 오래 묻어두었던 삶의 소중한 조각들을 떠오르게 한다. 뜨겁고 강렬한 여름이 지나고 난 뒤 찾아오는 가을처럼, 이 소설집의 쓸쓸함에는 이상할 만큼 맑은 빛이 있다. 짧은 아홉 편의 이야기이지만, 쓸쓸하고 아름다운 문장 앞에 잠시 멈춰 서서 그 여운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어지는 책이다. 옮긴이의 말 나는 ‘무언가’가 헤르만이 글로써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시적으로 압축한 단어라고 생각한다. 명확히 정의하거나 규정할 수는 없지만 어렴풋이 감지되는 것. 가령 “거리에서 누가 내 뒤를 바짝 따라오는 듯한 느낌”. 『여름 별장, 그 후』의 등장인물들은 무언가를 느끼고, 그리워하고, 기다리고, 떠올린다. 어쩌면 또 다른, 새로운 삶의 가능성. 때로는 삶 자체를 지시하는 것도 같다. 불가해하고 이상하고 우스꽝스럽고 슬프기도 한 삶. 「무언가의 끝」에서 스케치하고 회고하는 할머니의 지난 인생과 말년의 나날처럼. _신동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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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독일 문학의 위대함을 증명하는 책. - 르 몽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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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디트 헤르만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위해 더없이 정확하면서도 전혀 새로운 언어를 찾아냈다. 그리고 그녀는 아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았다. - 디 차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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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디트 헤르만은 짙은 분위기를 자아내는 산문과 더없이 안정된 언어 감각으로, 사랑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나머지 진정한 삶을 놓쳐버리는 사람들의 삶의 감각을 그려낸다. 이들은 자신의 삶의 계획이 무너지는 것을 깊이 슬퍼하기보다는 오히려 멜랑콜리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 베티나 알베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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