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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나무 오두막
숲 속에 혼자 남다 낯선 손님 숲 속의 침입자 벌 떼들의 공격 친절한 인디언 첫 수업 로빈슨 크루소 인디언 덫 낚시 비버족의 표식 인디언 화살 덫에 걸린 여우 홍수 이야기 곰 사냥 뜻밖의 초대 허물 수 없는 벽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개 두 번째 초대 위대한 정령 마니투 작별 마지막 선물 다시 혼자가 되어 첫눈 재회 옮긴이의 글 야만과 문명에 대한 새로운 시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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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때 아틴이 벌떡 일어섰다. 분노의 검은 구름이 아틴의 얼굴에 어려 있던 즐거움을 모두 몰아가 버렸다.
“안 돼! 그러지 않아.” 아틴이 소리쳤다. 매트는 당황해서 읽는 걸 멈췄다. “그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아!” “뭘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거야?” “백인한테 무릎을 꿇지 않아!” “하지만 로빈슨이 목숨을 살려 줬잖아.” “무릎을 꿇는 건 안 돼. 노예가 되는 것도 안 돼. 차라리 죽는 게 나아.” 아틴은 성을 내며 말했다. 매트가 반박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아틴은 기회를 주지 않았다. 아틴은 굳은 표정으로 성큼성큼 오두막 밖으로 나가 버리고 말았다. ‘이제 다시는 공부하러 오지 않겠군.’ 하고 매트는 생각했다. 그리고 천천히 조금 전에 읽은 부분을 다시 읽어 보았다. 매트는 한 번도 이 이야기에 의문을 가진 적이 없었다. 로빈슨 크루소처럼 야만인들이 백인의 노예가 되는 것이 당연하고 정당한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과연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일까? 매트는 새롭게 떠오른 생각과 힘겹게 씨름하기 시작했다. --- pp.72~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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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금 이 순간, 가족들이 도착해 그들의 목소리가 오랜 침묵을 깨고 있는 지금, 모든 근심이 굴뚝의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 지금도 매트의 마음속에서는 인디언들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자신이 여기에 머문 것이 옳은 결정이었음을, 약속대로 아버지가 돌아오셨다는 것을 아틴과 사크니스 할아버지에게 알려 주고 싶었다. 하지만 백인들이 몰려오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사크니스 할아버지가 옳았다. 인디언들이 순록과 비버를 사냥하던 이 땅에 백인 마을이 생긴다니. 그들이 부디 훌륭한 새 사냥터를 찾기를……. 그것이 매트의 간절한 바람이었다.
--- p.2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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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살 소년 매트는 아버지가 집을 비운 동안 메인 주에 새로 마련한 정착지를 지키기 위해 황야에 홀로 남는다. 지혜로운 비버족 인디언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한 매트는 그 대가로 인디언 소년 아틴에게 영어와 백인들의 기호(글)를 가르쳐 주기로 한다. 아틴은 백인들에게 부모님을 잃은 상처 때문에 쉽게 마음을 열려 하지 않지만 함께 책을 읽고, 모험을 하는 동안 뛰어넘을 수 없을 것 같던 적대감은 사라지고 두 소년은 마음으로부터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진정한 형제애를 키우게 된다. 그러나 백인들에게 삶의 터전을 빼앗긴 비버족은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을 등지고 서부로 떠나야 하는 운명에 처한다. 아틴과 사크니스 추장은 백인 소년에게 함께 떠날 것을 제안하지만 매트는 가족들을 기다리겠다는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시 홀로 남기로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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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문화에 대한 경외와 진정한 가족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서부로 떠나는 비버족의 앞날은 그리 밝지 않다. 미국의 서부 개척사는 수많은 인디언들이 목숨을 잃고 이른바 ‘보호구역’으로 내몰리는 인디언 패망사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백인들에게 부모를 잃고 삶의 터전마저 빼앗기고 있는 상황에서 아틴이 보여 주는 자기 문화에 대한 긍지와 자존심을 따뜻하고 경쾌한 시선으로 그림으로써 사라지는 문화에 대한 경외감을 느끼게 한다. 또한 소설 전체의 중심축을 이루는 소년 매트의 눈물겨운 가족애는 물질적 풍요 속에서 그리울 것 없이 살아가는 청소년들에게 가족의 소중함과 책임감을 생각해 보게 해 준다. 『로빈슨 크루소』다시 읽기 이 책은 기호에 대한 포괄적인 해석과『로빈슨 크루소』 다시 읽기를 통해 문명과 야만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매트는 목숨을 구해 준 인디언의 친절에 보답하기 위해 자신이 가진 유일한 소유물인 『로빈슨 크루소』를 선물하고 백인들의 기호를 가르치기로 조약을 맺는다. 두 소년이 책을 함께 읽는 과정에서 아틴의 격렬한 반발에 부닥친 매트는 그 책이 원주민은 미개하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도 그 편견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아틴을 다시 만난 매트는 『로빈슨 크루소』에서 원주민을 미개한 야만인으로 묘사하는 부분을 빼고 읽음으로써 『로빈슨 크루소』 ‘다시 읽기’, 또는 ‘새로 쓰기’를 시도한다. 다시 말해 로빈슨 크루소 다시 읽기를 통해 각각의 문화는 서로 다른 것일 뿐 우열의 잣대로 잴 수 없는 것임을 확인하는 것이다. 동시에 매트는 아틴으로부터 인디언 문화와 생존에 필요한 지식들을 배우면서 나무에 새겨진 표시, 돌의 방향 등 비버족의 표식 역시 백인들의 문자처럼 의사소통의 도구라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아틴이 부족 아이들에게 말로 전달하는 로빈슨 크루소이야기, 비버족에게 내려오는 홍수 이야기 등은 백인들의 표시 즉 문자에 국한되던 기호에 대한 해석을 비문자 기호인 말과 표식으로 확장시켜 준다. 기호의 발전 과정을 거꾸로 짚어 가는 이러한 이야기 전개는 인간의 언어에 대해 생각해 보는 재미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비버족의 표식』은 이처럼 독자들의 긴장을 늦추지 않는 이야기 구조와 기호에 대한 포괄적 이해, 『로빈슨 크루소』 다시 읽기 등 다양한 문학적 장치를 통해 문명과 야만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관용이라는 가치를 제시하고 있다. 우선 재미있게 책을 읽은 후 인물들의 행위, 그에 따라 기호의 의미가 글에서 말, 표식으로 확대되어 가는 과정, 로빈슨과 프라이데이의 관계와 아틴과 매트의 관계가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는 독서 방법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