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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차윤성 김태정 이솔준 노낙경 하루살이 우두커니 백희림 장승자 수초 풍선껌 도롱이벌레 휴대폰 다리 작가의 말 |
金成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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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우중충한 새벽에 비만 오면 잠기는 다리, 이른바 잠수교라 불리는 다리는 강물의 손길을 느끼며 의식을 되찾았다. 회백색 강물이 느린 유속으로 종아리를 만지고 지나가는 동안 다리는 수상한 기척을 감지했다. 강 아래 깊은 곳에 만들어진 침전물에서 나오는 미약한 파동이었다. 사물과 생명의 찌꺼기뿐 아니라, 사물과 생명의 중간 단계에서 비죽 튀어나온 기이한 존재. 몸도 이름도 기억도 없지만 인간의 감정을 받아먹으며 그림자처럼 커져 가는 존재의 씨앗이 이제 막 강바닥에 싹을 틔우려는 참이었다.
--- p.7~8 한참 후 잠수교는 물속에서 눈을 떴다. 느슨하게 이완되는 동시에 어딘가 더 커지고 넓어진 느낌. 물속에 들어가면 몸이 팽창하는 것 같기도 하고 동시에 사라지는 것 같기도 하다. 넓고 빠른 물줄기가 주는 이 감각을 다리는 소중히 여기고 있었다. --- p.14 방바닥에서 실컷 뒹굴고 일어난 윤성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머릿속이 오래전부터 잠겨 있던 것처럼 둔해져 있었다. 잠수교도 그렇다. 장마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수위가 줄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상하리만치 사람이 많았고 잠수교를 오가는 모습도 보였다. 잠수교 위를! 여전히 물에 잠겨 있는 다리 위를 말이다. --- p.27 빛이 켜지자, 출구가 생겨났다. 마침내 하루살이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하루’가 다가왔다. --- p.67 ‘둥둥이들 오늘 많이 나왔네.’ 윤성은 이렇게 제멋대로 유령 무리에 별명까지 붙여 놓았다. --- p.74 우두커니는 가로등이 되기 전부터 호기심이 많았다. 그걸 어떻게 알게 됐냐면, 공장에서 아직 완제품이 되기 전부터 몸을 들썩거리며 세상으로 나가고 싶었던 기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우두커니는 사실 가로등이라는 사물로 살아가기에는 지나치게 외향적이다. --- p.77 희림도 남편과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남편도 희림과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잘못한 사람은 없지만 그렇다고 괜찮은 것은 아니다. 희림은 눈물이 흐르는 게 아니라 줄줄 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어린아이와 이십사 시간 붙어서 전적으로 돌보는 엄마에게는 흔한 일이다. 마음에 수도꼭지가 생겨나서 아무 때나 누수가 벌어지는 것. --- p.90 물은 흐르거나 멈추고, 가라앉거나 스민다. 수초는 기지개라도 켜는 듯 몸을 길게 늘어뜨렸다. 수초는 희미한 빛에도 광합성을 하고, 줄기가 끊겨도 복구해 낸다. 침수 식물은 형태를 고집하지 않고 조건에 맞춰 자신의 모습을 바꾸어 가며 자라난다. 수초는 장승자가 ‘밑것’이라고 불리는 존재에게 끌려오기 전까지 자신의 삶에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 p.120 바람이 다리 바닥을 핥고 지나가며 회색 얼룩 하나를 스쳤다. 한때 공기로 가득했던 풍선껌은 지금 납작하게 누워 사람들의 발걸음을 느끼고 있다. --- p.127 그날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다음 날도. 달라진 것이라고는 푸드 트럭에 모이는 멤버가 두 명 늘어났다는 것 정도. 각자 고립되어 있던 이들이 공통의 과제로 결속하게 된 것이 변화라면 변화다. 둥둥이들의 존재가 이들의 관계에 접착제 노릇을 한 셈이다. 그들은 시간대를 나누어 관찰한 내용을 공유하고, 때로는 둥둥이와는 전혀 상관없는, 날씨나 다이어트나 동네 가게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변화가 시작되었다. --- p.133~134 비틀거리는 자가 비틀거리면서 몸을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방금까지 그는 구겨진 옷처럼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러다 무릎을 세워 한 손으로 바닥을, 다른 한 손으로 무릎을 짚은 후 팔을 지팡이 삼아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다. 어찌나 느렸는지 몸을 추스르는 데 반나절이 걸렸을 정도다. 움직임이 거의 없기 때문에 수컷 주머니나방의 눈에는 나무와 같은 식물이나 쓰레기통과 같은 사물과 구분할 수 없었다. --- p.159 ‘감정이 거꾸로 흐르고 있어.’ 휴대폰은 ‘인간 → 둥둥이’에서 ‘둥둥이 → 인간’으로 바뀌어 버린 새로운 회로를 감지했다. 인간의 감정을 흡수하던 둥둥이들이 이제는 거꾸로 인간에게 감정을 감염하고 있었다. --- p.185 둥둥이들은 사람들과 겹쳐질 때마다 그들의 감정을 훔쳐 입었다. 누군가의 분노를 벗겨 다른 이에게 씌우고, 누군가의 두려움을 또 다른 이에게 옮겨 놓았다. 입고 벗기 쉬운 옷을 갈아입는 것처럼. 둥둥이에게 감정이 덧씌워진 이들은 자신이 왜 화가 나고 무서운지 모른 채 화를 내고 두려워했다. --- p.1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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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끝난 서울 안양천의 신정잠수교. 장마가 지났는데도 잠수교는 여전히 물에 잠겨 있다. 이것은 모두에게 목격되는 현상은 아니고, 이 소설의 ‘주인공들’에게만 보이는 일이다. 그들은 물에 잠긴 다리 위로 떠다니는 유령 같은 존재, ‘둥둥이’들이 지나다니는 것을 발견한다.
따돌림을 당해 고등학교를 자퇴한 윤성, 학교폭력을 겪는 태정, 사이 나쁜 부모 속에서 방치된 솔준, 육아의 고립과 산후 우울증에 지친 희림, 사기를 당해 돈을 잃고 군밤 장사를 하는 낙경 등 저마다 가슴속에 상처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은 함께 모여 ‘둥둥이’의 정체가 무엇인지 추측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와중에 둥둥이들이 하나둘 땅에 발을 붙인 뒤 인간의 모습으로 변하고, 잠수교에는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하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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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잠긴 다리 위로 낯선 존재들이 지나다닌다
익숙한 현실에 열린 기묘하고 환상적인 공간 방바닥에서 실컷 뒹굴고 일어난 윤성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머릿속이 오래전부터 잠겨 있던 것처럼 둔해져 있었다. 잠수교도 그렇다. 장마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수위가 줄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상하리만치 사람이 많았고 잠수교를 오가는 모습도 보였다. 잠수교 위를! 여전히 물에 잠겨 있는 다리 위를 말이다. (27면) 장마가 끝난 어느 날 오후,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집에만 있던 ‘윤성’은 뒤늦게 일어나 창문 밖을 바라본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한다. 장마가 지나갔는데도 여전히 잠수교가 물에 잠겨 있고, 물에 잠긴 잠수교 위를 사람들이 활보하고 있다. 윤성은 자신이 헛것을 본 것인지 의심하다가 문득 낯익은 꼬리를 발견한다. 몇 년 전 무지개 다리를 건넌, 윤성이 사랑했던 강아지 ‘망고’의 꼬리를. 윤성은 망설임 없이 현관문을 박차고 잠수교로 향한다. 한편 윤성과 달리 풀이 죽은 모습으로 잠수교에 가는 이도 있다. 자신을 괴롭히는 친구의 강요로 풋살을 하러 가는 ‘태정’이다. 태정은 윤성처럼 다리가 물에 잠겨 있음을 발견하고 친구들에게 말하지만, 친구들은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며 빨리 따라오라고 한다. 따라가지 않을 수 없는 태정은 어쩔 수 없이 물속으로 들어가는데, 놀랍게도 숨이 쉬어진다. 잠수교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이후 윤성과 태정처럼 잠수교의 이상 현상을 목격하는 이들이 군밤 장수 ‘낙경’의 트럭을 중심으로 모인다. 그들은 잠수교가 왜 여전히 물에 잠겨 있는지, 물에 잠긴 잠수교 위를 지나다니는 ‘둥둥이’의 정체가 무엇인지 함께 추측하기 시작한다. 그간 다채로운 환상 세계를 펼쳐 보였던 작가는 ‘기묘한 존재들이 나타나는 잠수교’라는 현실적이면서도 독특한 공간으로 우리를 데려다 놓는다. “의인법의 마녀가 펼쳐 보이는 21세기형 가전체 소설” 인간과 비인간이 동등하게 어우러지는 잠수교의 세계 우두커니는 가로등이 되기 전부터 호기심이 많았다. 그걸 어떻게 알게 됐냐면, 공장에서 아직 완제품이 되기 전부터 몸을 들썩거리며 세상으로 나가고 싶었던 기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우두커니는 사실 가로등이라는 사물로 살아가기에는 지나치게 외향적이다. (77면) 『잠수교에 누가 있다』는 장마를 맞은 잠수교의 시점으로 시작된다. 잠수교는 자신의 다리에 차오르는 물의 감각을 느끼며 서서히 물속에 잠긴다. 한편 잠수교의 옆에서는 가로등 하나가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 댄다. 전구가 망가져 불이 들어오지 않는 가로등은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다. 보기 위해서 태어났지만 볼 수 없는 가로등은 당황한 마음으로 누군가를 찾는 고함을 친다. 이렇듯 소설에는 하루살이, 수초, 풍선껌, 도롱이벌레, 휴대폰 등 다양한 비인간 존재들의 시점이 나온다. 인간을 괴롭히며 즐거움을 느끼는 하루살이, 땅에 붙은 처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쓰는 풍선껌 등 비인간 존재들의 다채로운 이야기는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소설에서 비인간 존재들이 목소리를 내며 활약하는 장면은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인간과 동물, 인간과 사물 등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해 온 경계를 지우며 소설은 고정 관념을 깨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각자의 방에 갇혀 있던 사람들이 서로의 곁에 서게 되기까지 같은 것을 본다는 사실이 만들어 준 독특한 연대 “내 정신이 어떻게 된 줄 알았어. 눈이 잘못됐거나. 그런데 아무리 눈을 비벼도 계속 똑같은 장면이 보였어.” “나도 엄마 아빠가 내 말을 믿어 주지 않아서 슬펐어요.” “우리 둘에게만 이런 게 보이는 걸까?” 그때 여학생이 불쑥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나도 보여, 얘들아. 너희만 그런 거 아니라고.” (61면) 소설 속 ‘둥둥이’를 볼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집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밀려나 각자의 자리에 고립되어 있다는 것. 따돌림, 학교폭력, 산후 우울증, 사업 실패 등 다양한 이유로 인해 소외되고 억눌린 이들은 남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이상한 존재를 목격한다는 공통점으로 잠수교에 나와 서로를 알게 된다.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 순간 그들은 자신이 미친 것이 아니라는 안도감을 느낀다. 군밤 트럭 앞에 모인 그들은 순번을 정해 둥둥이를 관찰하면서 때로는 둥둥이와 상관없는 날씨나 동네 가게 이야기를 나눈다. 대단한 일을 하는 건 아니지만, 공통의 과제는 단절되어 있던 그들이 결속하고 마음을 나누는 계기가 된다. 둥둥이들로 인해 생긴 균열로부터 다리를 지키기 위해 함께 손을 잡으며 힘을 모으는 장면은 기묘한 위로로 다가온다. 『잠수교에 누가 있다』는 고립과 단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연결’의 의미를 되새겨 보게 할 소중한 소설이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자기감정을 억눌러 온 사람들, 슬픈 사람들, 화난 사람들, 슬프다 못해 화가 나는 사람들, 자신으로 살아가는 게 재미없고 주눅 드는 사람들이 이 소설의 반죽이 되었다. 그것은 둥둥이가 되고 밑것이 되고 비틀거리는 자로 변하기도 했다. 다 써 놓고 보니 인간의 주변에는 자기 생에 몰두하는 다양한 생물과 사물 들이 있어서 아무도 고립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풍선껌을 쓸 때는 특히 즐거웠다. 풍선껌 부는 방법을 처음 터득했을 때의 놀라움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처음 탔을 때도, 소설을 처음 완성했을 때도 그랬다. 눈이 크게 떠지고 마음이 벅차올랐던 순간들. 탈 수 있거나 쓸 수 있는 방법을 말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일단 한번 깨치고 나면 사라지지 않고 몸에 남는다. 앞으로도 내 몸에 남아 있는 많은 리듬을 담아 풍선껌을 불고, 자전거를 타고, 소설을 쓸 생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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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의자를 주인공 삼은 이야기로 활동하기 시작한 작가의 신작 소설에서, 잠수교와 가로등과 풍선껌이 인격을 입고 제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왠지 모르게 당연한 세계의 일부로 여겨진다. 인간과 비인간을 철저하게 구별하며 비인간에게 적합한 지위와 한계를 부여하는 고정 관념이란 김성중 작가의 사전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는 소설이다. 재난과 불행의 찌꺼기들의 집적체로 표상되는 둥둥이들이 서로 연결되어 가는 과정에서 돌출되는 서스펜스는, 그들이 이를 드러내어 물지 않아도 감염된다는 점에서 새로운 좀비의 유형으로 볼 수도 있겠다. 의인법의 마녀가 펼쳐 보이는 21세기형 가전체 소설에서, 경계를 지우는 존재들을 만나 보기를. - 구병모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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