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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1부. 우주의 화관 잡초의 평화|진초사대접시盡草事待楪匙|야생화는 자연의 사투리|골디락스 존에서|목과木果|가을 나무 아래서|하얀 유월|내 생에 유일한 가을|우주의 화관花冠 패랭이꽃|지구의 난로|창槍대와 넝쿨손의 생존법|바다는 푸른 깃 옷을 입는다|섬들이 잠든 겨울 바다|나뭇가지 끝에 꽃망울 맺기까지|청자운학문매병|지구는 중력분을 먹고 산다|흐린 사월 아침에|한국인은 곡선족이다|땅은 빠르고 흙은 느리다 2부. 기억의 집 길갓집|대봉|외할머니 가슴속 무덤 일곱|고사리 사모곡|어머니 만나는 법|동백꽃 필 무렵|포도청 옆 오죽집|그리운 울력|길 위의 성취와 자취|능소화|애주가|김장교향곡|망덕포구|전라도의 눈물|주酒님에 대한 반성문|기억의 은신처|제망백합祭亡百合|삼도천三途川|이승에 남은 빈손|부고 없는 장례식 3부. 사랑은 우연히 발견된다 사랑 촉觸|진달래꽃|할인 판매되는 하늘|비의 무게|그대 눈길을 끌고 간 힘|장미 긴 미소|빛 맞아서 좋은 날|기억의 퇴적층에 고루 새겨진 그대 ― 생흔화석|사랑은 우연히 발견된다|사랑니|사랑하지 않는 일|목마와 손녀|나로부터 이식된 온려穩侶|갱년기 남자|배롱나무꽃처럼|연등화蓮燈花|마음 궁합 맞추기|불치의 세월|나의 부재 4부. 남은 삶의 문법 격려|빈우貧友|사랑과 건강의 균형미|인생 뭐 있냐고 말하지 말라|마음의 중립 기어|감정 레시피|나는 목숨 걸지 못했다|시선 보태기|주전자와 유전자|착각은 찰칵이다|짐작|맑은 가난|나를 비운다는 것은|백제의 불모 같은 선심禪心|선입견과 편견의 오류|돌이킬 수 없는 물과 말|늘어나는 것들에 대하여|자화상 이미지|문득 행복하세요 발문_ 언어로 짜는 존재의 지도 · 박제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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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서 소금까지, 미시와 거시를 넘나드는 상상력
4부-1부 우주의 화관, 2부 기억의 집, 3부 사랑은 우연히 발견된다, 4부 남은 삶의 문법-로 구성된 시집은 자연과 우주에서 시작해 가족과 고향, 사랑과 상실을 지나 남은 삶에 대한 성찰에 이르는 이 배열은 한 인간이 세계를 인식해 가는 동심원적 확장의 궤적을 따른다. 이유곡의 시선은 크고 화려한 것보다 작고 낮은 것을 향한다. 잡초와 패랭이꽃, 모과 열매와 나뭇가지 끝의 꽃망울, 오래된 고향집과 어머니, 외할머니 같은 존재들이 시의 대상이다. 그러나 시인의 눈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한 송이 꽃에서 우주를 보고, 한 알의 소금에서 태양과 바다의 시간을 읽는다. 「골디락스 존에서」는 생명체가 존재하기에 적합한 행성의 위치를 뜻하는 천문학 용어에서 출발해 “평지를 걷는 발걸음조차 감지덕지하다”는 겸허함에 이르고, 표제작 「바다는 푸른 깃 옷을 입는다」는 민물가재의 간을 맞추는 일에서 시작해 소금의 생성 과정을 거쳐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블루칼라의 땀”이 배어 바다가 푸르게 되었다는 노동의 존엄에 닿는다. 고향의 사투리와 어머니의 기억, 사라지는 것들을 위한 노래 〈2부. 기억의 집〉은 시집에서 가장 깊은 정서적 울림을 만들어내는 공간이다. 「고사리 사모곡」은 가난한 시절 가족의 생계를 위해 산에서 고사리를 꺾던 어머니의 모습을 되살린다. 시인은 어린 시절의 풍경을 통해 한 어머니가 짊어졌던 노동과 희생을 기록한다. 「어머니 만나는 법」에서는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을 복권과 성공이라는 일상적 소재에 담아내며, 「동백꽃 필 무렵」에서는 어머니의 무덤가에 심은 동백나무를 통해 뒤늦게 깨닫는 사랑과 회한을 표현한다. 그리고 이유곡의 기억은 개인적인 가족사에만 머물지 않는다. 「포도청 옆 오죽집」은 해방 이후의 혼란과 폭력이 남긴 지역의 상처를 사투리로 복원하고, 「전라도의 눈물」은 지역의 역사와 민중의 애환을 한 시대의 집단적 기억으로 확장한다. 특히 전남 동부와 경남 서부 지역의 방언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은 눈길을 끈다. 시인에게 사투리는 단순한 향토적 장식이 아니라, 표준화된 언어가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는 삶의 감각과 역사적 기억을 보존하는 중요한 문학적 자산이다. 사랑은 우연히 발견된다, 기억의 퇴적층에 남은 생흔화석 〈3부. 사랑은 우연히 발견된다〉는 이 시집의 핵심적인 사유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시인은 사랑을 순간적인 감정이나 낭만적인 고백으로만 이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랑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사라지지 않고 삶의 깊은 곳에 남아 있는 흔적이라고 말한다. 「기억의 퇴적층에 고루 새겨진 그대 ― 생흔화석」에서 시인은 지질학적 개념인 ‘생흔화석’을 사랑의 은유로 끌어온다. 오래전 존재했던 생명이 땅속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듯, 한때 우리 곁에 머물렀던 사람들도 마음의 지층에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긴다는 것이다. 「사랑은 우연히 발견된다」 역시 이러한 인식을 확장한다. 사랑은 애써 증명하거나 확인하려 할 때보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기억의 한 장면에서 문득 모습을 드러낸다. 이는 사랑을 소유나 집착이 아닌 기억과 발견의 문제로 전환하는 시적 통찰이다.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성찰과 유머가 공존하는 인생론 〈4부. 남은 삶의 문법〉에서는 삶의 후반부에 접어든 시인의 성찰이 담백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펼쳐진다. 「인생 뭐 있냐고 말하지 말라」는 누구의 삶도 가볍게 일반화하거나 평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마음의 중립 기어」는 사랑과 미움 사이에서 이해와 관용의 자리를 모색하며, 「나를 비운다는 것은」과 「돌이킬 수 없는 물과 말」은 삶을 대하는 태도와 언어의 책임을 되묻는다. 마지막 작품 「문득 행복하세요」는 이 시집이 독자에게 건네는 따뜻한 인사이기도 하다. “늘 행복하지는 마시고 문득 행복하세요” 언제나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평범한 일상에서 예기치 않게 찾아오는 행복의 순간을 소중하게 받아들이라는 권유다. 30년 만의 첫 시집, 삶이 남긴 흔적을 읽는 시간 『바다는 푸른 깃 옷을 입는다』는 단순한 회고나 자연 예찬의 시집이 아니다. 그 안에는 삶의 상처와 후회, 고향의 역사와 공동체의 기억, 사랑과 상실, 생명의 신비와 우주적 질서가 서로 얽혀 있다. 시인은 작은 풀꽃 하나에서도 거대한 우주를 발견하고, 오래된 사투리 한마디에서도 잊혀가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사라진 것들을 무조건 슬퍼하기보다 그들이 남긴 흔적을 읽고, 지나온 삶을 부정하기보다 그 삶이 지닌 의미를 다시 발견한다. 첫 시집을 펴내기까지 30여 년이 걸렸다는 사실은 이 시집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다. 빠르게 쓰고 발표하는 일보다 오래 관찰하고 숙성시키는 시간을 선택한 시인의 언어에는 그만큼 삶의 무게와 깊이가 배어 있다. 수많은 강물과 눈물을 품고도 묵묵히 푸른 깃 옷을 입는 바다처럼, 이유곡의 시는 상처와 그리움까지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넉넉한 세계를 보여준다. 독자들은 이 시집을 통해 저마다의 마음속에 잠들어 있던 오래된 얼굴과 풍경을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 발문을 쓴 박제영 시인(문장수선공)은 이 시집을 “늦게 도착한 첫 시집이지만, 그 지각(遲刻)이 오히려 이 시집의 자산이 되었다”고 평했다. 한자어의 어원을 분해하고, 사투리의 결을 되살리고, 과학 용어와 토속어를 나란히 놓는 방식으로 익숙한 사물에서 낯선 의미를 길어 올리는 시인의 ‘언어에 대한 지치지 않는 탐구심’이 이 시집의 가장 뚜렷한 특징이라는 것이다. 박 시인은 또한 언어유희 뒤에 반드시 존재에 대한 질문을 세워 두기에 말장난에 그치지 않는다고 짚으며, 이 시집이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기억의 퇴적층을 한 번쯤 들여다보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고 썼다. 이유곡 시인은 “이 시들이 독자의 마음속 어느 풍경과 만나 잠시 걸음을 멈추게 하고, 잊고 지낸 얼굴 하나와 오래된 기억 하나를 조용히 불러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 시인의 말 시는 내게 지나온 시간과 마주 앉아 부족함을 성찰하고 참회하게 하는 거울이다. 길가의 작은 꽃 한 송이와 오래된 나무, 고향의 흙길과 바닷바람 속에는 미처 알아채지 못하고 지나친 삶의 표정들이 남아 있었다. 어느 날 문득 그것들이 말을 걸어오면, 나는 낮은 시선으로 그 목소리를 받아 적듯 시를 썼다. 어머니와 가족, 고향과 유년의 기억은 세월이 흘러도 떠나지 않았다. 잊었다고 생각한 얼굴과 목소리, 음식 냄새와 고향 사투리까지 마음 한편에 오래 머물렀다. 사랑과 인연도 그러했다. 곁을 떠난 것들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기억의 퇴적층마다 생흔화석生痕化石처럼 새겨져, 그리움과 상처로, 때로는 따뜻한 웃음으로 되살아났다. 꽃잎 하나와 나뭇가지 끝의 꽃망울, 땅 위의 작은 생명에서 머나먼 별과 우주를 떠올리기도 했다. 그 모든 존재에는 살아남기 위한 시간과 질서가 있었다. 하찮게 여겨지는 생명과 사물에도 의미 있는 이름을 붙여 주고 싶었던 까닭은, 한 사람의 삶 또한 거대한 자연의 일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바다는 수많은 강물과 눈물, 떠나간 이들의 사연을 품고도 말없이 푸른 깃 옷을 입는다. 그 깊은 품에는 폼페이의 화산재와 조선 지어미의 서간, 엄마의 새벽기도, 낡은 흑백사진과 떠나간 이의 울먹이는 뒷모습까지 흘러들어 있다. 사랑은 애써 확인하려 할 때보다, 이처럼 삶의 흔적 속에서 문득 모습을 드러낸다. 이 시집은 자연과 우주, 삶의 애환과 사랑의 기억을 노래하고 있지만, 결국 내가 지나온 시간과 그 속에서 만난 수많은 ‘그대’에 관한 이야기다. 부족한 언어로 삶의 흔적을 온전히 담아낼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이 시들이 독자의 마음속 어느 풍경과 만나 잠시 걸음을 멈추게 하고, 잊고 지낸 얼굴 하나와 오래된 기억 하나를 조용히 불러낼 수 있기를 바란다. 저마다의 가슴속 바다가 오래 간직해 온 사연 위에, 한 자락 푸른 깃 옷을 입혀 줄 수 있기를 소망한다. 끝으로 이 시집이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여러모로 도움을 주신 달아실출판사와 박제영 시인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2026년 10월 河西 이유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