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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1부. 안개 후기 안개 도시|원스어폰어타임인 강촌|의암호와 신연강|봄장마|소양강 처녀 ― 기다리는 마음|안개 나라|장미촌|살구나무 밑에서 2부. 사랑 후기 귀가|연인|원초적 상상|소망|들리나요?|소꿉장난|꿈|우문현답|봄 2026|낮술 2|님이시여|동행|불가능한 일|묶인 개 3부. 아내 몰래 부르는 노래 아내 몰래 부르는 노래 4부. 이별 후기 시간|관계|이별 예찬|첫사랑|봄밤에|망각|미련|혼술|안녕|바람|낮술 1|살다 보면|머뭇거림에 대하여|울컥|늙어 간다는 것|참회|가을비 단상|숲속의 비가|인생|너는|늙은 손|술시時|방랑자 5부. 사랑과 이별의 노래 사랑과 이별의 노래 6부. 존재와 사색 사이렌의 노래|가을|세월|종극|길|봄바람 노인|버킷리스트|폭설|동심|멍때리기|여행|판|시詩 굽는 사람 7부. 선전선동의 노래 돼지꿈|연애와 투쟁의 4분의 3박자로|혁명과 시|국기에 대한 맹세|괴담 2023|우분투UBUNTU|근골격계 ― 춘천 당임리 풀무원|씁쓸하거나 쓸쓸하거나 8부. 신 가루지기타령 신新 가루지기타령 문장수선공의 수선일지_ 안개 속에서 부르는 노동과 사랑의 노래 · 박제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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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는 풍경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다
김종수의 시에서 ‘안개’는 단순히 춘천을 상징하는 자연현상에 머물지 않는다. 사랑과 이별, 기억과 망각, 만남과 헤어짐 사이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존재 방식 그 자체에 가깝다. 시집의 맨 처음에 배치한 「안개 도시」에서 시인은 사랑을 잃고, 사랑에 속고, 사랑을 빼앗겨 ‘가슴이 텅빈’ 이들에게 춘천으로 오라고 권한다. 춘천은 “안개처럼 몽환적인 곳”, “방황하기 딱 좋은 곳”이다. 그러니 안개 속에 가슴에 고인 눈물 다 뿌리고 가라고 또 권한다. 어쩌면 안개 같은 방황 속에서 안개 같은 인연을 다시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춘천이라는 구체적인 장소는 이 시집에서 하나의 거대한 기억의 지도가 된다. 의암호와 소양강, 강촌, 공지천, 춘천역, 요선동과 장미촌, 명동 뒷골목 등 춘천의 장소들이 시인의 청춘과 사랑 그리고 이별과 방황, 노동과 투쟁의 기억을 품고 등장한다. 「원스어폰어타임인 강촌」에서는 청춘의 낭만과 이별이, 「의암호와 신연강」에서는 개발 이전의 풍경과 사라진 시간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난다. 그런 의미에서 『안개, 사랑 그리고 이별 후기』는 결국 ‘춘천이라는 도시를 읽는 시집’이다. 한 개인의 기억 속 춘천과 변화해온 도시의 풍경이 겹쳐지며 독자는 한 사람의 생애와 한 도시의 시간을 동시에 만나게 될 것이다. 사랑의 절정보다 ‘사랑 이후’를 바라보다 제목에서 눈에 띄는 단어는 ‘후기’다. 시인은 사랑의 시작이나 절정보다 사랑이 지나간 뒤 남겨진 것에 오래 시선을 둔다. 젊은 날의 사랑과 첫사랑, 함께 늙어가는 부부의 시간, 지나간 인연과 미련, 이별 이후의 고독이 시집 곳곳에서 서로 다른 얼굴로 나타난다. 특히 「사랑과 이별의 노래 - 15. 사랑 후기」에서 시인은 뜨겁게 소유하고 집착하는 사랑에서 한 걸음 물러난다. 젊은 날의 열정이 서로를 소진시키기도 했다는 깨달음 끝에서 도달하는 사랑은 상대를 자신의 시간표에 맞추지 않는 것이다. 시인은 마침내 “사랑은 방목입니다”라고 쓴다.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놓아주는 일이며, 서로의 삶을 인정하면서 곁을 지키는 일이라는 노년의 깨달음이다. 그러한 사랑은 부부의 일상을 다룬 3부 「아내 몰래 부르는 노래」에서 더욱 따뜻하고 구체적인 얼굴로 나타난다. 노동운동과 식당 운영, 실직과 빚, 집안일과 생활의 구체적인 시간이 해학과 애틋함 속에서 펼쳐진다. 거창한 사랑의 수사보다 “그대 두 손 잡고 일으켜 꼭 안아주는 곁”이 되고 싶다는 고백이 오래 남는다. 투쟁하던 노동운동가가 시로 돌아본 자신의 시간 그러나 이 시집을 사랑과 이별의 서정시집으로만 읽는다면 절반만 읽는 셈이다. 김종수는 오랫동안 노동운동 현장에 있었던 투사다. 그의 삶에서 사랑과 노동, 시와 투쟁은 분리되지 않는다. 〈7부. 선전선동의 노래〉에 이르면 시집의 목소리는 개인적 회고를 넘어 사회와 역사를 향한다. 노동현장에서 몸이 망가진 노동자를 그린 「근골격계―춘천 당임리 풀무원」, 1989년 장기파업과 노동운동의 기억을 되짚는 「씁쓸하거나 쓸쓸하거나」 등의 작품에는 노동운동가로 살아온 시인의 시간이 생생하게 배어 있다. 투쟁의 현장을 영웅적으로 미화하기보다는 그 안의 상처와 고독, 회의와 허무까지 함께 들여다본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그럼에도 시인은 연대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버리지 않는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다 추락하는 달팽이를 통해 무한경쟁의 세계를 비판하는 「우분투UBUNTU」에서는 “니 편 내 편 없이 어깨 걸고/ 아래로, 더 아래로” 흘러가 마침내 평등해지는 세계를 꿈꾼다. 개인의 사랑에서 노동자의 연대로, 다시 인간과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질문으로 시적 사유가 확장되는 것이다. 서정과 풍자, 사투리와 육담까지… 한 권에서 충돌하는 다양한 목소리 『안개, 사랑 그리고 이별 후기』의 또 다른 특징은 하나의 문체에 머물지 않는다는 데 있다. 어떤 시에서는 안개와 꽃, 강물과 바람을 통해 고요한 서정을 펼쳐 보이다가, 다른 작품에서는 거침없는 사투리와 육담, 정치적 풍자를 쏟아낸다. 시집 말미에 수록된 장시 「신新 가루지기타령」은 이러한 김종수 시의 언어적 자유로움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작품이다. 판소리 사설을 연상시키는 걸쭉한 입말과 능청스러운 육담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단순한 해학에서 끝나지 않는다. 한때 아이들의 울음과 웃음으로 가득했던 시골마을에서 이제는 그 소리가 사라졌다는 현실로 이어지며 농촌 공동체의 소멸과 저출생 시대의 풍경까지 환기한다. 시집 해설을 쓴 박제영 시인은 “이 시집의 백미를 하나 꼽으라면 단연 「신新 가루지기타령」”이라며 “판소리 사설의 리듬과 육담을 빌려 한바탕 걸판진 언어유희를 펼쳐 보인다”고 평가한다. 정치적 신념과 사적 그리움을 함께 끌어안은 자기 기록 김종수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이렇게 적는다. “안개 속에 홀로 서 있다. 참 좋다. 안개 같은 마음의 집 세 채나 지을 수도 있다니. 네다섯 채에서 멈춰야겠지. 그때쯤이면 아마도 안개도 걷히고 기력만큼 필력도 달릴 테니까.” 이 짧은 문장은 이번 시집의 성격을 압축한다. 젊은 날 세상을 바꾸기 위해 거리와 노동현장을 뛰어다녔던 사람은 이제 안개 속에 서서 자신이 지나온 길을 돌아본다. 그 길에는 투쟁이 있었고 사랑이 있었으며, 실패와 이별, 술과 방황, 아내와 동료들, 그리고 춘천이라는 도시가 있었다. 박제영 시인은 해설에서 이 시집을 “노동운동으로 잔뼈가 굵은 한 시인이 칠십 대로 접어들며 정치적 신념과 사적 그리움을 함께 끌어안으며 써 내려간 정직한 자기 기록”으로 읽는다. 그래서 『안개, 사랑 그리고 이별 후기』의 ‘후기’는 단순히 지나간 사랑에 대한 후일담만을 뜻하지 않는다. 청춘 이후, 투쟁 이후, 사랑 이후, 이별 이후에도 계속되는 삶에 대한 기록이다. 모든 것이 지나가고 희미해지는 나이에 시인은 오히려 안개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사라지는 것들을 붙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라짐까지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다. 춘천의 안개에서 시작해 사랑과 이별을 지나 노동과 투쟁, 그리고 다시 인간에 대한 믿음으로 이어지는 시집. 『안개, 사랑 그리고 이별 후기』는 한 노동운동가이자 생활인이며 시인인 김종수가 자신의 생애를 시라는 언어로 다시 써 내려간 ‘인생 후기’이기도 하다. ■ 시인의 말 안개 속에 홀로 서 있다. 참 좋다. 안개 같은 마음의 집 세 채나 지을 수도 있다니. 네다섯 채에서 멈춰야겠지. 그때쯤이면 아마도 안개도 걷히고 기력만큼 필력도 달릴 테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