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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우스 카이사르
민중을 위해 로마의 주인이 된 독재관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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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하모니(GREAT HARMO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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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감사의 글
서문

1장 베누스의 후예
2장 분노
3장 카이사르의 어린 시절
4장 십 대 시절
5장 초기의 모험
6장 카이사르가 되다
7장 카틸리나
8장 머리 셋 달린 괴물
9장 기회의 땅
10장 카이사르가 말하는 카이사르
11장 갈리아 전쟁의 서막
12장 경계 설정하기
13장 반란과 재건
14장 루비콘
15장 폼페이우스 격파
16장 클레오파트라
17장 독재관
18장 3월 15일
19장 카이사르의 유산

등장인물
연표
용어 설명
주석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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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2

저데이비드 포터

관심작가 알림신청
 

David Potter

미시간대학교 고전학과에서 25년 넘게 교편을 잡아온 세계적인 고대사 학자. 미시간대학교 ‘프랜시스 W. 켈시 그리스·로마사 석좌교수’이자 ‘아서 F. 서노 석좌교수’로서 그리스·로마사 및 그리스·라틴어를 가르치고 있다. 로마사에 관한 수많은 저서를 집필했으며, 히스토리 채널의 다수 로마사 프로그램에 전문가로 출연했다. 수년간 《시카고 트리뷴》의 자매지 《레드아이(RedEye)》에 고대 그리스·로마 및 현대 스포츠 이슈를 다루는 주간 칼럼을 기고하기도 했다. 주요 저서로는 《로마 제국의 삶, 죽음, 그리고 오락》(데이비드 매팅리 공저), 《로마의 황제들》, 《위기의 로마 제국 1
미시간대학교 고전학과에서 25년 넘게 교편을 잡아온 세계적인 고대사 학자. 미시간대학교 ‘프랜시스 W. 켈시 그리스·로마사 석좌교수’이자 ‘아서 F. 서노 석좌교수’로서 그리스·로마사 및 그리스·라틴어를 가르치고 있다. 로마사에 관한 수많은 저서를 집필했으며, 히스토리 채널의 다수 로마사 프로그램에 전문가로 출연했다. 수년간 《시카고 트리뷴》의 자매지 《레드아이(RedEye)》에 고대 그리스·로마 및 현대 스포츠 이슈를 다루는 주간 칼럼을 기고하기도 했다.
주요 저서로는 《로마 제국의 삶, 죽음, 그리고 오락》(데이비드 매팅리 공저), 《로마의 황제들》, 《위기의 로마 제국 180~395》, 《승리자의 면류관》, 《고대 로마: 새로운 역사》, 《콘스탄티누스 황제》 등이 있다.

金悳洙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에 입학해 로마사를 처음 접했다. 긴 역사 속 지중해 세계를 누빈 수많은 인물과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빠져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로마사 탐험을 이어갔고, 아우구스투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제32대 역사학회 회장을 지냈고, 한국서양고대역사문화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최근 EBS의 [클래스 ⓔ]에서 ‘불멸의 제국, 영원한 로마’ 연강을 진행하고, KBS의 [역사저널 그날]에 출연해 악티움해전의 전개 양상과 의의를 소개하는 등, 로마사의 다양한 매력을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 중이다. 저서로는 『그들은 로마를 만들었고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에 입학해 로마사를 처음 접했다. 긴 역사 속 지중해 세계를 누빈 수많은 인물과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빠져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로마사 탐험을 이어갔고, 아우구스투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제32대 역사학회 회장을 지냈고, 한국서양고대역사문화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최근 EBS의 [클래스 ⓔ]에서 ‘불멸의 제국, 영원한 로마’ 연강을 진행하고, KBS의 [역사저널 그날]에 출연해 악티움해전의 전개 양상과 의의를 소개하는 등, 로마사의 다양한 매력을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 중이다.
저서로는 『그들은 로마를 만들었고, 로마는 역사가 되었다』 『바울: 크리스트교를 세계화하다』 『로마와 그리스도교』 『아우구스투스의 원수정』 『그리스와 로마』 등이 있고, 번역서로는 『하이켈하임 로마사』 『로마혁명사』(공역) 등이 있다.
이 책은 로마의 흥망을 좌우한 결정적 요소로서 지도자의 본색을 살펴본다. 공화정 말기의 혼란기부터 제국의 최전성기인 오현제 시대와 그 직후까지, 1인자들의 본심을 알면 로마사를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오늘날의 독자에게도 어떤 영감을 건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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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11월 04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536쪽 | 152*225*35mm
ISBN13
9791176613941

책 속으로

심지어 그를 좋아하지 않던 사람들까지도 카이사르가 탁월하게 총명하고 높은 교양을 갖춘 인물이며, 논거의 힘으로 다른 사람들을 자기 편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인정했다.
---p.16

이 책에서 플루타르코스는 카이사르와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짝지어 비교했는데, 그에게 이 둘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두 장군이자 행정가였다. 다만 카이사르는 술에 취해 살인적인 분노를 터뜨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조금 더 위대한 인물로 평가되었다.
---p.58

포로로 잡혀 있는 동안, 단 세 명의 시종만을 데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해적들의 교양을 높여주려고 노력하면서 자신이 직접 쓴 시와 연설문을 그들에게 읽어주곤 했다. 그리고 동시에 그는 풀려나는 즉시 그들을 추적해 죽이겠다고 공언했다.
---p.80~81

키케로 역시 나중에 카이사르가 군사적 성공을 택하지 않았다면 당대 최고의 연설가 중 한 명이 되었을 것이라고 썼다. 그는 분명 카이사르의 탁월한 지성에 경의를 표했다.
---p.101

이때부터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카이사르는 수차례에 걸쳐 정적들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제시했는데, 이 두 가지 다 정적들에게는 불리한 선택이었고, 카이사르에게는 어느 쪽이든 이익이 되는 선택이었다.
---p.108~109

그의 삶에서 이미 잘 알려진 또 다른 면모는 그가 술을 마시지 않았고 음식에 대한 취향이 소박하다는 것이었다.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그가 맨정신으로 국가를 망치려 한 유일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금주에는 개인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측면도 있었다.
---p.116

총사령관인 카이사르는 솔선수범하는 리더십을 보였다. 장군이 예상치 못한 난관에 처할 때 어떠해야 하는지는 “모든 것을 동시에 처리해야 했던” 한 전투에서 자신을 묘사한 방식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p.176

카이사르는 [...] 일반 병사들과의 정기적인 소통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병사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위해, 그리고 어떻게 싸우고 있는지 알아야 했다. 예를 들어, 『갈리아 전쟁기』 제7권에 나오는 아바리쿰 공성전에서, 자신이 병사들에게 베르킨게토릭스에 대한 공격을 곧바로 명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한다. 이는 병사들이 그의 명성을 드높이기 위해 어떤 위험도 마다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의 생명을 불필요하게 위험에 빠뜨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p.176~177

카이사르는 은폐 시도를 알아차리는 데 능숙했던 것으로 보이며, 불편하더라도 자기 기만적인 거짓보다 진실이 선호되는 환경을 조성했다.
---p.184

그는 전쟁터에서 세계 최고의 장군 중 한 명이었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임을 증명했다. 그의 특별한 천재성은 세부 사항에 대한 주의력, 상황에 기꺼이 적응하려는 의지, 그리고 직면한 현실에 대해 “마땅히 그래야 한다”라고 미리 가정하지 않는 놀라운 능력에 있었다.
---p.269~270

카이사르가 폼페이우스를 명백히 압도했던 단 하나의 영역이 있었으니, 바로 여론 전쟁의 관리였다. 항복하는 자들에게는 관용을 베풀겠다는 점을 거듭 강조함으로써, 그는 최후의 승리 이후에 뒤따를 평화의 토대를 미리 닦아두었던 것이다.
---p.326

그의 행동은 공화정 정부가 해내지 못했던 방식으로 보통 사람들의 복지를 증진시켰다. 부유층만을 더욱 풍요롭게 하면서 시민들을 외면했던 민주적 제도보다는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유능한 통치자가 더 중요했던 것이다.
---p.401

카이사르의 성공은 그의 탁월한 천재성의 산물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다른 이들의 실패의 산물이기도 했다. 그의 생애가 우리에게 남기는 궁극적인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시민들의 신뢰를 잃은 민주정이 어떻게, 그리고 언제 다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가? 카이사르의 생애는 본질적으로 권위주의적일 수밖에 없는 조직구조를 바탕으로 대안적 국가가 어떻게 건설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모델이다. 민주정은 카이사르와 공존할 수 없다.
---p.408

출판사 리뷰

[1] 공화정의 모순 속 혜성처럼 나타난 신인

기원전 1세기 로마 공화정은 겉으로는 제국의 팽창과 번영을 누렸으나 내부는 심각하게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부유한 원로원 귀족 기득권층(옵티마테스)은 공직과 제국의 막대한 부를 독점한 채 개인적인 사리사욕과 가문의 영향력 확대만을 꾀했고, 정치는 매수와 파벌 싸움으로 얼룩졌으며, 가난한 민중은 수세기에 걸쳐 유지되어 온 과두정 체제에 극심한 불만과 배신감을 품고 있었다. 정치적 부패와 민중의 누적된 분노라는 거대한 단층선 속에서, 귀족 가문 출신임에도 민중파(포풀라레스)의 전통을 계승한 청년 카이사르는 기득권의 불의에 맞서 로마 인민의 이익을 대변하는 파격적인 정치적 승부수를 던지기 시작했다.

카이사르는 단순한 말뿐인 선동가가 아니라, 민중이 열망하는 상징과 대중적 기대를 정교하게 간파하고 이를 자신의 정치적 자산으로 바꿀 줄 아는 탁월한 정치가였다. 기원전 65년 ‘아이딜리스’(정무관)로 취임한 그는 술라의 독재 체제하에서 철저히 파괴되고 지워졌던 민중파의 영웅 마리우스의 승전 기념비를 카피톨리움 언덕에 화려하게 복원해 내며 기득권층의 오만함에 경종을 울리고 시민들의 뜨거운 환호를 이끌어냈다. 나아가 기원전 63년에는 원로원의 최고 유력자인 카툴루스 등 기득권 후보들을 제치고 로마 종교의 최고 수장인 대신관(폰티펙스 막시무스) 선거에서 파격적인 승리를 거둠으로써, 기존 귀족정에 반감을 품은 민중의 압도적 지지를 확인하고 반(反)기득권 개혁 세력의 중심 인물로 확실하게 부상했다.

기원전 59년 콘술(집정관)에 오른 카이사르는 귀족 특권층의 지독한 방해 공작을 뚫고 민중에게 약속했던 실질적인 삶의 개선과 국가 재편을 즉각 단행했다. 밀실 정치로 파행을 겪던 원로원의 회의 일정을 매일 시민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는 파격적인 조치를 도입했으며, 퇴역 노병과 로마 빈민들을 위한 농지 분배 법안을 전격 통과시켜 가난한 이들에게 자립의 기회를 제공했다. 또한 속주 총독들의 부당한 재물 수탈을 처벌하는 강력한 반부패 법안(율리우스 반환법)을 제정하여 공정한 행정의 틀을 구축했다. 귀족들만의 특권을 깨부수고 인민 전체의 복지를 실제로 실현해 낸 카이사르의 이러한 행보는, 그를 단순히 권력을 노리는 정치인을 넘어 민중의 기대에 깊이 보답한 참된 국가 지도자(statesman)로 로마 역사에 깊게 각인시켰다.

[2] 천재적 지휘관, 루비콘강을 건너다

기원전 58년부터 시작된 10년간의 갈리아 원정은 카이사르의 군사적 천재성을 천하에 알린 무대였다. 그는 험난한 전장에서 병사들과 똑같이 먹고 자며 최전선을 직접 지휘하는 현장 중심의 리더십을 발휘했다. 또한 현지 부족 간의 갈등을 꿰뚫어 보는 정밀한 정보망과 보급선 구축, 그리고 백인대장과 군단병들에 대한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헬베티이족, 벨가이족, 베네티족 등 거대한 야만족 무리를 연이어 제압하며 로마의 영토를 북해와 브리타니아까지 넓혔다.

그러나 원로원 귀족들은 카이사르의 압도적인 성과와 인기를 경계하여 그의 군사 지휘권을 불법적으로 박탈하고 그를 법정에 세우려 음모를 꾸몄다. 기원전 49년 1월, 호민관의 거부권마저 무시하고 원로원 비상령을 발동한 기득권층의 폭거에 맞서 카이사르는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유명한 말과 함께 루비콘강을 건넜다. 이는 단순한 개인의 야망이 아니라, 로마 인민이 부여한 자신의 명예(dignitas)와 시민들의 권리를 수호하기 위해 단행한 고도의 정치적·군사적 결단이었다.

내전이 발발하자 카이사르는 과거 술라식의 피비린내 나는 학살과 정치적 보복을 단호히 거부하고, 승자로서 정적들에게 자비와 사면을 베푸는 ‘관용(clementia)’ 정책을 선언했다. 이 혁신적인 화해 정책은 이탈리아 민중과 지식인층의 광범위한 지지를 끌어냈으며, 파르살루스 전투에서 폼페이우스의 압도적인 군대를 완벽히 제압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는 무력으로 적을 굴복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자비와 포용을 통해 파괴된 국가를 하나로 결속시키는 새로운 통합의 리더십을 증명했다.

[3] ‘로마의 주인’이 된 독재관

내전에서 최종 승리하여 로마의 유일한 지배자가 된 카이사르의 행보는 특권층의 사리사욕으로 전락했던 ‘공화주의’의 허상을 단호히 타파하고, 오직 민중의 삶과 국가 재편을 위한 대수술에 집중되었다. 그에게 절대 권력이란 개인의 야욕이 아닌, 소수의 전유물이던 낡은 통치 체제를 깨부수고 인민의 복지를 실현할 유일한 도구였다. 그는 오늘날 태양력의 기초가 된 ‘율리우스력’을 제정했으며, 빚더미에 앉은 빈민을 위해 이자 탕감과 임대료 유예 정책을 전격 시행했다. 나아가 공화정 동안 방치되었던 카르타고와 코린토스 등의 폐허에 퇴역 노병과 가난한 시민들을 위한 식민시를 건설하여 사회적 이동성과 경제적 자립 기반을 제공했다.

그러나 기원전 44년 초, 카이사르가 ‘종신독재관(dictator perpetuo)’에 오르자 기득권을 빼앗긴 원로원 귀족들의 공포와 적개심은 극에 달했다. 귀족 과두정의 기득권을 ‘공화국 수호’라는 명분으로 포장해 온 그들은, 민중의 삶을 실제로 개선하는 카이사르의 혁신을 두고 ‘공화정 파괴’이자 ‘왕정(regnum)으로의 귀환’이라며 모함했다. 결국 기원전 44년 3월 15일, 브루투스와 카시우스가 주도한 암살 공모자들은 폼페이우스 극장 회의장에서 카이사르를 스물세 군데나 칼로 찌르며 잔혹하게 암살했다. 민중 복지와 국가 혁신을 위해 귀족 공화정을 타파했던 거인은 그렇게 최후를 맞이했다.

하지만 카이사르의 최후는 역설적으로 부패한 귀족 과두정이라는 ‘죽은 공화정’으로의 복귀가 이미 불가능함을 천하에 증명했다. 암살자들이 목놓아 외친 ‘공화정 복원’이라는 명분은 정작 로마 민중의 냉담한 외면과 분노 속에 또 다른 내전만을 불렀다. 민중은 허울뿐인 귀족들의 공화정 대신 자신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돌본 카이사르의 유산을 열렬히 지지했으며, 신질서의 거대한 흐름은 정치적 후계자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로마 제국이라는 새로운 지평으로 완성되었다.

추천평

로마의 민주정이 가속적으로 붕괴하는 가운데 카이사르가 권력을 장악해가는 과정을 다룬, 장엄하면서도 매우 읽기 쉬운 책이다. - 신시아 데이먼 (펜실베이니아대학교 고전학 명예교수)
데이비드 포터는 복잡하고 논쟁적인 사건들을 흥미롭고 빠른 전개를 통해 이해하기 쉽게 만드는 능력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 헤리엇 I. 플라워 (프린스턴대학교 고전학 명예교수)
이 책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카이사르가 갈리아에서 단순히 군대를 지휘한 것이 아니라, 훗날 로마 공화정을 무너뜨리는 데 사용할 정치적·조직적 기반 자체를 만들어갔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다. - 조시 누델 (트루먼주립대학교 역사학 조교수)
카이사르라는 인물과 그가 살았던 시대를 더욱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교사와 학생이라면 꼭 읽어볼 가치가 있다. - 데이비드 스터타드 (고전학자)
위대한 장군이자 정치가를 그린 놀랍고 독창적인 초상 - 스테판 브란카 (옥스퍼드유니버시티프레스 편집자)
이 책은 당시 시대를 생생하게 그려낸 역사 서술이 되었으며, 동시에 그 시대의 실물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거물급 인물들에 대한 풍부한 평가가 곁들여져 있다. - CHOICE
포터는 카이사르의 복잡한 생애를 직선적이고도 정면으로 다루는 전기를 썼다. - 커커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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