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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인명과 지명에 대하여 지도 제1부 혁명가 1장 우리가 그동안 알았던 스탈린 2장 주가시빌리 가족 3장 성직자 교육 4장 시인과 반란자 5장 마르크스주의 투사 6장 당과 캅카스 지역 7장 도피 8장 당의 중심에서 9장 코바와 볼셰비즘 10장 시베리아의 오시프 11장 페트로그라드로의 귀환 제2부 당 지도자 12장 1917년 13장 10월 14장 인민위원 15장 전선으로! 16장 폴란드 회랑 17장 레닌과 함께 18장 민족과 혁명 19장 유언 20장 싸울 수 있는 기회 21장 이오시프와 나댜 22장 분파에 반대하는 분파주의자 제3부 독재자 23장 신경제정책의 종식 24장 공포 경제 25장 최고 권력자로의 부상 26장 나댜의 죽음 27장 근대의 마법사 28장 승리 속의 두려움 29장 다민족국가의 통치 30장 테러 성향 31장 대공포시대 32장 비인격 숭배 33장 공포정치의 느닷없는 중단 제4부 군사 지도자 34장 세계를 시야에 35장 전쟁에의 접근방식 36장 악마들의 저녁 식사 37장 바르바로사 작전 38장 계속되는 전투 39장 소파에서 자다 40장 죽을 때까지! 41장 최고사령관 42장 연합국의 세 거두 43장 마지막 결전 44장 승리! 제5부 황제 45장 한 방 갈겨 46장 냉전의 발발 47장 동유럽의 종속 48장 스탈린주의 통치 방식 49장 정책과 숙청 50장 황제 숭배 51장 위험한 관계 52장 지도자와 지식인 53장 늙고 병든 독재자 54장 죽음과 미라 만들기 55장 스탈린 사후 용어 설명 주註 참고 문헌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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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바는 소소의 이상이었고, 그가 꿈에 그리던 인물이었다. 코바는 소소의 신, 그의 삶의 의미가 되었다. 그는 두 번째 코바, 그처럼 칭송받는 투사, 영웅이 되고 싶어 했다."
--- p.60 "이 존재가 돌 같은 내 마음을 부드럽게 해주었는데, 가버렸어. 그리고 사람들에게 느끼는 내 마지막 온정도 그녀와 함께 사라졌어!" --- p.115 "러시아가 사회주의로 가는 길을 닦은 나라로 증명될지 모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어떤 나라도 러시아와 같은 자유를 누리며 노동자가 생산을 지배하는 체제를 수립하려고 한 적이 없습니다." --- p.209 "스탈린은 너무 거칩니다. 이런 결함은 우리 안이나 우리 관계에서는 충분히 참을 수 있지만, 서기장이라는 자리에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습니다. 따라서 나는 동지들에게 스탈린을 제거하고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을 임명하는 방안을 생각해보라고 하고 싶습니다." --- p.308 "레닌 동지는 떠나면서 우리에게 공산주의인터내셔널의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는 유산을 남겼습니다. 레닌 동지, 당신에게 맹세하건대, 우리는 전 세계 노동자의 연합체, 공산주의인터내셔널을 강화하고 넓히기 위해 아낌없이 우리의 생명을 바치겠습니다." --- p.322 "우리는 선진국보다 50년에서 100년이 뒤떨어졌습니다. 10년 안에 그 격차를 없애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짓밟히고 말 것입니다." --- p.395 "사람들에게는 차르가 필요해. 그들이 머리를 조아리고 그들이 살고 일하는 데 명분을 주는 사람이." --- p.474 "따라서 우리는 그런 적을 모조리 없애버릴 겁니다. 설사 그들이 옛 볼셰비키라도! 우리는 그들의 일족, 그들의 가족까지 없애버릴 것입니다. 우리는 생각과 행동으로 (그렇습니다, 생각만으로도) 우리 사회주의국가의 통일을 해치는 자는 모두 가차 없이 처단할 것입니다. 그들은 물론 그들의 일족까지 모든 적을 섬멸하기 위하여!" --- p.484 "코바, 당신에게 왜 내 죽음이 필요하지?" --- p.504 "우리 저 순박하고 평범하며 겸손한 사람들, 과학과 경제, 군사의 모든 분야에서 국가라는 거대한 기계를 움직이는 ‘작은 톱니바퀴’ 같은 사람들을 위해 건배합시다. 그들은 아주 많습니다. 그들의 이름이 대군인 것은 그들이 아주 많기 때문입니다." --- p.6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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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년의 가혹한 상처와 '강철 인간(Stalin)'의 심리적 기원
스탈린은 훗날 권좌에 오른 뒤 자신의 공식 생일을 조작할 만큼 자신을 철저한 신비주의 장막 뒤에 숨기고자 했다. 그가 이토록 철벽같은 방어 기제를 세운 까닭은 그루지야 고리시의 지독한 가난 속에서 겪은 유년기의 참혹한 학대와 비극에 있었다. 구두 수선공이자 심각한 알코올 중독자였던 아버지 베사리온은 상습적으로 어린 스탈린과 어머니에게 잔혹한 폭력을 휘둘렀고, 소년 소소(스탈린의 아명)는 매 맞는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 아버지에게 칼을 던지며 저항해야 할 정도로 분노와 복수심을 내면화하며 자랐다. 게다가 여섯 살 무렵 앓은 천연두로 얼굴에 얽은 곰보 자국과 마차 사고로 왼쪽 팔이 평생 불편했던 신체적 결함은 소년에게 씻을 수 없는 결핍과 지독한 피해망상의 씨앗이 되었다. 아들을 성직자로 만들어 비참한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려 했던 어머니 케케의 애지중지하는 과잉보호 덕분에 소년은 명문 티플리스 정교회 신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신과 제국, 차르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을 강요하는 신학교의 엄격한 감시 체제와 교장 게르모겐, 장학사 아바시제의 숨 막히는 독방 감금 징계는 소년의 영혼을 맑게 가꾸기보다 오히려 이중적이고 반골적인 혁명가로 탈바꿈시켰다. 소년은 감시의 눈길을 피해 지하 서점에서 카를 마르크스의 철학 서적을 탐독하고 금서를 베껴 쓰며 차르 전제 체제를 밑바닥부터 뒤흔들 파괴적인 볼셰비키 투사로 각성해 나갔다. 학창 시절 스탈린은 조지아어 신문에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시를 발표하여 당대 문단에 이름을 올릴 만큼 뛰어난 지적 갈망과 예술적 섬세함을 지닌 소년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거리로 나선 그는 싸움판에서 이기기 위해서라면 규칙 위반과 교활함, 물리적 폭력을 서슴지 않고 휘두르는 악명 높은 골목대장이기도 했다. 유년기의 끔찍한 학대와 정교회 신학교의 억압적인 종교 교육은 소년의 모순된 두 내면을 기이하게 결합시켰고, 훗날 자신에 대한 비판을 눈곱만큼도 허용하지 않은 채 모든 것을 감시하고 통제하려 했던 무자비한 '강철의 인간(Stalin)'을 탄생시켰다. [2] 레닌과의 숨 막히는 암투, 그리고 권력 피라미드의 정상 혁명 이전 지하 활동 당시 평범한 ‘행정 실무자’나 거친 행동대장 정도로 과소평가 받았던 스탈린은 사실 누구보다 뛰어난 실천적 조직가이자 정교한 정치가였다. 1917년 10월혁명 전후로 당의 핵심 기관지인 《프라우다》의 편집장을 맡아 실질적인 무장봉기 계획을 조율한 그는, 1922년 당의 서기장(General Secretary)이라는 지극히 관료적이고 따분해 보이는 행정 요직을 차지했다. 스탈린은 모두가 방심한 사이 지방 당 조직의 핵심 인사권과 당의 서기국 조직을 완전히 움켜쥐며 권력의 피라미드를 차근차근 설계하기 시작했다. 소비에트 연방의 권력 구조 개편을 둘러싸고 스승인 레닌과 깊은 마찰을 빚던 스탈린은 마침내 돌이킬 수 없는 파국적 파동을 맞이하게 된다. 투병 중인 레닌을 면회하는 규칙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레닌의 정치적 지침을 바깥으로 실어 나르며 정치국의 규율을 어기던 레닌의 아내 크룹스카야에게 스탈린이 전화로 입에 담지 못할 모욕적인 언어폭력을 퍼부은 것이다. 이에 분노한 레닌은 스탈린과의 관계 단절을 선언하며 "스탈린은 너무 거칠고 무례하므로 서기장직에서 제거하라"는 내용이 담긴 역사적인 '레닌의 유유(유언장)'를 구술했다. 1924년 레닌이 사망한 직후 열린 제13차 당 대회 비공개 회의에서 마침내 이 파괴적인 유언장이 폭로되는 일촉즉발의 순간이 찾아왔다. 스탈린은 자신의 정치적 생명이 완전히 끝장날 수 있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분필처럼 창백하게 질린 채 판결을 기다렸다. 그러나 강력한 라이벌 트로츠키의 부상을 극도로 경계했던 지노비예프와 카메네프가 스탈린을 감싸 돌며 유언장을 철저히 비밀의 장막 속에 묻어두기로 합의하는 오판을 내렸고, 스탈린은 극적으로 살아남았다. 기회를 잡은 스탈린은 이 삼두정치 연합마저 차례로 무너뜨리며 정적들을 잔혹하게 몰아내고 일당 독재 체제의 절대 권력자로 우뚝 서게 되었다. [3] 대공포(Great Terror)와 전쟁의 참화 속에서 부활한 '인민의 차르' 1930년대 말, 소련을 피와 공포로 물들인 대공포(Great Terror) 정치는 스탈린의 서늘한 이성적 계산과 극단적인 피해망상이 빚어낸 체제 유지의 핵심 도구였다. 수백만 명의 혁명 동지와 일반 시민을 강제노동수용소(굴라크)로 보낸 이 숙청 작업은 결코 맹목적인 광기의 결과물이 아니었다. 스탈린은 당시 비밀경찰수장 예조프가 가져온 약 4만 4,000명의 숙청 대상자 명단과 사진첩 383권을 자신의 집무실에서 한 장씩 손수 꼼꼼히 검토해 서명했으며, 몰로토프를 비롯한 측근들과 함께 "개에게는 개죽음을!" 같은 참혹한 사형 판결 문구를 손수 휘갈겨 넣었을 만큼 차디차고 조직적인 기획하에 공포를 지휘했다. 인명 경시와 잔혹함의 극치는 제2차 세계대전(대조국수호전쟁)이라는 사상 초유의 비극 속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적에게 포로가 되는 것을 반역으로 규정한 가혹한 '명령 270호'를 고수했던 스탈린은, 독일군의 포로가 된 친아들 야코프마저 차갑게 외면하여 죽음에 이르게 할 정도로 잔인하고 비정했다. 그러면서도 루스벨트, 처힐 같은 서방의 거두들을 상대로 테헤란과 얄타 회담에서 압도적인 지정학적 수완을 발휘해 소련을 제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이자 핵무기를 보유한 세계 초강대국의 지위로 단숨에 격상시켰다. "사람들에게는 머리를 조아리고 살아가야 할 차르가 필요하다"고 스스로 굳게 믿었던 스탈린은, 역사 속 이반 뇌제와 표트르 대제의 피비린내 나는 전제정치를 부활시켜 자신을 ‘인민의 어버이이자 자애로운 차르’로 완벽히 신비화했다. 평생을 찬란한 개인숭배 의식 속에 살았던 그였지만, 정작 퇴근 후 머물던 고독한 블리즈냐야 별장의 책상 서랍 속에 감추어둔 비밀 서랍에는 세 장의 종이가 보관되어 있었다. 자기를 향해 더는 암살자를 보내지 말라던 유고 티토의 살벌한 암살 경고 쪽지, 처형 직전 "코바(스탈린의 별명), 왜 내 죽음이 필요하지?"라고 부르짖은 동지 부하린의 마지막 절규 편지, 그리고 레닌이 자신에게 사과를 요구했던 절교 서한은,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이 제왕적 독재자가 실은 평생을 불신과 불안, 그리고 고독이라는 심리적 감옥에 갇혀 지내야 했던 비극적인 인간이었음을 서늘하게 폭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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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는 엄청난 학식과 스타일, 위트를 담아 거장다운 책을 써냈다. 비록 일부 소련 시절의 문서보관소들이 여전히 폐쇄된 상태로 남아 있지만, 이 평전은 분명 오랜 세월의 시험을 견뎌낼 것이다. - 파이낸셜 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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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정했던 그루지야에서의 어린 시절이 어떻게 스탈린의 심리를 형성했는지에 대한 설명 중, 지금껏 가장 설득력 있는 묘사. - 아이리시 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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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우울하고 종종 혐오감을 주는 이 소재를 이토록 흡인력 있는 이야기로 만들어낸 장인 정신의 순수한 숙련도에 경탄하게 된다. - 워싱턴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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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스탈린이 어떻게 마음속까지 철두철미한 계급 투사가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혁명 심장부의 권력 투쟁에서 일반 당원들의 믿음에 부응했는지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 가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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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벽돌을 쌓듯이 차근차근 이야기를 풀어가며 스탈린을 공포의 조직자이기 이전에 생생히 살아 있는 인간으로, 그리고 러시아인들에게 지금도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체제의 설계자로 설명한다. 견고하고 재미있으며 이해하기 쉬운 작품이다. - 뉴욕 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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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은 소련 지도자 스탈린의 초상을 그루지야에서 보낸 어린 시절부터 크렘린 권력의 정점에 오르기까지, 가능한 한 가장 완벽한 형태로 재현했다. - 퍼블리셔스 위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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