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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독본
박정윤
나무옆의자 2015.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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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AN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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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소녀구락부
『연애 독본』―A 양의 혼부라 경험기
검은 틈
회의
칡넝쿨처럼 파고드는
『연애 독본』―K 양의 첫 경험기
원형출판국
『연애 독본』―J 양의 도발적인 경험
다치기 쉬운 저녁
슬픔으로 젖은 불두화
촘촘히 칸을 채우며 다가오는 그림자
『연애 독본』―A 양의 첫 경험기
내 혼이 불탈 때
그 남자의 편상(片想)
작가의 말

저자 소개

저자 : 박정윤
1971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다.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01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바다의 벽」이, 2005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길은 생선 내장처럼 구불거린다」가 당선되었으며 2012년 제2회 혼불문학상 『프린세스 바리』가 당선되었다. 그 외 소설집 『목공 소녀』가 있다.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08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192쪽 | 232g | 130*195*16mm
ISBN13
9791186748015

책 속으로

옷을 갈아입고서야 느긋하게 혼부라를 즐기며 본정으로 갔사외다. 옷을 갈아입은 후로 저희를 돌아보는 남자들이 또래가 아님을 알아차리었습니다. 적어도 정복정모를 한 전문학교 학생이었고, 나팔바지에 통이 넓은 넥타이에 맥고모자를 쓰고 단장을 짚고 있는 모뽀들이었사외다. 저희는 기분이 더욱 느긋해져 신사들이 보내오는 눈길에 웃음으로 답하며 걸었습니다. --- pp.31-32

『고등형사 미와』와 『경성의 영웅, 트로이카』는 아니었지만 딱지본을 만들어낸 기술이 비슷해 같은 출판국에서 찍어낸 듯한 『연애 독본』을 압수했다. (…) 직원은 총독부로 돌아가 오후 반나절 만에 책을 읽었고 그것을 종로경찰서 고등계 형사에게 줬다. 공식적으로는 에로와 그로가 사회를 타락시킬 수 있으니 풍기문란죄로 딱지본을 찍어낸 출판국과 저자를 찾아달라고 협조 공문을 보냈지만 실질적으로 세 권의 딱지본을 출판한 출판국과 『고등형사 미와』와 『경성의 영웅, 트로이카』의 저자, 한제국을 찾아내기 위한 것이었다. --- pp.57-58

도대체 사랑이 무엇이오? 어제까지만 해도 아무렇지도 않았던 가슴을 이렇게 후벼 팔 수 있소? 겨우 세 시간을 같이 있었던 계집애 때문에 쩔쩔매고 있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럽소. 그 애는 나보다 열두 살이나 어리오.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꽃잎을 욕망하는 괴상한 정신 상태, 감정이 낯설고 두렵소. 그럼에도 하얘진 머릿속으로 계속 그 애를 곁에 붙잡아두고 싶은 생각뿐이오. --- p.69

참혹하고 비통하지만 이것이 저의 첫 경험기이외다. 이 비참하고 가혹한 첫 경험을 아까운 종이에 써내려간 연유는 이 글을 읽는 독자 제씨께서는 저와 같이 제 발등을 찍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말라는 당부를 하기 위함이외다. 작년 12월에 발간한 여성잡지 『신가정』에 실린 연애 십결을 덧붙이나니 독자 제씨께서는 잘 읽고 숙지하여 똑똑히 행동하시길 바라외다. 연애 도중에 상대자에게서 절망을 느낄 때는 칼 같은 마음을 먹고 단념할 일. 저는 그 문장에 밑줄을 새카맣게 긋고 그어서 종이가 뜯겨져 나갔더랬습니다. --- pp.114-115

세 명의 여학생은 문간방을 나섰다. 한복 소매를 팔뚝까지 걷어 올리고 치마를 무릎 위까지 바짝 올려 입은 세 명의 여학생은 대문 앞에 활짝 핀 불두화 곁을 지나쳤다. 유난히 창백한 얼굴이었던 정희가 골목 중간에 주저앉아 헛구역질을 했다. 아란과 경숙은 정희 곁으로 다가가 등을 두들기다 서로 어깨를 감싸 안고 울음을 터트렸다. 먼저 울음을 터트린 정희는 앞으로 닥칠 고통으로, 경숙은 만나주지 않는 남자에 대한 원망으로, 아란은 거절당한 소설의 비참함으로 울었다. --- p.143

하늘의 달과 별과 같이 늘 쳐다보이는 자리에 박혀 있는 그것을 사랑이라 부르면 어떻겠습니까. (…) 저는 순간적인 쾌락이 아닌, 변함없이 유지되는 단단한 사랑이, 참연애가 있다고 믿고 싶사옵니다. 평소 소녀구락부의 회원인 저희들은 연애 십결을 달달 외웠사외다. 연애를 하려면 제대로 된 똑똑한 연애를 하고 수동적인 것이 아닌 주도적인 연애를 할 것이라 결심하였사외다. 또한 참연애는 찬성하지만 속연애(俗戀愛)는 반대하는 입장이었사외다. --- p.162

“그녀에 관한 일이네.”
고 형의 입을 찢어버리고 싶었다. 그녀, 라니. 저고리에 통치마를 입은 여학생에게 그녀, 라 부르는 그의 입을, 목을 비틀고 싶었다. 나는 사무실의 서랍을 모조리 열었다. 디자이너 박 군의 책상 서랍까지 죄 열어보았다. 쇳조각이라도 있으면 사용하리라. 서랍을 뒤지다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 독한 감정을 끝내는 방법은 한 가지뿐이었다. 내 고통을 스스로 끝내는 것. 고 형에게 상처를 입힌다고 사라질 것이 아니었다. --- pp.177-178

엄마의 엄마에 대한 기억을, 내가 만나보지 못한 외할머니의 처녀 시절을 상상해보는 작업은 즐거웠다. 여느 할머니들과는 달리 허리를 나무도마처럼 편평하게 펴고 손을 휘젓지 않고 걸었던 외할머니의 소녀 시절을, 아란이 머물던 공간으로 데려와봤다.

---「작가의 말」중에서

출판사 리뷰

『연애 독본』―세 여학생의 첫 경험기

열일곱 살 여학생 아란, 정희, 경숙은 평생토록 변치 않을 우정을 약속하고 서로의 연애사까지 공유하기로 한 소녀구락부로 뭉친 절친한 사이다. 평소에 연애 십결을 달달 외며 똑똑하고 주도적인 연애를 하겠다고 다짐하던 이들은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연애와 사랑에 빠지는데, 그들의 충동적이고 모험적인 행동은 짜릿한 쾌락만큼이나 혹독한 고통을 예비한다.

글솜씨가 뛰어난 아란은 두 남동생과 가난한 삼촌 집에서 더부살이하는 처지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면 권번 기생으로라도 들어가겠다고 말하지만 아란이 진실로 원하는 것은 『상록수』보다 잘난 소설을 쓰는 것. 그런 아란에게 동무들과 데파트 옥상정원에 갔을 때 알게 된 신사 민선재가 친구 고원국이 운영하는 출판국을 소개해준다. 두 차례 소설을 퇴짜 맞은 아란은 경성 문학계가 발칵 뒤집힐 연애 사건을 써보라는 제의에 경숙과 정희, 그리고 자신의 첫 순정을 버린 이야기를 소설로 쓴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 바로 ‘첫 경험기’라는 소제목이 붙은 딱지본 소설 『연애 독본』이다.

가장 먼저 K 양의 첫 경험기. 세 친구가 저고리와 통치마 대신 원피스와 실크 스타킹으로 단장하고 본정 거리에서 혼부라를 즐기던 날 K 양의 첫 경험기가 시작된다. 그들 앞에 한 신사가 다가와 드라이브를 제안한다. K 양이 두 사람을 따돌리고 냉큼 신사를 따라나서 고급 호텔에서 신사와 짜릿한 하룻밤을 보낸다.

저는 깨달았사외다. 옷 안에 가둬둔 육체는 껍질을 벗으면 모두 새롭게 빛이 났고 신성스러운 기운이 넘쳤사외다. 부끄러움이 사라져 저도 그의 몸을 쳐다보았고 그의 눈을 응시했습니다. (80쪽)

K 양이 들려준 황홀한 이야기에 샘이 난 J 양은 정혼자를 찾아가 순정을 떼버린 후 자유연애를 하기로 결심한다. 경성제대 법문학부에 다니는 정혼자가 여자를 들여 살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기에 그에 대해 복수를 할 심산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J 양의 첫 경험은 참담하고 비통하게 끝난다.

제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순결을 버린 것이 슬픈 것이 아니라 첫 경험을 친구들에게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창피해서 울었사외다. 찌릿찌릿하지도 않았고 제 몸이 아름답게 여겨지지도 않았으며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전혀 없었사외다. (114쪽)

작가는 아란의 소설 『연애 독본』 속 경숙과 정희의 이야기를 이들 각자의 목소리로 천진하면서도 농염하게 풀어놓는다. 당시 세태가 반영된 행위들이 때로 웃음을 유발하는 가운데 여학생들이 느끼는 부끄러움, 흥분, 당혹감, 비참함이 생생하게 묘사된다.

흥미롭게 뻗어나가는 서사, 또 다른 사랑을 보여주는 인물들

『연애 독본』은 출간되자마자 엄청난 인기를 얻는다. 이 지점에서 소설의 서사가 흥미롭게 확장된다. 아란의 소설이 유명세를 타자 이 소설을 출간한 출판국이 조선총독부 금서로 지정된 『고등형사 미와』와 『경성의 영웅, 트로이카』를 펴낸 곳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두 책의 작가와 출판국 대표를 체포하려는 경찰에게 아란이 먼저 타깃이 되는 위험에 처한다. 경성의 신풍속과 연애 이야기로 한정될 수 있었던 작품이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상황과 만나면서 새로운 긴장과 소설적 재미가 더해진 것이다.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두 인물 민선재와 고원국의 관계도 눈길을 끈다. 두 사람은 아란이 소설을 쓰고 책을 내는 데 적극 개입한 인물로 이들의 우정과 신의는 소녀구락부 세 여학생의 관계와는 또 다른 색깔과 무게를 지닌다.

고원식에게 보내려던 민선재의 엽서에는 느닷없이 찾아온 사랑 때문에 괴로워하는 심정이 절절히 담겨 있다. 처자식이 있는 한 집안의 가장으로 어린 소녀를 열망하는 생생한 감정 앞에서 느끼는 두려움, 자신의 마음이 사랑인지 욕망인지 충동인지 알 길 없는 혼란이 애절하게 다가온다. 아란 앞에서 흔들리는 감정을 억누르느라 주머니 속 잔가지를 가루가 될 때까지 분지르는 모습은 사랑의 고통이 가장 날카롭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 얼굴을 떠올리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란이 눈앞에 있을 때는 치솟는 충동을 누르느라 진이 빠졌고, 아란이 곁에 없을 때는 혼자 캄캄한 숲에 버려진 것처럼 외로웠다. 어린 여학생에게 이토록 모질고 독한 감정이 생기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118쪽)

그러니 그가 『연애 독본』 속 아란의 경험기를 읽고 지옥 같은 고통과 분노에 휩싸이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아란은 자신이 품어온 사랑을 고백하고 그 남자의 품으로 거침없이 뛰어들었다. 일종의 트릭이요 반전인 아란의 경험기를 읽으면 독자 또한 민선재 못지않게 황망해지고 만다.

고원식은 민 형에게 「A 양의 첫 경험기」는 거짓이라고 말해주지 않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 형은 더 고통스러워야 했다. 어떻게 자신을 믿지 않을 수 있는지, 고원식은 이해할 수 없었다. (186쪽)

고원식의 마지막 선택 역시 예기치 못한 놀라움을 불러일으킨다. 그에게 민선재는 서자로 살아온 설움과 분노를 잊게 해준 벗이자 두 권의 딱지본을 흥행시켜 이복형 앞에 당당하게 설 수 있게 해준 작가였다. 그러하기에 그는 민선재가 위험해질 것을 알고 일찌감치 대비를 해둔 터였다. 소설 초입의 옥상정원 장면에서 그가 표지 없는 책에 깨알 같은 글씨로 무언가를 적어 나가던 행동이 괜한 것이 아니었음을 소설 끝에서 비로소 확인하게 된다.

사랑과 욕망에 관한 섬세하고 밝은 시선

『연애 독본』은 1930년대 경성을 정밀하게 살려내면서 열일곱 소녀들의 달뜬 마음과 서툰 욕망, 변함없이 유지되는 참연애에 대한 꿈, 숨겨야 하지만 숨길 수 없는 사랑 등을 밀도 높은 문장과 치밀한 플롯으로 그려냈다.

작가는 이 소설을 5년 동안 붙잡고 있던 다른 소설을 끝낸 후 “휴식하듯 가볍게 쓰려고 노력했다”며 “슬픔에 짓눌린 것들을 거둬내고 써서 소설을 끝내고도 밝음이 유지되었다. 해피엔드의 즐거움, 쓰는 입장에서 처음으로 맛 들렸다”고 적었다. 전작 『프린세스 바리』에서 바리데기 신화를 바탕에 두고 인천 변두리 밑바닥 인생을 슬프고도 아름답게 껴안았던 작가를 생각하면 이 밝음은 또 하나의 시도라 할 수 있다. 그 밝음에 독자의 마음까지 밝아지는 것도 퍽 자연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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